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465
00468 468화
그때였다.
뒤에서 김명철이 노트북을 들고 다가왔다.
“치프, 결과 나왔습니다.”
“줘 봐.”
태수와 정민수가 바로 노트북 앞으로 모였다.
CT 결과를 천천히 넘기며 살피기 시작하자 주변이 고요함으로 물들어 갔다.
그러나 태수와 정민수는 개의치 않고 계속 확인했다.
그러던 중이다.
태수와 정민수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서로 눈빛이 마주쳤다.
스윽.
자리를 옮기자는 사인이 동시에 나왔다.
여기서 할 이야기가 아니란 눈빛이다.
태수가 바로 송준호에게 말했다.
“준호야, 바로 올게.”
“왜, 안 좋아?”
“아니야. 큰 화면으로 보고 오려고. 그럼 민아 씨,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양해를 구한 태수를 따라 정민수가 이동했다.
큰 화면으로 본다는 이야기는 핑계일 뿐이다.
환자와 보호자에게서 멀어진 순간 두 사람의 표정이 바로 굳어졌다.
정민수가 먼저 말했다.
“뼈까지 염증이 침투했어. 혈관도 무사하지 못한 거 같아.”
“위가 비어 있는 걸 보니까 식사도 이틀 정도는 아예 못한 거 같고.”
“그것도 문제지만 이 근육들 봐 봐.”
“음.”
태수가 침음성을 흘렸다.
흑백 사진이지만 염증이 근육을 망가뜨리고 있는 게 보였다.
“아마도 괴사가 상당히 진행된 거 같은데.”
“그래도 고통을 느끼는 걸 보면 신경까진 건드리지 않았어.”
“그건 좋은 일인데, 그보다 myonecrosis(근육괴사)가 너무 심하면…….”
“살려 내야지.”
태수가 딱 잘라 결론을 내 버리자 정민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네가 어시스던트 들어와 주라. 아니면 나도 자신 없어.”
태수의 침울한 목소리가 끝난 후였다.
정민수는 그런 태수의 등짝을 강하게 후려쳤다.
짝!
“윽!”
“피곤해? 목소리가 왜 다 죽어 가? 정 피곤하면 좀 쉬어. 내가 수술할 테니까.”
“민수야.”
정민수는 그런 태수에게 빙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네 친구면 내 친구라니까. 친구 마누라가 아픈데 망설이는 게 이상한 거 아니야?”
“자식이 허풍만 늘어서.”
“허풍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동성종합병원 응급실 에이스가 바로 나야. 신속대응센터의 찌꺼기는 그냥 쉬고 계셔도 돼.”
도발하는 정민수의 모습에 태수는 기다렸다는 듯이 응했다.
“정민수 못 본 사이에 많이 컸네.”
“어쭈? 수술실에서 한번 붙어 볼까?”
“나가떨어지지 마라.”
“그 말 그대로 돌려줄게.”
정민수도 환자 상태가 심각하다는 걸 모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지로라도 태수의 승부욕과 호승심을 자극했다.
태수의 침울한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느껴졌다.
정민수에게 수술 준비를 부탁한 태수는 송준호와 이민아에게 다가갔다.
지금은 이민아에게 상황을 이야기하는 게 옳았다.
“수술 준비 하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리시면 됩니다. 어려운 수술 아니니까 한숨 주무시고 나면 개운하게 일어나실 겁니다.”
태수는 그야말로 선의의 거짓말을 했다. 물론 수술 결과가 만족스럽게 나온다면 지금 한 말은 거짓말이 아니다.
태수의 말에 대한 대답은 이민아가 아니라 송준호에게서 나왔다.
“잘될 거야. 아무 걱정 하지 마.”
송준호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렸으나 말은 전혀 달랐다.
태수 또한 그런 송준호를 바라보며 빙긋 미소를 지었다.
어느새 수술 준비를 마친 태수가 수술실에 들어섰다.
이민아는 이미 전신마취가 되어 있었고, 정민수와 간호사들이 수술 준비를 서둘렀다.
그사이 마취의가 태수를 알아보고 인사했다.
“최 선생, 오랜만이야.”
“안녕하셨습니까?”
“이 새벽에 안녕하긴 힘들지. 그보다 환자가 친구 부인이라지? 내가 오늘은 죽을힘을 다해서 전신관리할 테니까 수술에만 집중해.”
“감사합니다.”
태수는 진심으로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수술대로 향했다.
집도의 자리에 서자 반대편에 정민수가 자리를 잡았다.
“오랜만에 이렇게 보네.”
