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447
00450 450화
결정을 내린 태수는 브레드 김에게 말했다.
“여기 마무리 좀 지어 주세요.”
“닥터 최는?”
“위를 살펴보겠습니다. 암의 시발점이니까 이렇게 된 원인도 거기 있지 않을까 해서요.”
태수의 말이 이해가 간 듯 브레드 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빨리 마무리하고 내려갈게.”
“먼저 갑니다.”
태수는 그 말과 동시에 옆으로 한 걸음 움직였다.
폐와 심장을 내려다보던 시선도 함께 이동해 암으로 덩어리 진 위 부분으로 옮겨 갔다.
위를 내려다본 태수의 표정이 착잡하게 변해 갔다.
수술 중에는 가급적이면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이건 감정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었다.
암이 발병한 위는 거의 대부분이 암세포에 잠식되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 좌우에 위치한 간과 비장도 상당히 전이되어 있었다.
마치 위를 중심으로 암세포가 사방으로 번져 가는 듯한 모습이다.
계속 구경만 할 생각은 없었다.
태수는 옆에 선 송현미 간호사에게 부탁했다.
“일단 뒤쪽까지 자세하게 살펴봐야 할 거 같습니다.”
“제가 보조할게요.”
송현미 간호사는 눈치 빠르게 리트렉터를 손에 들었다.
태수가 먼저 위를 조심스럽게 옆으로 밀자 송현미 간호사는 더 움직이지 않도록 위를 고정시켰다.
노련미가 철철 넘치는 손길이다.
그러나 아무도 모르는 사이 송현미 간호사의 눈빛도 가느다랗게 떨리고 있었다.
그만큼 환자의 암 진행 상황은 최악이었다.
태수 또한 마스크 속에서 입술을 몇 번이나 깨물었다.
도대체 이렇게 될 때까지 왜 방치했을까.
그런 쓸데없는 원망까지 들었다.
의학이 발전한 요즘은 웬만한 암도 수술한다.
암 전문 병원의 숙련된 의사들이 깔끔하게 병변만 도려내는 기술이 충분했다.
그런데도 이런 상황까지 왔다는 건 너무 늦게 발견한 경우밖에 없었다.
안타까웠다.
환자의 아들이 태수 또래다.
사회에서 자리를 잡아 가는 나이고, 결혼도 해야 할 때다.
아버지로서 그걸 지켜볼 수 없을 것 같아 더더욱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그건 속으로만 생각하고 말 일이었다.
겉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 냉정한 눈빛으로 암 부위를 확인하고 있었다.
위를 옆으로 젖히자 뒷면이 보였다.
“음.”
“아.”
태수와 송현미 간호사가 동시에 침음성을 흘렸다.
앞쪽보다 더욱 상태가 좋지 않았다.
붉고 매끈해야 할 위 겉면이 울퉁불퉁하고 곳곳은 검게 변색되어 있었다.
도대체 손을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할 정도다.
태수는 또 한 번 끓어오르는 안타까움을 억지로 삼켜야 했다.
그것도 잠시, 냉정을 되찾은 태수가 송현미 간호사에게 말했다.
“루페(확대경) 좀 부탁합니다.”
“잠시만요.”
송현미 간호사가 리트렉터를 움직이지 않게 내려놓고 얼른 몸을 움직였다.
곧 루페가 건네졌다.
루페를 통해 확대된 시야로 보니 암세포가 더욱 적나라하게 보였다.
더는 감정을 드러내면 안 된다.
태수는 스스로 다짐했다.
그는 신중하게 암부위를 확인했다.
위, 그리고 간과 비장까지.
태수는 생명에 지장을 줄 만한 장기들만 집중적으로 확인했다.
쭉 자세하게 살펴봤지만 역시나 바이탈 저하를 일으킬 원인은 찾지 못했다.
“음.”
“선생님.”
송현미 간호사의 목소리가 너무도 가라앉아 있었다.
확인을 마친 태수가 바로 움직이지 않자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눈치챈 모양이다.
하지만 재촉도 하지 않고 위로도 하지 않았다.
그저 지금 그가 느끼고 있을 부담감을 안타까워했다.
태수도 그걸 알지만 모른 척했다.
머릿속으로 살펴본 걸 다시 한 번 되짚을 뿐이었다.
골똘히 생각하던 태수의 눈빛이 번뜩였다.
“송 간호사님, 다시 위 좀 젖혀 보세요.”
“네.”
송현미 간호사가 빠르게 리트렉터로 위를 옆으로 젖혔다.
다시 위 뒷면이 태수의 눈앞에 드러났다.
