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379
00382 382화
문득 궁금해졌다.
“혹시 저와 같은 의사가 있습니까?”
“1년에 몇 번 타 지역에서 파견의가 옵니다. 비슷한 대우로 알고 있는데요.”
“그렇군요. 그럼 월급이나 수당도 나오나요?”
“월급은 없는데 수술에 들어가면 그에 따른 수당은 나올 겁니다.”
에드워드의 말에 태수가 혹했다.
좋은 기회인 건 맞지만 무보수로 일하는 건 사양이다.
“좋네요.”
“잘 부려 먹는 대신에 보수는 확실히 챙겨 주니까요.”
“많이 부려 먹는 모양입니다.”
태수가 슬쩍 찔러 보자 에드워드가 소탈하게 대답했다.
“다 그렇죠, 뭐. 그런데 이제 어디로 안내할까요?”
“일단 외래 환자 수술 센터의 각 의과를 돌아보고 싶습니다.”
“의과가 상당히 많은데요.”
“시간은 충분하니까 천천히 둘러보도록 하죠.”
“그럼 이쪽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에드워드가 다시 안내를 시작하자 태수가 그 옆을 바짝 따라붙었다.
배우고 돈까지 번다.
태수에게는 현재 최고의 환경이었다.
한국을 잠시 떠나 왔는데 이런 좋은 기회가 주어질 줄은 생각도 못했다.
‘감사합니다.’
제임스에 대한 고마움이 또 한 번 태수의 가슴을 찡하게 울렸다.
태수의 일과는 단순했다.
오전에는 각 의과를 돌아보며 선진화된 의료 시스템을 견학했다.
외래 환자 수술 센터에 의과가 상당히 많았다. 수술 방법에 따라 수술실도 구분되어 있었다.
돌아보고 참고해야 할 부분이 너무도 많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이런 시스템의 기틀을 처음 마련한 게 카프레네와 제임스라는 점이다.
30여 년 전에 계획한 병원 시스템이 수정, 보안되어 체계적으로 변화한 게 바로 지금 UCLA 병원의 구조였다.
이 외에도 세계 유명 병원이 비슷한 시스템으로 운영된다는 것도 설명을 들었다.
태수는 에드워드와 병원을 둘러볼 때마다 대단함을 느꼈다.
그렇게 오전 일과를 마치면 오후에는 대부분 영상실에 들어가 있었다.
수술 영상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외과 수술만 해도 각 분야별로 엄청나다. 태수에게는, 아니 외과 의사들에게는 보물 창고와 같은 장소다.
다만 이 병원에 소속된 의사들은 시간을 내어서 살펴볼 여유가 없었다.
태수는 그런 제한을 받지 않았기에 많은 수술을 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었다.
그는 외과 수술과 흉부외과 수술을 집중적으로 확인했다. 외과로 진로를 굳혔지만 흉부외과를 포기하고 싶지 않은 탓이다.
외과와 흉부외과를 아우르는 의사가 바로 태수가 원하는 이상적인 의사였다.
이 두 가지 의과를 섭렵한다면 뇌를 제외한 인체의 모든 장기를 다룰 수 있었다.
흉부외과 수술 자료는 카프레네의 기억을 다시 상기시키는 계기도 됐다.
게다가 태수는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수술들을 중심으로 영상을 확인했다.
이식수술과 암.
그 외에 특이 질환들.
당장 집도의로 수술을 할 수 없을지라도 머릿속으로 기본적인 개념이라도 익혀 두려고 했다.
그렇게 태수는 1시간도 낭비하지 않고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을 발전시키려 노력했다.
퇴근 시간도 정해져 있어 저녁에는 편안하게 쉬기도 했다.
응급과 당직이 없는 의사 생활.
솔직히 쏠쏠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던 중이다.
출근한 태수에게 다가온 에드워드가 말했다.
“내일 수술이 예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래요?”
“네. 자세한 건 닥터 더글라스가 설명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럼 안내 부탁드립니다.”
태수의 말에 에드워드는 바로 몸을 움직였다.
태수는 곧 더글라스의 집무실에 자리했다.
인사를 마친 태수가 먼저 용건을 꺼냈다.
“수술이 예정되어 있다고요.”
“어제 내원한 여자 환자입니다. 바로 검사를 진행한 결과 가급적이면 빨리 수술을 해야 할 거 같아서요.”
“그렇군요.”
“저희 수술 일정이 꽉 차 있다 보니 닥터 최에게 순서가 간 거 같습니다. 그보다 출근길에 갑작스러우셨겠습니다.”
“전혀요. 그동안 잘 먹고 잘 놀았으니까 열심히 일해야죠.”
태수의 화답에 더글라스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하루 종일 바쁘셨다던데요.”
