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446
00449 449화
서영우가 몇 가지 조치를 하며 확인하더니 의사들에게 말했다.
“maintenance(유지)되고 있어.”
“네?”
“올라가지도 떨어지지도 않는다고. 최저 바이탈이 억지로 유지되고 있다니까.”
“…….”
태수와 브레드 김의 얼굴은 여전히 얼떨떨했다.
이런 경우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 순간 서영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계속 지켜보겠지만 이렇게 바이탈이 얼마나 유지될지 몰라.”
그 말에 태수와 브레드 김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 차분하게 생각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일단 바이탈이 떨어진 원인부터 찾아야 했다.
태수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브레드 김이 빠르게 다가왔다.
“아무래도 cancer(암)이 문제 같아.”
“암이요?”
“CT, MRI 모두 살펴봤는데 다른 병변은 없었어.”
브레드 김의 말에 태수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럼 암이 본격적으로 신체를 공격하고 있다는 겁니까?”
“그게 가장 확실하게 이 상황을 이해시켜 줄 수 있겠지. 아니면 왜 원인도 없이 갑자기 바이탈이 뚝뚝 떨어지겠냐고.”
“음.”
“anticancer drug(항암제)하고 모르핀을 투여할까? 그러면 조금 더 바이탈이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데 말이야.”
브레드 김의 말을 들으며 태수는 머리를 굴려 봤다.
그의 말대로 항암제가 일시적으로 증세를 완화시킬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게 결코 해결책은 되지 않았다.
수술 중에 언제 다시 문제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이야기다.
생각할 시간이 많지 않다.
빨리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걸 누구보다 태수가 피부로 느끼고 있다.
그는 혼란해지려는 머리를 재빨리 털어 냈다.
가장 핵심을 찌르고 들어가야 한다.
그게 지금 상황에서 필요한 일이었다.
태수가 진지한 얼굴로 브레드 김에게 말했다.
“열죠.”
“열다니, 뭘? 설마…….”
브레드 김이 경악했지만 태수는 냉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하시는 게 맞습니다.”
“갑자기 개복을 하자니. 그보다 닥터 최, 암 수술 해 봤어?”
“해 보긴 했지만 이런 상태는 처음입니다.”
태수가 당당하게 말하자 오히려 브레드 김이 당황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다고 이대로 수술을 종료할 순 없습니다. 뭐라도 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거야 당연히 그렇기는 한데.”
브레드 김은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했다.
제임스의 암 수술에 어시스던트로 참여한 적은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암 수술을 집도해 본 적도 없고, 아직 공부도 미흡하다.
그건 태수도 마찬가지다.
태수 또한 NGO 막사에서 제임스의 암 수술에 어시스던트로 참여한 몇 번의 경험밖에 없었다.
기본적인 개념이나 수술 절차는 카프레네의 지식을 통해서 알고 있었다.
실전 경험이 부족해서 그걸 충분히 응용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하지만 이대로 수술을 종료할 순 없었다.
태수와 브레드 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 두 사람 사이에 묘한 공기가 흘렀다.
그때 서영우가 두 사람을 재촉했다.
“지금 그렇게 한가하게 생각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니까. 언제 심정지 올지도 모르는데 머리 맞댈 시간이 어디 있냐고!”
그 소리에 태수와 브레드 김이 반사적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을지 몰랐다.
대답을 꺼리는 건 그만큼 위험도가 높기 때문이다.
확실한 건 이대로 천금 같은 시간을 버릴 수 없다는 점이다.
태수와 브레드 김이 동시에 눈빛을 굳히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휙.
동시에 몸을 돌린 태수와 브레드 김이 각자 집도의와 어시스던트 자리에 섰다.
방금 전까지 망설이고 고민하던 모습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간호사들, 이쪽으로. 장갑부터 교체하고 바로 laparotomy(개복술)로 전환합니다.”
“준비할게요.”
송현미 간호사와 김수진 간호사는 재빨리 서영우의 곁에서 멀어져 태수와 브레드에게 다가갔다.
간호사들의 도움을 받아 장갑을 신속하게 교체한 태수와 브레드 김이 다시 서로를 바라봤다.
마지막으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려는 눈빛이다.
두 사람 모두 눈빛에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결정했다.
그럼 진행한다.
NGO의 기본 정신이 몸에 박힌 두 의사였다.
끄덕.
태수와 브레드 김이 묵직한 시선으로 서로의 각오를 확인했다.
이젠 수술이다.
태수가 먼저 송현미 간호사에게 말했다.
“메스.”
“여기요.”
턱.
메스가 손에 쥐어진 순간 태수는 왕병재의 복부를 길게 갈랐다.
그 곁에서 브레드 김이 보조했다.