“그러게.”
“집도의 선생님, 시작하시죠.”
정민수의 목소리가 어느새 진중하게 변했다.
태수는 그 모습에 조금은 놀랐다.
사실 정민수는 수술실에서도 가끔 감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이젠 자기 기분을 자유자재로 컨트롤했다.
떨어져 있는 사이 정민수도 발전하고 있던 모양이다.
태수도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솔직히 친구 부인을 수술한다는 사실이 상당한 부담을 느끼게 했다.
이내 태수는 이민아를 그저 환자로 생각했다. 그 이상의 감정이 섞이는 건 수술의 원활한 진행을 방해할 뿐이었다.
이내 마음이 정리되자 태수가 선언했다.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정민수의 목소리가 유독 크고 씩씩했다.
그사이 태수는 눈빛을 굳히며 환부를 내려다봤다.
지금 환자는 중요 부위만 가린 채 오른쪽 다리가 허리까지 오픈된 상태였다.
무릎부터 골반까지 퍼렇고 뻘건 멍이 가득했다.
염증으로 인해 실핏줄들이 터져 만들어진 멍이다. 이 속이 어떤지는 CT 결과를 통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
희망을 걸어 본다면 외적으로 괴사된 부위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만약 피부까지 썩어 들어갔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했을지도 몰랐다.
생각은 여기까지.
수술실에 들어온 이상 잡생각보다 수술을 진행하는 게 우선이었다.
태수가 메스로 골반 아래쪽을 갈랐다.
그 순간이었다.
찌익.
갈라진 틈으로 노란 진물이 솟구쳐 올랐다.
내부에 응축되어 있던 고름이다.
고름이 터지자 살이 썩는 냄새도 풍겨 왔다.
“음.”
간호사들이 그 악취에 인상을 찌푸릴 정도였다.
하지만 태수와 정민수는 눈썹 한 번 꿈틀거리지 않았다.
작은 상처를 장시간 방치하면 생성되는 질병이 바로 괴사성 근막염이다.
카슈미르와 같은 전쟁 지역 환자들이나 군인들에게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질병이기도 했다.
그 냄새를 역하게 생각할 만큼 두 사람의 경험이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정민수가 빠르게 고름을 걷어 내기 시작했다.
“내가 계속 걷어 낼 테니까 끝까지 절개해.”
“그래.”
대답과 동시에 태수는 메스로 허벅지와 무릎에 이르기까지 길게 절개했다.
그 속에 가득한 노란 고름과 빨간 피고름이 뒤섞여 나왔다.
절개 부위가 커질수록 악취도 강해졌다.
“우욱.”
피에 강한 내성이 있는 수술실 간호사들조차도 헛구역질을 할 정도였다.
절개한 부위를 고정시키던 태수의 눈썹이 그 순간 꿈틀거렸다.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죄, 죄송합니다.”
“일단 환풍기 최대로 틀고 썩션 추가해서 빨아들이세요.”
“네!”
태수를 보조하던 간호사가 얼른 정신을 차리고 몸을 움직였다.
그러나 계속 마스크로 향하려는 손을 억누르는 게 보였다.
역한 냄새를 참기 힘든 모양이다.
이 순간은 솔직히 송현미 간호사가 그리웠다.
하지만 여긴 신속대응센터가 아니었다.
송현미 간호사가 없는 대신 정민수가 있다.
태수가 알고 있는 어떤 의사보다 손이 빠른 장점이 있었다. 그 장점을 십분 활용하며 정민수는 흘러내리는 고름부터 모조리 빨아들였다.
태수도 어느새 썩션과 보비를 들고 고름을 제거하며 미세한 출혈점을 잡았다.
환부에 가득했던 고름이 어느 정도 걷어진 후였다.
근육층이 드러나자 태수와 정민수의 손이 저절로 멈춰졌다.
근육괴사가 진행되어 허벅지 근육이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CT로 확인한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태수가 정민수에게 말했다.
“우선 확인부터.”
“이미 준비하고 있어. 먼저 시작한다.”
정민수는 센리트렉터와 후크를 이용해 괴사와 염증으로 가득한 허벅지 근육을 확인했다.
태수는 그사이 무릎 상태를 점검했다.
무릎은 여러 가지 근육과 연골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무릎의 툭 튀어나온 부분인 슬개골이 문제였다. 하얀 뼈가 누렇고 꺼멓게 변색되어 있었다.
깊게 침투한 염증으로 인해 살릴 수 있다고 장담하기 힘들었다.
