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433
00436 436화
어디까지 막혔는지, 얼마나 막혔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것 또한 온전히 손끝 감각에 맡겨야 했다.
태수의 이마에서 서서히 진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송현미 간호사가 얼른 땀을 닦아 주려 했다.
그 순간이다.
“아직.”
태수가 먼저 말하자 송현미 간호사가 멈칫했다.
말을 꺼낸 태수는 다시 손끝 감각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지금은 땀을 닦는 것만으로도 감각이 분산될지 모른다.
그걸 염려한 태수였기에 우선 막았다.
송현미 간호사도 상황을 눈치챘는지 손길을 멈춘채 긴장 어린 표정으로 태수를 지켜봤다.
태수는 그사이에도 날카로운 도구로 혈전을 조금씩 뚫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정말 중요한 작업이다.
자칫 힘을 너무 많이 주면 혈관이 터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너무 힘을 주지 않으면 혈전 뚫기는 불가능했다.
적절한 힘 배분이 관건인 수술이었다.
문제는 그 조절이 철저히 감각으로만 해야한다는 점이다.
그 감각의 절충점?
아무도 모른다.
외롭다.
태수가 순간적으로 느낀 감정이다.
이 순간 자신을 도와줄 사람은 없다.
오로지 혼자 힘으로 풀어나가야 했다.
진땀은 연신 이마를 적셨다.
그뿐만이 아니다.
긴장감에 입이 마르다못해 타들어가는 기분이다.
태수는 스스로를 위안했다.
이 시간도 언젠가 끝난다.
기왕이면 성공하고 시간이 지나길 간절하게 바랐다.
어차피 이 수술법을 강행했다면 끝까지 자신이 해야했다.
‘잠깐 쉬었다가…… 다시.’
태수는 도관을 통해 삽입한 날카로운 수술 도구를 앞뒤로 움직이며 혈전과 미묘한 줄다리기를 이어 갔다.
생각 같아서는 그대로 쭉 밀어 버리고 싶었다.
그 정도로 답답하고 지루한 수술이다.
그러나 태수는 그러지 못했다.
혈관이 터져 피바다가 될 수술실은 생각도 하기 싫었다.
외과의사가 된 후 피는 정말 지겹게 봤다.
가급적이면 출혈로 인해 환자의 생명이 좌지우지될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혈전과 미묘한 신경전을 이어 갈 때였다.
툭.
태수의 손끝 감각에 무언가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
“어?”
그가 얼른 날카로운 수술 도구를 앞뒤로 움직여 봤다.
약간 거치적거리는 게 있지만 날카로운 수술 도구가 예상보다 많이 움직였다.
그 순간 태수의 눈빛이 반짝였다.
하나의 혈전이 뚫렸다.
물론 아직 만족할 때가 아니다.
태수는 날카로운 수술 도구를 빼고 풍선이 장착된 도관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혈전을 뚫은 부분에 풍선을 부풀게 했다.
상장간막정맥의 일부가 살짝 부풀어 올랐다.
그게 외부에서 보일 정도였다.
그제야 태수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한 번 뚫린 혈관은 와파린에 의해 막히지 않을 터였다.
길고 지루한 과정을 거쳐 첫 번째 혈전 덩어리를 제거했다. 하지만 앞으로 남은 혈전 덩어리가 몇 개나 될지 모른다.
하지만 할 수 있단 희망에 태수는 희열을 느꼈다.
침착하게.
흥분은 실수를 부른다는 걸 잘 알기에 태수 얼굴이 평정심을 되찾았다.
이제 다음 혈전 덩어리를 찾아가야 할 때다.
다시 가이드용 도관을 움직이려는 순간이었다.
송현미 간호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생님, 땀 좀 닦아도 될까요?”
“…….”
“이마가 땀으로 흥건해요.”
“부탁드립니다.”
태수가 허락하자 송현미 간호사가 얼른 땀을 닦았다.
그녀의 손길을 느끼며 태수가 나지막이 말했다.
“혹시 지켜보시다가 땀이 너무 많으면 그냥 닦아 주세요.”
“선생님 집중하시는데…….”
“괜찮습니다.”
태수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화는 잠시뿐이었다.
다시 수술실은 지루할 정도로 적막감에 휩싸였다.
태수는 도관을 이용해 혈전을 찾아 뚫는 걸 반복했고, 브레드 김은 그래프트(우회 혈관) 채취에 신중을 기하며 손을 놀렸다.
서영우 또한 환자의 전신을 계속 관리하면서 간간이 간호사들에게 태수 대신 오더를 내렸다.
“식염수를 주기적으로 부어 주고, 출혈이 발견되면 바로 보고하고.”
“네, 선생님.”
송현미 간호사와 김수진 간호사는 대답과 동시에 몸을 움직였다.
느린 수술 진행이라고 같이 늦장을 부릴 순 없었다.
조금이라도 환자 상태를 안정적으로 만드는 건 간호사들의 몫이었다.
