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473
00476 476화
이건 손을 쓸 수가 없다.
만약 수술을 하게 된다면 과다출혈로 그 자리에서 죽게 된다.
기적처럼 대동맥 수술을 성공한다고 해도 다른 병변들이 심각해 환자가 이겨 내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게다가 간과 비장의 출혈.
간과 비장은 인체에 필수 호르몬을 분비하는 장기들이다.
기능이 최하로 떨어진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살과 위장을 관통한 갈비뼈까지.
냉정하게 말해 제임스, 아니 그 어떤 의사가 와도 살리지 못할 환자였다.
태수와 박성민의 눈빛이 너무도 복잡했다.
그때 보호자들이 도착했다.
“어떻게 됐습니까?”
“살 수 있는 겁니까?”
형제인 듯 닮은 보호자들이 연달아 물었다.
태수와 박성민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침묵하는 두 사람을 향해 보호자들이 안달했다.
“말을 좀 해 주세요.”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 겁니까?”
태수와 박성민도 더 이상 시간을 끌 순 없는 문제다.
서로 눈빛이 마주쳤다.
‘누가?’
‘제가.’
태수가 눈을 끔뻑이자 박성민이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보호자들을 태수가 맡는다면 박성민이 해야 할 일은 환자를 최대한 케어하는 것이다.
박성민이 먼저 몸을 움직였다.
“도 선생은 계속 옷 자르고, 태경이가 커튼 쳐. 간호사분들은 꼼꼼하게 닦아 주십시오.”
박성민의 정중한 목소리가 울렸다.
그 순간 의료진들의 눈빛이 차분하게 내려앉았다.
평소 박성민의 성격을 알고 있다. 보통 이런 응급 상황이라면 수선을 떨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성격을 모두 숨기고 덤덤하게 말한다는 건 그만큼 환자 상황이 좋지 않다는 뜻과 같다.
그 분위기가 점점 번져 가 도성민과 김태경도 애써 차분한 얼굴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르륵.
환자 주변으로 널찍하게 커튼이 쳐졌다.
이제부터는 외부의 시선을 차단하겠다는 뜻이다. 덕분에 대기하고 있던 119 구급대원들도 커튼 밖으로 밀려났다.
커튼을 담당하는 김태경이 정중하게 말했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음, 아닙니다.”
“보시다시피 상황이 좋지 않아서요. 선배님이 나중에 전화하실 겁니다.”
“그래요. 먼저 가 보겠습니다. 안전.”
구급대장은 무거운 거수경례를 마친 후 돌아섰다.
그 뒷모습도 이내 커튼에 완전히 가려졌다.
그사이 태수는 보호자들과 마주 섰다.
“일단 진정하고 들어 주십시오.”
“…….”
“우선 여쭙고 싶은 게 있는데, 환자분이 아버님 되시나요?”
태수는 침착하게 물었다.
지금도 대동맥해리는 진행 중이고, 다른 병변도 악화되어 가고 있다.
강심제를 주입해 억지로 심장을 뛰게 하고 인공호흡기로 간신히 숨을 유지하는 중이었다.
최소한 보호자들에게 상황을 알릴 시간은 있었다.
그러하기에 태수는 침착하게 말을 꺼냈다.
그러나 그 상황을 모르는 보호자들은 다그치듯이 물었다.
“네, 아버지 되십니다. 어떤 상황인데 이러시는 겁니까?”
“전문용어는 생략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간과 비장이 파열되었고, 위는 관통되었으며…….”
태수는 주요 병변을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 보호자들의 표정이 점점 복잡하게 변해 갔다.
그 와중에도 태수는 마지막까지 침착하게 설명을 이어 갔다.
“……그런 상황입니다.”
“그러니까 언제 돌아가실지 모른다는 겁니까?”
“핵심만 말씀드리자면 그렇습니다. 인위적으로 뛰게 한 심장이 얼마나 버텨 주느냐에 따라 달라질 뿐입니다.”
“…….”
보호자들이 침묵하자 태수가 천천히 고개 숙이며 말했다.
“낙상 후 너무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음…….”
“다른 병원으로 이송을 원하신다면 해 드리지만 지금 상황이 그렇게 좋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거 같습니다.”
태수는 그 말조차도 냉정하게 했다.
아니, 냉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보호자들의 혼란을 최대한 줄여 줄 수 있을 터였다.
보호자들은 태수의 말을 들으며 그저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러던 중 형으로 보이는 보호자가 태수에게 말했다.
“사실 119에서 연락받고 짐작은 했습니다.”
“그러셨군요.”