태수는 혈관과 조직, 그리고 암세포의 진행 방향을 세세하게 확인했다.
‘여기서부터 이쪽으로…….’
최초 암세포가 발생한 지점을 역으로 추적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태수는 한 지점에서 손을 멈췄다.
혈전과 암세포로 완전히 망가진 지점이었다.
살펴보고 또 살펴본 부분 중 가장 신경을 자극한 곳이기도 했다.
맞나?
태수가 스스로에게 물었으나 확신하진 못했다.
의사의 실수가 환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섣부르게 손을 뻗지 못한 채 고민하던 중이었다.
스윽.
반대편에 브레드 김이 다가왔다.
“위쪽은 정리했어.”
“수고하셨습니다.”
“그보다 어때?”
“정확한 원인은 찾지 못했습니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습니다.”
태수의 말에 브레드 김의 눈빛에 작은 희망이 떠올랐다.
“빨리 말해 봐.”
“이 부근을 절개해야 할 거 같습니다.”
“잠시만.”
브레드 김은 태수가 지목한 위를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그사이 태수는 서영우에게 한 번 더 물었다.
“지금도 바이탈이 유지되고 있습니까?”
“그래. 아까 뚝뚝 떨어졌던 게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유지되고 있어.”
“투약해도 똑같습니까?”
“anticancer agent(항암제)까지 썼는데도 똑같아. 이건 진짜 환자가 억지로 버티고 있는 느낌이야.”
서영우의 말에 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그래야죠.”
“나도 그렇게 생각은 하는데 가능한 일이야?”
“직접 보고 계시잖습니까.”
“그러니까 환장하겠다고. 내가 직접 전신 관리를 하고 있는데도 믿을 수가 없으니까. 좌우간 무슨 이상이 있으면 바로 말할 테니까 그때까지라도 이쪽은 신경 접어. 그게 마음 편하게 수술하기 좋아.”
“감사합니다.”
태수는 서영우에게 가볍게 고개만 숙여 인사했다.
지금 할 수 있는 최고의 표현이다.
서영우는 기운이 쭉 빠진 얼굴에 겨우 미소를 떠올렸다.
그사이 브레드 김이 암세포 부위의 확인을 마쳤다.
“혈관과 조직이 완전히 암세포에 잠식된 부분이네.”
“처음에는 박리할 생각을 했는데 그렇게 되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립니다. 그리고 그게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고요.”
“내 생각도 같아. 차라리 떼어내 버리는 게 좋겠어. 그럼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아니요. 여기서부터 여기까지입니다.”
태수가 위치를 다시 지정하자 브레드 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건 위를 거의 들어내는 수준이잖아.”
“네.”
태수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망설이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브레드 김도 다시 확인하고는 대답했다.
“그래. 닥터 최 생각이 맞는 거 같아. 대망도 들어내고 위를 최대한 넓게 절제하는 게 좋겠어.”
“그럼 진행하겠습니다.”
“잠깐, 문맥이 위랑 완전히 엉겨 있는데 이건 어떻게 할 거야?”
“같이 절제하고 artificial blood vessel(인공혈관)으로 대처해야겠죠.”
태수의 말에 브레드 김은 바로 수긍하며 김수진 간호사에게 부탁했다.
“인공 혈관 준비해 주시고요, 수혈팩도 넉넉하게.”
“네!”
김수진 간호사는 재빨리 몸을 움직였다.
그렇다고 그녀의 준비가 끝날 때까지 기다릴 시간은 부족했다.
지금이야 환자의 의지로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버틸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대한 빨리 수술을 시작해야 환자의 부담을 줄여 줄 터였다.
이건 암을 제거하는 수술이 아니다.
바이탈이 저하되어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환자의 생명을 유지해 줄 수 있는 수술일 뿐이다.
태수와 브레드 김은 그걸 한시도 잊지 않았다.
완쾌?
현대 의학으론 불가능이다.
세상 어떤 의사가 와도 안 된다.
그런 아쉬움을 억누른 태수와 브레드 김은 지체하지 않고 수술을 시작했다.
“gastrectomy(위절제술) 시작하겠습니다.”
선언과 동시에 태수가 수술 도구를 놀리기 시작했다.
벱콕, 엘리스, 메이요 등등.
수없이 많은 수술 도구들이 태수의 손을 오갔다.
그러는 사이 브레드 김의 손도 쉬지 않고 움직였다.
리트렉터, 썩션, 거즈, 보비 등등.
어시스던트이기에 그에 따른 보조적인 수술 도구가 주종이다.
