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564
00567 567화
한 번 된서리를 맞은 태수는 살짝 고민했다.
갈까?
하지만 그러기에는 잡은 게 없었다.
칼은 이미 뽑았는데 녹만 슬게 할 순 없다.
한 마리만.
딱 한 마리만.
그렇게 생각한 태수는 낚싯대를 더욱 강하게 쥘 뿐이었다.
그는 몰랐지만 여긴 낚시 포인트가 아니었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른 뒤였다.
태수의 얼굴에는 어느새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머리카락부터 안에 입고 온 티셔츠까지 축축하게 젖은 상태였다.
파도에 부서진 바닷물들이 가랑비처럼 계속 몸을 적신 탓이다.
해안가 낚시는 여유였다면 갯바위 낚시는 투쟁이다.
어설픈 마음으로 달려들었던 시간은 떠나보낸 지 오래였고, 이젠 태수도 눈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입질은 아직 한 번도 오지 않았다. 더구나 강한 바닷바람이 불어와 체온을 빼앗아 가는지 추위도 느껴졌다.
설상가상으로 배도 고팠다.
낚시 가방이 사라진 터라 준비한 간식들도 함께 훌훌 날아간 상태였다.
점점 주위 상황이 안 좋게 돌아가자 태수의 표정이 굳어졌다.
여기서 계속 버티는 게 현명할까?
아직 한 마리도 낚지 못했는데.
하지만 계속 고집을 부린다고 자연에 맞설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몇 번의 고민 끝에 태수가 나지막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작전상 후퇴다.”
어쩔 수 없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갯바위 낚시에 도전한 그의 무모함이 만들어 낸 결과였다.
태수는 끝까지 놓지 않고 있던 낚싯대를 그제야 거둬들였다.
척척.
손에 익은 낚싯대를 정리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더 챙길 것도 없기에 태수는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 여기까지 건너온 바위를 찾아 역순으로 돌아가려 할 때였다.
발을 내딛던 태수가 멈칫했다.
“뭐야?”
그는 너무도 놀라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뇌까렸다.
지금 태수가 서 있는 갯바위 외에는 모두 바다였다.
뻔히 그 모습을 보고 있는 태수의 두 눈이 사정없이 떨려 왔다.
분명히 조금전만 해도 갯바위들로 가득했었다.
그런데 불과 2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그 갯바위들이 모두 바닷물 속에 잠겨 보이지 않았다.
물론 동해에도 밀물과 썰물이 있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차이가 클 줄은 몰랐다.
“여기가 서해야?”
기가 막혔다.
황당함도 잠시였다.
일단 빨리 건너가야 한다.
지금 서 있는 갯바위도 언제 잠길지 모른다.
태수는 장화 신은 발을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건너 왔던 갯바위가 있던 위치였다.
그런데.
풍덩.
바닷물만 밟히자 얼른 발을 회수했다.
혹시나 몰라 살살 발끝으로 더듬어 봤다.
다행히 갯바위 하나가 걸렸다.
그러나 그걸 딛고 건너갈 수가 없었다.
절벽까지는 대략 30여 미터 정도인데 바다에 잠겨 보이지도 않는 갯바위를 하나씩 더듬어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더구나 파도도 점점 거칠어져만 갔다.
수영은 조금 하지만 이런 파도에?
위험해도 한참 위험했다.
그렇다고 마냥 기다릴 처지도 아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태수는 결국 우의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휴대폰을 꺼내 든 그는 작동 여부부터 확인했다.
다행히 바지 주머니에 넣어 놔서 바닷물의 습격에서 안전할 수 있었다.
‘이거 쪽팔려서.’
생각은 그랬지만 생존이 우선이었다.
욕먹을 각오까지 단단히 굳힌 후에야 태수는 이기남 이장에게 전화했다.
“어쩐 일이야. 저녁에 술 한잔하자고?”
“아, 제가 지금, 그러니까…….”
“뭘 어려워해.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라니까.”
이기남 이장이 부드럽게 권유하자 태수가 어렵사리 현재 상황을 이야기했다.
“여기 항구 오른쪽에 있는 절벽 아래입니다.”
“절벽 아래?”
“갯바위 낚시 한다고 왔는데요, 주변 상황이 좀 그러네요.”
태수의 둘러대는 말투.
그러나 이기남 이장은 이 마을에서 평생 살아온 사람이다. 태수가 하는 말을 바로 알아듣고 목소리가 심각하게 변했다.