“그래도 자식 된 도리로 이대로 그냥 보내 드리는 건 못할 거 같습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
“그게 환자에게…….”
태수가 말을 이어 가기도 전에 이번에는 동생이 끼어들었다.
“최소한 후회는 남지 않을 거 아닙니까.”
“음.”
“그에 대해서는 어떤 문제도 삼지 않을 테니까 부탁드립니다.”
동생의 절절한 표정만큼 형 또한 그러했다.
태수의 시선이 환자에게로 향했다.
쌔액. 쌔액.
어느새 깔끔해진 환자는 어렵사리 숨만 내쉬고 있었다.
여든이 넘었다고 추정되는 나이에 입은 심각한 상처.
아무래도 힘들다.
그저 최선을 다한다.
그렇게 결정을 내린 태수가 보호자들에게 말했다.
“만약 살아난다면 이건 정말 하늘의 뜻입니다. 천 명 중에 한 명도 살아나기 힘든 상황이라는 것만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잠시 밖으로 나가 주십시오. 혹시라도 의식이 돌아오게 된다면 그때는 바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태수가 정중하게 말을 마쳤다.
보호자들은 슬쩍 환자의 얼굴을 보고는 조용히 커튼 밖으로 나갔다.
태수가 환자에게서 돌아서려던 찰나였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의 생명이 위독하다.
그런데 자식들의 태도가 너무도 침착했다. 살려 달라는 말에서 진심이 느껴졌지만 그뿐이다.
‘묘하네.’
태수의 눈이 서서히 가늘어져 갈 때였다.
커튼 밖에서 보호자들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정 변호사님께 전화해.”
“이미 했어. 거의 도착하실 때 됐을 거야.”
“이럴 때는 빨라 가지고. 그런다고 너한테 유리한 건 없어.”
“형이야말로. 아버지가 차라리 안 깨어나시는 게 좋지 않을까?”
“웃기는 놈.”
그 이후로 뭔가 대화를 더 나눴지만 멀어지고 있어서 그런지 자세히 들려오진 않았다.
두 사람의 대화가 태수의 신경을 자극했다.
찝찝한 기분까지 들었다.
뭔가 석연치 않다는 생각을 이어 갈 즈음이다.
삑삑!
갑자기 ECG가 요동쳤다.
그 소리에 태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죽어 가는 환자 앞에서 무슨 잡생각이 이렇게 많단 말인가.
전후 사정은 관심도 없다.
중요한 건 환자다.
가망성이 터무니없이 낮은 상황이라도.
회생이 불가능하다고 결론이 난 상황이라도.
숨이 멎지 않았다면 최선을 다해야 했다.
다른 생각을 모두 지운 태수는 환자만 바라봤다.
‘마지막 인사는 해야지!’
속으로 강하게 외친 태수가 부리나케 환자에게 달려갔다.
단 한 걸음이지만 이미 박성민이 먼저 도착해 상황을 살피는 중이었다.
“산소 포화도가 급강하하고 있잖아! 도끼, 폐에 드레인 연결해.”
“알겠습니다!”
“태경이는 혈액 더 집어넣어. 일단 최대한 열라고.”
“네!”
박성민의 오더에 도성민과 김태경이 정신없이 움직였다.
그사이 도착한 태수는 환자의 상태부터 다시 살피기 시작했다.
기흉과 혈흉으로 인해 폐가 쪼그라들어 산소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고 있다. 그런 데다 인공호흡기로 산소를 억지로 주입하니 문제가 된 모양이다.
박성민이 좌측 폐를, 도성민이 우측 폐를 각각 담당하며 드레인을 연결했다.
태수의 시선은 여전히 환자에게 향해 있었다.
입술이 파랗게 질려 있고 혈색은 하얗게 변한 상태였다.
전형적인 출혈 과다 증상이다.
“송 간호사, hemostatic(지혈제), serum(혈청) 주사해 주세요.”
“바로 주사할게요.”
송현미 간호사가 얼른 오더대로 약제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태수는 김태경에게 이어서 오더를 내렸다.
“김 선생, IV 하나 더 연결하고 수혈팩 계속 달아.”
“알겠습니다.”
“조현정 간호사님은 기존 IV를 담당해 주시고요.”
“네.”
박성민의 전담 간호사가 된 조현정 간호사가 얼른 IV 쪽으로 다가갔다.
가장 기초적인 걸 진행했지만 안정된 느낌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그때였다.
박성민이 빠르게 소리쳐 말했다.
“이쪽 폐는 드레인 연결됐어.”
“이쪽도 연결됐습니다.”