“보비, 썩션.”
“여기요.”
수술 도구를 받아 든 브레드 김은 서영우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말했다.
“닥터 서, 출혈이 클지 모릅니다.”
“어떻게든 버틸 겁니다. 메스를 입에 물고서라도요!”
“감사합니다.”
“이쪽에 신경 쓰지 말고 뭐라도 좀 해 봐요.”
서영우의 목소리도 간절했다.
용을 쓰며 어떻게든 버틴 환자다.
삶의 욕구.
그 간절함을 봤기에 서영우도 흔들렸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허무하게 수술대에서 생을 마감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태수 또한 마찬가지였다.
복부를 길게 절개한 후 브레드 김이 출혈을 걷어 내는 사이 태수는 리트렉터를 설치했다.
고정형 리트렉터가 복부를 넓게 벌렸다.
그와 동시에 꽁꽁 숨겨져 있던 왕병재의 내부가 의료진들의 눈에 드러났다.
내부는 말 그대로 암 덩어리였다.
그 모습에 노련한 두 간호사들조차 인상을 찌푸렸다.
“어떡해.”
“으음.”
탄식을 억누르는 목소리도 들려왔다.
그만큼 왕병재의 복부는 손을 쓸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태수와 브레드 김 또한 그걸 똑똑히 보고 있었다.
위, 간, 장, 뼈와 혈관, 근육까지.
암세포가 뻗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다.
말기 암.
그 진단의 무게가 다시 한 번 어깨를 묵직하게 짓눌렀다.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던 건 심장과 폐가 그나마 제 기능을 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그것도 그렇게 오랜 시간 버틸 것 같지 않았다.
이미 폐와 심장에도 암이 전이되고 있었다.
언제 암세포가 두 장기의 기능을 정지시킬지 아무도 몰랐다.
솔직히 끔찍했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버티고 호흡한 인간의 생명력이 얼마나 강한지 새삼 깨닫게 되는 계기도 됐다.
생명에 대한 경의.
다시 한 번 실감한 순간이다.
하지만 그걸 느낄 시간은 잠깐뿐이었다.
태수는 브레드 김에게 빠르게 말했다.
“일단 심장과 폐에 전이된 암부터 제거해야겠습니다.”
“그 후에는?”
“모르죠.”
태수의 말에 브레드 김이 조금은 허탈한 얼굴로 변했다.
그러나 태수의 의견이 옳다.
일단 해 봐야 한다.
그 후에 경과를 확인하고 이대로 수술을 종료할지, 아니면 다른 부위를 수술할지 결정해도 늦지 않았다.
“그래, 해 보자고.”
“네. 큐렛, 모스키토클램프.”
“나도 큐렛, 아이리스하고.”
태수와 브레드 김이 각각 원하는 수술 도구를 불렀다.
곧 두 사람의 손에 똑같은 수술 도구가 쥐어졌다.
큐렛이란 긁어내는 데 특화된 수술 기구를 뜻했다.
그걸 각자 쥔 태수와 브레드 김은 심장과 폐에 전이되고 있는 암세포를 긁어내기 시작했다.
너무 강하게 힘을 주면 원래 조직에 상처가 나기에 그 손길이 너무도 조심스러웠다.
태수와 브레드 김이 큐렛으로 암세포를 긁어내는 사이였다.
지켜보던 송현미 간호사가 김수진 간호사에게 말했다.
“김 간호사, 셀라인(식염수) 좀 준비해 줘.”
“준비된 게 있어요.”
“선생님들이 긁어내는 주변으로 조금씩 부어.”
송현미 간호사의 말에 김수진 간호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의사들에게서 받은 오더가 아닌 탓이다.
하지만 그 의아함도 잠시였다.
송현미 간호사는 1팀 수간호사로 임명된 만큼 경험이 많았다.
결정적으로 태수와 브레드 김이 그 오더에 반발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뭔가 이유가 있단 뜻이다.
김수진 간호사가 식염수를 조금씩 부었다.
그걸 확인한 송현미 간호사는 썩션으로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큐렛이 긁어낸 암세포들이 식염수와 함께 썩션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제야 김수진 간호사가 그 이유를 확실히 알았다.
“아!”
“집중해.”
“네.”
김수진 간호사는 대답과 동시에 더욱 조심스럽게 식염수를 부었다.
그러는 사이 힐끔거리며 송현미 간호사를 쳐다봤다.
엄연히 간호사의 영역을 벗어난 오더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수술을 더욱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 짧은 사이에 그런 판단을 내렸다는 게 놀라웠다.
그제야 1팀에서 수간호사라는 타이틀을 얻지 못한 아쉬움이 완전히 사라졌다.
