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466
00469 469화
반면, 태수는 속으로 다행이라 생각했다.
인공관절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자기 뼈와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태수와 정민수가 최대한 뼈와 혈관을 교체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가장 상태가 좋지 않은 무릎을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다는 건 다른 부위도 충분히 수술할 수 있단 뜻과 같았다.
슬개인대와 활막에 달라붙어 있던 염증과 괴사된 조직이 빠르게 제거됐다. 가장 난제인 슬개뼈를 해결하니 그 주변은 조금 덜 힘든 탓도 있다.
그렇다고 수술 자체가 쉬운 건 아니었다.
수술 부위가 만만치않아 집중력이 더더욱 많이 필요했다.
그만큼 체력도 빠르게 소모되어 갔다.
이미 태수와 정민수의 등은 축축했다.
수술 가운 밖으로 맺힌 땀이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시선 한 번 돌리지 않고 계속 수술을 이어 갔다.
덕분에 죽어 나가는 건 수술실 간호사들이었다.
정민수가 동성의 차기 에이스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건 그들도 알고 있다.
그리고 몇 번 수술을 같이 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와 지금은 너무도 달랐다.
우선 속도가 남달랐다.
“디바키……. 메젠바움……. 니들홀더, 믹스터.”
수시로 바뀌는 수술 도구를 건네는 것도 벅찰 정도였다.
태수도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탈도 많고 말도 많았던 태수의 행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 시간들을 잊히게 할 정도로 능숙하게 수술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태수는 수술 부위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간호사들까지 컨트롤했다.
“김 간호사님, 모스키토 내려놓으시고 센리트렉터로 이쪽을 좀 더 당겨 주세요.”
“네? 아, 네.”
“정 간호사님은 민수 쪽에 거즈를 좀 받쳐 주시고요.”
“알겠어요.”
어떻게 상황을 살피지도 않고 정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간호사들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손을 움직였다.
거기서 끝이 아니라 태수는 마취의에게도 신경을 썼다.
“선생님, 혈압은 90이 넘었습니까?”
“어? 아, 거의 도달했어.”
“수혈은요?”
“들어가고……. 교체해야겠네. 그런데 어떻게 알았지?”
마취의가 물었지만 태수는 다시 수술에 집중한 상태였다.
얼떨떨한 얼굴로 마취의가 수혈팩을 바로 교체했다.
정민수는 그런 태수를 힐끔 쳐다봤다.
전보다 더욱 시야가 넓어졌다.
세세하게 스텝들을 컨트롤하는 모습에서 다급함보다 꼼꼼함이 느껴졌다.
이건 신속대응센터에서 습득한 게 분명했다.
그걸 깨달은 정민수가 나지막이 태수에게 말했다.
“나도 얼른 그쪽으로 넘어가야겠어.”
“무슨 소리야?”
“하나하나 신경 쓸 수 있는 넓은 시야가 부럽단 말이지.”
“너도 많이 변했어. 그보다 거기는 좀 더 이쪽으로 밀어야지.”
태수가 수술 부위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지적하자 정민수가 바로 손을 움직이며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역시 전보다 더욱 시야가 넓어졌다.
장단점이 너무도 다른 두 사람이다. 그래서 둘이 만났을 때 장점은 부각되고 단점이 작아진다.
그렇다고 의사로서 승부욕이 없는 건 아니다.
어쩌면 그런 두 사람이 함께 수술하는 이런 시간이 강한 자극제로 작용하는지도 몰랐다.
보다 환자를 잘 수술하고 싶다는 마음이 밑바탕이 된 선의의 경쟁이다.
두 사람이 누구보다 호흡이 잘 맞는 이유가 그 때문일지도 몰랐다.
2시간이 지나서야 무릎 수술이 끝났다.
태수와 정민수가 잠시 수술 부위에서 시선을 뗐다.
한곳만 집중해서 그런지 시선이 잠깐 흐트러졌다.
바로 허벅지 수술로 넘어가야 했지만 잠깐이라도 쉬면서 체력을 회복하는 게 좋았다.
태수는 먼저 마취의에게 물었다.
“바이탈은 어떻습니까?”
“아직까지는 좋아. 출혈도 생각보다 적어서 크게 들썩이는 건 없어.”
“끝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내 걱정 말고 두 사람이나 걱정해.”
마취의는 찡긋거리며 태수를 안심시켰다.
태수도 마주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볍게 손을 털었다.
계속 수술 도구를 쥐었다가 펴기를 반복해 손아귀가 뻐근한 탓이었다.