도성민이 이어서 말했다.
양쪽 폐에 길게 늘어진 드레인에서 각각 불투명한 액체와 피가 섞여 나왔다.
후두둑.
응급실 바닥이 빨갛게 물들고 있다.
하지만 누구도 그런 모습엔 신경 쓰지 않았다.
특히 태수의 시선은 ECG에 고정된 상태였다.
“산소 75퍼센트…… 88퍼센트…… 98퍼센트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왜 맥박은 아직도 비정상이야?”
박성민이 물었지만 대답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태수는 ECG에 고정된 시선을 그대로 유지했다.
그렇게 30초 정도 지켜봤을까.
불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심장박동이 갑자기 들썩이기 시작했다.
“어어? 이 정도면 심장 이상인데…….”
박성민의 말에 태수의 눈빛이 번뜩였다.
대동맥해리!
태수가 빠르게 박성민에게 부탁했다.
“선배! 드레인 하나 더! 대동맥궁에 찔러 주세요.”
“야, 그거 잘못 찌르면 터져!”
“안 찔러도 죽습니다.”
태수가 강하게 어필하자 박성민이 움찔했다.
하지만 태수의 눈빛이 너무도 강렬했다.
지금은 의견 충돌할 시간도 없었다.
“하여간 저 새끼랑 있으면 내가 선배인지, 지가 선배인지 모르겠다니까. 송 간호사, 드레인 하나 더 줘요.”
“네, 선생님.”
송현미 간호사가 빠르게 의료 카트를 뒤적였다.
박성민의 불만을 알지만 지금은 그런 사소한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환자의 상태가 더 중요했다.
지금 대동맥궁에 맺힌 피를 건드린다면?
응급실 바닥이 피바다가 되는 건 순식간이다.
과한 출혈로 인해 환자의 심장에 이상이 생길지도 모른다.
태수는 IV를 담당하는 조현정 간호사와 김태경에게 빠르게 오더를 내렸다.
“수혈팩 하나씩 더 달고, 수액도 추가하세요. 어떤 상황이 와도 멈추라고 할 때까지는 절대 멈추면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사이 박성민은 환자의 심장에 기다란 드레인을 삽입하고 있었다.
투덜거리던 모습과는 정반대로 조치하는 손길에는 떨림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쉽게 대동맥궁을 찾지 못했다.
“선배, 멀었습니까?”
“인마, 심장도 아니고 대동맥궁을 이렇게 얇은 드레인으로 단번에 찾으라는 게 말이야, 뭐야?”
“…….”
“네가 응급에 있어서 조금만 어설펐어도 머리통을 한 대 후려치는 건데.”
박성민도 신경이 날카로운지 거침없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태수가 지금 이 순간에 전체적으로 상황을 살피고 오더를 내리는 데에 불만을 표하진 않았다.
그만큼 박성민은 태수를 인정했다.
태수는 안다.
박성민의 말이 옳다.
보이지 않는 대동맥궁을 감각으로만 찾아야 한다. 아무리 비대해졌어도 심장에 비하면 너무도 작은 대동맥궁이기에 쉽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다면?
보면 그만이다.
태수는 바로 씨암을 움직여 흉부를 비췄다.
실시간으로 떠오르는 엑스레이 영상이 그 속이 어떤지 보여 줬다.
역시 조금 전에 확인했을 때보다 대동맥궁이 더욱 비대해진 상태였다.
태수가 박성민에게 말했다.
“조금 더 오른쪽.”
“아, 새끼. 오른쪽?”
“너무 갔습니다. 왼쪽으로 조금만.”
“주문도 많아. 왼쪽.”
조치하는 것보다 투덜거리는 게 더 많았다.
그러나 그것 또한 박성민의 불안감을 표현해 주는 말들이다.
태수도 알기에 핵심만 걸러서 들었다.
태수가 방향을 잡아 주니 박성민이 삽입하는 드레인이 점점 대동맥궁을 향해 다가갔다.
“조금 더 위로. 오른쪽으로 너무 치우칩니다.”
“이렇게…….”
“선배, 조금만 더 빨리.”
“최선을 다하고 계시니까 잔소리 말아 주라. 그보다 이쯤 아니야?”
박성민이 손끝 감각에 뭔가 걸리는 느낌을 받았는지 예리하게 물었다.
태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찌르세요.”
“후우. 가자!”
박성민은 한껏 숨을 내쉬며 손에 힘을 줬다.
그와 동시였다.
대동맥궁에 뭉쳐 있던 피가 드레인을 따라 봇물 터지듯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