“이 사람아, 오늘이 몇 달 사이에 가장 바람이 많이 불고 조석 간만의 차이도 심한 날인데, 이런 날 갯바위 낚시를 가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러게 말입니다. 여쭤 보고 왔어야 했는데요. 다음에는 꼭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고. 그래서 지금 절벽에 붙어 있다는 거야?”
“아니요. 절벽까지 대략 15미터 정도는 되는 거 같습니다.”
태수의 대답이 끝난 순간이었다.
이기남 이장의 성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갯바위에 갇혀 있다는 거야?”
“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웃을 일이 아니야! 거기, 거기 꼼짝 말고 있어!”
뚝!
버럭 화를 낸 이장의 목소리가 마지막이었다.
태수는 휴대폰을 들고 어색한 미소를 지어야만 했다.
그것도 잠시였다.
계속 밀어닥치는 파도가 갯바위에 부서져 태수를 위협했다.
얼른 휴대폰을 우의 속, 바지 주머니에 넣은 그는 두 다리에 더욱 힘을 줬다.
낚시의 즐거움은 이미 사라졌다.
이젠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애를 써야 할 때다.
“어쩌다 이 꼴이 됐나.”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지만 태수는 고개를 저었다. 일단 무사히 빠져나간 후에 생각해도 늦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지루하고 긴장된 시간이지만 그리 오래 지난 것 같진 않았다. 물론 이 상황을 견뎌 내고 있던 태수는 그 시간마저도 길게 느껴졌다.
철썩철썩.
쉴 새 없이 몰아쳐 온 파도에 태수는 이미 흠뻑 젖었다. 바람까지 살벌하게 불어 체온을 사정없이 빼앗아 갔다.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이가 저절로 부딪칠 정도였다.
“으으…….”
태수는 바다를 등지고 팔짱을 낀 채 상체만 웅크린 상태였다.
지금 상태에서는 체온을 가장 덜 빼앗길 수 있는 자세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하석준 팀장이 선물해 준 낚싯대는 놓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도 큰 소용이 없다는 건 태수도 알고 있었다.
언제까지 기다림이 계속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제야 태수도 자신의 무모함을 후회했다.
저체온증.
늘상 마을주민들에게 경고했던 그 상황이 자신에게 닥쳤다는 걸 깨달았다.
“미치겠네.”
태수 가슴이 바짝 조여들었다.
그때였다.
뿌우!
뒤에서 들려오는 뱃고동 소리.
태수의 두 눈이 번뜩이며 바로 뒤를 돌아본 순간이다.
태수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아!”
태수를 향해 달려오는 어선.
한 척이 아니라 무려 세 척이다.
각 배의 갑판에는 두세 명의 낯익은 마을 사람들이 서 있었다. 모두 한 손에 두툼한 담요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그걸 본 태수는 가슴이 뭉클했다.
자신이 뭐라고.
이렇게 사고나 치고 있는 자신을 위해 저 많은 사람들이 달려오고 있다는 게 가슴 벅찰 뿐이었다.
그사이 배 한 척이 빠르게 태수에게로 다가왔다.
갯바위가 많은 지역이라 더 이상의 접근은 힘들었다. 행여 바위에 충돌이라도 하면 좌초나 침몰할 위험이 큰 탓이다.
그 배 갑판에 서서 태수에게 소리치는 건 이기남 이장이었다.
“최 선생, 이거 받아!”
휘리릭!
날아오는 건 줄을 매단 구명조끼였다.
하나가 날아오는 게 아니라 뒤따라 도착한 배 갑판에 선 다른 마을 사람들도 똑같이 태수를 향해 구명조끼를 던졌다.
몇 개의 구명조끼가 날아왔지만 강한 바람 탓에 정확도가 떨어졌다.
그래도 하나는 태수에게 똑바로 날아왔다.
이기남 이장이 던진 구명조끼였다.
척.
얼른 잡아 든 태수가 바로 구명조끼를 입자마자 이기남 이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심해.”
그 말을 끝으로 배에 달린 로터로 당기기 시작했다.
바닷물에 들어가야 할 상황.
태수는 하석준 팀장이 선물한 낚싯대만 품고 그대로 바다에 뛰어들었다.
차가운 바닷물이 온몸을 급습했다.
그러나 태수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한 손을 크게 휘저었다.
그와 동시였다.
“당겨!”
이기남 이장의 목소리가 엔진 소리보다 더욱 크게 들려왔다.
다른 어선에 있던 마을 사람들도 이기남 이장의 어선으로 건너와 힘을 합쳐 같이 당기는 게 보였다.
그 모습에 태수는 또 한 번 뭉클했다.
