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546
00549 549화
태수가 머뭇거리는 사이 김준혁이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나도 사람 새끼라서.”
“네? 무슨 말씀이신지…….”
“만약 김 선생이 지금 내 입장이라면 어떻게 할 거지?”
태수가 차분하게 묻자 김준혁이 당황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엑스레이를 찍으러 옮기지도 못하고…… 혹시 갈고리를 바로 뽑는 겁니까?”
“김 선생, 지금은 의과 교육 시간이 아니야.”
“죄송합니다.”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고, 내가 이쪽을 살피는 동안 김 선생은 저쪽을 살펴봐 줄 수는 있겠지?”
태수가 가리킨 건 배를 찌른 갈고리였다.
김준혁은 이해와 동시에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얼른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태수는 그 모습에 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무안하고 움츠러들 수도 있는 질책이다. 그러나 김준혁은 기죽지 않고 뭐라도 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전문의들보다 차라리 네가 낫다.’
태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이제부터가 진짜였다.
태수는 갈고리가 찌른 가슴을 차분하게 바라봤다.
가장 중요한 건 현재 이 속이 어떤 상태인지 확인하는 것이다.
망설이는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조정근이 회생할 확률이 줄어든다. 태수도 그걸 알기에 더는 고민하지 않았다.
‘해야 돼.’
단단히 마음을 다잡은 태수는 폐를 찌른 갈고리의 바로 옆에 손가락을 댔다. 아주 가볍고 부드러운 손짓이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감촉으로 태수는 우선 갈비뼈의 상태부터 상상했다. 3번부터 5번 늑골까지 부러진 게 손끝에 느껴졌다.
태수는 그 속이 어떻게 된 구조인지부터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수도 없이 수술한 폐의 위치와 모양이 바로 그려졌다. 그 그림을 토대로 태수는 더욱 자세하게 상상했다.
갈고리가 파고들어간 부분은 왼쪽 폐 윗부분이었다. 다행인 건 폐의 윗부분에는 동맥과 정맥이 흐르지 않는다.
지금까지 피가 흐른 건 단순히 폐 세포가 찢어지고 뭉개져 흘러나왔을 가능성이 높았다.
태수는 생각하면서도 폐를 살피는 손길을 멈추지 않았다.
‘여기는 그렇고, 여기는…….’
눈으로 보고, 손끝으로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머릿속으로 상상하고.
태수는 작은 미동조차 없이 온 신경을 조정근의 폐에 집중했다.
그렇게 살핀 후였다.
한 번 더 머릿속으로 정리한 태수가 이선정 간호사에게 말했다.
“준비할 게 몇 가지 있습니다. 그러니까…….”
태수가 하나씩 이야기하자 이선정 간호사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해 올게요.”
이선정 간호사가 몸을 움직인 사이, 태수는 ECG(심전도 모니터)를 확인했다.
아직까지는 안정된 수치에 큰 변동이 없는 모습이다. 언제 급변할지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할 일이지만 당장이야 큰 문제가 없었다.
흉부도 중요하지만 복부도 어떤 상황인지 확인해야 했다. 태수는 김준혁에게 다가가 물었다.
“어떻게 됐어?”
“출혈로 혈복강이 형성되었고, 비장이 비대해져 손끝에 느껴집니다.”
거기까지는 외과 의사라면 기본적으로 알 수 있는 내용들이었다.
태수는 더 자세한 정보를 원했다.
“그 외에는?”
“정확하게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김준혁의 목소리가 너무도 허탈했다.
자신의 한계가 여기까지라고 인정해야 하는 이 상황이 기분 좋을 리 없었다.
태수도 알지만 같이 약한 소리를 할 순 없었다.
“내가 볼게.”
“부탁드립니다.”
김준혁이 침울한 얼굴로 비켜났다.
태수는 바로 그 자리로 움직여 복부에 시선을 뒀다.
갈고리가 파고든 모습을 보는 건 태수도 처음이었다. 배 안에서는 호흡 확보가 더 중요했기에 복부까지 신경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태수는 흉부를 살필 때와 똑같이 손으로 만지고 머릿속으로 상상했다.
우선 김준혁이 이야기한 대로 혈복강과 비장 비대증이 느껴졌다.
그건 일부에 불과했다.
