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560
00563 563화
그러고 난 후였다.
툭.
봉합사를 끊은 태수는 피부를 절개해 흘러내린 피를 얼른 닦고 아기 몸을 옷으로 덮었다.
“됐습니다.”
태수의 말이 들렸지만 아기의 부모는 아직 동요하고 있었다.
안정될 때까지 지켜볼 시간은 없다.
태수는 조심스럽게 아기를 들어 아기 엄마에게 건네며 말했다.
“아기를 바로 안고 좀 더 옆으로 들어가세요.”
“네.”
“그럼 같이…….”
태수가 차 안으로 들어가려다 멈칫했다.
황원식이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태수마저 서울로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이선정 간호사를 보낼 수도 없다.
‘응급처치만이라도…….’
속으로 중얼거리던 태수가 멈칫했다.
두 사람이나 있다.
한 명은 태수가 직접 응급처치를 가르친 조영규,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역시 조서영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조영규보다 조서영이 필요했다.
태수는 지체 없이 다가가 조서영에게 말했다.
“서울까지 같이 좀 가 주세요.”
“제가요?”
조서영이 얼떨떨한 얼굴로 바라보자 태수는 낮게 말했다.
“장거리 이동이라 혹시 모를 응급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이 지금 서영 씨밖에 없어요.”
“전 의사도 아니고, 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그럼 여긴 왜 왔습니까?”
태수가 진지하게 묻자 조서영이 멈칫했다.
“그, 그건…….”
“제가 잘하려는지 감시하러 왔습니까?”
“아니에요, 그건 아니에요. 그냥 저도 모르게 몸이 움직였…….”
조서영이 엉겁결에 진심을 이야기했다.
태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바로 파고들었다.
“그 하나만으로도 서영 씨는 이미 의사입니다.”
“…….”
조서영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좋게 이야기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다른 환자가 방치된 상태이기에 태수의 인내심이 그리 많지 못했다.
기다리다 못한 태수가 따끔하게 한마디 했다.
“아기 머리를 위로, 다리는 아래로. 그것도 못합니까!”
“아, 아니요.”
“그럼 인공호흡 할 줄 몰라요?”
“알아요!”
윽박지르는 말투가 불쾌했는지 조서영도 강하게 반박했다.
그 표정을 본 태수는 바로 이어서 말했다.
“그거만 해 달라는데 그렇게 어렵습니까?”
“아니요.”
“그럼 빨리 타요!”
“네? 아, 네!”
조서영은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눈빛을 굳히며 차에 올랐다.
태수는 소리친 게 내심 마음에 걸렸다.
그렇다고 지금 길게 붙잡고 이야기할 순 없는 상황이었다.
조서영이 뒷좌석에 오르자 문을 닫은 태수가 아기 아빠에게 소리쳤다.
“출발하세요!”
이선정 간호사는 이미 수술 도구를 왕진 가방에 정리해서 뒤로 물러선 상태였다.
그런데 차는 출발하지 않았다.
황당한 태수가 얼른 조수석 창문을 통해 운전석에 소리쳤다.
“뭐 합니까? 빨리 출발 안 합니까!”
“어디로 가야 합니까?”
“…….”
“그냥 서울의 아무 병원이나 가면 되는 겁니까?”
아기 아빠의 물음에 태수가 아차 했다.
정작 어느 병원으로 가라는 이야기를 못한 터였다.
태수도 얼마나 마음이 급했는지 알게 해 주는 상황이다.
얼른 정신을 차린 태수가 빠르게 말했다.
“정희의료원으로 가십시오. 제가 전화해 놓을 테니까 응급실로 가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일단 출발해요!”
태수가 크게 외치자 아기 아빠도 얼른 가속 페달을 밟았다.
부아앙!
차가 거친 소리를 내며 보건소 정문을 빠져나갔다.
태수는 그 모습을 보지도 못했다.
이미 쓰러진 황원식에게 다가가 몸을 낮추고 있었다.
이동 시간이 길기에 전화하는 건 나중이었다.
태수가 황원식의 경동맥을 손으로 짚어 맥박을 확인하는 사이, 이선정 간호사는 혈압계로 혈압을 측정했다.
그 외에 몇 가지를 더 살핀 후였다.
곧 태수와 이선정 간호사의 시선이 마주쳤다.
“맥박은 크게 문제없습니다.”
“혈압은 너무 높아요.”
“일단 수술실로 옮겨서 호흡부터 확보하고 조치하죠.”