두 눈이 뻘겋게 충혈되는 건 꼭 차디찬 바닷물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배에 승선한 태수는 그대로 갑판에 널브러졌다.
“감사합…… 니다.”
“이 사람이 제정신이야!”
“죄송합니다. 으으…….”
“으이그!”
태수가 추워하자 이기남 이장이 질렸단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도 사방에서 날아온 담요로 직접 태수를 꽁꽁 싸맨 이기남 이장이 소리쳤다.
“회항하자고!”
뿌우!
한 번 더 경적을 울린 배가 빠르게 항구로 향했다.
태수는 무사히 육지로 돌아왔다.
동시에 마을 사람들에게 이끌려 간 그는 항구에서 가까운 김동석의 집에 도착했다.
김동석도 이미 소식을 들었는지 바로 방으로 안내했다.
“이쪽으로.”
방 안은 뜨끈뜨끈했다.
이기남 이장은 태수를 침대에 뉘이며 으르렁거렸다.
“한 번만 더 이래 봐.”
“죄송하다니까요.”
“말은. 진짜……. 됐으니까 쉬어.”
이기남 이장이 한 대 쥐어박을 듯한 기세였지만 억지로 억누르며 돌아섰다.
그 뒷모습을 본 태수가 퍼렇게 질린 입술로 나지막이 말했다.
“감사합니다.”
“……쉬라니까 헛소리는.”
이기남 이장은 툴툴거리며 방 밖으로 나갔다.
쿵.
혼자가 된 태수도 쓴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체온을 너무 빼앗기고 체력도 많이 저하됐다.
일단 잠부터 자야 할 것 같았다.
다음 날.
깊은 잠에서 깨어난 태수는 푸짐하게 차려진 상에서 식사 중이었다.
그의 반대편에서는 김동석이 잔소리 중이었다.
“그러니까 왜 말도 없이 거길 가냐고.”
“저 체합니다.”
“의사니까 약은 알아서 먹을 거 아니야. 잔소리부터 들어.”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그래도 소용없으니까 잔소리 들으라고. 갯바위가…….”
김동석은 그 후로도 계속 갯바위 낚시가 얼마나 위험한지 열변을 토했다.
넉살 좋은 태수이기에 웃으며 흘려 넘겼다. 물론 상황을 흘려 넘겼다고 김동석의 걱정까지 흘린 건 아니었다.
진지한 충고를 태수는 심각한 얼굴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우여곡절 넘치는 식사가 끝났다.
김동석에게 마지막까지 잔소리를 들으며 인사를 마친 태수가 터덜터덜 나설 때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낚싯대가 없었다.
‘또 사야 하나?’
잠시 고민할 무렵, 이기남 이장이 마침 다가오고 있었다.
태수는 그를 보자마자 얼른 고개를 숙였다.
“이장님, 어제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몸은?”
이기남 이장의 목소리가 어딘지 모르게 퉁명스러웠다.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너무도 잘 알기에 태수는 계면쩍은 얼굴로 대답했다.
“덕분에 아주 멀쩡해졌습니다.”
“따라와.”
이기남 이장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돌아섰다.
지은 죄가 있기에 태수는 어쩔 수 없이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내 이기남 이장이 도착한 곳은 선착장이었다. 포구엔 몇 척의 배가 정박해 있었고 한적함이 물씬 풍겨 왔다.
아니, 주변에는 사람 하나 없었다.
그때 이기남 이장이 태수에게 말했다.
“왜 그러고 서 있어?”
“네?”
“얼른 타.”
이기남 이장은 자신의 배를 가리켰다.
갑자기 왜 배에 타라는 걸까?
의아한 태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일단 배에 올랐다. 뒤따라 배에 오른 이기남 이장은 곧 조타실로 모습을 감췄다.
그러고 난 후였다.
푸르릉!
시동이 걸리더니 배가 서서히 선착장을 떠나기 시작했다.
아직도 태수는 무슨 일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잠시 후, 배는 마을이 손톱만 하게 보일 정도로 바다 멀리 나왔다.
푸드득.
갑자기 시동이 꺼졌다. 배 위에 적막감이 감돌자 태수는 더더욱 의아한 표정으로 변했다.
그때 이기남 이장이 다가왔다.
한 손에는 낚싯대가, 다른 손에는 양동이가 들려 있었다.
그 낚싯대는 태수가 그 고초를 겪으면서도 쥐고 있던 게 분명했다.
어디 갔나 했더니.
이기남 이장이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다시 찾았다는 기쁨과 함께 자그마한 미소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