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429
00432 432화
하지만 인정하긴 싫기에 얼른 부정했다.
“내가 그런 이상한 생각이나 하고 살 놈은 아니잖아.”
“그렇지. 그보다 잔소리 끝났으면 앉아.”
태수가 자리를 권하자 도성민은 어정쩡한 모습으로 빈자리에 앉았다.
이내 간단한 아침 식사가 시작됐다.
“진짜 간단해 보이는데 속은 든든하네.”
“단백질 위주라 포만감은 죽여줄 거야.”
“맛도 좋고.”
도성민이 감탄하는 사이 후배들 또한 엄지를 치켜들었다.
“선배님, 진짜 맛있습니다.”
“많이 먹고, 부족한 건…… 알아서 챙겨 먹고.”
“하하! 네!”
태수의 장난 어린 말 때문인지 식사 분위기는 더욱 좋았다.
식사가 끝난 후에는 후배들이 자청해서 집안일을 시작했다.
김태경이 설거지를 하는 사이였다.
양승일이 태수와 도성민에게 물었다.
“혹시 빨래할 거 없으십니까?”
“출근해야 하는데 빨래할 시간이 돼?”
“예약 기능이 있는 세탁기라서요. 퇴근할 때쯤으로 맞춰 놓으면 될 거 같습니다.”
“그거 좋네. 내 건 아까 내놨으니까 같이 돌리면 될 거야.”
“알겠습니다.”
양승일이 대답하고 멀어져 갔다.
위잉.
그사이 배정환은 청소기로 집 안 구석구석 먼지를 빨아들이는 중이다.
도성민은 후배들의 모습에 조금 어안이 벙벙했다.
“쟤들이 왜 저래. 병원에서 당직실은 그렇게 더럽게 쓰더니.”
“같이 하면 집안일도 빨리 끝나고 좋잖아.”
“그건 그런데 쟤들이 저런 캐릭터들이 아니라는 게 문제라고.”
“자연히 역할 분담되고 좋은데, 뭐.”
태수는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
도성민은 그저 눈만 끔뻑거렸다.
스스로 할 일을 찾아서 하니 개개인이 할 일이 줄어들고, 집은 깨끗해져 갔다.
평온한 한때는 아침뿐이었다.
신속대응센터로 출근과 동시에 전쟁의 시작이다.
주간에 신속대응센터에는 총 5개 팀이 환자를 진료한다.
중상자 전담 2개 팀과 경상자 전담 3개 팀이다.
1팀은 중상자를 전담하는 팀이지만 무조건 수술실에만 들어가 있진 않았다.
응급실에서 환자를 받아 병명을 확인한 후에 수술을 할지, 아니면 경상자 전담팀으로 인계할지 결정한다.
순서대로 들어오는 환자들이 각 팀에 무작위로 배정되기에 상태를 일일이 확인해야 했다.
원래는 경상자 전담팀에서 먼저 환자를 확인해야 했다.
그러나 이제 개원한 지 이틀째다.
그래서 그런지 아직은 체계가 조금 덜 잡혀 어수선한 모습도 보였다.
태수도 몇 시간 동안 밀려드는 환자를 돌보고, 검사를 진행하거나 경상자 전담팀으로 인계하길 반복했다.
그러던 중이다.
박성민이 빠르게 태수에게 다가와 물었다.
“조금 전에 들어온 환자 병명 확인됐어?”
“검사실에서 곧 알려 준다고 했습니다.”
“검사가 언제 끝났는데 아직도 안 알려 준 거야?”
“그쪽도 바쁜 모양입니다.”
태수가 대답하자 박성민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어제 개원했는데 환자가 왜 이렇게 많은 거야. 대전, 충남권에 이렇게 환자가 많았어?”
“구급차가 일단 우리 병원으로 환자를 데려오니까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타 병원에서 이송해 오는 환자들도 상당하고요.”
“이것들이 환자 돌보기 귀찮아서 보내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아니지, 우리 병원이 잘되는 거니까 좋아해야 하나?”
박성민이 의아한 얼굴로 중얼거릴 때였다.
드르륵!
도성민이 스트레쳐카를 빠르게 밀며 다가왔다.
“선생님, pneumothorax(기흉) 환자입니다!”
“어어, 이쪽으로. 히스토리는?”
“이번이 벌써 다섯 번째라고 합니다.”
“우선 respirator(인공호흡기) 달고 oxygen(산소)부터 투여해. 숨 돌아오면 바로 CT부터 촬영하고.”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도성민이 빠르게 손을 움직였다.
태수가 같이 도와주려고 할 때였다.
“태수 선배님!”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바라보자 배정환이 환자를 앞에 두고 손을 들어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태수는 바로 그쪽으로 다가갔다.
환자는 60대로 추정되는 중년 남성이었다.
“흐으음.”
배를 움켜쥔 채 힘겹게 신음을 삼키고 있는 모습이다.
