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430
00433 433화
어느새 경상자 전담팀이 구급대원에게 달려갔다.
“무슨 일입니까?”
“복통을 심하게 호소하셔서 모시고 왔습니다.”
“이쪽으로.”
드르륵.
입구에 있던 스트레쳐카가 경상자 전담팀 쪽으로 옮겨졌다.
거기까지 확인한 태수와 1팀은 시선을 떼고 담당하고 있는 환자를 계속 살폈다.
태수는 신창용과 함께 검사 결과를 확인했다.
“duodenal ulcer(십이지장궤양)이 심한데.”
“약으로 다스릴 수준은 아닌 거 같습니다.”
“내가 봐도 그래. 수술실 열고 준비 좀 해 줘.”
신창용의 말을 듣자 태수가 물었다.
“어시스던트는 누구를 데려가시겠습니까?”
“양승일 선생으로 하지. 요즘 아주 열의가 가득하니까.”
“그럼 준비시키겠습니다.”
“부탁할게.”
신창용은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멀어져 갔지만 눈빛에 약간의 아쉬움도 녹아 있었다.
그의 입장에선 기회만 된다면 태수와 같이 수술하고 싶었다.
하지만 브레드 김과 난해한 응급 환자를 전담해 수술할 태수였기에 무턱대고 수술실로 데려갈 수 없었다.
그걸 알기에 다른 레지던트를 어시스던트로 요청했지만 미련은 남는 모양이었다.
태수도 알지만 같이 수술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그는 돌아서서 간호사실로 향했다.
“수술실 열어야 할 거 같습니다. duodenal ulcer(십이지장궤양) 수술이고요.”
“7번 방 열라고 할게요.”
“양승일 선생 호출도 부탁드립니다.”
태수가 인사를 하고 돌아설 때였다.
“선생님, 잠깐 쉬었다가 하세요.”
김수진 간호사의 권유에 태수가 잠시 신속대응센터를 둘러봤다.
여러 환자와 의료진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다행히 초를 다투는 응급 환자는 없었다.
필요하면 호출할 터였다.
시간을 보아하니 어느새 2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잠깐 한숨 돌려도 될 것 같았다.
거기까지 확인한 태수는 김수진 간호사를 향해 빙긋 미소를 지었다.
“진한 커피 한잔 부탁해도 될까요?”
“바로 준비해 드릴게요.”
김수진 간호사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움직였다.
곧 태수에게 커피를 건네준 김수진 간호사의 걱정어린 말이 들렸다.
“쉬엄쉬엄하세요.”
“무리하고 있진 않습니다.”
“그래도 다른 중상자 전담팀 선생님들보다 훨씬 많이 움직이고 계세요. 하루에 수술 두 건 이상은 꼬박꼬박 하시잖아요.”
“어쩝니까, 환자들이 오는데.”
태수는 끝까지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그렇게 좀 더 담소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타다닥!
태수를 향해 돌진해 오는 의사가 있었다.
“치프!”
신속대응센터에서 태수를 그렇게 부를 의사들은 몇 명 없었다. 동성종합병원에서 같이 넘어온 외과 레지던트들이 전부였다.
태수가 바라보자 홍진만이 달려오고 있었다.
경상자 전담팀에 배속된 그가 태수를 찾는 게 심상치않았다. 짧게 생각하는 사이 재빠르게 다가온 홍진만이 헐떡이며 말했다.
“헉헉! 화, 환자가…….”
거기까지만 들어도 무슨 상황인지 짐작이 갔다.
태수는 커피를 내려놓은 채 담담하게 말했다.
“EMR.”
“잠시만요!”
홍진만은 그 와중에도 들고왔던 노트북을 내밀었다.
그걸 받아 든 태수가 확인하는 사이에 홍진만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름은 성민구, 40대 중반입니다. 혈압은 낮고 맥박은 빠릅니다. 체온도 약간 상승되어 있고, abdominal distention(복부팽만)으로 tenderness(압통)과 reflex pain(반사통)이 심합니다.”
“내원 시간을 보니까 조금 전에 구급대가 모시고 온 환자 아니야?”
“맞습니다. abdominal colicky pain(급경련복통)으로 엑스레이만 촬영했습니다.”
그 말에 태수는 곧바로 PACS를 확인했다.
엑스레이 영상을 본 순간 태수의 인상이 확 굳어졌다.
“ileus(장폐색증)이 왜 이렇게 심해?”
“그게…….”
“자세한 건 환자랑 이야기할 테니까 바로 이쪽으로 인계해.”
“알겠습니다!”
홍진만은 대답과 동시에 부리나케 달려갔다.
태수도 한가하게 기다릴 틈이 없었다.
곧장 휴대폰을 들어 휴게실에서 잠시 쉬고 있는 브레드 김에게 전화했다.
