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330
00333 333화
그런 반면 하석준 과장과 오재욱 전문의 등 태수를 좋게 보는 의사들은 칭찬에 바빴다.
제일 먼저 하석준 과장이 운을 띄웠다.
“최 선생을 해외로 내보냈던 게 정말 잘한 일이었어.”
“제임스 박사님이 찾아오시지를 않나, 직접 어시스던트를 요청하시지를 않나. 참 물건입니다.”
오재욱 전문의가 곧바로 화답하자 하석준 과장이 더욱 신명이 났다.
“저번에 오연택 환자였나? 환자도 끝까지 명줄 잡고 있었잖아. 그게 보통 레지던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지.”
“그럼요. 전 정말 그때 치프를 인정하게 됐습니다. EMR을 보고 나는 과연 저럴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였으니까요. 그 후로도 몇 번의 대수술을 성공시켰습니까.”
“난 직접 보고 질렸다니깐.”
외과장과 오재욱 전문의 등 외과 전문의들이 대화에 점점 빠져들었다.
어쨌든 같은 외과 소속이다. 더욱이 다른 의국 과장이나 전문의가 모르는 사실이 있다.
태수는 결코 오만하지도 않았고 자신의 일에만 충실했다.
다만 환자의 생명이 걸렸을때만 달랐다.
들어온 환자를 살린다.
그건 같은 외과의로서 부담이 줄어든다.
선배 모시는 법도 알고 실력도 있는 레지던트라면 미워할 이유가 없다.
이 모습이 현재 동성종합병원 외과 분위기였다.
한편 그 소식을 접한 석정현 이사장과 한민웅 병원장이 머리를 맞댔다.
그 자리에는 한 사람이 더 자리했다.
장시간 외국 세미나를 마치고 돌아온 석재봉 과장이었다.
“병원장님. 정말 제임스 박사님이 최 선생을 어시스던트로 요청한 겁니까?”
“몇 번 말했잖아. 나도 참 황당하다니까.”
한민웅 병원장은 정말 어이없는 표정이었다.
제임스의 명성을 생각한다면 태수를 불러들이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제임스가 직접 요청했다는 건 이제 와 부정할 수도 없는 이야기다.
석재봉 과장은 바로 흐뭇한 표정의 석정현 이사장에게 말했다.
“아버지. 그 계획 초안 좀 볼 수 있습니까?”
“아, 그렇지. 여기.”
드륵.
이미 준비되어 있었는지 소파 사이드 서랍장에서 서류를 꺼내 내밀었다.
석재봉 과장은 말없이 받아들고 빠르게 살폈다.
잠시 시간이 흘러갔지만 누구도 그 모습을 지루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20분이나 지났을까?
석재봉 과장이 석정현 이사장을 향해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거면 충분할 거 같습니다.”
“더 추가할 건 없고?”
“물론 있습니다. 여기…….”
석재봉 과장이 몇 가지 아이디어를 더 내자 석정현 이사장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래. 그게 좋겠다.”
“저도 동의합니다만, 이건……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한민웅 병원장도 질세라 의견을 내세웠다.
그렇게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뭔가 계획의 뼈대가 잡힌 느낌이었다.
탁탁.
한민웅 병원장이 토론한 서류를 정리한 후 석정현 이사장에게 말했다.
“그럼 이렇게 진행하겠습니다.”
“병원장이 좀 바빠질 거 같아.”
“이런 일이라면 즐겁게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럼 고맙지.”
석정현 이사장의 푸근한 시선을 받은 후였다.
한민웅 병원장이 석재봉 과장에게 말했다.
“이거 자네가 해야 하는 걸 내가 빼앗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
“그런 말씀 마십시오. 전 아직 내려올 때가 아닌 걸 아시잖습니까.”
“그래. 자네가 내려오면 내 자리가 위험하니까 천천히 내려오라고.”
“선배님도 참. 그보다 신임 산부인과장은 어떻습니까?”
병원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흘러가자 한민웅 병원장이 화답했다.
“그 친구야 내가 예전부터 잘 알고 있었으니까. 다른 의과랑도 화합이 잘 되는 거 같고.”
“제가 고심한 보람이 있는 거 같습니다. 그 외에는요?”
“최 선생을 안 좋게 보는 시선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어. 아직 시샘이 아예 없진 않지. 소문이 너무 안 좋게 나다 보니까 시간이 좀 걸리는 모양이야.”
“아마 이 계획이 제대로 진행되면 최 선생이 아쉬운 소리 들을 일은 없을 겁니다.”
석재봉 과장의 말에 한민웅 병원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런데 어떻게 그런 인재를 발견했나?”
“아주 다행스럽게도 연성대학병원에서 못 알아봐 줬습니다.”
“그 녀석들이야말로 자기만 잘난 줄 아니깐 말이야.”
한민웅 병원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석재봉 과장이 이어서 말했다.
“그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덕분에 저희는 새롭게 기지개를 켤 수 있으니까요.”
