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455
00458 458화
그때 하석준 팀장이 조용히 태수에게 말했다.
“유성경찰서 형사분이야. 늦은 점심 식사 하러 식당에 들어갔다가 범죄 현장을 목격하고 바로 달려든 모양이고.”
“…….”
“같이 검거한 다른 형사분은 잠깐 연락하러 나갔어.”
그 말까지 들은 후에야 태수가 형사에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끄응. 아무리 으, 그래도 그런 오해는 좀 하지…… 맙시다.”
복부에 칼이 꽂혀 있는 상황에서도 형사는 끝까지 말을 이었다.
그 하나로도 그가 얼마나 강한 정신력을 가졌는지 알 수 있었다.
오해가 풀린 건 좋았지만 상처가 문제다.
브레드 김이 하석준 팀장에게 물었다.
“저희를 호출하신 이유는요?”
“지금 다른 팀은 모두 수술 중입니다. 저하고 김 선생님 외에는요.”
“오늘 장난 아니네요.”
브레드 김의 말에 하석준 팀장이 쓴 얼굴로 변했다.
“119 쪽에서 저희 병원으로 환자들을 많이 보내 주고 있습니다. 그동안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해야겠죠.”
“나쁜 일은 아니지만 숨도 못 쉬겠네요.”
“너무 힘드시다면 환자를 다른…….”
“아니요. 이 정도는 되어야 일 좀 한다고 할 만하죠. 저쪽은 팀장님이 봐 주십시오.”
하석준 팀장의 말을 끊고 대답한 브레드 김은 얼른 형사에게 다가갔다.
태수도 그 뒤를 따랐다.
딱 봐도 누가 위중한 환자인지 대번에 파악이 된 탓이다.
먼저 살피기 시작한 브레드 김이 빠르게 말했다.
“찔린 위치가 좋지 않아.”
“검사할 시간이 충분할까요?”
“아니, 바로 수술실 들어가야 해.”
브레드 김의 말에 태수도 동조했다.
“그럼 가시죠.”
“팀장님, 그쪽까지는 저희가 신경 쓸 수 없겠습니다.”
브레드 김의 말에 하석준 팀장이 빠르게 대답했다.
“이 환자는 blunt trauma(둔상)이 대부분인 거 같으니까 걱정 마십시오.”
“딱 보니까 엄청 맞은 거 같은데, hepatorrhexis(간파열)은 확인하셔야 할 겁니다.”
“안 그래도 바로 검사 들어갈 겁니다.”
하석준 팀장은 브레드 김의 염려를 부드럽게 받아넘겼다.
그렇게 의사들끼리 이야기가 끝난 순간이다.
형사가 이를 악문 목소리로 말했다.
“이 새끼……. 으음! 정신 차리면 도주의 우려가…… 끙, 있어서 안 됩니다.”
“지금 그렇게 말씀하실 때가 아닙니다.”
“이봐요, 젊은 선생, 형사도…… 끙, 찌른 놈이 무슨 짓을 못해.”
형사가 태수에게 면박을 줬다.
그러나 태수는 굴하지 않았다.
“이 사람 때문에 지체하면 형사님만 위험해집니다.”
“크흐흐흑.”
고통을 참는 건지 웃는 건지 모를 소리를 낸 형사가 나지막이 말했다.
“어쩔 수 있나……. 끄응, 형사가 그렇지.”
“목숨이 장난입니까?”
태수가 으르렁거리자 형사는 잔뜩 찌푸린 얼굴을 순간 심각하게 바꾸며 되물었다.
“이게 장난으로…… 보여?”
“…….”
“괜히 문제…… 끙, 크게 만들지 말고, 지원 올 때까지…… 기다리자고, 애송이 선생.”
형사는 낮게 타이르듯 말했다.
그때였다.
“으으으윽.”
오른쪽 병상에서 신음만 토하던 현행범이 깨어나려 했다.
형사 또한 그 소리를 들었는지 수갑을 연결한 손을 자신 쪽으로 당겼다.
아플 터였다.
칼이 배 속을 찔렀는데 멀쩡할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사는 신음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극도로 긴장하고 있다는 게 태수는 물론 주변에 있는 의사들에게도 전달되어 왔다.
하지만 이대로 시간을 끌면 형사가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다지만 칼에 찔린 내부가 어떤 상황인지 아무것도 파악된 게 없는 터였다.
이대로 지원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
태수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스윽.
몸을 움직인 태수가 오른쪽 병상으로 향했다.
동시에 현행범이 깨어나는 기미가 보였다.
“여, 여기가…….”
그때였다.
퍽!
태수의 주먹이 현행범의 얼굴에 작렬했다.
“컥!”
단말마를 내지른 현행범은 다시 축 늘어졌다.