“브레드, 이쪽으로 오셔야겠습니다.”
“당장 갈게.”
통화는 너무도 간단하게 끝났다.
그에 비해 상황은 신속하게 진행됐다.
숨 돌릴 틈도 없이 홍진만과 레지던트들이 스트레쳐카를 밀며 달려왔다.
“치프!”
“이쪽으로!”
태수가 지정하자 그 자리에 정확히 스트레쳐카가 도착했다. 그 뒤를 따라 보호자도 헐레벌떡 뛰어왔다.
태수는 보호자를 뒤로하고 환자부터 확인했다.
“아으윽.”
배를 웅크린 채 어쩔 줄 몰라 했다.
태수가 옆에 선 홍진만에게 빠르게 물었다.
“투약 사항은?”
“nonopioid analgesic(비아편유사진통제)를 조금 전에 투여했습니다.”
“그 외에는?”
“없습니다.”
홍진만이 대답하자 태수는 빠르게 판단을 마쳤다.
이젠 응급으로 분류돼 1팀으로 인계된 환자다.
“이젠 이쪽에서 맡을 테니까 돌아가 봐.”
“수고하십시오.”
홍진만이 깊숙이 고개를 숙이고 얼른 멀어져 갔다.
응급 환자가 있는 상황이다. 한가롭게 이야기할 수 없기에 자리를 피하는 게 당연했다.
홍진만의 인사를 뒤통수로 받은 후 태수가 환자에게 돌아섰다.
“으으윽.”
환자가 계속 고통을 토로했다.
이마에 맺힌 진땀이 고통의 강도를 간단하게 알게 했다. 이미 진통제를 투여했다는데도 이 정도 통증이라면 상당히 심각했다.
바로 옆에선 아내로 보이는 보호자가 안절부절못했다.
“선생님, 아이 아빠 괜찮은 거죠?”
“조금 더 살펴봐야 할 거 같습니다.”
“너무 아파하는데 그것만이라도 어떻게 해 주시면 안 되나요? 제발요.”
환자 아내의 간절한 모습이 태수의 눈에 가득 들어왔다. 태수 또한 환자가 이런 고통을 계속 겪는 걸 원치 않았다.
이럴 경우 신속한 처방이 필수다.
“meperidine(메페리딘) 준비해 주세요.”
“여기요.”
대기하고 있던 김수진 간호사가 기다렸단 듯 빠르게 주사기를 내밀었다.
메페리딘.
마약성 진통제 중 하나로 모르핀보다 소량으로도 비슷한 효과를 볼 수 있는 합성 진통제였다.
모르핀에 비해 지속 시간이 짧다는 단점이 있지만 부작용이 조금 적단 장점도 있었다.
태수와 제임스는 이미 응급 중에서도 난해한 환자만 담당하기로 했다.
덕분에 태수와 함께 대기하는 간호사의 카트엔 강도 높은 진통제들이 항시 준비되어 있었다.
태수는 IV에 메페리딘을 바로 투여했다.
강도 높은 진통제라서 그런지 환자의 얼굴이 서서히 펴졌다.
“흐으음…….”
환자의 입에서 통증이 줄어든 침음성이 길게 들려왔다.
더불어 환자 아내의 얼굴에 안도감이 떠올랐다.
하지만 아픔을 억지로 진정시켜 놓았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환자 아내가 두려움이 잔뜩 실린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된 건가요? 왜 이렇게 아파하는 거죠?”
“엑스레이 확인 결과 장이 많이 안 좋은 상황입니다.”
“그럼 어떻게…….”
“자세한 건 환자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태수는 정중하게 말한 후 환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환자의 얼굴은 여전히 처참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태수는 그 이유를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아깐 한 처방은 환자의 고통만 살짝 덜어 줬을 뿐, 근본적인 원인은 해결되지 않은 상태였다.
태수는 지체하지 않고 바로 환자를 내려다봤다. 제일 먼저 환자인 성민구의 의식 레벨부터 확인했다.
“여기가 어딘지 아시겠습니까?”
“병원…… 이요.”
성민구가 태수와 눈을 정확하게 마주하며 대답했다.
조금 전까지 너무 고통스러워 약간의 탈진 증상도 보였지만 다행히 의식은 또렷했다.
태수는 이어서 물었다.
“병원에 어떻게 오셨는지도 기억하십니까?”
“네, 기억…… 합니다.”
“진짜 고통이 심하셨을 텐데, 어떻게 참으신 겁니까?”
“아니에요. 아픈 건 그렇게 오래 안 됐습니다.”
성민구의 말에 태수가 멈칫했다.
무척 심한 장폐색증을 앓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자각이 없었다는 게 흔한 경우가 절대 아니다.
“장 수술은 언제 받으셨습니까?”