환자 상태를 육안으로 확인한 태수가 배정환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abdominal pain(복통)을 호소하시는데 검사를 하지 않으시겠다고 합니다.”
“검사를 안 해?”
태수가 의아하게 물어볼 때였다.
“끄응. 엑스레이만 찍어도 요즘 웬만한 병은 다 안다던데……. 음!”
일부러 태수 들으라고 하는 소리다.
그걸 간파한 태수가 배정환에게 손을 내밀었다.
배정환은 눈치 빠르게 차트를 건넸다.
차트를 받아 든 태수는 빠르게 훑어본 후에 환자에게 말했다.
“최영덕 환자분 되시죠?”
“끙. 그래요.”
“어제저녁부터 복통이 있으셨고요. 조금 전에 너무 아프셔서 119의 도움을 받아 저희 병원에 오신 거 맞습니까.”
태수의 물음에 최영덕 환자의 인상이 잔뜩 찌푸려졌다.
“뻔히 보고 뭘 또…… 흐음, 물어요?”
“지금도 그렇게 아프신데 검사를 안 받으시겠다고 하시니까요. 진통제를 놔 드려서 이 정도인 겁니다.”
“나도 아는데 그냥 엑스레이만…… 끙, 찍으면 안 됩니까?”
“우리도 확실하게 병을 파악하려면 CT를 찍어 봐야 합니다만.”
“그게…….”
최영덕 환자는 고통에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뭔가 망설였다.
태수는 그 점이 이상했다.
“혹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편안하게 하셔도 됩니다.”
“그, CT인가 뭔가 찍으면 돈 많이 들잖아요.”
어렵게 꺼낸 최영덕 환자의 말에 태수가 쓴 미소를 지었다.
모든 환자가 아프기 싫어한다.
하지만 다양한 검사를 받는 걸 꺼려한다.
이유는 비용 때문이다.
병원에 오는 사람들 중에 여유가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의 환자들이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태수도 그 점을 알고 있다.
이내 태수가 알 듯 말 듯 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돈 많이 들죠.”
“그러니까 그냥…… 음, 엑스레이만 찍으면 안 되냐고요.”
“물론 엑스레이로도 어느 정도 병을 파악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정보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끄으음.”
통증이 심해지는지 환자의 목소리에서 힘겨움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는 고민하고 있었다.
태수는 그런 환자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CT를 촬영하는 건 저희 편하자고 하는 게 아닙니다. 물론 저희도 편하지만 환자분의 병명을 정확하게 집어내려면 꼭 해야 합니다.”
“그래도…… 으윽.”
“지금 아프시죠?”
태수가 묻자 최영덕 환자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보면 몰라요?”
“그러니까 CT 찍으셔야죠. 만약에 특별한 문제가 없다 해도 환자분 속이 어떤지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겁니다.”
“그러니까 그 비용이 부담…….”
최영덕 환자가 짜증 어린 얼굴로 따지고 들 때였다.
태수는 찡긋 미소를 지으며 끼어들었다.
“병이 발견되면 3만 원. 만약에 발견되지 않아도 3만 원입니다만.”
“……네?”
“비싸죠? CT 가동할 때 전기가 많이 들어서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 점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태수의 말에 최영덕 환자의 얼굴이 황당하게 변했다.
CT가 3만 원?
어디서도 들어 보지 못한 비용이다.
다른 병원에 비하면 터무니없을 정도였다.
어안이 벙벙한 최영덕 환자에게 태수가 이어서 말했다.
“우리 병원은 원가를 뽑아내겠단 생각으로 검사비를 청구하지 않습니다. 엑스레이와 MRI도 마찬가지고요.”
“그래도 3만 원이면…….”
“물론 그것도 부담이 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환자분의 내부를 정확하게 확인하는 데 투자하시는 게 어떠실까 생각합니다만.”
태수가 정중하게 말했다.
그 순간 최영덕 환자의 얼굴이 미묘하게 변했다.
3만 원.
쉽게 이야기해서 술 한 잔 덜 마시면 될 돈이다.
그걸로 자신의 몸에 생긴 이상을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면?
그 돈을 투자하지 못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최영덕 환자가 인상을 푹 일그러뜨리며 태수에게 말했다.
“뭐 하십니까. 얼른 CT 찍으러 가야죠.”
“안내하겠습니다. 누우세요.”
최영덕 환자는 얼른 스트레쳐카에 누웠다.
태수는 찡긋 미소를 지으며 최영덕 환자를 CT 검사실로 안내했다.
다행히 최영덕 환자의 병은 췌장염 초기로 밝혀졌다.
아직 만성 췌장염까지 발전되지 않았기에 집과 가까운 종합병원에서 통원 치료 해도 문제가 없었다.
복통은 제산제를 투약하자 크게 완화되었다.
제산제는 보통 위액을 중화시키는 약으로도 쓰이지만 췌장염 치료에도 사용된다.
