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3385
Chapter 153화.
태수는 약간 혼란스러웠다.
칼자루를 쥔 건 맞는데, 이게 무슨 칼자루인지 모른 탓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팽그르르.
태수의 잔머리가 발동했다.
닥터 슈미트의 부탁?
여긴 내과.
번쩍.
눈빛을 빛낸 태수는 뭔가 감을 잡았다.
‘설마?’
단순한 추측이라 옳단 확신은 없었다.
그런데 칼자루를 쥐고 있다.
이럴 땐 ‘못 먹어도 고’ 작전이 장땡이다.
태수는 대뜸 닥터 월릭에게 인사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꾸벅.
고개까지 푹 숙였다.
확신이 없는 행동이라 태수의 가슴은 크게 두근두근 거렸다.
그런데 그때 닥터 윌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그 친구의 말이 맞았어.”
“…….”
“조금의 틈만 열어주면 알아서 달려들 거라더니 말이야.”
“제가 생각한 게 맞습니까?”
고개를 든 태수가 적잖이 놀랐다.
사실 태수도 부탁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이창규의 회복을 보고 절감했다.
세상 모든 병과 증상은 수술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때로는 약으로 다스려야 할 때도 있었다.
또 수술한 환자도 적절한 약으로 더 빠른 호전을 보일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백번 득이 될 일이었다.
태수가 놀란 얼굴로 말하자 닥터 월릭이 턱을 쓸었다.
스윽.
“눈치가 제법이야.”
“그럼, 정말 알려주시는 겁니까?”
“물론.”
“우, 우와.”
태수가 크게 기뻐하려던 찰나였다.
닥터 월릭이 동요 없는 얼굴로 냉정하게 말했다.
“오늘까지는 쉬고, 내일부터 이쪽으로 출근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꽁무니 뺀 닥터 정하고 미스터 김도 같이.”
닥터 월릭이 먼저 두 사람을 언급했다.
태수에겐 두 배로 기쁨이 차오르는 소리였다.
“감사합니다.”
“감사라. 단기속성으로 배우는 걸 만만하게 보는 건 아닌가?”
“가르치시다 지치게 해드리겠습니다.”
태수는 당찬 포부를 보였다.
그 순간 닥터 월릭의 입꼬리가 사르륵 움직였다.
“좋아. 기대하지.”
“감사합니다.”
태수는 힘찬 목소리로 다시 한 번 인사했다.
그리고 배움의 기회를 열어준 닥터 슈미트에게도 마음으로 같은 뜻을 전했다.
그저 고마움만 느끼는 게 아니었다.
설?다.
한층 더 발전할 자신과 정민수, 그리고 김혁권의 모습을 상상하니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잠시 후.
닥터 월릭과 대화를 마친 태수가 의료 텐트를 나섰다.
정민수와 김혁권이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태수를 발견하자 재빨리 다가왔다.
타다닥.
“그래서 왜 보자는 거였어?”
“환자 바이탈 관리 잘못했다고 엄청 깨지진 않았습니까?”
두 사람의 다급한 질문에 태수가 힐끔 흘겨봤다.
“요즘 자꾸 저만 떠미는 기분입니다.”
정확한 지적에 정민수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하, 하. 그건 좀 착각인 거 같아.”
“그래서 뭐요?”
김혁권은 항상 그렇듯이 당당하게 따졌다.
역시 말해 봐야 소용없었다.
태수도 으레 그렇단 듯이 어깨만 들썩였다.
이어서 닥터 월릭과 오간 대화에 대해 짤막하게 말했다.
“내과에 대해 알려준다고 합니다.”
“나는 필요 없네요.”
“아니요. 혁권씨는 간호 업무에 대해 좀 더 체계적으로 알려주신다고 했고요.”
“더 체계적……. 고생길이 흰하네.”
김혁권은 세상 무너진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빼지 않는 건 자신도 변화가 있어야 할 때를 직감한 게 틀림없었다.
반대로 정민수의 분위기는 크게 들떴다.
“우와, 정말?”
