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55
00056 56화
태수는 외려 도성민 옆으로 가까이 다가와 환자를 살폈다.
“tender point(압통점) 위치가 좀 애매하긴 한데.”
“최 선생. 지금…….”
환자가 있기에 도성민이 애써 호칭을 고쳤다.
“쉿.”
태수가 얼른 손으로 입을 막는 시늉을 냈다. 환자에게 태수가 다른 병원 의사라는 걸 듣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이유는 모른 채 도성민은 우선 입부터 다물었다.
하지만 눈빛에는 궁금한 표정이 역력했다.
태수가 그런 도성민에게 가까이 다가가 조용히 물었다.
“그럼 그냥 지켜봐?”
“그래도.”
“일단 치료부터 하고 보자고.”
태수 말에 도성민이 깜짝 놀랐다.
“어떻게.”
“이런 케이스 환자 케어한적 있어.”
태수는 약간의 거짓말을 곁들였다.
아니, 아예 거짓말도 아니었다.
직접 경험한 건 아니지만 분명히 머릿속에 간접 경험한 케이스가 수백 건은 넘었다.
단지 그걸 모두 얘기할 수 없을 뿐이었다.
태수의 말에 도성민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거기는 그래?”
“이렇게 따질 시간 많아?”
“그건 아니지.”
“일단 X-RAY를 바로 촬영할 수 있는지 알아봐.”
태수가 힐끔 바라보자 도성민이 바로 고개를 저었다.
“이 상황에 그건 힘들지. 진짜 숨넘어가는 환자가 아닌 이상은.”
“그렇겠지?”
끄덕.
도성민이 고개를 끄덕이자 태수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말했다.
“그럼 가서 여기 가운 하나 가져오고, 드레인하고 소독할 것도 가져와.”
“진짜 할 수 있어?”
“해 봤다니까.”
“그래도.”
“어서.”
태수가 아예 도성민의 등을 떠밀었다.
그러나 덩치 좋은 도성민은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나중에 알려지면 문제되는데.”
“모교에서 다급한 일로 손 좀 보탰다고 누가 뭐래?”
태수가 나지막이 재촉하자 그제야 도성민이 민머리를 쓸어내렸다.
“하긴. 일단 다녀올게.”
조치를 해봤다는 태수였기에 도성민도 더 말하지 않았다.
더 밀려들 환자가 많기에 빠른 조치가 중요했다. 그리고 태수 말대로 타 병원 의사지만 모교기에 여기서만 말이 새어나가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도성민이 자리를 비운 사이 태수는 가볍게 목을 돌렸다.
“여기서 눈치 볼 필요는 없겠지?”
태수 얼굴에 자그마한 미소가 떠올랐다.
마음을 정리한 태수가 병상에 누운 환자에게 물었다.
“말씀하실 수 있으세요?”
“으윽. 네.”
“사고 당시 상황을 기억나는 대로 말씀해 주십시오. 그래야 더 빨리 치료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환자가 사고 당시 상황에 대해서 띄엄띄엄 설명했다.
태수는 한 마디도 빼놓지 않고 귀담아 들으며 머릿속으로 상상했다. 급정거할 때 운전대에 걸어둔 핸들봉이 오른쪽 가슴을 강타한 모양이다.
심장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부분이라 다행이었다.
환자 다리 밑에 걸린 차트를 든 태수가 거침없이 내용을 써내려갔다. 물론 작성자 이름은 도성민으로 하는 센스를 보였다.
그때 스크레쳐카 한 대가 이쪽으로 쏜살같이 다가왔다.
급히 스크레쳐카를 밀며 다가오던 동문 선배가 태수를 발견하고 멈칫했다.
“어? 태수야. 아직 안 갔어?”
“여기 사정이 너무 급한 거 같아서요.”
“그래도 오랜만에 쉬는 걸 텐데.”
“성민이 보조라도 해주면 조금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태수가 밝은 얼굴로 묻자 선배가 반색했다.
“그래그래. 좀 도와줘. 안 그래도 손이 모자랐는데.”
“대신 선배, 나중에……”
“자식이. 알았어. 술 살게. 아주 진하게. 됐지.”
“열심히 하겠습니다.”
“자식. 그럼 성민이 좀 도와줘라. 부탁한다.”
선배는 손을 내저으며 빠르게 멀어져갔다.
그만큼 응급실은 정신이 없었다.
아직 미숙하다고 생각되는 태수의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선배는 태수의 변화에 대해 모른다.
반면 태수는 나지막이 뇌까렸다.
“허락한 거지?”
태수의 얼굴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떠올랐다.
