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41
00041 41화
그 뒤로 태수는 간호사들과 가볍게 이야기를 나눴다.
40대 간호사는 외과 담당 수간호사였다.
이 병원에서만 15년 넘게 일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병원 사정에 아주 밝았다.
또한 외과에 속한 모든 의사에 대한 일차적인 정보들도 얻을 수 있었다.
-외과과장 하석준.
개인병원을 차리기 위해서 커리어 쌓는 중. 실력이 썩 나쁘지 않다고 하지만 열정은 아예 없음.
-외과 전문의 김정태.
작년에 전문의 취득. 해외세미나 참석으로 현재 부재중. 나름 실력은 있지만 싸가지 없기로 소문이 자자함.
-치프 이명석.
전문의 시험 준비 중. 후배 레지던트들에게 모든 일을 맡겨 놓은 상태. 심기가 극도로 날카로움.
-2년차 정관영.
실력은 그저 그렇지만 사람 좋기로 병원에 소문이 자자함. 모두에게 친절하나 먹는 거에 신경이 날카로움.
-2년차 문승현.
외래시간에는 검사실에서 거의 나오지 않음. 열심히 하나 매사 불만이 좀 많음.
그 외에도 외과 병동에 입원한 환자는 15명이고 대부분 맹장이나 치질로 입원했다.
중환자실에는 아예 외과 환자가 없다.
골치 아픈 병으로 내원하면 주변 대도시나 서울 종합병원으로 이송을 원칙으로 운영한다는 이야기다.
외래에서도 1차적인 검사와 처치만 할 뿐이라는 설명도 들었다.
간호사들로부터 대략적인 이야기를 들은 태수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미래가 밝을지 몰라도 현실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암담했다.
‘스카우트 맞아?’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었다.
그럼에도 석정현 이사장은 활짝 빛날 미래를 꿈꿨다. 또한 자신에게는 응급상황에 유연한 대처를 원했다.
‘뭘 해야하지?’
태수는 자신의 결심이 살짝 흔들리는 걸 느꼈다. 태수 표정이 복잡하자 수간호사가 슬쩍 떠봤다.
“어떻게 여기 왔는지는 모르겠는데, 상황이 이러니까 암담하고 후회되죠?”
태수가 멈칫했다.
순간 흔들린 자신을 자책했다.
‘이제와 후회는 무슨.’
결정했으면 밀고 나가는 추진력이 있었다.
스스로 발전에 온 정신을 쏟아도 시원치 않을 판인데 다른 걸 신경 쓸 여유는 없다.
허나 태수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수간호사의 질문에 대답했다.
“아니요.”
“아니라니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태수는 진심을 이야기 했지만 수간호사는 연민의 눈빛을 보냈다.
“그렇게 포장하지 않아도 돼요.”
“포장인지 아닌지는 두고 보시면 알겁니다.”
태수는 끝까지 씩씩하게 말했다.
저녁도 먹었고 병동 환자들을 한 바퀴 돌며 투약 및 드레싱도 끝냈다.
몇몇 환자들이 처음 보는 태수를 궁금해 해서 인사도 하고 담소도 나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대폰 시계는 8시를 막 넘기는 중이었다.
“이거 심각하게 한가하네.”
아무리 지방이라고 하나 인턴 때와는 너무도 차이가 났다. 그렇다고 딱히 누군가 뭔가를 시키는 지시도 없었다.
오죽하면 시간이 넘쳐 내일 아침 회진 자료까지 모두 만들어 놨다. 아침에 일어나서 환자들의 상태만 한 번 더 확인하면 된다.
할 일없이 병원 안에서 어슬렁거리는 건 남들의 시선에 좋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당직실에 들어가면 지루한 시간을 보낼 게 뻔했지만 그래도 방황하는 거 보다는 나았다.
그런 생각으로 태수는 당직실로 향했다.
끼익.
조심스럽게 문을 열 때 대화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 처음 왔다는 녀석 얼굴은 왜 안 보여?”
“아까 나랑 병동 돌았어. 처음 왔으니까 아마도 궁금한 게 많겠지.”
“혹시 튄 거 아니야?”
“에이. 그럴 녀석으로는 보이지 않던데.”
정관영의 옹호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상대는 여전히 삐딱했다.
“누구는 튄다고 얼굴에 쓰여 있나?”
“아니야. 곧 들어올 거야.”
“넌 사람이 어쩜 그렇게 좋은 것만 생각하냐?”
“너처럼 너무 안 좋게 생각하는것도 병이야.”
투덕거리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태수가 조심스럽게 당직실로 들어갔다.
당직실에는 이명석 치프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정관영과 또 한 명이 앉아 있을 뿐이었다. 날카로운 눈빛에 차가운 인상을 보니 사교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느낌이었다.