그러는 사이 태수는 몇 개의 혈전을 더 뚫었다.
처음이 어려웠다.
그다음 진행은 비교적 빨랐다.
무엇보다 와파린이 계속 투여되는 중이라서 그런지 혈전이 조금씩 물러져 혈관을 뚫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경험은 그래서 소중했다.
용기를 얻은 태수가 계속 혈전을 뚫어 가던 와중에 브레드 김이 기다란 혈관을 들고 태수의 반대편에 도착했다.
“그래프트 채취 끝났어.”
“벌써요?”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데 벌써라니.”
브레드 김이 황당한 눈빛으로 말하자 시계를 바라본 태수가 멈칫했다.
스텐트 삽입이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하도 집중하느라 수술시간이 물처럼 흐르는 것도 몰랐다.
태수가 어색한 미소를 짓는 사이 브레드 김이 물어왔다.
“그래프트는 장간막동맥에 사용할 거지?”
“네. 정맥은 거의 뚫어 가고 있으니까 동맥을 대체해 주십시오.”
“오케이. 그런데 닥터 최, 체력 관리 하면서 해.”
브레드 김이 진심을 담아 태수에게 조언했다.
누가 봐도 태수는 상당히 지친 안색이다.
물론 태수는 그런 걱정을 감사하게 받아들였다.
“조금만 더 뚫으면 그다음은 좀 편해질 거 같습니다.”
“그거야 그렇지.”
“그럼 전 다시.”
“나도.”
태수와 브레드 김은 짧게 대화를 나누고 각자 수술을 이어 갔다.
그 뒤로 1시간 남짓 지나서야 혈관 정리가 끝났다.
태수는 모든 상장간막정맥을 뚫진 못했다. 너무 꽉 막혀서 도저히 도관을 삽입할 수 없는 혈전이 있던 탓이다.
그렇다면?
혈관을 절제해 인공 혈관으로 대체해야 했다. 그래도 거의 대부분의 상장간막정맥을 보존할 수 있었다.
‘쓸만하네.’
태수는 스스로에게 격려했다.
기존의 수술법을 응용한 게 커다란 도움이 됐다.
태수가 다시 기운을 끌어올려 다음 수술에 들어가려 할 때, 브레드 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쉬겠습니다.”
“브레드.”
태수가 바라보자 브레드 김은 고개를 저었다.
“벌써 3시간 가까이 지났어. 잠깐 쉬어 줘야 다음 수술에 지장이 없어.”
“그건…….”
“나도 빨리 수술하고 싶어. 하지만 우리는 쇠로 만든 사람들이 아니야.”
“…….”
태수는 대답 대신 수술대에서 한 걸음 물러섰다.
쉴땐 쉬어줘야 된다.
급할수록 돌아가란 격언을 되새긴 태수의 반응이었다.
그 모습을 본 서영우가 빠르게 말했다.
“10분 정도는 문제없으니까 숨 좀 돌려.”
“네.”
태수는 조금은 힘 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솔직히 힘들었다.
생명이 걸린 돌발적인 응급 상황이 없다고 해서 쉬운 수술은 결코 아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신경을 날카롭게 곤두세워야 하는 이런 수술이 더욱 지치고 힘들게 했다.
그렇다고 태수와 브레드 김은 절대 앓는 소리를 내진 않았다.
두 사람 모두 한 번 시작한 이상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들이다.
특히나 수술대 위에서는 더더욱 그러했다.
브레드 김이 수술을 잠시 멈춘 건 의사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더 깊이 보면 환자를 위해서이기도 했다.
사람은 지치면 누구나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의사에게는 한 번의 실수가 되겠지만 환자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도 있었다.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에 맑은 정신으로 다시 시작하는 게 옳다.
태수도 그걸 알기에 더 말하지 않았다.
잠깐 휴식을 취한다고 해서 막연히 쉬진 않았다.
태수와 브레드 김은 한 곳에 서서 수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우선 혈관들은 정리가 끝난 거지?”
“네. 다음으로 진행할 건 소장과 대장의 절제입니다.”
“소장이 너무 부풀었고 변색도 심해. 아무래도 모두 살려 내는 건 힘들 거 같아.”
브레드 김의 의견에 태수도 동감했다.
“맞습니다. 하지만 최대한 살려 볼 방법은 없을까요?”
“최대한 절제를 적게 하는 게 방법이겠지. 아니라면 소장을 모두 들어내야 될 테니까. 보호자에게도 약속했고.”
“그럼 어떻게 진행하는 게 좋겠습니까?”
태수가 묻자 브레드 김이 뚱한 얼굴로 대답했다.
“확인하지 않았어?”
“그래도 브레드 김이 저보다 경험이 더 많으시니까 여쭤 보는 게 당연한 겁니다.”
“나 참. 나한테 뭐 뾰족한 수가 있나. 직접 만져 보면서 절제할 부위를 골라내야지.”