“준비하고 있을게요.”
이선정 간호사가 재빨리 보건소 안으로 내달렸다.
그사이 태수는 조영규에게 말했다.
“도와줘.”
“응!”
힘차게 대답한 조영규는 황원식을 부축하는 걸 도왔다.
축 처진 성인을 드는 건 쉽지 않았다.
“끙!”
“으아!”
몇 번이나 용을 쓴 후에야 황원식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곧장 보건소 안으로 들어갔다.
비지땀을 흘리며 수술실로 들어와 수술대에 황원식을 눕혔다.
이선정 간호사는 얼마 전에 들어온 ECG(심전도 모니터) 패드를 가슴에 부착했고, 그사이 태수는 인공호흡기를 연결했다.
띡띡.
ECG의 그래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역시 높아진 혈압이 쉽게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대로 혈압이 계속 높은 수치를 유지하면 언제 심장마비가 올지 모른다.
그런 상황까지 진행되도록 놔둘 순 없다.
태수가 이선정 간호사에게 말했다.
“vasodilator(혈관확장제) 투여해 주세요.”
“그거 없는데요.”
“없어요? 그럼 calcium antagonist(칼슘길항제)는요?”
“그것도…….”
이선정 간호사가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순간 태수는 어이가 없었다.
김석철 주무관에게 부탁했는데 아직도 구비되지 않은 모양이다.
고령 인구가 많은 이런 마을에는 필수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필수로 필요한 약품이 구비되지 않았다니 속에서 불이 훅 치고 올라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당장 전화해서 가져오라고 할 정도로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다.
태수는 대체할 주사제를 떠올리고는 혹시나 싶은 얼굴로 물었다.
“그럼 diuretics(이뇨제)는요?”
“그건 있어요.”
“IV 연결해서 diuretics부터 주사해 주세요. 그리고 포도당을 최대한 많이 부어 주시고요.”
“잠시만요.”
이선정 간호사는 오더를 받은 대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황원식의 팔에 IV가 연결되고 이뇨제가 추가되었다. 태수는 그사이 도뇨관을 삽입하고 소변통을 준비했다.
이뇨제를 투여하고 5분이 지났다.
그사이 커다란 크기의 포도당도 두 팩이나 들어갔다.
황원식의 몸에 수분이 엄청나게 늘었을 터였다.
이젠 소변만 나오면 된다.
그 생각으로 태수와 이선정 간호사는 소변통에 온 시선을 집중했다.
옆에 선 조영규도 한마디 말도 못한 채 초조한 얼굴로 기다렸다.
그러던 중이다.
뚝뚝.
소변통이 서서히 차오르기 시작했다.
태수의 시선이 바로 ECG(심전도 모니터)로 향했다.
예상대로 소변이 나오기 시작하자 혈압이 서서히 떨어지고 있었다.
“좋아!”
태수가 소리치자 조영규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툭.
조영규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린 후 태수는 이선정 간호사에게 부탁했다.
“포도당 하나 더 추가해 주세요.”
“바로 교체할게요.”
“그리고 뒷정리 좀 부탁합니다.”
“당연하죠.”
이선정 간호사도 안도했는지 빙긋 미소를 지으며 몸을 움직였다.
포도당을 더 추가하자 소변의 양이 서서히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혈압이 안정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선정 간호사는 이젠 한결 긴장이 풀린 얼굴로 수술실 정리를 시작했다.
그사이 태수는 조영규에게 한 번 더 부탁했다.
“아저씨 좀 옆방으로 옮기자.”
“그래. 얼른 가자.”
조영규는 태수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허둥거렸다.
그런 적극성을 본 태수가 처음으로 미소를 지으며 같이 몸을 움직였다.
이내 황원식을 옆방으로 옮기고 ECG(심전도 모니터) 상태를 한 번 더 확인했다.
안정적으로 변한 혈압은 쉽게 오르지 않았다.
이제야 조금 안도가 되는 것 같았다.
“진짜 진땀 뺐네.”
“수고했어.”
“너야말로. 도와줘서 진짜 고맙다. 아까 소리쳐서 미안하고.”
태수의 말에 조영규가 손사래 쳤다.
“아니야. 내가 도움이 되어서 진짜 다행이지.”
“그래. 그보다……. 아차, 전화!”
태수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서울에 전화를 해야 하는데 황원식의 상태에 집중하느라 깜빡한 터였다.
조영규도 그걸 직감했는지 얼른 태수에게 말했다.