“최 선생이 모든 걸 할 순 없어.”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랬듯이 병원을 새롭게 바꿀 동력원이 될 겁니다. 정 선생도 같이요.”
“그건 인정해.”
한민웅 병원장도 그 점은 부인하지 못했다.
일례로 제임스를 병원으로 불러들였다.
자신도 하지 못할 일을 일개 레지던트 아니, 최태수가 해냈다.
그 하나만으로도 태수의 가치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변했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그동안 태수가 원치 않은 경계와 핍박 속에서 동성에 대한 애정이 떨어졌다는 건 여기 모두가 알고 있다.
그걸 바로 잡을 수 있는 계획이다.
그리고 동성이 새롭게 발돋움 할 수 있는 계획이다.
이걸 성공시켜야 했다.
***
한편 심각함이 가득 짓누르는 곳도 있었다.
그건 바로 박성민의 방이었다.
태수가 반대편에 앉아 시원한 음료수를 빨대로 빨아 먹는 모습을 보며 박성민이 한소리 했다.
“니가 모기 새끼냐, 아니면 나비 새끼냐? 하루 종일 쪽쪽거리고 있네.”
“이제 한 모금 마셨습니다.”
“저게 요즘 슬슬 개겨. 아주 그냥 SICU에 보름 정도 쳐 박아 놓고 20시간씩 킵을 시키든가 해야지.”
예전 일을 들먹이는 박성민에게 태수가 넉살 좋게 응수했다.
“비상계단 가실까요?”
“저저저. 저게 진짜. 제임스 박사님 오셨다가 가시니까 이젠 기고가 만장을 하셔서 아주 콧대가 하늘을 똥침 놓고 있네.”
“전 선배님이 더 이해가 안 갑니다. 이렇게 불러서 걱정만 보이시는 게요.”
태수의 의아한 얼굴을 본 박성민은 더더욱 눈꼬리를 아래로 축 늘어뜨렸다.
“그럼 걱정이 안 되냐? 제임스 박사님이 네 흑역사를 알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그렇게 되면 그동안 너 예쁨 받는 거 다 도로아미타불 관심없음보살 된다니까.”
“알고 계십니다.”
“그래. 그렇게 알고 계시는 데 너……. 뭐?”
두 눈이 튀어나올 듯한 박성민의 모습에도 태수는 태연하게 말을 이어갔다.
“전에 외국에서 민수랑 술 먹다가 그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었어요.”
“그럼 그때 차트 바뀐 것도, 처치 뭐 빠지게 하고도 욕 디지게 먹고 쫓겨나다시피 인턴 수료한 것도 다 알고 있다고?”
“네.”
“허 참. 그런데도 널 연성으로 불러? 도대체 그 양반은 무슨 생각이래?”
“전 좋은데요. 아주 좋습니다.”
태수의 의미심장한 미소를 본 순간 박성민이 멈칫했다.
그러다 이내 마음을 돌린 듯이 시원하게 내뱉었다.
“그래. 가서 다 짓눌러버려!”
“그겁니다.”
“그렇지! 아주 그냥 콧대를 다 비틀어서 뭉개버리는 거야. 내 몫까지.”
박성민이 슬쩍 숟가락을 얹었다.
여기 내려와서 좋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전에 T/O가 없다는 문제로 쫓겨난 건 계속 마음에 남은 모양이다.
태수는 한 쪽 눈을 찡긋거리며 말했다.
“아주 제대로 눌러 놓고 오겠습니다.”
“좋아, 아주 좋아! 그런 각오면 됐어. 이 형이 차비 좀 줄까? 아니면 뭐 수술 도구 좀 빌려줘?”
“아니요. 제거 써야죠. 그럼.”
태수가 씩씩하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자 박성민이 올려다보며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한 번의 고갯짓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태수 또한 똑같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후 박성민의 방을 나섰다.
결정이 된 이상 미룰 이유가 없었다.
제임스도 최대한 빨리 올라오라고 했다기에 태수는 바로 주변 정리부터 시작했다.
파견 기간은 일주일 정도다.
하지만 외과의 레지던트들을 보살펴야 할 태수기에 신경 쓰이는 점이 많았다.
생각하던 태수는 간단하게 정리하기로 했다.
저녁 무렵 모든 레지던트를 의국에 불러 모은 태수가 간단하게 말했다.
“쉬고 싶으면 쉬어라.”
흠칫!
레지던트들의 몸이 순간 바짝 굳어졌다.
태연하게 하는 저 말이 자신들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이제는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절대! 열심히 하겠습니다.”
“알아서 하고. 송 선생.”
태수의 부름에 같이 굳어 있던 송민규가 얼른 대답했다.
“말씀하십시오.”
“문제 있으면 바로 전화해.”
“문제없도록 하겠습니다.”
송민규의 대답 또한 빠릿빠릿했다.
이제는 눈에 힘이 가득 들어가고 자신감도 많이 생긴 모양이다.