“그래. 닥터 슈미트가 부탁했나봐.”
“정말 타의 귀감이 되는 멋진 분이야.”
“그리고 우리도 생각하고 있었던 부분이지.”
태수가 덧붙여 말하자 정민수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의과 가릴 처지가 아니니까.”
“정답.”
“그런데 이러다가 내외과를 아우르는 전천후 의사들이 되는 거 아니야?”
정민수가 빙글빙글 미소를 지었다.
홀로 장밋빛 미래를 그리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태수는 단호하게 차단했다.
“모든 걸 배우고 익히려면 백년도 모자라.”
“나도 알아.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심오한 세계를 왜 몰라.”
“그럼 됐고.”
태수가 답하자 정민수가 슬쩍 물었다.
“그래서 언제부터?”
“내일부터.”
“그럼 라쿠가 언제 도착하지?”
정민수가 시간을 재려하자 태수가 막았다.
“때가 되면 오고, 때가 되면 말해줄 거야.”
“느긋한데?”
“당장 창규랑 떠퍼날 게 아니니까.”
이창규의 회복?
최소 일주일 아니, 그 이상을 보고있었다.
그것도 마을에서 치료 가능한 최소한의 건강을 기준으로 한 거였다.
극심한 출혈에 팔다리까지 부러진 아이다.
그래서 태수는 서두르지 않았다.
결정이 나자 김혁권이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으. 할 거 없으면 좀 더 쉽시다.”
“네. 쉬러 가시죠.”
“갑자기 쉰다니까 어색하고 좋네요.”
“쉬어야 활력이 생깁니다.”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며 다시 숙소 방향으로 걸어갔다.
이창규의 회복을 눈으로 봤다.
그래서 좀 더 마음을 놓고 짧은 휴가를 즐기기로 했다.
세 사람은 딱히 무언가를 하지 않았다.
숙소에서 한숨 더 자는 게 전부였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난 이들에게는 이보다 더 큰 호사가 없었다.
“드르렁.”
“쿨, 쿨.”
낮에 자는 쪽잠.
이게 바로 꿀맛이었다.
오후 시간.
라쿠의 상단 소식은 바로 알 수 있었다.
“상단이 지금 자리 깔았대.”
“얼른 가봅시다.”
의료진들이 소리 높여 알리고, 또 부산하게 움직였다.
좋은 물건을 취급하는 라쿠의 상단이라 인기가 끝내 줬다.
한편 태수와 정민수, 김혁권은 내과 2팀 병동 텐트에 도착했다.
스륵.
천막을 걷고 들어가자 이창규 병상쪽을 살폈다.
역시 강영훈이 자리해 있었다.
세 사람은 곧바로 그에게 향했다.
척.
도착한 순간 강영훈이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마주했다.
왜 찾아왔는지 추측된 모양이었다.
그런데 표정이 그렇게 좋지 않았다.
결론부터 말했다.
“마을 어귀에 자리를 펴도 좋단 허락을 받았습니다.”
“흠. 애매하네요.”
“모두 같은 의견이 아니라 그렇게 됐습니다.”
거기까지만 말했다.
아무래도 그 소식이 전부인 듯 했다.
그런데 이도저도 아니었다.
태수는 눈을 굴리며 머릿속으로 상황을 차분히 정리하려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김혁권의 눈썹이 호랑이처럼 솟구쳤다.
그의 인내심이 바닥난 모양이었다.
“이 사람들이 진짜.”
김혁권이 싸늘하게 한소리 퍼부으려 할 때였다.
턱.
태수가 바로 나섰다
“…….”
가만히 바라보며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그만하란 뜻이었다.
그 순간 김혁권의 날카로운 눈빛이 태수에게로 향했다.
찌릿.
살이 따끔거릴 정도로 매서운 눈빛이었다.
그런데 태수는 대뜸 강영훈에게 인사했다.
“소식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한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려운 결정이셨을 겁니다.”
“…….”
강영훈은 침묵한 채 시선을 피했다.
태수는 어떤 원망도 하지 않았다.