그 모습에 하석준 팀장과 브레드 김은 물론이고 형사까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태수가 주먹을 슬쩍 가운으로 닦으며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했다.
“모기 잡으려고 때렸는데 이거 실수했네요. 어쩌죠?”
“…….”
하석준 팀장과 브레드 김이 멍한 얼굴로 바라볼 때였다.
“푸하…… 으윽!”
형사가 웃다가 배를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했다.
그것도 잠시일 뿐, 다시 태수를 바라보며 형사가 한마디 했다.
“그거 폭행…… 인데. 내가 목격했으니까 현행범, 끄응, 아닌가?”
“너무 고통스러우신 나머지 환상을 보신 거 같습니다.”
“그런가요?”
“그럼요. 의사가 어떻게 환자에게 폭력을 행사합니까.”
태수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이자 형사는 또 한 번 아픈 배를 부여잡고 억지로 웃음을 억눌렀다.
“흐, 흐으윽! 끙, 웃기는 의사네.”
“본 사람도 없어요. 그보다 당분간 못 일어날 거 같은데요.”
“그런가?”
“일단 수갑 열쇠부터 주세요.”
“주, 주머니에.”
형사가 점퍼 주머니를 눈짓하자 브레드 김이 얼른 열쇠를 꺼내 태수에게 던졌다.
탁!
그걸 받아 든 태수는 형사의 팔목만 풀고 빈 수갑을 다시 스트레쳐카에 고정시켰다.
“팀장님, 먼저 이동하겠습니다.”
“4번 수술실 열려 있을 거야. 빨리 가.”
“감사합니다.”
태수가 인사를 하는 사이 브레드 김은 이미 움직일 준비를 끝냈다.
칼 손잡이를 이불로 가볍게 가린 게 전부였지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에는 충분했다.
“가자고.”
브레드 김이 먼저 힘을 주자 태수가 바로 반대쪽으로 따라붙어 스트레쳐카를 밀기 시작했다.
드르륵.
응급실을 벗어나 수술실로 향하던 중이다.
아픔을 억지로 숨기고 가만히 누워 있던 형사가 태수에게 물었다.
“아까 그 새끼 말인데요, 수면제…… 으음, 놓으면 되는 거 아니었나요?”
“아, 그러네요.”
“……진짜 웃기는, 끙, 의사야.”
형사는 태수를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수술 준비는 이미 끝나 있었다.
서영우와 간호사들도 도착한 상태였다.
태수와 브레드 김도 수술복 차림이었기에 수술 가운만 걸치면 됐다.
두 사람이 빠르게 수술 준비를 마치고 환자 옆에 섰다.
태수가 아직 마취 전인 형사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수술 들어갈 겁니다.”
“그럽…… 시다.”
“무섭진 않으십니까?”
“그거 잊고 산, 끙…… 지가 오래됐어요.”
형사는 당차게 말했지만 눈빛이 약간 흔들렸다.
매일 범죄자와 사투를 벌일 정도로 강인하다고 해도 수술은 전혀 다른 문제인 탓이다.
태수는 그런 형사에게 희망 어린 말을 건넸다.
“그럼요. 별거 아닙니다.”
“한숨 자고 나면…… 끙, 괜찮겠지?”
“물론이죠. 자, 시간이 없으니까 이제 수술 들어가겠습니다.”
끄덕.
형사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자 태수가 손을 들었다.
대기하고 있던 서영우가 바로 전신마취제를 천천히 투여하며 말했다.
“마취 시작합니다. 하나, 둘…….”
서영우가 다섯도 세기 전에 형사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몇 가지 사항을 더 확인한 서영우가 태수에게 말했다.
“마취는 됐어. 맥박이 조금 빠른 거 보니까 내출혈이 있는 거 같아.”
“그 외에는요?”
“폐는 다치지 않았는지 산소 포화도는 좋아. 체온은 높고 혈압은 낮은 편이고.”
“알겠습니다.”
태수는 거기까지 들은 후 브레드 김에게 시선을 돌렸다.
태수가 마취하는 사이, 브레드 김은 칼에 찔린 상처를 다시 한 번 자세히 살피고 있었다.
이내 브레드 김이 태수에게 말했다.
“확실히 위치가 좋지 않아.”
“예상은요?”
“간, 신장, 소장과 대장이 손상됐을 가능성이 있어. 최악의 경우는 동맥이나 정맥이 찢어진 경우겠지.”
“정신력이 강하다고 해도 지금까지 의식이 선명하고 격한 바이탈 변화가 없는 걸 보면 안심해도 되지 않을까요?”
태수가 묻자 브레드 김이 쓴 미소를 지었다.
“근육이 칼날을 꽉 조이고 있어서 상처가 벌어지지 않았는지도 몰라.”