갈고리가 침투한 위치나 길이를 생각했을 때 신장과 췌장 또한 무사하진 못할 것 같았다.
확인을 마친 태수가 김준혁에게 말했다.
“우선…….”
태수가 간략하게 조치들을 설명하자 김준혁이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간호사님, 준비해 주세요.”
“네.”
옆에 있던 간호사가 엿들은 걸 챙기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직 이선정 간호사의 준비도 끝나지 않았다.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때까지는 괜찮을까?
그런 생각이 들자 태수가 마취의에게 물었다.
“어떻습니까?”
“아직까지는 괜찮습니다. 언제까지 이 상태가 유지된다고 확신하진 못하지만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신경 쓰고 있으니까 준비될 때까지라도 쉬세요. 너무 안색이 좋지 않습니다.”
태수를 향한 마취의의 시선에도 걱정이 떠올랐다.
“감사합니다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을 거 같습니다.”
“후우. 참.”
마취의의 얼굴이 씁쓸하게 변했다.
실력을 떠나 태수를 걱정하는 마음은 진심이었다. 태수는 그 하나로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내 김준혁에게 다시 시선을 돌린 태수가 말했다.
“그럼 준비 끝나면 갈고리를 빼자고.”
태수가 찡긋거린 순간이었다.
김준혁이 조심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선생님, 괜찮겠죠?”
“아니, 안 괜찮을 거야.”
“…….”
“괜찮을 리가 없지.”
태수의 말에 김준혁은 불안한 눈빛을 보였다.
마음을 아무리 단단히 굳히고 있다고 해도 절망적인 이야기를 들으면 힘이 빠지기 마련이었다.
차라리 힘을 주는 말을 해 준다면 억지로라도 힘을 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안 좋은 상황을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는 태수가 야속하기도 했다.
태수는 심적으로 동요하는 김준혁에게 차분하게 말했다.
“자신이 없으면 지금이라도 나가. 원망하지 않을 테니까 내키는 대로 해.”
“여기는 어떻게 하고요.”
“어떻게든 해야지. 어떻게든.”
태수는 곱씹듯이 이야기하며 굳은 눈빛을 보였다.
태수조차도 암담하지만 결코 포기한 모습은 아니었다.
김준혁은 그런 태수가 이해되지 않았다.
“말씀 중에 죄송한데, 그냥 어떻게든 할 수 있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건 나도 알아.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더 나은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아니요.”
“그러니까 어떻게든 해 본다는 거야. 설령 이 수술실에 나 혼자 남아 있는다고 하더라도 말이야.”
태수의 말이 끝났지만 김준혁은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눈빛이 가늘게 떨리고 있을 뿐이었다.
태수는 그런 김준혁에게 한마디 덧붙였다.
“곧 간호사들이 준비를 마칠 거야. 그때까지는 결정해 줬으면 좋겠어.”
“…….”
“다시 말하지만 원망하지 않아. 그럼 마음이 시키는 대로 결정하길 바라지.”
그 말을 끝으로 태수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뒤에 남은 김준혁의 눈빛은 가늘게 흔들리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태수는 지금까지 어떤 것도 강요하지 않았다.
수술실에 들어올 때도 도와 달라고 했을 정도였다.
여태까지 경험했던 어떤 의사들도 레지던트에게 그렇게 말해 주지 않았다.
태수가 전문의 1년 차라는 건 알고 있지만 그건 관계없었다.
이런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고 상대를 먼저 배려하는 게 쉽지 않단 걸 김준혁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태수는 그렇게 하고 있다.
그 모습이 계속 김준혁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그사이 이선정 간호사가 다가와 태수에게 말했다.
“준비됐어요. 다른 쪽은 아직 준비가 덜 된 거 같고요.”
“얼마나 걸릴까요?”
“길어야 3분 정도면 될 거 같아요.”
이선정 간호사가 시원하게 대답하자 태수는 김준혁 쪽을 턱짓했다.
“저쪽은 아직 준비가 덜 된 거 같습니다.”
“그때까지 기다려야 하나요?”
“곧 결정이 나겠죠. 그리고 최악의 경우도…….”
태수의 말이 이어지기도 전에 이선정 간호사가 당차게 말했다.
“각오하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아니요. 아저씨가 절 진짜 예뻐해 주시거든요. 그래서 바다에 나갈 때 큰 우럭 잡으면 선물해 준다고 했어요. 그거 받기 전까지는 절대 못 보내 드려요.”