차분하고 정중하게 이후 상황을 정리해 말했다.
“창규는 곧 깨어날 겁니다.”
“그렇습니까?”
“제가 그래서 여기로 데려온 겁니다.”
“그, 그래요.”
강영훈이 어색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래도 태수는 개의치 않고 이어서 말했다.
“어느 정도 회복 된 후에 마을로 함께 돌아갈 겁니다.”
“네.”
“그 기간이 그렇게 길진 않을 겁니다. 그럼 내일 찾아뵙도록 하죠.”
꾸벅.
태수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 돌아섰다.
김혁권은 여전히 할 말이 많은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스윽.
태수는 그런 김혁권의 손을 끌어 밖으로 향했다.
김혁권은 의외로 순순히 그 손길을 따랐다.
태수의 행동에 분명한 이유가 있을 거란 추측 탓이었다.
정민수는 걱정어린 표정으로 뒤따랐다.
곧 세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동시에 표정부터 좋지 않은 김혁권이 바로 태수에게 물었다.
“왜 말렸습니까, 답답해 죽겠는데 한 마디 쏘아붙이지도 못합니까?”
“해서 뭐합니까.”
“강영훈씨 입장도 마음 편치 않을 겁니다.”
태수는 간략하게 말했다.
그러나 주어가 빠져 있을 뿐, 핵심은 모두 담겨 있는 말이었다.
그의 자녀인 송희란 아이가 질환을 앓고 있다.
아빠의 심정이라면 의료진들을 납치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흐음.”
김혁권이 묵직한 탄성을 내뱉었다.
그때 정민수가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어쩌면 마을 어귀까지 접근을 허락받은 게 강영훈씨 덕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민수, 빙고.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지.”
태수가 크게 동조했다.
그 순간 김혁권이 씁쓸한 얼굴로 손을 저었다.
“알았어요. 그만한다고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보다 앞으로 뭘 어쩌잔 겁니까?”
김혁권이 묻자 태수가 찡긋 미소를 지었다.
“배우고 또 배워야죠.”
“그게 전부입니까?”
“한국에서 선물 보내준다는데, 뭐가 올지 기대가 됩니다.”
태수가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자 김혁권은 김이 팍 샌 얼굴로 돌아섰다.
“도대체 저 닥터 머릿속엔 뭐가 들어 있는 거야.”
투덜투덜.
먼저 멀어져가는 김혁권의 목소리가 상당히 신경질적이었다.
뭔가 개운하지 못하게 진행되는 상황 탓이었다.
태수도 알고 있다.
아니, 누구보다 가장 이런 상황이 달갑지 않았다.
“저도 마음 편한 건 아닙니다.”
“세상일은 복잡하기만 하고, 내 마음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고, 젠장이다.”
정민수도 썩 기분이 좋진 않은 모양이다.
그러나 태수는 수더분하게 말했다.
“그거 다 생각하면 머리 빠져.”
“그럼?”
“이럴 땐 그냥 뭐 빠지게 구르면 돼.”
태수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 말이 조금 무책임할지도 몰랐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옳았다.
당장 전전긍긍한다고 달라지는 게 없다면 굳이 마음 쓸 거 없었다.
차라리 그 시간을 더 생산적으로 활용하는 게 자신에게 도움이 될 터였다.
그리고 찾아온 다음날.
세 사람은 약속대로 내과 2팀 의료 텐트로 향했다.
속에는 이미 상황을 전해들은 의료진들이 서 있었다.
그들 중 그나마 안면이 있는 닥터 갈리온이 태수와 정민수에게 말했다.
“두 분은 이쪽으로 오시죠.”
“네, 잘 부탁드립니다.”
“그런 말은 나중에 듣기로 하고, 우선 내과는 외과와 다르게…….”
닥터 갈리온은 내과의 개요부터 설명했다.
꽤 딱딱하고 강압적인 설명이었다.
닥터 월릭의 분위기가 풍기는 걸 보니 많은 영향을 받은 듯 했다.
핵심만 딱딱 짚어주니 이해하기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