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397
00400 400화
폐에 총상을 입었다고 하기에는 피가 너무 많이 흘렀다.
설마 이번에도 폐동맥?
하지만 태수는 고개를 저었다.
만약 폐동맥이 다쳤다면 이렇게 시간을 끄는 사이 환자는 유명을 달리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고 판단했다. 그래도 이런 심한 출혈은 아무래도 느낌이 좋지 않았다.
생각하는 사이, 스트레쳐카가 응급실에 들어섰다.
태수는 간호사에게 빠르게 말했다.
“수술실 열어 주시고 마취과 선생님 호출해 주세요. 그리고 정 선생님, 같이 수술실에 들어가야 할 거 같습니다.”
태수가 빠르게 말하자 다니엘 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웬만한 어시스던트는 가능해.”
“좋습니다. 그리고 간호사님, 외과장님도 호출해 주세요.”
“네.”
“IV만 달고 바로 수술실로 올라가죠. 포도당, hemostatic(지혈제), codeine(강한 진통제, 진통과 기침을 억제하는 약)도 부탁합니다.”
태수의 말에 응급실이 순식간에 부산하게 변했다.
지혈제와 코데인을 주사하고 지켜보던 중이었다.
다니엘 정이 태수의 어깨를 가볍게 건드렸다.
“잠깐 나 좀.”
부르는 소리에 태수가 잠시 환자를 내려다보고는 몸을 움직였다.
응급실 한쪽에 두 사람이 섰다.
조금 먼 거리지만 환자를 지켜볼 수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태수는 환자에게 시선을 둔 채 다니엘 정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생각해 봤는데 이송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아직 수술 시작도 하지 않았습니다.”
태수의 말에 다니엘 정은 얼른 요점을 말했다.
“그게 아니라 폐면 흉부외과가 있는 병원으로 옮겨야 하는 거 아니냐고. 외과에서 폐를 다루지는 않잖아.”
“그건 그렇죠.”
“그러니까 차도를 좀 보고 흉부외과가 있는 병원으로 이송하자고. UCLA 쪽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좋겠어.”
다니엘 정이 아예 결정을 내려 버렸다.
여태까지 그렇게 해 왔고, 그게 환자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의 판단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
외과만 있는 병원에 흉부외과 질환 환자가 찾아오면 당연히 이송했다.
그러나 그가 모르는 점이 있었다.
그건 태수가 흉부외과 질환도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외과 의사라는 점이다.
또 아들이 잘못 쏜 총에 맞은 환자였다.
만약 다른 병원으로 이송하게 된다면 이 사실을 무조건 경찰에 알려야 한다.
태수는 그런 사정을 가급적이면 혼자 알고 있으려 했다.
이야기를 마친 다니엘 정이 막 움직이려 할 때였다.
탁.
태수가 그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이송은 안 됩니다.”
“그럼 어쩌자고. 외과의가 폐를 어떻게 수술하겠다는 거야?”
“실은 얼마 전 UCLA대학병원에서 비슷한 케이스의 환자를 수술한 적이 있습니다. 환자는 살았고요.”
“…….”
태수가 어쩔 수 없이 밝혔지만 다니엘 정은 쉽게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좀 더 부연 설명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제가 좀 특이하게 의사 생활을 해서 흉부외과적인 질환도 다룰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송하면 안 되는 이유도 있습니다.”
“그건 또 뭔데?”
“아들이 실수로 쏜 총에 맞은 거랍니다.”
태수의 말을 듣는 순간 다니엘 정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빌어먹을 총! 아니, 그걸 왜! 제대로 보관했어야지.”
“그리고 저 남편분이 저희 병원에 흉부외과가 없다는 걸 모르고 왔을까요?”
“…….”
지역사회에 익히 소문이 난 병원이기에 흉부외과가 없다는 걸 모른단 게 말이 되지 않았다.
다니엘 정이 침묵하자 태수가 이어서 말했다.
“어쩔 수 없이 저희 병원에 찾아온 걸 겁니다. 그러니까 이 일은 비밀로 해야겠죠.”
“후우, 앞길이 창창한 애를 전과자로 만들 순 없지. 그래도…….”
“어떻게든 잘되어야 합니다. 어찌 수술을 하던지간에 말입니다.”
태수가 곱씹듯이 말하는 사이, 다니엘 정의 얼굴은 복잡함으로 물들어 갔다.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였다.
태수는 그런 다니엘 정에게 물었다.
“그래도 이송해야겠습니까?”
“……미치겠네. 최 선생, 진짜 수술할 수 있겠어?”
“해야죠.”
“그러게. 해야 되는데.”
다니엘 정이 혼란스러운 얼굴로 뇌까렸다. 태수는 기회를 잡았단 듯 얼른 서둘러 말했다.
어서 수술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왜 나한테 이야기해 준 거야?”
“수술실에 같이 들어가야 하니까요.”
“내가?”
“아무리 내과라도 기본적인건 알잖습니까?”
“그래, 외과의가 없으니 같이 들어가야지. 환장하겠네.”