“억지로 칼날을 빼지 않은 건 칭찬해 줘야겠네요.”
“그보다 시작하면 또 피바다가 되겠는데.”
브레드 김의 목소리가 영 좋지 않았다.
응급과 출혈이 뗄 수 없는 관계라지만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태수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렇다고 피를 보지 않고 수술할 수도 없다.
수술, 응급.
그 두 경우는 항상 출혈이 연관되어 있었다.
그걸 염두에 두지 않고 이 자리에 서 있는 건 아니다.
그렇기에 태수도 브레드 김도 점점 표정이 가라앉았다.
마음의 준비가 우선이다.
당장 큰 출혈을 보이지 않으니 마음부터 충분히 다잡아야 했다.
그렇다고 그 시간이 길진 않았다.
태수와 브레드 김은 어느새 단단하게 굳어진 눈빛으로 마주했다.
서영우와 간호사들까지 모두 준비가 끝났다.
그제야 태수가 메스를 들었다.
“시작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모두가 인사를 마친 후였다.
태수는 칼 손잡이만 삐쭉 나와 있는 형사의 복부를 갈랐다.
“보비, 썩션.”
브레드 김이 모세혈관에서 흐르는 피를 지혈하고 걷어 내기를 반복했다.
거기까지는 별다른 문제 없이 진행됐다.
피부와 지방층까지 가른 태수의 메스가 복막에 도착했다.
수축한 근육이 칼날을 단단히 붙잡고 있는 부분이다.
이젠 칼을 뽑아야 했다.
태수가 브레드 김과 송현미 간호사, 김수진 간호사를 돌아봤다.
흔들림 없는 시선으로 한 명씩 눈을 마주쳤다.
그들의 눈빛에서 어떠한 흔들림도 느껴지지 않았다.
태수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뽑습니다.”
끄덕.
모두 동의한 걸 확인한 순간이다.
“읍!”
칼 손잡이를 쥔 태수가 일자로 뽑아 올렸다.
그와 동시였다.
삑삑!
ECG(심전도 모니터)가 갑자기 요동치기 시작했다.
칼이 뽑힌 자리에서는 억제되어 있던 피가 쏟아져 나왔다.
브레드 김이 빠르게 간호사들에게 말했다.
“썩션, 아니 거즈! 쑤셔 넣어요!”
“네!”
간호사들이 빠르게 흡수성이 좋은 거즈를 환부에 쑤셔 넣기 시작했다.
서영우도 바로 바빠졌다.
“수혈 상태 좋고, 마취 강도 좋고…….”
피가 흘러나오는 모습을 봤지만 당황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신속대응센터에서 고된 담금질로 이미 익숙해진 광경인 탓이다.
각종 수치를 냉정하게 파악하고 준비해 둔 약제들을 차분하게 투여했다.
하지만 빨아들이는 양보다 출혈이 더 많다.
혈관이 찢어진 걸까?
상황을 냉정하게 파악한 태수는 고개를 저었다.
일단 내부부터 확인해야 했다.
출혈이 모두 걷어질 때까지 태수도 손을 보탰다.
거즈로 피를 흡수하고, 썩션으로 빨아들이기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출혈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렇다면 혈관 문제는 아니다.
칼에 찔린 장기에 고였던 피가 일순간에 쏟아져 나왔을 뿐이다.
피뿐만이 아니다.
그 출혈 속에는 각종 음식물 찌꺼기들도 존재했다.
확실히 장은 손상됐다.
그동안 경험했던 수술들로 태수와 브레드 김은 대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출혈을 걷어 낸 후였다.
브레드 김이 발포어(고정형 리트렉터)를 설치해 환부를 넓게 벌렸다.
태수가 먼저 그 속을 들여다보다 멈칫했다.
“음.”
“왜? 뭐가……. 젠장.”
뒤따라 들여다보던 브레드 김의 목소리가 일순간 무거워졌다.
그만큼 내부 상황이 좋지 않았다.
역시나 소장과 대장이 찢어져 있다.
절묘하게 찌른 칼이 소장의 몇 군데를 찢어 놓았다.
그리고 횡행결장의 일부도 크게 찢어져 있었다.
태수와 브레드 김은 굳어지는 눈빛을 억지로 털어 내고 각자 리트렉터를 쥐었다.
끝이 얇고 넓적한 리트렉터로 소장을 이리저리 젖혔다.
장 속에 있던 다른 장기를 확인한 순간 또 한 번 눈빛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오른쪽 신장 주변에 피로 얼룩진 혈종이 생성되어 있었다.
또한 신장에서도 출혈이 이어지고 있다.
리트렉터로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태수와 브레드 김은 맥이 탁 풀렸다.
신장 정중앙에 칼에 찔린 상처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