“준다는 선물은 꼭 받아야죠.”
태수가 맞받아치자 이선정 간호사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전 공짜 좋아하거든요.”
“그래요.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가면 이 간호사님이 고생 좀 해 주셔야겠습니다.”
태수가 안 좋은 상황이 올 걸 대비해 돌려서 이야기했다.
그걸 알기에 이선정 간호사는 바로 얼굴을 굳히며 진중하게 대답했다.
“얼마든지요.”
“든든하네요.”
“사랑하는 사이니까요.”
이선정 간호사가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그건 억지 눈웃음이다.
어떻게든 무거워진 태수의 분위기를 바꿔 주려는 노력이다.
간호사로서는 송현미 간호사만큼이나 든든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김준혁이 멈칫했다.
간호사도 저렇게 적극적인데 의사인 자신은 무얼 갈등하는 걸까.
환자를 앞에 두고 갈등하는 이 상황이 스스로에게 창피했다.
지금까지 이런 환자를 경험하지 못했다. 그러나 앞으로도 경험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었다.
태수와 자신의 실력 차이는 하늘과 땅이다. 그러나 의사로서 마음가짐까지 그런 격차가 있다는 건 견딜 수가 없었다.
서서히 흔들리던 눈빛이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이내 안정을 되찾은 김준혁이 나지막이 태수를 불렀다.
“선생님.”
“그래.”
태수가 대답하자 김준혁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괜찮겠어?”
“생각해 보니까 전 레지던트였습니다. 책임은 전문의이시자 집도의인 선생님께서 지는 건데 제가 마음이 무거울 필요가 없는 거 같더라고요.”
“그런가?”
태수의 입꼬리가 묘하게 위로 올라갔다.
김준혁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모든 책임은 태수가 진다.
그 조건으로 들어온 수술실이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김준혁은 모든 문제에 면책 특권이 있었다.
당돌한 말이 어이없을 뿐이었다.
그때 김준혁이 이어서 말했다.
“그렇다고 설렁설렁할 생각도 없습니다.”
“그건 지켜봐야 알지.”
“네. 지금까지의 제 모습만으로는 이 말을 믿지 못하실 겁니다. 저 같아도 그럴 테니까요.”
김준혁의 말에 태수가 어깨를 들썩였다.
“아마도.”
“한번 지켜봐 주십시오. 제가 한다고 하면 진짜 겁나게 열심히 하는 놈이니까요.”
“그러지.”
“그런데 혹시 말입니다.”
김준혁이 슬쩍 운을 띄우자 태수가 의아하게 바라봤다.
“말해 봐.”
“이번에 잘하면 내년에 신속대응센터에 채용되는 겁니까? 특별 채용 같은 거 말입니다.”
개인적인 욕심이 느껴지는 말이다.
태수는 그런 김준혁에게 말했다.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좌우간, 자세한 건 일단 이 수술부터 끝낸 후에 이야기하지.”
“죽어라 따라붙겠습니다.”
김준혁의 목소리에 어느새 흔들림이 사라져 있었다.
태수는 왜 김준혁의 심경에 변화가 생겼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도움이 있다면 혼자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조치할 수 있다는 건 확실했다.
그때였다.
띡띡!
혈압과 맥박이 또다시 출렁이기 시작했다.
이젠 정말 갈고리를 빼야 할 상황이다.
“얼른 시작하세요. 안 그러면 진짜 못 버팁니다.”
마취의의 목소리도 다급했다.
태수와 김준혁의 시선이 마주쳤다.
김준혁을 보조하던 간호사의 준비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걸 기다릴 시간은 없었다.
“잡아!”
태수가 수술포를 덧댄 갈고리를 잡으며 낮게 소리치자 김준혁도 똑같이 했다.
두 사람의 시선이 한 번 더 마주쳤다.
태수가 긴장된 얼굴로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마지막 숫자를 셈과 동시에 태수와 김준혁은 똑같이 갈고리를 뽑아 들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힘에 이끌려 갈고리가 서서히 움직였다.
쩌적!
갈고리와 엉킨 조직들이 뜯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상처 부위가 벌어지며 출혈이 심해졌다.
ECG(심전도 모니터)도 더욱 크게 요동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