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3600
Chapter 369화.
그런 이유로 태수는 머릿속에서 수혈팩을 깨끗하게 지워버렸다.
그 순간 울타리에 갇혀 있는 느낌이 사라졌다.
제한된 생각이 틀을 깨고 자유를 찾은 거였다.
그러나 모든 자유에는 책임이 따랐다.
수혈을 포기하며 얻은 자유엔 그걸 대체할 다른 책임 있는 아이디어를 찾아야 했다.
그게 막막했다.
‘생각, 생각…….’
태수는 수도 없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 사이 걸음은 태수를 수술대 앞으로 이끌었다.
수술대에 도착함과 동시였다.
탁.
무전기는 의료카트에 내려놓고 손을 다시 소독하기 시작했다.
그건 반사적인 행동이었고, 머릿속은 신장 수술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여념이 없었다.
그런 태수의 모습에 수액을 짜던 정민수가 미간을 와락 좁혔다.
“수술을 어떻게 하려고?”
“그럼 못한다고 이대로 손 놓고 있어?”
“환장하겠네.”
“누구는 아닌 줄 알아. 어차피 피바다가 될 거면 신장을 떼어내서……. 잠깐만.”
태수는 스스로 꺼낸 말이 신경을 딱 건드렸다.
같은 소리에 집중한 정민수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너 혹시……. 아서라. 그건 절대 안 돼. 무조건 안 돼!”
“뭐가?”
“renal autotransplantation(신장 자가이식) 생각하는 거잖아. 제임스가 그건 안 된다고 했다며!”
정민수는 소리를 높이는 정도가 아니라 버럭버럭 소리쳤다.
그 반응이 오버하는 건 아니었다.
자가이식은 곧 장기이식과 같은 의미였다.
이 열악한 환경에서 제한적인 수술도구로 할 수 있는 수술이 아니다.
사실 거기까지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지금 태수와 정민수의 실력으로는 꿈꾸지 못할 고차원적인 수술방법이었다.
태수는 화를 내는 정민수를 향해 표정을 굳히며 물었다.
“내가 그 정도 분별력도 없는 줄 알아?”
“네가 지금 하는 말이 그랬잖아.”
“그걸 응용해야지. 우리가 자주 써먹는 방법을 더해서. 그럼 가능할 수도 있어.”
차분히 말한 태수의 눈빛이 강하게 번뜩거렸다.
하지만 정민수는 무슨 소린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뭘 어쩌자고.”
“신동맥하고 신정맥을 차단하고 브릿지를 걸면 어떨까.”
“그, 그럼…….”
정민수는 순간 말을 더듬었다.
그런 그를 향해 태수가 한 마디 했다.
“포도당하고 식염수 거의 다 들어갔어.”
“어? 어. 그러네.”
“포도당만 교체하고, 장갑 껴.”
“그래, 그래야지.”
정민수의 대답소리가 시원치 않자 태수가 눈썹을 들썩이며 물었다.
“내 말 안 들려?”
“그게 아니라 혈관을 차단하고 브릿지를……. 그게 가능해?”
“몰라.”
태수가 대답한 순간 정민수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모른다니, 그런 대책 없는 말이 어디 있어!”
“그럼 어쩌라고. 수혈할 피는 없고, 수술환경은 제한적이고, 우리는 둘 뿐인데.”
“나도 다른 방법은 없는데 말이야. 그래도 뭔가 좀 더 안정적인…….”
“정 선생.”
태수가 말을 끊자 정민수가 바로 반응했다.
“말 해.”
“바이탈만 봐도 신장 상태가 안 좋아. 그런데도 미룰 거야?”
“혹시 다른 이상은 아닐까?”
정민수가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부정적인 의견을 내보였다.
그런 그는 어깨부터 좁아져 있었다.
스스로 감당하지 못할 거란 압박이 두려움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었다.
그걸 본 태수는 버럭 화를 냈다.
“자식아. 다시 찌질하게 살래?”
“헙!”
“도대체 뒤졌다던 과거 정민수가 언제까지 부활할 건데?”
태수는 매몰차게 쏘아붙였다.
그 따가운 질책을 들은 정민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내가……. 또?”
“그래. 또!”
“빌어먹을.”
툭.
정민수는 고개를 숙이며 자책했다.
태수는 그런 모습도 보고 싶지 않았다.