잠시 후 도성민이 흰 가운 하나를 들고 간호사 한 명과 같이 다가왔다.
간호사는 태수가 도성민에게 말한 것들을 의료카트에 끌고 온 상황이었다.
응급실 간호사는 낯선 태수를 보더니 멈칫했다.
“어머, 누구세요?”
“잠시만요. 도 선생 IV부터 연결해.”
태수는 일부러 간호사 말을 씹은 채 도성민에게 주문했다. 일단 그녀가 정신없는 틈을 이용해 일을 진행하는 게 옳았다.
“오케이.”
도성민은 거침없어 보인 태수 말에 빠르게 대답하고는 몸을 움직였다.
그 사이 태수는 고민했다.
새로 온 의사라고 소개할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그 거짓말이 들통 나는 데 1분도 걸리지 않을 일이다.
그냥 지나다가 도우러 왔단 말은 정말 말도 안 되는 변명이었다.
동문 선배에게는 통하는 말이지만 간호사들에겐 턱도 없었다. 게다가 앞으로 진행될 일이 어떤 식으로 변해 다른 사람 귀에 들어갈지 몰랐다.
동성의료원 외과 수간호사도 항상 간호사들을 주의하라고 충고했다.
만약에 비밀을 만들어야 할 때는 차라리 공범을 만들라는 이야기도 해 줬다.
함은선 간호사 사건 이후로 태수에게 호감을 보인 수간호사의 조언이다.
그 생각이 나자 태수는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우선 다들 바쁜 상황이라 여기까지 신경 쓰지 않았다. 게다가 응급실 중간중간 커튼을 쳤기에 시야가 상당히 제한됐다.
환자들이 서로를 가급적이면 보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고, 그 속에서 응급조치를 하고 있기도 했다.
여기까지 시선이 닿지 않는 걸 확인한 후에야 태수가 간호사에게 손을 내밀었다.
“샤프.”
“네?”
“빨리!”
너무도 당당한 태수의 말에 간호사는 자신도 모르게 알코올에 젖은 솜을 건넸다.
그걸 받는 순간 태수가 진한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이제 공범입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처치도구 건넸으면 책임을 지셔야죠.”
태수의 말에 간호사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아니, 그게 아니라.”
“쉿. 서로 그냥 조용히 있으면 아무 문제도 없을 겁니다. 아셨죠?”
“아이 참.”
간호사는 긍정도 부정도 못한 채 주변을 살피기에 급급했다.
해당 병원 의사가 아닌데 처치도구를 건넨 자체가 간호사들에게는 큰일이었다.
외부로 발설하면 자신이 덤터기 쓸 수도 있는 상황이다. 태수 말대로 일단 조용히 넘어가는 게 우선이다.
간호사가 애써 침착하게 태수를 설득하려 했다.
“여기까지만 하시면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요.”
“어쩌죠.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
“안 되겠다면.”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거죠.”
태수는 빙긋 미소를 짓더니 샤프로 환자 상의를 찢었다. 그리고 의료카트에서 능숙하게 알코올과 소독약을 꺼내 환부를 소독했다.
간호사는 그 모습에 다급하게 만류하려 했다.
“안 돼요.”
“됩니다. 도 선생, 리도카인 가져왔지?”
태수의 질문을 들은 도성민은 대답보다 주사기를 먼저 내밀었다.
받아든 태수는 그대로 환부에 찔러 넣었다.
그 모습에 간호사가 순간 입을 가렸다.
“읍!”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비명을 억누른 모습이다.
소독약까지는 어떻게 변명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주사제는 이야기 자체가 달라진다.
한편 태수는 간호사의 반응은 뒤로했다.
혈흉을 방치하면 어떤 병으로 발전할지 장담하기 힘들다.
이내 국소마취제 약효가 돌기 시작했는지 환자의 찡그린 얼굴이 서서히 편안해졌다.
태수는 그제야 도성민에게 차트를 내밀었다.
“도 선생이 마저 작성해.”
“어? 이거.”
“왜?”
“차트 읽어봐.”
태수가 차트에 미리 기입해놓은 걸 확인한 도성민이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내가 처치하고 네가 어시스던트?”
“핑계거리 좋잖아.”
태수가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하자 도성민이 주춤했다.
“그래도 이건 아닌데.”
“시간 없어. 그리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따라와.”
“어?”
“시작할게.”
태수는 그 말을 마침과 동시에 환자를 진료하기 시작했다.
X-RAY로 확인하지 못했지만 다른 방법이 있다.