“문합하는 부위가 너무 많아져도 문제가 될 텐데, 그게 걱정입니다.”
“나도 그래. 아무래도 최대한 문합 부위를 줄여야겠지만 그게 잘될지는 의문이야.”
“저도 좀 걱정됩니다.”
태수와 브레드 김은 쉽게 답을 내놓지 못했다.
전체 수술 진행 중 3분의 1 정도가 지났다.
그리고 혈관보다 더 중요한 부분들이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
그게 두 의사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몸은 쉬고 있지만 머릿속은 맹렬하게 다음 수술 진행 방법을 되살펴보기에 바빴다.
쉬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흐트러진 집중력을 다잡고 겨우 숨을 고를 정도였다.
굳이 시간으로 따지면 10분도 되지 않았다.
태수와 브레드 김이 다시 수술대에 다가와 각자 자리에 서자 서영우가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두 분, 모두 괜찮으시겠습니까? 좀 더 쉬셔도 될 거 같은데요.”
“닥터 서.”
브레드 김이 나지막이 부르자 서영우의 시선이 살짝 흔들렸다.
“말씀하세요.”
“지금부터 각오하셔야 할 겁니다.”
“그 말씀은……?”
“쉽지 않을 거라고요.”
브레드 김이 확신하듯 말했다.
그의 직감은 지금까지 틀린 적이 없었다.
서영우도 수술 경과를 바로 옆에서 지켜봤기에 각오한 대목이다.
잠시 말문을 닫았던 서영우가 허탈하게 대꾸했다.
“언제 쉬운 수술이 있었습니까?”
“그런가요?”
“제 걱정 마시고 두 분부터 걱정하십시오. 솔직히 마취의가 뭐 그렇게 힘들 일이 있다고요.”
서영우는 외려 태수와 브레드 김을 걱정했다.
그런 서영우의 배려가 수술실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뒤를 이어 김수진 간호사가 말했다.
“저희도 충분히 쉬었어요.”
“끝까지 보조할게요.”
카슈미르에서 단련된 송현미 간호사의 목소리가 앙칼졌다.
태수는 그런 수술팀원들을 둘러봤다.
하루에도 몇 번씩 계속되는 응급 수술.
게다가 태수와 함께 하는 수술은 항상 전쟁과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자신을 먼저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힘들면 너도 힘들다.
그게 1팀 구성원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여기에는 없지만 하석준 팀장과 박성민, 신창용, 도성민 등 다른 의사들과 간호사들도 마찬가지다.
1팀은 다른 팀보다 팀원들의 개성이 강하지만 수술 성공률이 높고 단합이 좋았다.
그런 이유가 어쩌면 서로를 배려하고 걱정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서로 같은 마음이라면?
수술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
그리고 이제 그 생각을 실천으로 옮길 때였다.
“그럼 수술, 이어 가겠습니다.”
태수가 선언한 순간이다.
“해 봅시다!”
“준비됐어요!”
수술실을 가득 울리는 팀원들의 패기 넘치는 목소리가 지친 태수에게 조금이나마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 줬다.
다시 수술이 본격적으로 이어졌다.
태수와 브레드 김은 소장 절제를 먼저 시작했다.
“메이요, 티슈포셉.”
“후크, 켈리.”
태수와 브레드 김은 각각 수술 도구를 들고 소장으로 향했다.
브레드 김이 후크로 변색된 장을 젖히고 켈리로 절제 부분을 표시했다. 그러면 태수가 티슈포셉으로 건네받아 메이요로 과감하게 잘랐다.
대화가 없어도 서로의 마음을 깊이 공감한 호흡이다.
소장은 약 4센티미터의 지름에 7미터 정도 되는 길이다.
그중에 변색된 부분은 90퍼센트 이상이다.
정석대로라면 모두 들어내야 한다.
그러나 그건 최악이다.
이후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도 환자 몸에서 영양분을 충분히 흡수할 수가 없다.
태수와 브레드 김이 어떻게든 적게 절제하려는 이유다.
“여기.”
“거긴 절제하지 않아도 될 거 같습니다.”
“변색이 심하지 않아?”
“그 주변은 변색이 적습니다. 혈액이 충분히 공급되고 있으니까 회복될 거라 믿고 싶습니다.”
태수의 말에 브레드 김이 잠시 고민했다.
“영 틀리진 않은데.”
“일단 다른 부위부터 절제하시죠. 만약에 예상보다 절제 부위가 적으면 그때 들어내도 괜찮지 않을까요?”
“그래, 그게 좋겠어. 그럼 표시는 해 놓고. 인테스티날포셉 주세요.”
브레드 김이 요청하자 김수진 간호사가 얼른 주둥이가 긴 포셉을 내밀었다.
“여기요.”
“고마워요. 여긴 일단 이렇게 집어 놓고.”
빠르게 손을 놀려 인테스티날포셉으로 방금 화제 삼은 소장을 집었다.
그사이 태수는 병변을 따라 손을 움직이며 차분하고 세심하게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