그러던 그가 멈칫했다.
생각보다 뻐근함이 일찍 풀리고 있던 탓이다.
그 이유를 알아챈 태수가 정민수에게 인사했다.
“고맙다.”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조금 잤다고 손이 잘 움직여. 눈도 침침하지 않고.”
“나한테 인사하지 말고 하 팀장님한테 인사해.”
정민수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지만 태수는 고개를 저었다.
“네가 강권하지 않았으면 아마 누구 말도 안 들었을 거야.”
“그거야 그렇지. 네가 누구 말 듣고 사는 놈은 아니니까.”
“그래서 고맙다고.”
“별소리를. 쉴 만큼 쉬었으면 허벅지 수술 시작해야지.”
정민수가 말을 돌리자 태수도 옅은 미소를 지었다.
불과 1분여의 휴식이지만 한숨 돌렸다.
뻐근한 손과 눈도 모두 회복했으니 이젠 다시 수술을 이어 가는 게 옳다.
태수는 정민수에게 진행 방법을 이야기했다.
“넌 그래프트 채취해 줘. 그사이에 내가 긁어내고 있을 테니까.”
“혈관은 건드리지 마라. 그거 지금 시한폭탄이야.”
“절대 안 건드려.”
“그럼 잠시 후에 보자고.”
정민수는 찡긋 미소를 보이며 반대편 다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태수도 이민아의 허벅지를 내려다봤다.
활짝 펼쳐 놓은 피부를 보던 태수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졌다.
표피 아래쪽인 진피까지 꺼멓게 괴사한 조직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며칠 더 지체했으면 피부에 보기 흉한 구멍이 생겼을지도 모를 상태다.
그렇다면 수술 후에도 상처가 흉하게 남는다.
결혼을 했다지만 여자에게 그런 상처는 커다란 콤플렉스로 남을 일이다.
그걸 가까스로 막을 수 있는 상황이 감사할 뿐이다.
이번 수술에서 태수의 목표는 딱 하나다.
이민아가 퇴원할 때 수술하지 않은 듯 온전한 모습으로 인사하는 것이다.
친구의 아내.
그녀에게 최선을 선물하고 싶다.
태수는 좌우로 넓게 펼쳐 놓은 피부부터 차분하게 수술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허벅지 피부를 타고 올라간 괴사 조직을 제거하는 것도 시간이 많이 소요됐다.
시간이 얼마나 드는지는 관계없었다.
태수는 최대한 꼼꼼하고 세세하게 검게 변한 조직들을 제거했다. 그러고 나서야 허벅지로 시선을 돌릴 수 있었다.
근육에 침투한 염증과 괴사 조직으로 인해 악취가 풍겨 왔다.
그동안은 환풍기가 작동하고 있고, 또 다른 수술에 집중하느라 의식하지 못했을 뿐이다.
허벅지에 집중하니 은은하게 풍겨 오는 악취가 상당히 머리를 아프게 했다.
그럼에도 태수는 여전히 눈살 하나 찌푸리지 않았다.
그때였다.
정민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프트 채취했어.”
“혈관부터 교체할까? 아니면 근육부터 긁어낼까?”
태수가 묻자 정민수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말했다.
“당연히 근육부터 긁어내야지. 혈관은 마지막에 교체하는 게 좋으니까.”
“그럼 그렇게 하자. 큐렛 주세요.”
“디바키, 모스키토 클램프.”
태수와 정민수가 각각 수술 도구를 건네받고 수술에 들어갔다.
허벅지 근육의 3분의 1 이상을 걷어 내야 하는 대수술이다.
게다가 염증이 넓게 분포된 지방도 모두 제거해야 했다.
간단하게 끝날 거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점점 회복 기간이 길어지는 수술로 변해 가고 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지금 깔끔하게 걷어 내지 못한다면 또다시 내부에서부터 썩어 가게 되고, 그때는 다리를 절단해야 할지도 몰랐다.
정민수는 빠른 손과 더불어 태수에게서 지금 배운 꼼꼼함까지 더했다.
“식염수로 세척해 주세요.”
“네.”
간호사가 준비해 놓은 식염수를 환부에 부었다.
걷어 내지 못한 조직의 작은 파편들이 물살에 떠올랐다.
정민수는 썩션으로 모두 빨아들이며 환부를 계속 깨끗하게 유지하려 노력했다.
한편, 태수도 정민수의 움직임을 그대로 복사한 듯이 손놀림이 더욱 빨라졌다.
“아이리스……. 러시안 포셉……. 큐렛.”