“저 좋으라고 좀 바쁜 척했습니다. 그보다 EMR(전자의무기록)을 볼 수 있을까요?”
“당연하지요. 여기 있습니다.”
더글라스는 사람 좋은 얼굴로 노트북을 내밀었다.
미리 준비했는지 환자의 EMR이 화면을 채우고 있었다.
태수는 문진과 촉진 과정부터 시작해 히스토리 역시 살폈다. 급작스러운 체중 증가와 고혈압을 앓다가 내원한 케이스였다.
이어서 CT 결과를 확인한 태수가 말했다.
“left adrenal gland(좌부신)에 tumor(종양)이 발견되었네요.”
“네. 아무래도 hormone hyperexcretory(호르몬 과다분비)로 인해 체중 증가와 고혈압이 온 거 같습니다.”
“크기가 상당히 큰 편이네요.”
“그래서 저희도 좀 걱정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환자가 젊은 여자다 보니까 수술 자국에 민감해서요.”
더글라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태수는 계속 비대해진 부신을 관찰했다.
그러던 태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정도라면 laparoscopic surgery(복강경 수술)로 진행해도 될 거 같습니다.”
“역시.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럼 수술은 내일 언제 진행되는 겁니까?”
“오후 1시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아마 이번 수술은 외과장님과 다른 의사들이 구경하러 가실 겁니다.”
더글라스의 말에 태수가 어깨를 들썩였다.
“상당히 부담되는 첫 수술이 될 거 같습니다.”
“표정은 전혀 그렇지 않으십니다만.”
“밥값하려면 기회가 왔을 때 꽉 잡아야죠.”
태수는 자신감을 보였다.
부신의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은 이미 여러 번 경험해 봤다.
이번 수술.
아마도 리차드 외과장이 한 번 더 실력을 확인해 보려는 모양이었다.
또한 크게 문제가 될 수술이 아니기에 맡기려는 속셈도 눈치챘다.
태수는 외려 좋았다.
이 병원에서 그에게 중요한 수술을 맡길 리는 없다.
태수도 그걸 알기에 자그마한 수술부터 말끔하게 해내어 그동안 공부한 성과를 확인해 보고 싶었다.
상대가 이용하려 들면 태수도 보조를 맞춰 이용하면 될 일이다.
수술 시간이 임박하자 수술실이 열렸다.
그르릉.
문을 열고 들어온 건 수술 준비를 마친 태수의 살짝 긴장된 얼굴이었다.
수술대에는 이미 환자가 누운 채 고른 숨소리를 내고 있다. 안정적으로 마취가 됐는지 규칙적인 ECG(심전도 기계) 소리가 들려왔다.
수술실에는 복강경 기계가 준비된 모습이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복강경이 어려운 상황이 온다면 언제든지 개복수술로 전환할 수 있도록 각종 의료 기구들도 마련된 상태였다.
미국 의료 체계상 백업 플랜으로 개복수술을 계획해 둔 탓이었다.
‘철저하네.’
태수가 확인하는 사이 어시스던트로 들어온 에드워드가 다가섰다.
“마취는 1분 전부터 시작됐고, carbon dioxide(이산화탄소) 주입도 마무리됐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별말씀을.”
에드워드는 가볍게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사이 태수는 신속한 동작으로 수술 가운과 장갑을 착용했다.
그 후 수술대에 다가선 태수가 환자를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환자는 왼쪽 부신을 수술해야 하기에 반대로 돌아누운 모습이다.
이산화탄소의 주입으로 환자의 배가 평소보다 훨씬 더 부풀어 있었다. 이산화탄소를 주입하는 건 복부에 수술할 공간을 만들기 위한 조치다.
집도의 위치에 선 태수의 시선이 마취의에게로 향했다.
어제 수술에 대한 회의를 하며 안면을 익힌 마취의였다. 그는 각종 모니터를 확인한 후 태수에게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문제없습니다.”
“그럼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메스.”
태수의 손에 날카로운 메스가 쥐어졌다.
제임스에게 선물받은 바로 그 메스다.
급하게 결정된 미국행이지만 분신과 같은 수술 도구를 잊지 않고 챙겨 왔다.
메스를 들고 환자를 내려다보는 태수의 눈빛이 차분하게 내려앉았다.
태수도 눈이 있기에 지금 참관실에서 리차드 외과장을 포함해 다수의 의사들이 참관 중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당연히 평소보다 긴장하기 좋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들이 지켜본다고 해서 태수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현재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다.
그 마음이 전부였다.
아무도 모르게 길게 심호흡한 후 태수는 메스로 환자의 배에 신속하게 4개의 구멍을 만들었다.