다니엘 정은 여전히 기가 막힌 표정이다.
그러나 그도 한국 사람이다.
같은 한국 사람이 곤경에 빠지는 건 보기 싫은 모양이었다.
그의 걱정은 태수가 정말 수술을 진행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뿐이었다.
조금 시간이 흐른 뒤였다.
환자는 출혈이 줄어들고 진통도 훨씬 덜 느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코데인의 기침 억제 진정 작용으로 객혈도 사라졌다.
이건 좋은 현상이다.
그러나 대기하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곤란했다.
태수가 간호사에게 물었다.
“수술실은요?”
“앞으로 10분 내에 연다고 했어요. 갑작스러운 일이라 조금 늦어지는 모양이에요.”
“5분 후에 무조건 출발한다고 전해 주세요.”
태수는 다소 강하게 말했다.
평소에 잘 웃고 넉살도 잘 부리던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 모습에 응급실 간호사들도 바짝 긴장했다.
정말 응급한 환자가 왔을 때 태수는 그 어떤 의사들보다 냉정하고 칼 같았다.
주변에서 놀라든지 말든지 태수는 환자에게만 집중했다.
약효가 발휘되고 있는지 환자의 눈이 서서히 떠졌다.
조금 전에는 눈도 못 뜨고 찡그린 얼굴이었는데 한결 편안해진 모습이다.
남편은 옆에서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태수는 그런 남편을 뒤로하고 환자에게 얼굴을 보이며 물었다.
“여기 어딘지 알아보시겠습니까?”
“병…… 후, 후욱, 병원이요.”
숨이 조금 가쁜 모양이었다.
그래도 왼쪽 폐는 이상이 없는지 대화가 가능했다.
생각보다 의식이 양호했다.
그것만으로도 조금은 안도해도 될 상황이었다.
태수도 조금 긴장된 얼굴을 풀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가슴이 어떻게 불편하십니까?”
“타들어…… 가는 거 같고…… 후욱, 기분이…… 너무 안 좋아요.”
“타들어가는 거 같다라.”
태수의 표정이 다시 굳어졌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증상이 예사롭지 않았다.
태수는 손짓으로 남편부터 불렀다.
한달음에 다가온 남편은 도무지 안절부절못하는 얼굴로 물었다.
“왜요, 무슨 일입니까?”
“두 분께 지금부터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아, 네. 그러세요.”
사나운 인상이 아까울 정도로 남편은 고분고분하게 변해 있었다.
환자도 아픔을 뒤로하고 태수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시선이 모이자 태수가 본격적으로 말했다.
“우선 수술에 들어갈 겁니다. 그런데 현재 상황으로는 폐가 어떻게 됐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
“그래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저도 장담하지 못하겠습니다. 한쪽 폐를 들어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안 좋은 상황도 생각하셔야 할 거 같습니다.”
어렵고 힘든 이야기다.
환자에게 직접 죽을 수도 있다고 이야기하는 게 쉬울 리가 없었다.
그래도 태수는 그렇게 했다.
환자가 자신의 상황을 정확하게 알아야 했다.
태수의 고집일진 몰라도 그게 옳았다.
두 부부는 태수의 말에 뭐라 반박하지 못했다.
폐에 총상을 입은 상황이다.
상식적으로도 살아날 확률이 높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때였다.
“선생님…… 살려 주세요.”
각종 약물로 고통을 억제시킨 여자 환자가 애원하듯 말했다.
그게 당연했다.
태수는 그녀에게 진중한 얼굴로 말했다.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할 겁니다.”
“아니요……. 그런 말 말고…… 후욱, 살려 주겠다고…… 약속해 주세요.”
“저도 환자분의 삶이 소중하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태수도 숱하게 경험해 온 순간이다.
왜 자기 생명이 소중하지 않겠는가.
백이면 백, 만이면 만.
모든 환자들이 자기 생명을 놓고 싶지 않아 했다.
그녀는 힘겹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어떻게든…… 어떻게든 살아야 해요. 우, 우리 애를…… 범죄자로 만들 수는…… 우욱.”
힘들게 말을 꺼내던 환자의 가슴이 갑자기 팽창했다.
그리고 입에서 한 뭉텅이의 피가 쏟아졌다.
약으로도 억제가 힘들어진 모양이다.
태수는 그걸 확인함과 동시에 빠르게 소리쳤다.
“여기 아세틸살리실산 주사제 주세요!”
아세틸살리실산.
다른 말로는 아스피린이라고도 불린다.
아세틸살리실산 주사제를 투여하면 코데인과 상호작용해 진통과 기침 억제 작용이 훨씬 강화된다.
주사제를 건네받은 태수는 간호사를 물리고 직접 투여했다.
상호작용이 일어날 때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소요된다.
‘더는 위험해.’
대화를 이어 갈 단계가 지났다.
시간을 확인하자 지금 출발하면 수술실에 바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태수가 보호자에게 말했다.
“수술실로 옮기겠습니다.”