수시로 변화하는 수술 도구에 간호사는 손이 꼬일 정도였다.
수술 중이지만 태수와 정민수는 환자를 통해 서로의 장점을 습득해 가고 있었다.
그로 인해 수술은 더욱 원활하게 진행됐다.
그로부터 무려 5시간이나 지난 후에야 수술이 끝났다.
총 8시간에 걸친 대장정이다.
장시간 수술한 만큼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무릎과 허벅지를 갉아먹고 있던 괴사한 조직들을 모두 걷어 냈다. 대퇴정맥도 깔끔하게 교체했고, 골반과 둔부로 스며들고 있던 염증도 일부는 제거했다.
그래도 태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꼼꼼하게 환부를 다시 살펴봤다.
그건 정민수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수술에 특히나 강한 두 사람의 시선을 벗어나긴 힘들다.
그럴 증명하듯이 환부는 처음에 비하면 매우 깔끔하게 변해 있었다.
은은하게 풍겨 오던 살이 썩는 악취도 완전히 사라졌다.
그래프트로 대체한 대퇴정맥에도 출혈이 아예 보이지 않았다.
태수는 마지막 확인을 마친 후 선언했다.
“수술 종료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기진맥진한 간호사들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모습들이다.
이런 장시간에 걸친 수술을 경험할 일이 그리 많지 않은 탓이다.
그런 반면 태수와 정민수는 멀쩡했다.
아니, 멀쩡한 척하고 있었다.
장시간 수술을 할 때 체력을 보존하는 법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에 체력 분배를 적절하게 한 탓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지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다만 간호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양호한 편일 뿐이었다.
태수를 빤히 바라보던 정민수가 지친 얼굴 가득 의아함을 내보였다.
“이대로 끝낸다고?”
“왜?”
“봉합도 안 했어.”
정민수가 가리키자 태수가 환부를 다시 내려다봤다.
피부와 근육이 벌어져 있는 상태다.
염증도 흐르고 있어서 보통 사람이 보면 끔찍해할 정도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태수는 개의치 않고 말했다.
“이대로 덮으면 그 뒤는 어떻게 하고.”
“아, 맞다. 깜빡했다.
“3시간에 한 번씩 드레싱해 줘야 하고 중심정맥관을 연결해서 고단백만 주입하는 거 잊지 말고.”
“깜빡했다니까. 이렇게 심한 괴사성 근막염은 나도 오랜만이라고.”
정민수가 얼른 분위기를 환기시켰으나 태수는 미심쩍은 눈빛을 지우지 못했다.
“아무래도 케어 방법을 세세하게 써 놓고 가야겠어.”
“기억났다니까. 환부를 봉합하지 않는 건 조직이 원활하게 재생되는 걸 확인하고 농양을 제거하기 위해서잖아. 그리고 고단백으로 영양을 충분히 공급해서 회복에 도움을 주라는 거고.”
“그래도 안심이 안 돼. 하루에 한 번씩 와서 볼 테니까 제대로 안 하면 재미없어.”
태수가 정색하며 경고했다.
정민수가 그렇다고 기가 질릴 의사는 아니었다.
“봐서 잘되어 있다고 칭찬이나 하지 마.”
“그건 나중에 보면 알겠지. 좌우간 이제 가자.”
“그래. 송준호…… 아니, 준호한테 경과 말해 줘야지.”
처음 본 사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정민수는 송준호에게 친근감을 보였다.
물론 그가 태수의 친구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태수와 정민수가 수술실 입구를 지나 복도로 나왔다.
수술실 앞에 송준호가 서성이고 있었다.
새벽에 시작된 수술이 아침을 지나 오후에 접어들었다. 그사이에 한숨도 못 잤는지 송준호의 눈은 퀭했고 눈빛도 불안정한 상태였다.
힐끔거리며 수술실을 쳐다보던 송준호가 태수를 발견하고 멈칫했다.
“태, 태수야.”
묻고 싶은 게 너무도 많은 얼굴이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건 고작 태수의 이름을 더듬거리며 부르는 것뿐이다.
그 마음을 태수가 왜 모를까.
태수는 천천히 엄지를 내보이며 말했다.
“아주 좋아.”
“아!”
탄성을 토해 낸 송준호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순간 긴장이 모두 풀린 모양이다.
“준호야!”
태수와 정민수가 얼른 다가가 송준호를 일으켜 세웠다.
부축을 받으며 일어난 송준호가 먼저 태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태수야.”
“왜?”
“친구라서 고맙다.”
“자식.”
면박을 준 태수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