하나는 카메라 라인이, 그리고 남은 3개는 수술 도구들이 삽입될 구멍이었다.
태수는 가볍게 손을 풀고 2개의 처치 라인을 잡았다.
복강경 수술의 단점은 수술 시야가 극히 제한된다는 점이다. 때문에 카메라로 환부를 비춰 주는 간호사의 역할이 특히나 중요했다.
태수가 카메라 라인을 쥐고 있는 백인 간호사에게 부탁했다.
“좀 더 깊숙하게 들어가서 위에서 아래로 환부를 비춰 주세요.”
“잠시만요.”
간호사가 카메라 위치를 바꾸는 사이 태수는 에드워드에게 말했다.
“에드워드는 renal(신장)과 adrenal gland(부신)의 경계를 확실히 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에드워드의 손길도 분주하게 변했다.
그러나 그에 비해 움직임은 더뎠다.
태수가 더듬거리는 에드워드의 처치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거기가 아니라 조금 더 위쪽입니다.”
“죄송합니다.”
“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차분하게 안정적으로 진행하는 게 더 좋습니다.”
“네. 후우.”
에드워드의 긴장된 한숨 소리가 흘러나왔다.
태수는 그런 에드워드를 한 번도 재촉하지 않았다.
그는 수술 브리핑에서 복강경 수술 경험이 많지 않다며 빠지려 했다.
그런 에드워드를 태수가 이 수술에 참가시켰다.
이곳에 와 병원적응은 그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에 대한 조그마한 보답이라고 생각해도 좋았다.
물론 이번 수술 자체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만약에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태수가 충분히 커버할 수 있기에 어시스던트를 요청한 점도 있었다.
환자 생명이 위태로운 수술이라면?
아무리 에드워드라도 어시스던트를 시킬리 없었다.
태수는 에드워드를 차분하게 이끌며 수술을 진행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조종하는 2개의 처치 라인은 잠시도 쉬지 않았다.
다행히 카메라가 원하는 위치를 비추고 있기에 신장과 부신을 분리하는 건 순탄하게 진행됐다.
다만 시간이 좀 더 필요할 뿐이었다.
참관실의 커다란 TV에 복강경이 움직이는 모습이 생생하게 중계되고 있었다.
리차드 외과장과 더글라스를 포함한 외과 의사들 몇몇이 그 과정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외과 의사들이 화면에 비친 모습에 적잖이 놀랐다.
“움직임이 상당히 부드럽습니다.”
“절제하는 위치도 좋고 깔끔하네요.”
“한국에서 아직 수련의라던데 저 움직임만 보면 그런 생각이 전혀 안 듭니다.”
전체적으로 칭찬하는 목소리가 참관실을 울렸다.
그건 리차드 외과장도 마찬가지였다.
“복강경을 상당히 많이 다뤄 본 솜씨야.”
“소문으로 듣자하니 이력이 특이한 의사라고 하던데요.”
더글라스의 말에 리차드 외과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력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저 나이에 비해 집도 경험이 상당히 많다고 들었어. 그저 뜬소문만은 아닌 거 같아.”
“그러게 말입니다. 저 정도로 깔끔하게 수술을 진행하면서 에드워드도 지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쪽 수준과 비교해 보면 어느 정도 될까?”
리차드 외과장의 물음에 더글라스가 잠깐 눈을 굴리고는 대답했다.
“지금까지라면 상당히 숙련된 전문의 정도 될 거 같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꽤 유명한 의사일 텐데 말이야.”
“한국에 지인으로 지내는 의사가 없어서 그거까진 잘 모르겠습니다.”
더글라스의 대답을 들은 리차드 외과장은 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 수술은 무난하게 진행될 거 같군.”
“시간도 꽤 절약될 거 같습니다.”
“환자 경과를 지켜보고 문제가 없으면 수술을 좀 더 할당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더글라스는 노트에 지시 사항을 적어 넣기 시작했다. 그사이 리차드 외과장은 태수를 내려다봤다.
그가 봐도 복강경 모니터에 집중된 태수의 시선이 강렬했다.
명색이 제임스의 추천을 받은 의사다.
그러나 또래보다 실력이 좋다지만 아직 제임스가 눈여겨 볼만하다고 인정할 상황은 아니었다.
어떤 모습이 제임스의 눈에 들었을까?
리차드 외과장의 얼굴에 조금은 의아함이 깃들었다.
시간이 흐르고 복강경 수술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소요된 시간은 40여 분.
보통 1시간 동안 진행되는 수술이지만 상당히 빠르게 진행된 축에 속했다. 수술 중에 특별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아 더더욱 수월하게 진행된 탓도 있었다.
태수는 절제한 부신을 꺼내고 봉합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