“찌그러지려면 나가, 꺼지라고.”
“……그래. 그게 좋겠어.”
뜸들인 정민수의 입에서 이상한 말이 흘러나왔다.
그 소리에 태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진짜 너…….”
“그 방법이 그나마 출혈이 적을 거 같아.”
“뭐?”
태수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그때 정민수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앞서 쭈글쭈글한 모습과 상당히 달라졌다.
뭔가 적당히 건방지고 살짝 콧대가 올라간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눈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네 처치 속도로 최대한 빨리 해결을 보고, 내 봉합 속도를 더하면 영 엉망인 계획은 아니야.”
“너……. 뭐냐?”
“뭐기는. 어제를 잊고 오늘을 살아가는 닥터 정민수지.”
찡긋.
이상한 윙크까지 해보였다.
소심함을 버리랬더니 느끼함을 뒤집어썼다.
태수는 어울리지 않는 정민수 모습을 보고 과감한 평가를 말했다.
“지랄도 풍년이다.”
“시간 없다며.”
“너 때문에 1분은 까먹었어.”
“봉합으로 만회할 테니까 준비부터 해.”
정민수는 힘찬 목소리로 오더했다.
그런 자신도 수술장갑을 새로 교체했다.
촤악!
수술장갑을 튕기는 모습에도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태수는 극단적으로 변한 정민수를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나마 움츠린 모습보단 나았다.
‘중간이 없는 놈.’
쫙. 쫙.
태수는 수술장갑을 강하게 당겨 착용하는 거로 지금 심정을 표현했다.
과정이야 어쨌든 수술을 재개할 조건은 모두 갖췄다.
더 미룰 이유도, 그럴 생각도 없었다.
태수는 바로 10호 날을 장착한 메스를 공장장의 등으로 향했다.
동시에 정민수를 보챘다.
“뭐해. 메스 들어가는데!”
“나도 보고 있어!”
“몸이 굼뜨면 손이라도 좀 빨라라!”
“너야말로 말 좀 하고 시작해라. 주둥이는 폼이냐?”
태수와 정민수의 목소리가 사납게 오갔다.
그저 입씨름일 뿐이었다.
시선은 등으로 향해 있었고 곧 수술도구를 움직였다.
메스가 오른쪽 등을 짧게 가르고, 출혈을 억제하는 손놀림이 이어졌다.
슥슥, 척척.
그런 두 사람의 움직임이 날렵했다.
신기하게도 서로 으르렁거릴 때 속도가 더 빨라졌다.
그건 자극적인 대화로 인한 반발심 발동이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두 사람은 서로 자극할 때 더 능률이 올라가는 희한한 성격들이 있었다.
그런 이유로 태수와 정민수는 서로를 계속 자극했다.
그 덕분인지 순식간에 발포어(고정형 리트렉터) 설치까지 진행됐다.
끼릭, 끼릭.
정민수가 조금 더 발포어를 조직작한 후 투박하게 입을 열었다.
“설치 완료. 그런데 진짜 이 정도면 되겠어?”
“보이면 됐지 뭘 더 바래?”
“이 화상아. 지금 딱 손바닥 크기 만큼 벌렸어. 이 사이즈로 수술을 하겠다고?”
정민수의 자극적인 목소리는 도발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까칠한 성격을 대놓고 내보였다.
그러나 그저 하는 말은 절대 아니었다.
평소 수술하는 넓이의 반밖에 안 되는 상황이었다.
갑자기 실력이 두 배로 널뛰기 할 순 없다.
익숙하지 않은 변화는 탈을 부르기 마련이었다.
정민수는 그걸 우려했다.
반면 태수의 대답은 단호했다.
“눈으로 볼 수 있고, 수술 도구 들어가면 되지. 뭘 더 바래.”
“신장부터 반은 갈비뼈 안에 숨어있잖아.”
“그래도 이대로 가야지.”
“대체 어떻게 수술할 거냐고.”
정민수는 눈에 쌍심지를 켰다.
그저 짜증을 내는 게 아니라 아무리 봐도 너무 공간이 협소했다.
그러나 태수는 동요하지 않았다.
“언제까지 대문짝만하게 열어 놓고 수술할 건데?”
“갑자기 쥐구멍으로 줄이는 게 더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
“출혈은?”
태수가 한 마디로 물었다.
그제야 정민수가 아차한 표정으로 변했다.