그렇다고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믹스터, 모스티토클램프, 메젠바움 등.
태수의 부담을 줄여 주기 위해 브레드 김은 다양한 수술 도구로 제2집도의와 같은 움직임도 보였다.
브레드 김이 집도 쪽으로 돌아서면 보조는 간호사들이 전담했다.
“김 간호사, 썩션은 내가 맡을 테니까 걱정 말고, 그쪽을 좀 더 당겨.”
“네.”
“서 선생님, 수혈팩까지 교체하지 못할 거 같아요.”
송현미 간호사의 말에 서영우가 비틀거리는 몸을 억지로 움직였다.
“여긴 걱정 말고 그쪽이나 신경 써요.”
“조금만 고생해 주세요. 최대한 빨리 보조하러 갈게요.”
“괜찮다고. 젠장, 수혈팩이 왜 이렇게 무거워.”
그동안 전신 관리에 온 힘을 쏟아 버린 서영우는 수혈팩을 높이 드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그래도 그는 끝까지 교대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자신이 부담스러운 수술이라면 다른 마취의도 마찬가지다.
그에게는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1팀 마취의 넘버 원.
그건 곧 신속대응센터 마취의 중 최고란 뜻이다.
그게 지금 자신의 위치다.
그 자부심을 잃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또 하나, 환자 상태를 지금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게 바로 자신이다.
교대를 한다는 건 환자를 두고 도망치겠다는 말과 같았다.
그건 죽어도 싫었다.
이 수술실에서 가장 연장자였기에 그는 더더욱 악착같은 모습을 보이려 애썼다.
그사이 태수와 브레드 김은 위 절제를 이어 갔다.
위의 3분의 2를 잘라 내야 했다.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절제를 진행했다.
그러던 중이다.
순탄하게 잘라 가던 태수의 메이요가 멈췄다.
조금 더 진행하면 문맥을 자르게 된다.
어쩌면 이 수술의 전환점이 될지도 모를 장소다.
반사적으로 태수가 눈만 올려 떠 브레드 김을 바라봤다.
이미 브레드 김의 한 손에는 인공 혈관이, 다른 손에는 니들홀더가 들려 있었다.
보조하고 있던 간호사들도 만반의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브레드 김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준비됐어.”
“저희도요.”
간호사들이 뒷말을 이은 직후였다.
서영우의 지친 목소리가 곧바로 이어서 들려왔다.
“마지막까지 쥐어짜 보자고.”
“정말 괜찮으십니까?”
“쓰러질 거야. 이 수술 끝나고 아주 편안하게 쓰러질 생각이니까 걱정 마.”
“같이 쓰러지시죠.”
태수가 진지한 목소리로 맞장구치자 서영우가 힘겨운 미소를 보였다.
“내 옆자리 줄게.”
“감사합니다. 그럼 갑니다.”
“그래. 가 보자! 이제 신물이 날 거 같으니까 빨리 해치워 버리자고.”
서영우가 애써 씩씩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 순간 태수는 메이요로 문맥을 잘랐다.
잘린 문맥에서 검붉은 피가 몽글몽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혈전과 암세포가 뒤섞인 냄새.
고약했다.
물론 그 냄새를 신경 쓰는 의료진은 아무도 없었다.
브레드 김이 재빨리 소리쳤다.
“인공 혈관 봉합 들어갑니다. 썩션 제대로 받쳐 줘요. 수혈도 좀 더!”
브레드 김이 문맥의 한쪽을 지혈하고 인공 혈관으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간호사들도 빠르게 보조했다.
“썩션 하나 더 추가할게요.”
“수혈팩은 최대한 열어 놨어요. 일단 지혈에 합류할게요.”
간호사들의 신속한 움직임이 이어지는 사이였다.
띡띡!
ECG(심전도 모니터)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동시에 서영우의 보고가 이어졌다.
“혈압, 맥박 다시 떨어지고 있어. hemostatic(지혈제) 추가합니다.”
“닥터 서!
hemostatic말고 anticoagulant(항응고제)!”
“출혈을 키운다고요?”
“죽은피를 그냥 놔둘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antiarrhythmic(항부정맥제)를 추가해서 부정맥부터 대비해 주세요.”
브레드 김의 말을 서영우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가뜩이나 출혈에 민감한 환자다.
그런 환자에게 혈액응고방지제를 투여하라니.
지혈하지 않고 죽이겠다는 뜻과 같았다.
하지만 그걸 따지고 들진 않았다.
어태까지 함께한 신뢰가 있다.
분명히 이유가 있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