이런 판단을 할 수 있는 수술 간호사라면 자신이 의사라 해도 신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건 태수와 브레드 김도 마찬가지였다.
신중하게 암세포를 긁어내는 중이라 감사 인사는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감사한 마음이 없는 건 아니다.
한층 시야 확보가 좋아진 태수와 브레드 김은 속도를 높이는 걸로 고마움의 인사를 대신했다.
최대 1시간을 예상한 수술 시간이었다.
그러나 이미 1시간하고도 10여 분이 지나갔다.
암을 제거하기 시작한 시간은 불과 20여 분도 되지 않았다.
큐렛은 상당히 날카로운 수술 도구다.
조금만 힘을 잘못 준다면 심장과 폐에 상처를 줄 수 있었다.
그렇기에 한 번 손을 놀리는 것도 신중해야 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지금 간신히 유지되고 있는 환자의 상태가 언제 급변할지 모른다.
그런 위험과 긴장감 속에서 수술해야 했고, 손도 빨라야 했다.
얼마나 고난이도의 수술인지 어느새 태수와 브레드 김의 얼굴에 진땀이 가득했다.
태수와 브레드 김뿐만이 아니다.
서영우는 홍역을 아주 강하게 치러 이미 지친 상태였다.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 했던 간호사들도 만만치 않게 기진맥진했다.
하지만 누구도 수술대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밖에 다른 수술팀들이 대기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도움을 청할 수는 없다.
극도의 긴장감과 집중력이 그런 생각을 할 수조차 없게 만들었다.
한편, 수술 대기실엔 하석준 팀장과 박성민, 신창용이 대기 중이었다.
언제라도 뛰어 들어갈 수 있게 만반의 준비를 갖춘 모습이다.
그렇게 세 사람은 커다란 모니터를 통해 수술실 상황을 생생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표정조차 사라질 정도로 집중한 상태였다.
그때 박성민이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태수야, 우심실 아래쪽, 그렇지. 거기를 조금만 더 긁어. 조금만 더.”
박성민의 자그마한 목소리만이 대기실을 울렸다.
그때 하석준 팀장이 박성민에게 물었다.
“박 선생은 암을 다뤄 본 경험이 있나?”
“몇 번 있습니다.”
“그럼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석준 팀장의 말에 박성민이 쓴 얼굴로 대꾸했다.
“저도 들어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팀장님이 지금 못 들어가시는 이유랑 같습니다.”
“음.”
“만약에 정말 힘들면 부를 겁니다. 그때, 그때까지 지켜봐야죠. 똑똑히 지켜보면서 바로 수술 이어 갈 수 있게 준비해야죠.”
박성민의 목소리에 장난기가 쏙 빠졌다.
그만큼 위험하고 어려운 수술이다.
박성민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신창용도 고개를 끄덕였다.
부르지 않으면 들어가지 못한다.
그건 1팀 최고의 실력자들인 태수와 브레드 김에 대한 믿음이다.
혹시라도 그들이 도움을 청한다면?
꽈악.
신창용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요청만 있다면 언제든지 수술실로 뛰어 들어갈 만반의 준비가 이미 끝나 있었다.
수술 대기실에 모여 있던 이들의 애타는 마음과 달리 수술실 내에선 말없이 암과 사투 중이었다.
처치 외엔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 정적이 흘렀다.
아직도 폐와 심장에 전이되고 있는 암세포를 긁어내는 중이다.
신중하면서도 신속한 태수의 손놀림에 조금씩 병변이 깔끔하게 변해 가고 있었다.
고도의 집중 때문에 눈이 아파 오자 잠시 시선을 뗀 태수가 서영우에게 물었다.
“서 선생님, 바이탈은요?”
“아직 그 상태야.”
“아직도요?”
태수의 얼굴에 작은 실망감이 스쳤다.
바이탈에 가장 영향을 많이 주는 장기가 폐와 심장이다.
이 정도 제거했으면 응당 무슨 반응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 반응이 없다니.
번뜩 스친 생각에 태수는 환자의 복부로 시선을 돌렸다.
흉부가 아니라면 다른 곳이 문제다.
아무리 제거해도 바이탈에 변화가 없다면 다른 곳을 찾아야 한다.
어디가 문제일까?
어떻게 해야 할까?
태수의 머릿속이 급속 회전했다.
위암 말기 환자.
가장 큰 문제는 폐와 심장이 아니라 위가 아닐까?
태수는 조심스럽게 가설을 세워 봤다.
그리고 그 가설은 조금씩 확신으로 변해 갔다.
그의 고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만약 위암이 문제가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절레절레.
태수가 갑자기 고개를 털었다.
지금은 복잡하게 여러 가지 생각을 할 때가 아니라 뭐든지 시도를 해 봐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