“가, 같이 가요.”
“그럼 미세요.”
태수가 스트레쳐카를 밀기 시작하자 보호자가 얼른 그 옆에서 힘을 더했다.
그 모습에 다니엘 정과 간호사들도 다가왔다.
그르릉.
순식간에 탄력을 받은 스트레쳐카가 응급실을 벗어나 수술실로 직행했다.
짧은 시간내에 수술 준비를 마친 태수와 다니엘 정이 수술실에 들어섰다.
마취의는 낮에 잠깐 인사했던 의사다.
“잘 부탁드립니다.”
“나도 잘 부탁해요.”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태수가 묻자 마취의는 환자를 눈짓했다.
“할 말이 있는 모양이에요. 마취를 하지 말아 달라고 하더라고.”
“상황이…….”
“너무 간곡해서 어쩔 수 없었어요. 무슨 말인지 빨리 들어보는 게 좋지 않을까 싶은데요.”
마취의의 말에 태수는 눈 사이를 잔뜩 좁혔다.
하지만 환자가 마취를 거부했다는 이야기가 마음에 걸렸다.
태수는 빠르게 환자에게 다가가 마스크로 가린 얼굴을 보였다.
“절 찾으셨다고요?”
“선생님, 저 죽으면…… 안 돼요. 죽는 것도 무섭지만…… 우리 애에게 평생 한을…… 만들어 주고 싶지 않아요.”
“…….”
“그래서 살아야 해요……. 어떻게든 할게요. 뭐라도…… 해 주세요. 대신에 꼭 살려 주세요.”
그녀의 자그마한 목소리에 간절함만이 가득했다.
그 마음이 태수의 가슴을 아리게 했다.
“제 모든 걸 걸고 다시 아들 얼굴을 보게 해 드리겠습니다. 대신 아들을 위해 무슨 일이 있어도 수술을 견뎌 내셔야 합니다.”
“감사…… 해요.”
“그런 인사는 나중에 하셔도 됩니다. 지금은 무조건 버티겠다는 생각만 하세요. 꿈속에서 누군가 불러도 절대 쫓아가시면 안 됩니다.”
태수는 진지하게 말했다.
결코 농담이 아니다.
그런 태수의 진심이 전해졌는지 환자의 눈빛이 결연하게 변했다.
“버틸…… 게요.”
“그럼 이제부터 수술 들어갑니다. 약속드린 대로 절대 먼저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끄덕.
환자의 고개가 자그맣게 위아래로 움직였다.
미미한 움직임이라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는 태수만 확실히 봤다.
환자가 그제야 눈을 감았다.
동시에 태수도 머리 위로 마취의에게 사인을 보냈다.
기다렸다는 듯이 마취의가 마취를 시작했다.
“전신마취 시작합니다. 하나, 둘……. 마취됐어요.”
마취의가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태수는 마취에 들어간 환자의 얼굴을 한 번 더 내려다봤다.
아무런 의식이 없을 텐데도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
태수의 입술 또한 똑같이 변했다.
살려야 한다.
꼭 그래야 한다.
다른 생각은 아예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태수가 환자의 곁을 벗어날 때였다.
마취의의 무거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혈압, 맥박 모두 너무 떨어진 상태예요. 당장이라도 fainting(실신)했어야 할 수치라고. 그런데 끝까지 버텼습니다.”
“흐음.”
“저도 애 키우는 입장이지만, 진짜 모정은 어떻게 설명이 안 되네요.”
마취의의 말을 들은 태수가 나지막이 말했다.
“선생님, 이 일은…….”
“일단 수술부터 시작해요. 난 아무것도 모르겠으니까.”
마취의는 아예 세차게 고개를 털어 버렸다.
지금까지 들었던 모든 이야기를 지워 버리겠다는 행동이다.
간호사들도 여자다 보니 환자의 마음이 어떤지 와 닿은 모양이었다.
그녀들 또한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
마취의처럼 울컥한 마음을 숨기며 모르는 척하고 있었다.
그사이 집도의 자리에 선 태수가 반대편에서 기다리고 있는 다니엘 정과 시선을 마주했다.
다니엘 정은 코가 뻘겋게 변해 있었다.
“크흠. 뭐 해? 얼른 시작해야지.”
“괜찮으십니까?”
“내 걱정 말고 최 선생 걱정부터 해. 이 환자한테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정말 각오해야 할 거야.”
다니엘 정이 진지하게 협박했다.
그러나 태수에게는 그 협박조차도 부드럽게 들려왔다.
태수는 눈을 감고 마음부터 추슬렀다.
이젠 감정을 지워야 한다.
냉정함만이 수술의 성공 확률을 단 1퍼센트라도 올릴 수 있다.
여러 수술에서 경험치로 쌓아 온 냉정함이 무거웠던 마음을 다소나마 가볍게 만들었다.
이내 마음이 진정된 태수가 눈을 떴다.
조금씩 흔들렸던 눈빛이 어느새 착 가라앉아 있었다.
“수술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