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477
00480 480화
피를 뽑아내 압력이 줄어들어서 부러진 뼈들을 일정하게 맞추는 게 어렵진 않았다.
이렇게 하는 이유가 있다.
자칫 혈관이 뼛조각 끝에 눌려 있다가 터질 수도 있다.
한없이 수혈할 수 없기에 이런 작은 부분을 세밀하게 확인하는 게 중요했다.
태수와 송현미 간호사가 이마에 땀을 흘리며 오른쪽 팔을 일정하게 맞췄다.
“압박붕대 주세요.”
“여기요.”
“송 간호사님은 위에서부터 조심스럽게 내려오세요.”
그리고 태수는 환자의 손가락 끝부터 압박붕대로 조심스럽게 감싸기 시작했다.
한편, 브레드 김과 김태경은 정신이 없었다.
복부를 열자 피고름이 쏟아진 탓이다.
살짝 짜증이 난 브레드 김의 목소리가 조금씩 높아졌다.
“이쪽으로 썩션을 대야지.”
“죄송해요.”
“사과도 나중에 해. 여기 거즈 좀 주세요.”
브레드 김의 말에 김수진 간호사가 얼른 흡수성이 좋은 거즈를 내밀었다.
그때였다.
서영우가 급변하는 바이탈을 확인하다 브레드 김에게 말했다.
“김 선생님, 그쪽 출혈이 너무 많아요!”
“저도 아는데 어떻게 방법이 없습니다.”
“그건 저도 아는데, 저도 방법이 없으니까 문제라는 겁니다. 노 간호사, 혈액 하나 더 추가해.”
서로 같은 말을 내뱉을 만큼 상황이 좋지 않았다.
덕분에 박성민과 도성민은 가장 먼저 수술 선언해 놓고 시작도 못할 처지였다.
지금까지 한 건 대동맥궁의 압력을 조금 줄여 준 정도였다.
간단한 조치였지만 환자의 심장에 부담을 덜어 주는 가장 중요한 조치이기도 했다.
하지만 다음 조치를 진행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박성민이 돌아가는 상황을 눈치로 때려잡은 후 중얼거리듯이 질문했다.
“내려가야 하나?”
“일단 폐부터 확인하시는 게 어떨까요?”
도성민의 말에 박성민이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지금 폐를 여는 건 의미가 없어. 여기서 출혈을 더 일으키면 서 선생님한테 멱살 잡힐 거 같고.”
“혈액이라도 짜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 그거라도 하자.”
박성민과 도성민이 얼른 흩어졌다.
흉부가 생명 유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맞다.
하지만 팔과 복부에서 출혈이 있는 상황인데 흉부까지 수술에 들어갈 순 없었다.
그렇게 30분이 지나갔다.
그사이 태수는 양쪽 팔과 다리에서 죽은피를 뽑아내고 붕대로 모두 감는 데 성공했다.
박성민과 도성민은 간간이 대동맥궁의 압력을 줄여 주고 남은 시간을 이용해 혈액과 수액을 전담해서 관리했다.
서영우는 갖가지 주사제로 환자가 조금이라도 원활하게 버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세 사람의 노력 덕에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문제는 브레드 김의 조치가 생각보다 길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팔다리를 마무리 지은 태수가 김태경에게 다가갔다.
“김 선생, 교대.”
“네.”
김태경이 뒤로 물러나자 태수가 그 자리에 섰다.
브레드 김이 태수를 힐끔 쳐다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마에 땀이 가득해.”
“괜찮습니다.”
“정형외과 전문의를 하나 팀에 넣어 달라고 하든가 해야지. 이럴 때마다 최 선생만 죽어 나간다니까.”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만, 상황은 어떻습니까?”
태수가 묻자 브레드 김이 말했다.
“일단 위하고 간은 봉합했고, 비장도 봉합 중이야.”
“이 상태에서요?”
태수가 깜짝 놀라 물었다.
복부 내부가 피로 흥건했다.
썩션으로 빨아들이고는 있다지만 시야가 완전히 확보되진 않았다.
브레드 김은 외려 태수에게 한마디 했다.
“이 정도 출혈이면 양호하지. 닥터 최도 이 정도는 가능하잖아.”
“…….”
“그렇게 볼 시간 있으면 거기 출혈점 좀 잡아 줘. 그보다 이거 복수가 계속 발생하는 건 어떻게 할 수가 없는데.”