“수술받은 적…… 없습니다.”
“한 번도요?”
“어렸을 때 포경수술 외에는…… 음, 수술받은 적이 없는데요.”
그 말에 태수가 멈칫하며 성민구 아내에게 시선을 돌렸다.
“진짜 없어요. 얼마나 건강한데요. 잔병치레 한 번 없던 사람이에요.”
성민구 아내의 목소리에 아무런 거짓은 없었다.
태수는 그 점이 더더욱 골치아팠다.
수술력이 없는 장폐색 환자.
그렇다면 장 유착에 의한 장폐색이 아니다.
태수가 잠시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브레드 김이 부리나케 달려 태수 앞에 도착했다.
“헉헉! 상황은?”
“그러니까…….”
태수는 바로 환자와 나눈 이야기를 그대로 전달했다.
그러는 와중에 EMR까지 같이 확인했다.
브레드 김의 얼굴이 확 굳어졌다.
“안 좋은데.”
“emergency surgery(응급수술)해야 할 거 같습니다. 우선 수술 동의서를 받겠습니다.”
“내가 말씀드릴 테니까 최 선생은 우선 수술실로 가.”
“알겠습니다. 김 간호사!”
태수가 외치며 돌아본 순간이다.
김수진 간호사는 이미 후다닥 뛰며 소리치고 있었다.
“수술실 열어 주세요!”
“8번이요! 바로 열라고 할게요!”
응급실 간호사의 외침이 태수와 브레드 김의 귀에도 똑똑히 들려왔다.
그 소리와 동시에 건장한 남자 간호사들이 부리나케 달려왔다.
“이동하겠습니다.”
“얼른.”
탁탁.
스트레쳐카의 고정 장치를 신속하게 해제한 남자 간호사들이 힘껏 밀기 시작했다.
“밀어!”
“갑니다!”
남자 간호사들과 태수가 동시에 스트레쳐카를 밀기 시작했다.
육안으로 보기에는 그리 심각한 환자가 아니다.
하지만 그 속은 그렇지 않았다.
그걸 알려주듯 달려가는 태수의 얼굴이 잔뜩 굳어 있었다.
한편, 빠르게 진행된 상황에 성민구 아내가 발을 동동 굴렸다.
“뭐, 뭐가 어떻게 된 거예요? 아이 아빠를 어디로 데려가는 건데요?”
“보호자분, 제가 설명드리겠습니다. 지금 남편분께서는…….”
브레드 김은 성민구 아내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수술 진행에 대한 부분도 이야기했다.
브레드 김이 성민구 아내와 대화하는 사이에 수술 준비를 신속히 마친 태수가 수술실에 들어섰다.
전담 마취의인 서영우가 이미 준비 중이었다.
서영우는 태수를 보자 바로 진행 사항을 이야기했다.
“환자 바이탈이 조금 불안정해서 stabilizer(안정제)를 조금 투여했어. 관장도 마무리 지었고.”
“수고하셨습니다.”
“그보다 김 선생은?”
“보호자와 이야기 끝나고 수술 준비 중입니다.”
태수의 말에 서영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곧 들어오겠네. 그럼 혈압하고 맥박을 좀 더 체크하지.”
“부탁드립니다.”
정중하게 인사를 마친 태수가 성민구 환자에게로 향했다.
얼굴만 봐도 낯선 환경 때문인지 불안감이 가득했다. 더불어 약간 서늘한 수술실 온도로 인해 가늘게 떨기도 했다.
수술 준비를 위해 상체가 완전히 드러나 있어 더욱 추위를 느끼는 것 같았다.
고통으로 인해 살짝 인상이 찌푸려진 성민구지만 의식은 선명했다.
그의 눈빛은 이미 공포와 불안감으로 가득했다.
갑자기 수술실로 직행한 현실에 도무지 적응하기 힘든 얼굴이다.
태수는 널찍한 초록색 수술포를 펼쳐 성민구의 상체를 덮어 줬다.
“조금은 따뜻하실 겁니다.”
“아, 선생님.”
작은 친절이지만 받아들이는 성민구의 입장에선 또 달랐다. 척 보기에도 불안감이 살짝 지워진 얼굴이다.
태수는 그런 성민구에게 반농담을 건넸다.
“수술실이 썰렁하죠?”
“네. 그, 그러네요.”
“아내분이 정말 걱정 많이 하시는 거 같습니다.”
태수의 말에 성민구의 얼굴이 시시각각 변했다.
“착한 사람…입니다. 저에게 과분할 정도로요.”
“잉꼬부부시던데요.”
“전에는 아내가 절 많이 좋아…했어요. 그런데 전 과분한 사랑을 받으면서도 그걸 알지 못했습니다.”
“전혀 아닌 거 같던데요.”
응급실에서 보였던 모습을 떠올리니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