그 외에 슬개뼈를 부드럽게 움직이게 해 주는 슬개인대도 문제였고, 허벅지뼈와 종아리뼈를 감싸고 있는 활막도 문제였다.
‘음.’
머릿속으로 수술 방법을 구상한 태수는 골반으로 옮겨 갔다.
심각한 무릎 상태에 비하면 골반은 크게 문제 될 정도는 아니었다.
몇 개의 근육과 인대가 가벼운 염증으로 덮인 수준이다.
태수가 두 군데 점검을 마치는 사이, 허벅지를 확인하던 정민수가 고개를 들었다.
아직 본격적으로 수술을 시작하기도 전인데 이마에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쉽지 않겠어. 근육도 문제지만 혈관이 온통 염증에 뒤덮여서 인공혈관으로 바꿔야 할지도 몰라.”
“근육은?”
“3분의 1 정도는 완전 괴사했고, 염증은 깊게 침투했어. 그쪽은 어때?”
정민수가 묻자 태수가 간단하게 이야기했다.
“슬개인대와 활막은 최대한 긁어내야 할 거 같아. 그나마 골반과 둔부 쪽은 괴사와 염증이 심하지 않은데 슬개뼈가 좀 문제야.”
“artificial joint(인공관절)?”
“생각 중이야.”
“무릎은 하중이 많이 실려서 별로 현명하지 않은 거 같은데.”
정민수의 의견을 들은 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고민 중이야.”
“음.”
“최대한 살려 봐야지.”
“그래. 최악의 경우부터 생각할 필요는 없어. 그보다 혈관은 어떻게 할까? femoral vein(대퇴정맥)은 아예 못 살려.”
정민수의 말에 태수는 고민할 것도 없이 대답했다.
“반대쪽 다리에서 그래프트를 채취해서 대체하는 게 좋을 거 같아.”
“나쁘지는 않은데 혈관이 상당히 필요해서 문제야.”
“최대한 뽑아내야지. 가급적이면 인공적인 걸 몸에 심어 주고 싶지 않아.”
태수가 본심을 말하자 정민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자, 그럼 순서는?”
“무릎에서 올라가야지.”
“오케이. 그럼 시작해 보자고. 엘리스하고 코커 주세요.”
정민수가 먼저 수술 도구를 쥐고 환부를 더욱 넓게 벌렸다.
시야가 확보된다는 건 보다 정확하고 세밀한 수술을 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태수도 큐렛을 들고 슬개뼈부터 긁어내기 시작했다.
그륵그륵.
큐렛이 뼈를 긁어내는 소리가 수술실에 울렸다.
슬개뼈 주변에 달라붙은 염증과 괴사된 조직을 긁어내는 소리였다.
태수가 먼저 긁어내면 정민수는 떼어 낸 조직을 덜어 내고 다른 수술 부위를 수술하기 좋게 움직여 줬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태수가 클램프로 슬개인대를 고정시킨 후 손목을 비틀어 정민수 쪽으로 내밀었다.
정민수의 시선은 환부에 고정되어 있어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새 정민수가 손을 뻗어 클램프를 건네받았다.
역시 시선은 환부에 고정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건 태수도 마찬가지다.
서로 어떤 대화도 없이 눈도 마주치지 않고 수술 도구를 건넨 순간이었다.
이건 브레드 김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장시간, 그리고 수없이 많은 수술을 진행한 두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나름의 독특한 하모니였다.
슬개뼈를 열심히 긁어내던 중이다.
표면을 덮고 있던 괴사된 조직과 뼈의 일부를 긁어내자 하얀 뼈가 보였다.
동시에 태수와 정민수의 눈빛에 희망이 보였다.
“태수야, 뼈가 보여.”
“안심하긴 일러.”
“뼛속에 염증이 있는 건 알지만 상황이 좋으면 들어내지 않아도 된다는 건 맞잖아.”
정민수가 계속 희망을 내보였지만 태수는 진중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antiinflammatory agent(소염제)로 제거가 가능할까?”
“일단 좀 더 봐야지.”
정민수도 무작정 희망만 말하진 않았다.
두 사람이 조금 더 확인한 후였다.
어느새 태수와 정민수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이 정도면 소염제로도 충분히 회복될 수 있겠어.”
“괴사된 조직 때문에 염증이 깊숙이 침투하지 못했다니, 이걸 좋아해야 하는 거야? 아니면 슬퍼해야 하는 거야?”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계속 진행하자.”
“그러자고.”
정민수는 씁쓸한 미소를 떠올린 후 다시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