태수는 그가 아직 인사하지 못한 외과 레지던트 선배인 문승현이라는 걸 대번에 알아봤다.
간호사들에게 대충 들었던 인상착의와 비슷한 탓이다.
또 인사?
그래도 첫 대면이었다.
지겨웠지만 할 건 하는 게 옳았다.
“안녕하십니까. 최태수입니다.”
“어딜 갔다 오는 거야?”
문승현의 차분한 목소리에 가시가 가득했다.
태수는 바로 대답했다.
“차트 정리하고 왔습니다.”
“차트 정리?”
“선배님들이 편하게 쉬셨으면 해서요.”
태수의 말에 문승현은 조금 의외라는 표정으로 변했다. 그래도 좋은 소리부터 나오진 않았다.
“괜히 돌아다니지 말고 당직실에 붙어 있어.”
“알겠습니다. 그런데 치프님은 어디 가셨습니까?”
“그건 왜?”
문승현은 계속 차갑게 물었지만 태수는 미소를 잃지 않고 대답했다.
“안 계셔서요.”
“신경 꺼.”
“알겠습니다.”
머쓱해진 태수의 대답이 끝나자 정관영이 대신 대답해 줬다.
“치프는 외래 진료실에. 아침까지 거기 있을 거야.”
다른 레지던트들을 쉬게 하기 위해?
생각해 봤지만 간호사들에게 들은 성격으로는 다른 결론이 나왔다.
괜히 신경 쓰지 않기 위해.
스스로 자리를 피한 게 분명했다.
어떤 이유든지 당직실에서 숨소리라도 낼 수 있으니 나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자정을 지날 무렵이었다.
태수는 그 동안 침대에 누워 머릿속에 떠다니는 카프레네의 임상경험을 다시 떠올리는 시간을 가졌다.
다행이라면 정관영도 문승현도 그리 간섭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저 자기들 일에만 열중했다.
그래서 그런지 당직실은 의외로 조용했다.
한참을 카프레네 임상경험과 씨름하던 중이었다.
“슬슬 자자. 야, 1년차! 불 꺼.”
“그냥 끄면 되지.”
“괜히 있어? 최태수.”
문승현의 재차 부르는 목소리에 태수가 얼른 침대에서 내려와 말했다.
“바로 소등하겠습니다.”
“일찍 자라. 아침에 밍기적거리지 말고.”
“네. 쉬십시오.”
태수는 얼른 대답하고는 전등을 껐다.
어두워진 당직실을 더듬거리며 다시 침대로 올라왔다.
문승현의 퉁명스러운 말투는 이미 잊은 지 오래였다.
인턴 생활하면서 이거보다 더한 일들도 많이 겪었다. 그에 비하면 이 정도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편했다.
‘살만하네.’
주변이 어두워져서 일까?
조금 전까지 말똥말똥 했던 눈꺼풀이 조금씩 묵직해지기 시작했다.
슬슬 졸음이 쏟아져 올 무렵이었다.
띠리릭!
휴대폰 소리가 울리자 태수가 벌떡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자신의 휴대폰 벨소리가 아니기에 주변을 둘러봤다.
그때 반대편 침대 1층에 누워있던 문승현이 번개같이 일어나 가운을 걸치며 소리쳤다.
“최태수!”
부른다면 이유는 뻔했다.
응급환자다.
피곤함이 확 날아간 태수는 반사적으로 침대에서 내려왔다.
가운을 걸칠 시간은 없다.
의자에 걸쳐둔 가운을 집어 들고 앞서 나간 문승현의 뒤를 빠르게 쫓았다.
타다닥!
조용한 병원 복도를 내달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2층 외과 당직실에서 1층 응급실에 도착할 때까지 소요된 시간은 불과 1분 내외였다.
벌컥!
문승현이 응급실 문을 거칠게 열며 소리쳤다.
“외과에서 콜 받고 왔습니다!”
“이쪽!”
부르는 소리에 문승현과 태수가 번개 같이 달려갔다.
119 구급대원들이 보이고 그 사이로 의료진들이 급히 움직였다.
태수와 문승현이 빠르게 구급대원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이송된 환자의 상태를 본 순간 태수가 멈칫했다.
사방에 피가 난자한 모습이다.
피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모습은 처음이다.
특히나 환자의 배를 관통한 철심이 끔찍했다.
“음.”
태수가 신음성을 흘릴 때 옆에 있는 문승현은 한술 더 떴다.
“뭐, 뭐야 이거?”
얼마나 놀랐는지 목소리까지 가늘게 떨렸다.