태수는 한결 얼굴이 편안해진 최영덕 환자에게 진단서를 발급해 주며 말했다.
“댁 근처에 있는 내과에 가셔서 꼭 다시 의사랑 면담하셔야 합니다.”
“알았다니까요.”
“그리고 병이 악화되면 지체하지 말고 바로 우리 병원이나 근처의 큰 병원으로 가셔야 하고요.”
“아까부터 계속 같은 소리만 하시고.”
최영덕 환자는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인지 어물쩍 넘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태수는 절대 그렇게 놔두지 않았다.
“진짜 중요하니까 말씀드리는 겁니다. CT 소견으로는 아직 심각하지 않으니까 보내 드리는 거고요.”
“확실히 CT 찍고 나니까 마음은 좀 놓입디다.”
“그러니까 찍자고 했죠. 장기가 어떤 상태인지 정확하게 알려 주는 건 CT만 한 게 없으니까요.”
태수의 말을 듣던 최영덕 환자가 슬쩍 짓궂게 말했다.
“우리 선생님은 설명도 참 잘해 주시고 병도 잘 짚어 주시는데, 잔소리가 좀 있으셔.”
“그래서 좀 덜 아프시다면 얼마든지 해 드릴 수 있습니다.”
“아이고, 나 귀 아파서 빨리 가렵니다.”
최영덕 환자는 크게 손을 흔들며 멀어져 갔다.
태수는 그런 최영덕 환자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지켜봤다.
응급실에 오는 환자라고 모두 수술대에 올라가는 건 아니다.
그리고 모두가 응급한 환자도 아니다.
극심한 고통을 겪더라도 막상 알고 나면 별것 아닌 병일 수도 있다.
그건 환자 본인도 모르고 의사도 모른다.
그래서 엑스레이나 CT 등 각종 검사를 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수술을 해야 할 만큼 응급한 환자가 아니었지만 태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니, 오히려 병을 초기에 알아냈다는 데에 만족했다.
저런 환자만 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생각하던 중이다.
“닥터 최! emergency surgery(응급 수술)!”
브레드 김의 목소리가 따갑게 태수의 귀를 울렸다.
곧장 돌아선 태수의 얼굴은 어느새 차갑게 식었다.
“갑니다!”
타다닥!
태수는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날 오후, 신속대응센터 입구에 작은 푯말이 세워졌다.
내방하는 환자들이나 보호자들이 확실히 볼 수 있는 위치였다.
-치료비를 아껴라.
그걸 명확하게 알려 주는 푯말이었다.
태수는 시선을 고정시킨 채 만족스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좋잖아.”
* * *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자 조금씩 변화는 시작됐다.
처음엔 어수선하던 신속대응센터 응급실 분위기가 경험이 쌓여가자 상당히 안정적으로 변했갔다.
가장 큰 변화는 환자가 처음 도착했을 때다.
초기 진단팀이 먼저 나서 환자를 진단했다.
진단 결과 응급이 아닌 가벼운 상처로 판명나면 경상자 전담팀에서 치료 후 귀가 혹은 동성종합병원으로 이송한다.
반면, 중상으로 진단이 떨어지면 상황이 달라진다.
환자는 즉시 중상자 전담팀으로 인계된다.
솔직히 응급실에 들어오는 환자중 70%가 생명에 지장이 없던 경상자였기에 상대적으로 중상자 전담팀이 할 일이 많진 않았다.
덕분에 중상자 전담팀은 항상 바쁘지않았다. 오히려 응급실 한쪽에 마련된 의사 휴게실에서 한가롭게 쉬는 시간도 많았다.
경상자 전담팀은 그런 일에 전혀 반발하지 않았다.
정작 생명이 경각에 달린 응급 환자를 수술하거나 케어하는 건 중상자 전담팀 담당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한다면 최고의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다.
쉴 시간이 있는 만큼 환자를 인계받았을 때 근무 강도가 높았다.
그렇기에 경상자 전담팀은 아무런 불만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실력을 키워 중상자 전담팀으로 옮겨 가고 싶어 했다.
신속대응센터.
다른 병원과 극명히 다른 점이 있다.
실력만큼 대우해 주기에 스스로 갈고닦는 걸 당연하게 여겼고, 또 그렇게 했다.
그렇다고 중상자 전담팀이 마냥 쉬는 건 아니었다. 짬짬이 틈이 나는 대로 경상자 전담팀의 일을 도왔다.
밀려드는 환자들 때문에 경상자 전담팀이 너무 바쁜 탓이었다.
태수와 1팀도 그렇게 조금씩 체계화된 시스템에 적응하던 중이었다.
벌컥!
응급실 문이 급격히 열리며 스트레쳐카가 들어왔다.
“응급입니다!”
구급대원의 목소리가 응급실을 크게 울렸다.
그러나 호들갑을 떠는 의사?
없었다.
응급.
그게 생활인 신속대응센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