“어쩔 수 없습니다.”
태수는 씁쓸하게 말하고는 손을 놀렸다.
출혈은 간으로 향하는 정맥의 일부가 찢어져 발생하고 있었다.
지혈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주변에 혈전이나 괴사한 조직들이 눈을 어지럽게 했다.
보이는 족족 제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손을 쓸 순 없었다.
최대한 빨리, 그리고 중요한 부위만 막는 걸로 수술을 마쳐야 한다.
만약 그런 세세한 것까지 모두 수술하게 된다면 이 수술은 이틀도 부족할 정도다.
상처가 광범위하다는 표현도 옳지 않았다.
온몸이 모두 병변이다.
그걸 알기에 최소한의 수술만 빠르게 진행해야 한다.
살리기 위한 수술이 아니라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수술이다.
그걸 잊지 말아야 한다.
지혈을 하던 태수는 가슴 한구석이 욱신거렸다.
만약 그때 카프레네에게 이렇게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단 하루라도, 아니 몇 시간이라도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지 않았을까.
귀중한 시간이 됐으리란 느낌이 들었기에 태수의 마음이 안타까움으로 물들었다.
절대 잊지 않았다.
잊을 수 없었다.
카프레네의 직접적인 사인들은 평생 가도 절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터였다.
수술 중에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집중력 저하를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태수는 애써 털어 내지 않았다.
오히려 더 생각했다.
이 환자가 지금은 카프레네의 분신이다.
그때는 손도 쓰지 못한 여한이 분명히 있다.
물론 이 환자로 인해 그 한을 풀어낼 수는 없다.
하지만 아주 조금이라도, 눈곱만큼이라도 덜어 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진행하는 수술이다.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해.
환자의 가슴에 마지막 한까지 말끔하게 지워 주기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태수는 그 생각에 손끝을 더욱 야무지게 움직였다.
복부 수술까지 끝마치자 대략 1시간 정도 지났다.
태수가 서영우에게 물었다.
“어떻습니까?”
“낮아. 간신히 유지는 하고 있지만 올라오진 않고 있어.”
“흉부를 수술할 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요?”
“모르겠어. 나도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 모르겠다고.”
서영우도 자신 없는 표정이다.
태수도 마찬가지였다.
노력을 하고 있지만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정말 장담하기 힘들었다.
그래도 아직 생명 유지를 위한 수술은 끝이 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남은 건 흉부.
가장 중요하고 난해한 곳이기도 했다.
원래는 먼저 수술을 해야 했다.
그러나 다른 병변에서 어떤 이상을 일으킬지 모르기에 뒤로 미뤄 뒀다.
그 판단이 아직까지는 옳았다.
심장은 약해졌지만 멈추지는 않은 상태다.
가장 중요한 건 과거가 아니다.
이제부터 수술이 끝날 때까지 버티는 게 관건이다.
태수가 어시스던트 자리에 서자 박성민이 반대편에 위치하며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네가 이쪽에 서는 게 낫지 않겠어?”
“지금 위치 때문에 시간을 지체할 순 없을 거 같습니다.”
“그래. 내가 집도를 하던, 네가 집도를 하던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태수는 그렇게 말하며 흉부를 내려다봤다.
환부를 벌리고 발포어(고정형 리트렉터)로 고정시켜 놓은 상태다.
심장의 미약한 박동이 눈에 보였고, 그 위에 있는 대동맥궁도 시야에 들어왔다.
보통 혈관보다 조금 더 두꺼운 대동맥궁은 몇 배로 부풀어 있었다.
그 속에 혈액이 가득하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다.
보통 이 정도 부풀면 터져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터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건 중간중간 피를 뽑아 압력을 조절했기 때문이다.
이제 비대해진 대동맥궁을 해결해야 한다.
태수와 브레드 김, 박성민이 환부를 바라보며 머리를 맞댔다.
박성민이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닥터 김, 이런 상황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도 답이 없네요.”
“확실한 건 교체할 순 없다는 겁니다.”
“당연한 거 아닙니까? 이건 무조건 인공심폐기 사용해야 합니다. 그걸 이 환자가 지금 상태로 어떻게 견딜 수 있겠어요. 절대 안 되죠.”
박성민이 결사반대했다.
브레드 김도 같은 생각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방치할 수도 없다.