그때 이리저리 환자를 살피던 의사가 두 사람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손에는 환자에게서 흘러내린 피가 잔뜩 묻어 있었고, 가운 곳곳에도 혈액이 물든 상태였다.
응급실 의사가 약간 안도한 표정으로 말했다.
“왔냐?”
“선배.”
“그쪽은?”
“아, 인사해.”
문승현 말에 태수가 바로 인사했다.
“최태수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 1년차? 난 3년차. 응급부터 해결하고 제대로 인사하자고.”
조금 까칠하게 말하는 그의 가슴에 ‘응급의학과 레지던트 이철준.’이라고 적혀 있었다.
두 사람이 가볍게 인사를 마친 후였다.
태수가 조심스럽게 이철준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penetrating injury(관통상)이야.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허술하게 묶은 철근 더미가 떨어져서 덮쳤다던데?”
이철준 말에 문승현이 질겁했다.
“그, 그래서요.”
“무슨 그래서야?”
“당장 대전으로 보내야지 왜 지체하고 있냐는 말입니다.”
문승현 표정이 더더욱 일그러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차가운 인상이었는데 환자를 직면하니 너무도 소심한 모습을 보였다.
이철준은 못마땅한 얼굴로 다급하게 말했다.
“blood loss(실혈)만 대략적으로 1000cc가 넘어. 이송하면서 충격을 받았는지 출혈량이 점점 많아지고 있고!”
“그럼 더 빨리 실어야죠.”
“지금 이 사람 실으면 어쩌라고! 저쪽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DOA(Death On Arrival, 응급실 도착시 이미 사망상태.)하는 꼴 보고 싶어?”
이철준도 갑갑했는지 짜증을 잔뜩 부렸다.
그렇다고 문승현의 혼란함이 바로 가시지는 않았다.
일단 문승현은 책임자부터 찾았다.
“당직 과장님 호출 하셨습니까?”
“지금 오고 계시는 중이야. 그렇다고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잖아. 급한 대로 지혈제는 투여했는데 그 다음에 뭘 해야 되냐고!”
“이럴 때는……. 그러니까…….”
말까지 더듬거리며 멍한 머리를 억지로 깨우려는 모습이다.
태수는 순간 나설까 하다 멈칫했다.
환자의 생명이 위급한 건 맞다.
그렇다고 태수가 앞뒤 가리지 않고 나설 순 없었다.
인턴 때 호되게 겪은 경험이 있기에 오히려 더 냉정해 질 수 있었다.
태수는 환자의 상태를 육안으로 다시금 확인했다.
등부터 배까지 철근이 관통한 모습이다.
미리 투여한 지혈제가 효과를 발휘하는지 출혈양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게다가 겉으로 보이는 출혈량을 추측해보자 수혈로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는 정도다.
문제는 속이다.
내장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에 따라 조치할 게 달라진다.
태수는 아직 혼란해 하는 여전히 혼란해 하는 문승현에게 슬쩍 물었다.
“선배님.”
“아이씨. 왜?”
“죄송합니다만, 보통 이런 환자가 오면 X-RAY부터 찍어보지 않습니까?”
태수가 개의치 않고 자그맣게 묻자 문승현이 째려봤다.
“뭐?”
“X-RAY…….”
태수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문승현이 날카롭게 윽박질렀다.
“지금 네가 날 가르치려 들어?”
“그런 게 아니라 순서부터 여쭤본 겁니다. 제가 처음이잖습니까.”
틀린 말도 아니었지만 문승현 표정은 썩 밝지 않았다.
“너, 나중에 보자.”
작게 으르렁거린 문승현이 팩하니 고개를 돌려 이철준에게 물었다.
“X-RAY 찍었습니까?”
“아니.”
“그게 순서 아니에요? 일단 찍어서 어떤 상태인지부터 확인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요.”
문승현이 태수가 한 말을 인용해 말하자 이철준도 할 말이 있는지 살짝 목소리를 낮췄다.
“맨날 다른 병원으로 보내라고 하는 건 누군데 이제 와서 큰 소리야?”
“싸울 시간 있습니까? 일단 찍기부터 하잔 말입니다.”
“젠장.”
이철준이 인상을 팍 일그러뜨리더니 다른 응급실 의사와 간호사들과 함께 멀어져갔다.
타다닥!
스크레쳐카가 멀어져가는 걸 지켜보며 태수는 머릿속으로 상상했다. 왼쪽 갈비뼈 아래 부근에서 찔려 척추와 가까운 쪽으로 관통된 상태다.
갈비뼈 아래면 장이 위치한 곳이다.
운이 따랐다면 간과 위의 손상이 없을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지혈만 충분히 하고 혈액과 수액을 달아 이송하면 그만이다.
태수는 머릿속으로 환자 상태를 가늠하면서도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