태수는 그런 송민규에게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잠깐이지만 치프를 미리 경험한다고 생각하고.”
“네!”
“좋아. 잔소리는 여기까지 하고, 다들 각자 할일 해.”
태수의 말이 떨어지자 레지던트들은 바로 몸을 움직였다.
그때 홍진만이 슬쩍 다가와 태수와 가까이 섰다.
할 말이 있는 듯한 모습에 태수가 먼저 물었다.
“왜?”
“어떤 기분입니까?”
“뭐가?”
태수는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홍진만은 특유의 엉뚱함으로 은근슬쩍 엉겨 붙었다.
“이번에 잘 되면 안 돌아오고, 막 그러시는 건 아니죠?”
“아예 갔으면 싶어?”
“그럴 리가요. 그건 절대 아닙니다. 그저…….”
“잘되면 좀 불러 달라 이건가?”
태수가 직설적으로 묻자 홍진만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서로 돕고 사는 거 아닙니까. 하하.”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제가 뭘 말입니까……. 아악!”
대답하던 홍진만이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보아하니 한쪽 귀를 어느새 다가온 송민규가 잡아당기는 중이었다.
“이거부터 바로 눈앞에서 치우겠습니다.”
“좋은 생각이야.”
“그럼 푹 쉬시고 내일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인사말과 함께 가볍게 고개 숙인 송민규가 그대로 홍진만의 귀를 더욱 강하게 잡아당겼다.
“아, 아! 아파요!”
“아프라고 당기는 거야.”
“내가 뭐 못할 말……. 아악!”
“시끄러우니까 제발 입 닥치고 따라와.”
송민규는 머뭇거림도 없이 홍진만을 잡아끌었다.
몇 년 동안 같이 생활한 만큼 다루는 법도 가장 잘 알고 있는 모양이다.
절레절레.
태수가 어이없는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재밌게들 산다.’
그저 어이없을 뿐이었다.
맏형같이 듬직한 송민규와 다르게 홍진만은 틈만 나면 반항하고 까불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밉지는 않았다.
외려 그런 성격이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의국 분위기를 풀어주는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했다.
가끔은 피곤한 경우도 있지만 그건 그저 웃으며 넘길 뿐이었다.
물론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낸 건 태수의 역할이 컸다.
선후배를 떠나 힘든 의국 생활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하려 노력했다.
그 작은 결실이 이제야 약간씩 꽃을 피웠다.
“좋잖아.”
태수가 중얼거리며 입가에 밝은 미소를 지었다.
잠시 후 태수가 숙직실로 들어가자 정민수가 다가와 수술 도구가 든 가죽주머니를 내밀었다.
“이건 잊지 말고 챙겨.”
눈치가 누구보다 빠삭한 정민수라는 걸 알기에 태수도 빙긋 미소를 지으며 받아들었다.
“혹시 같이 안 가서 섭섭하진 않아?”
“누군가는 남아 있어야지. 나도 너 없을 때 활약도 좀 하고 말이야. 내가 너무 네 그늘에 가려져 있단 말이야.”
“그건 그렇지.”
태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정민수는 바로 이어서 말했다.
“그러니까 이번 기회에 응급실 쪽으로도 점수 좀 따려고. 치프만 뛰어난 외과라는 소리를 들으면 겁나게 쪽팔리니까.”
“다들 알고 있어.”
“아니지. 위기 속에서 내가 또 한 건 해 줘야 내년에 너 없어도 편해지지. 그리고 알잖아.”
정민수가 슬쩍 엉겨 붙자 태수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김 선생이 마음에 걸려?”
“그것 때문은 아닌데, 그래도 잡은 기회를 넋 놓고 놓칠 이유는 없지.”
“그건 알아서 하고, 좌우간 애들 좀 잘 부탁한다.”
“얼마든지.”
툭!
주먹을 부딪치는 두 사람의 눈빛에는 깊은 신뢰가 담겨 있었다.
***
저녁이 되자 태수는 빠른 걸음으로 ICU(중환자실)에 들어섰다.
오늘 중환자실 당직인 홍진만이 얼른 다가와 태수에게 넙죽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치프.”
“일어나셨다고?”
“안 그래도 치프 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이쪽입니다.”
홍진만이 예의 있기 안내하려 하자 태수가 막아섰다.
“아니야. 일해.”
“아, 네.”
“혹시 별다른 일 있어?”
태수의 물음에 홍진만은 얼른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있습니까. 저 홍진만입니다. 제가 있는 이상 어떤 이상도 재깍재깍 해결할 수 있습니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
홍진만은 시무룩한 얼굴로 변했다.
계속 태수에게 칭찬 받고 싶은 모양이다.
성격상 살가운 칭찬을 하지 못한 태수는 홍진만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힘내고. 이따가 보자.”
“네. 치프!”
홍진만은 언제 위축되었냐는 듯이 밝게 인사했다.
태수의 한마디 한마디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모습이다.
어떨 때는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귀여운 동생 같은 느낌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