핸들봉에 강타당한 부위가 보라색으로 피멍이 들어있다. 태수는 도성민의 청진기를 건네받자 목에 걸고는 살폈다.
역시 청진기 속에서 미약하게 이질적인 소리가 들렸다.
태수는 그 상태로 간호사에게 손을 내밀며 수술도구를 나지막이 말했다.
“메스.”
“아니, 그게.”
“시간 없다니까요.”
태수는 더 설득할 생각을 버리고 의료카트에 준비된 메스를 직접 집어 들었다.
보라색 피멍을 정확하게 가르자 검붉은 피가 몽글몽글 솟아올랐다.
그때였다.
두툼한 거즈가 다가와 피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태수가 바라보자 도성민 손길이었다. 그도 어엿한 레지던트다. 이정도 처지는 기본적으로 할 능력이 있다.
태수 시선을 느낀 도성민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일단 치료하자. 그 후에 얘기하고.”
“물론.”
도성민이 적극적으로 나서자 태수 몸에도 힘이 감돌기 시작했다.
“drain(배액관).”
“여기.”
“피 나오는지 봐봐.”
태수는 건네받은 삽관튜브를 그대로 환자 가슴에 찔렀다.
도성민은 이미 피를 받을 준비를 맞추고는 대기 중이었다. 이내 투명한 관을 타고 폐에 고였던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나온다. 나와.”
“그럼 여기 고정시켜. 난 다음 환자한테 갈게.”
태수는 뒤처리를 맡기고 옆 환자에게 다가갔다.
태수는 환자들에게 차분하게 질문하며 계속 진료를 이어갔다.
증상들도 다양했다.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respiratory tract obstruction(기도 막힘)증세를 호소하는 환자도 있었고.
cardiodynia(심장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도 있었다.
이미 응급의학과와 흉부외과 선배들의 손을 거쳐서 온 환자들이다.
중상인 환자는 없다.
모두 중상보단 가볍고 그렇다고 경상이라긴 애매한 중경상 환자들뿐이었다.
그렇기에 증상에 비해 난해한 환자들은 없었다.
태수는 한 명씩 순차적으로 1차적인 치료를 이어갔다. 태수가 정신없이 환자들을 치료하면 도성민이 의과로 올리거나 트랜스퍼 했다.
간호사는 이젠 모든 걸 포기한 얼굴로 태수의 뒤를 졸졸 쫓아다녔다.
그렇게 몇 명의 환자를 봤을까?
태수의 얼굴에 진땀이 흥건했다. 물론 옆에서 어시스던트하는 도성민은 얼굴이 아니라 머리까지 송골송골 땀이 맺힌 상태였다.
태수가 또 한 명의 환자 처치를 끝내고 도성민에게 말했다.
“이 환자는…….”
태수가 진행한 시술을 그대로 읊자 도성민은 차트에 받아 적기에 바빴다.
할 말을 모두 마친 태수가 이어서 말했다.
“이제 병동으로 올려.”
“잠깐만.”
“왜?”
태수가 묻자 도성민이 반문했다.
“너 도대체 거기서 뭐하고 있어?”
“뭐?”
“뭘 어떻게 하고 있는데 이걸 다 조치하냐고.”
도성민이 황당한 얼굴로 묻자 태수가 피식 미소를 지었다.
“넌 상상할 수도 없는 곳이야.”
“그 정도야?”
“이 정도는 조금 바쁜 정도? 그렇게 생각하면 돼.”
태수가 약간의 거짓말을 보태서 말하자 도성민이 멍한 얼굴로 말했다.
“이야. 장난 아니네.”
“자, 어서 다음 환자.”
“조금만 쉬었다가 하자.”
“저기 보고 그런 소리가 나와?”
태수가 가리키자 도성민이 고개를 돌려 확인했다.
아직도 환자가 밀려들고 있었다.
“젠장. 도대체 몇 중 추돌사고가 난 거야.”
투덜거렸지만 도성민은 지친 몸을 이끌고 또다시 바쁘게 움직였다.
그만큼 아직 쉴 때가 아니었다.
도성민이 환자를 의과로 옮기느라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였다.
태수는 또 다음 환자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그 손길이 처음보다 더욱 빨라졌다.
머릿속에 있는 것들이 점차 손에 익어가는 중이다. 그렇다고 태수가 건성으로 치료한 적은 단 한명도 없었다.
두 번, 그리고 세 번 확인하며 혹시 모를 부작용이나 합병증에 대해서도 폭넓게 살폈다.
이미 열 명 가까운 환자를 봤지만 이번이 처음 환자를 마주한 듯 꼼꼼하게 그리고 열성적으로 진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