“이 정도 사이즈면 수혈 시간을 두 배 아니, 세 배는 더 벌 수 있겠어.”
“아껴야 잘 살아.”
“이 만리타국에서 그것도 혈액으로 아나바다 운동하고 자빠졌네.”
정민수는 이 상황을 어이없어 했다.
태수는 일일이 반응하지 않고 수술에 더 집중했다.
“뭐해. 신장 안 찾아?”
“찾고 있잖아!”
“그쪽에 신장이 있냐, 이쪽으로 와야지!”
“공간을 만들어야 신장을 아래로 조금이라도 끌어 내릴 거 아니야!”
스윽. 슥슥.
오가는 대화만 들으면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오른쪽 신장을 찾는 중이었다.
이렇게 대화가 오가는 건 수술공간이 너무 좁은 탓이다.
둘다 알지만 더 이상 늘릴 수 없으니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그렇게 계속 신장을 찾던 중이었다.
태수의 눈빛이 일순간 반짝였다.
이어서 재빨리 정민수의 수술도구를 일일이 지목하며 세세하게 오더했다.
“스페츌러하고 센리트렉터 위치 바꿔.”
“이렇게?”
“스페츌러는 아래쪽 받치고, 센리트렉터는 지금 거기, 거길 옆으로 밀어야지!”
태수가 거칠게 타박하자 정민수도 마주 짜증을 냈다.
“제대로 말을 좀 하라니까!”
“이건 센스야. 그리고 거기 좀 잘 붙들고 있어. 꼼지락거리지 말고!”
“그냥 있으면 옆으로 흐르니까 그러지!”
“수술도구도 제대로 쓸 줄 모르면서 무슨 의사야.”
태수는 사정없이 비꼬았다.
그런 도발에 정민수는 더욱 울컥했다.
“제대로 한다고, 봐. 제대로 하고 있잖아!”
“이제 좀 쓸 만하네.”
“뭐, 인마?”
“……시끄럽고, 찾았다. 그런데 이거. 쯧!”
태수는 쓰게 투덜거리며 혀까지 찼다.
환부 속은 어느새 신장이 확보되어 있었다.
그런데 신장을 발견한 뿌듯함은 아예 찾아볼 수 없었다.
신장의 상태가 생각보다 더 좋지 않았다.
정민수도 깜짝 놀랐다.
“거의 평균 사이즈에 1.5 배는 되는 거 같아.”
“이렇게 혈액하고 노폐물이 쌓여있는데 맥박이 제대로 뛸 리가 있나.”
“요관은 홀쭉한 편이야.”
“소변량이 적은 게 거기 문제였어.”
태수는 또 다른 이상증세 원인을 찾았음에도 표정이 무거웠다.
그 사이 정민수가 얼굴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헤드랜턴의 각도를 바꿔 신장을 다양한 위치에서 둘러보는 거였다.
슥슥.
수술공간이 협소해 그조차도 제한적이었다.
그래도 성과가 있는지 태수를 찾았다.
“태수, 여기.”
“……이런 젠장.”
“진짜 나 막 험한 말이 나오려고 해.”
정민수는 애써 인내하며 말을 순화시켰다.
두 사람의 표정은 그 만큼 좋지 않았다.
잔뜩 부어오른 신장의 아래쪽에 꺼멓게 괴사한 부분이 보였다.
그 괴사부위 중간에는 수류탄 파편이 파고 들어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결국 두 사람이 우려했던 모든 게 현실이 되어 있었다.
그때 태수가 갑자기 빈손을 뻗어 부어오른 신장을 쥐었다.
턱.
“음.”
“왜, 뭔데?”
“온도체크……. 겉은 차가운데, 속은 열이 좀 있는 거 같아.”
“그건 또 무슨 귀신 곡할 증상이야?”
정민수는 자꾸 변칙적인 상황들이 발생하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건 태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우리 신장에 대해서 좀 들이파야겠다.”
“오늘은 피곤할 거 같아.”
“이 응급수술 끝나면 많이 피곤할 거 같긴 해.”
태수가 말을 받자 정민수가 힐끔거리며 물었다.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그래서 이제 네 계획대로 밀어붙일 거야?”
“우선 넌 스페츌러하고 센리트렉터를 이대로 고정시키고, 브릿지부터 만들어. 난 잠시.”
휙.
태수는 오더를 마치자 출동가방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