이미 비대해진 대동맥궁이기에 언제 터질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했다.
더욱 안 좋은 건 운명의 그 시간도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 말인즉, 대동맥궁의 혈관 벽이 견딜 수 있는 한계점에 다다랐다는 이야기다.
태수가 브레드 김에게 물었다.
“랩핑을 하는 건 어떨까요?”
“감싸 버리자고?”
“인공혈관을 넓게 펼쳐서 단단하게 감싸는 겁니다. 혈관 외부에 혈관 벽을 하나 더 만드는 식으로요.”
태수의 말에 브레드 김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나쁘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된다면 인공심폐기를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수술 시간도 훨씬 단축되고 부작용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브레드 김이 태수를 바라보며 눈을 크게 떴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지?”
“다른 혈관이지만 예전에 해 본 경험이 있습니다.”
“역시 닥터 최야.”
브레드 김이 감탄할 때였다.
박성민은 외려 걱정을 보였다.
“그런데 대동맥궁은 보통 혈관이 아니라는 게 문제잖습니까. 다른 혈관들까지 모두 랩핑식으로 수술하려면 상당히 까다롭습니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요.”
박성민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대동맥궁은 총 세 갈래로 나뉜다.
그중에는 머리로 혈액을 공급하는 경동맥도 있다.
대동맥궁이 파열되면 출혈보다 뇌에 혈액이 공급되지 않는 게 더 큰 문제로 지적될 정도였다.
그런 대동맥궁의 까다로운 구조를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감쌀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가장 굵은 혈관이라고 해도 많은 의사가 달려들 정도로 넉넉한 공간도 아니었다.
기껏해야 두 사람.
그 이상은 함께 수술할 수 없다.
태수와 브레드 김, 박성민의 시선이 빠르게 마주쳤다.
이 세 사람 중에 두 사람이 투입되어야 했다.
브레드 김과 박성민은 동시에 태수를 바라봤다.
“일단 가자고.”
동시에 합의를 본 두 사람의 시선이 서로에게로 향했다.
브레드 김이 먼저 물었다.
“속도 좀 납니까?”
“느리진 않습니다.”
“아까 망설이시는 거 같더니요.”
“수술 방법이 확실하니 이젠 그럴 이유가 없죠.”
두 사람 사이에 작은 신경전이 펼쳐졌다.
브레드 김은 흉부 쪽으로는 약하지만 경험이 풍부하다.
반면, 박성민은 분명히 흉부외과 전문의다.
이질적인 조합.
당연히 불협화음이 일었다.
다른 팀이라면 몰라도 1팀에서는 흔한 일이다.
신경전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훈훈한 모습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 시간이 없단 점이다.
태수는 더 기다릴 생각이 없기에 대기하고 있는 의료진들에게 부탁했다.
“도 선생하고 김 선생은 인공혈관을 넓게 펼쳐 줘. 송 간호사님하고 김 간호사님은 니들홀더에 봉합사를 최대한 많이 연결시켜 주시고요.”
“네!”
동시에 대답한 의료진들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태수는 그사이 서영우에게 부탁했다.
“선생님, 타이머 20분으로 맞춰 주십시오.”
“가능하겠어?”
“어떻게든 해 봐야죠. 더 시간 끌면 안 되잖습니까.”
“나도 그게 걱정이었어. 닫는 시간만 10분은 걸릴 테니까 말이야.”
“일단 시작하면 복부부터 닫으면서 시간을 최대한 줄이겠습니다.”
태수가 대답하자 서영우가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타이머 맞춰 놓고 5분 단위로 이야기해 줄게.”
“감사합니다. 그리고…….”
태수가 이어서 말하려던 순간이었다.
삑삑!
ECG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서영우가 재빨리 확인하고 소리쳤다.
“hemorrhage(출혈)!”
동시에 태수의 시선이 대동맥궁으로 향했다.
신경전을 벌이던 브레드 김과 박성민의 시선도 옮겨졌다.
대동맥궁의 한쪽에서 출혈이 시작됐다.
가장 압력이 높은 혈관이다.
그 출혈점이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지는 건 순식간이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수술을 하는 게 의미가 없어진다.
아니, 그 전에 막아야 한다.
“젠장! artificial blood vessel(인공혈관), 니들홀더!”
태수가 수술실이 떠나가라 외치며 환부로 다가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