“내가 여기 있을 테니까 전화하고 와.”
“그래도 될까?”
“얼른.”
“간호사님이 뒷정리 끝나면 이쪽으로 올 거야. 그때까지만 부탁할게.”
태수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인 후 몸을 움직였다.
진료실에 들어온 태수는 진료 의자에 풀썩 앉았다.
갑자기 일어난 일들에 정신이 하나도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태수는 해야 할 일이 있기에 다시 정신을 수습하고 휴대폰으로 석재봉 과장에게 전화했다.
“과장님.”
“오, 최 선생, 서울 올라왔나? 어디서 볼까?”
석재봉 과장의 반가움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태수는 상황부터 설명해야 했다.
“실은 지금…….”
짧고 간결한 설명이 끝나자 석재봉 과장의 목소리도 심각해졌다.
“알았어. 이쪽에 실력 좋은 신경외과 전문의 수배해서 대기시켜 놓지.”
“죄송합니다. 간만에 전화해서 이런 부탁을 먼저 하다니요.”
“우리 삶이 그런 거 아니겠어. 그보다 언제 올라오나?”
“안 그래도 한번 올라갈 생각입니다. 조카 얼굴도 보고 겸사겸사 과장님도 뵙고요.”
한시름 던 태수가 넉살을 부리자 석재봉 과장의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가 들렸다.
“꼽사리긴 하지만 생각해 준다니까 고맙네.”
“하하.”
“그래. 더 할 말이 많겠지만 그건 올라와서 하기로 하자고.”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중요한 통화를 마친 태수이지만 아직 안도하진 못했다.
이어서 바로 조서영에게 전화했다.
“네, 선생님.”
“아기 상태는요?”
“머리에서 흘러내린 액체가 계속 배로 들어가는 거 같아요. 계속 나오는데 이거 괜찮은 거죠?”
조서영은 걱정되는 목소리였다.
수두증에 대한 정보가 없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기에 태수는 차분하게 말했다.
“아주 정상적인 거니까 괜찮습니다. 다른 문제는요?”
“아기가 좀 칭얼거리기 시작했어요. 구토를 한 건 아니고, 다른 문제도 없는 거 같은데요.”
“뇌압이 줄어들어서 점점 정상적인 반응이 오는 걸 겁니다. 그래도 안심하지 말고 끝까지 지켜봐 주세요.”
“네, 그럴게요. 어? 잠시만요.”
조서영의 목소리가 멀어진 후 들려오는 건 아기 아빠의 목소리였다.
“선생님, 아버님은 어떠십니까?”
“운전 중 아니십니까?”
“스피커폰입니다.”
아기 아빠의 말대로 주변 소리까지 들려왔다.
태수는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아직 깨어나진 않으셨지만 혈압은 내려갔습니다.”
“아직도 안 깨어나셨다고요? 혹시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닙니까?”
“좀 주무시고 나면 개운하게 일어나실 겁니다. 이쪽은 걱정하지 마시고 운전 주의하세요.”
“그래도…….”
아기 아빠의 걱정 어린 목소리에 태수가 나지막이 말했다.
“무사히 깨어나실 거고, 집까지 두 발로 당당하게 걸어가실 겁니다. 저희가 계속 살피고 있으니까 아기에게 신경 쓰세요. 아저씨도 그걸 원하실 겁니다.”
“도대체 어쩌다가…….”
“제가 좀 더 신중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죄송합니다.”
태수가 사과하자 아기 아빠가 질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 말씀 마세요.”
“좌우간 그건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고요. 이쪽은 걱정 말고 안전 운전 하십시오. 운전 중이시니까 그만 끊겠습니다.”
태수는 그렇게 통화를 마무리 지었다.
길게 이야기할 상황도 아니거니와 통화를 이어 가 봐야 아기 아빠의 걱정만 더해질 걸 걱정한 터였다.
운전할 때는 근심을 덜어내고 일단 운전에 집중하는 게 좋았다.
이내 태수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몸을 돌렸다.
황원식이 깨어날 때까지는 곁에 있을 생각이었다.
시간이 흘러 깊은 밤이 찾아왔다.
이기남 이장을 포함한 마을 사람들이 몇몇 다녀갔다.
그들도 걱정이 된 모양이었다.
아직 황원식은 깨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후면 깨어날 터였다.
괜히 많은 사람이 주변을 서성거리면 깨어나도 다시 불안함을 느낄 수도 있었다.
태수는 마을 사람들을 안도시키며 정중하게 돌려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