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59
00060 60화
췌장과 이어진 십이지장에 좁쌀만 한 점들이 발견됐다. 몇 번이나 다시 확인하고 확대해서 봐야할 만큼 작은 점들이다.
카프레네의 임상경험이 아니라면 절대 알아채지 못할 정도의 크기였다.
태수는 그제야 찝찝함의 정체를 풀었다.
‘안 좋아.’
아무리 봐도 종양이 생성되는 중이거나 생성된 상태다.
처음엔 너무도 작아 발견하지 못 했다. 아니, 그만큼 주의해 보지 않으면 누구라도 지나쳐 갈 정도였다.
하석준 과장이 발견하지 못했다는 걸 책망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이게 어떤 종양인지에 대해서 궁금할 뿐이다.
생검을 한다면 바로 확인이 가능하긴 했다.
생검이란 생체에서 조직 소편(小片)을 채취해 각종 검사를 하는 걸 의미했다. 암이나 염증성 검사에 많이 사용되는 방법이기도 했다.
양성인지 악성인지를 확인하지 않는다면 어떤 확진도 낼 수 없다. 하지만 태수가 생검을 단독적으로 진행할 순 없다.
‘골치아프네.’
의료 선후배체계가 확실한 한국 내 병원에서 일개 레지던트 신분으로 그런 독단적인 행동은 최악이다.
하석준 과장에게 이 문제를 먼저 거론한다면 그동안 보였던 호의어린 눈빛이 졸지에 돌변할지도 몰랐다.
건방진 놈이란 시선을 한몸에 받아야했다.
그래도 해야한다.
솔직히 다른 환자라도 이렇게 묻어둘 생각은 없다. 하물며 어머니인데 절대 넘어갈 수 없는 문제다.
병원 조직의 룰을 어그러뜨리며 생검을 진행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방법을 연구할 것인가부터 고민해야 했다.
“젠장.”
태수의 입에서 진한 짜증이 흘러나왔다. 이상한 부위를 간파하고도 기회를 봐야하는 자신의 위치가 정말 싫었다.
하나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만약에 자신의 머릿속에 카프레네 임상 경험이 없었다면 알아챌 수도 없는 문제다.
그 생각을 할 때였다.
“카프레네?”
순간 태수의 눈빛이 밝게 빛났다.
자신의 이미지에 타격을 주지 않으면서도 생검을 실시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이 생각난 탓이다.
태수가 만족한 듯 씩 웃었다.
“어쩔건데.”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힘이 실려나왔다.
만 이틀이 지났다.
인슐린으로 호르몬을 보충하고 리도카인으로 통증을 완화 시켜서 그런지 어머니 얼굴이 많이 밝아졌다.
게다가 소화가 잘되는 미음과 영양죽을 꾸준히 먹었는지 얼굴에 붉은 기운도 감돌았다.
수술 전날이라 한 번 더 검사를 진행했다.
검사결과에 하석준 과장은 만족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수술해도 이상 없겠어.”
“감사합니다.”
“감사는 어머니에게 해야지. 아무래도 아들이 지켜보니까 더 열심히 치료에 따라주시는 거 같던데.”
“그래도 과장님께 감사합니다.”
“하하. 그럼 내일 컨퍼런스에서 마저 이야기 하자고.”
하석준 과장이 기분좋은 듯 말을 마무리 짓자 태수는 크게 고개 숙이며 과장실을 나섰다.
좋은 소식을 알리기 위해 태수는 바로 어머니 병실로 향했다.
자신이 봐도 당장 수술해도 이상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종양을 확인할 방법까지 강구해 놓은 상황이라 그런지 태수 얼굴이 싱글벙글했다.
그러던 중 멀리서 다가오는 문승현 모습에 태수가 얼른 인사했다.
“고생하십니다.”
“그래서?”
또다시 삐딱한 문승현 태도에 태수는 조금 당황했다.
“네?”
“실력도 없는 레지던트라 뭐 빠지게 돌아다니는데, 보고 있으니까 즐겁냐?”
“무슨 말씀이십니까?”
“됐다. 비켜”
툭!
문승현은 감정적으로 어깨를 밀치며 지나쳐갔다.
“뭔데?”
태수도 사람인지라 거듭된 문승현 행동에 슬쩍 짜증이 났으나 이내 마음을 비웠다.
어머니를 보러 가는 길이었기에 더 이상 인상 찌푸리고 싶지 않았다.
다시 걸음을 옮긴 태수가 어머니의 침상이 있는 병실에 도착했다.
어머니는 병원 측의 배려로 널찍한 4인실에 머물고 있다. 말이 4인실이지 실제로 침상 두 개만 운영해 2인실과 비슷한 구조였다.
게다가 6인실만 해당하는 건강보험을 교묘하게 적용시킨 상태였다. 의료비 부담을 줄여주면서도 특혜를 줬다.
아무래도 그 일에는 석정현 이사장의 입김이 들어간 게 아닐까 싶었다.
역시 보답하는 길은 열심히 일하는 것뿐이었다.
이내 씩씩하게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간 태수가 어머니에게 다가갔다.
누나에게는 눈인사만 한 후 어머니에게 밝은 목소리로 좋은 소식부터 알렸다.
“내일 예정대로 수술 진행할 겁니다. 아침에 회진 돌면서 다시 과장님이 말씀하실 거고요.”
“그래그래. 다 우리 아들 덕분이야.”
“아닙니다. 그보다 다음에 또 이렇게 병 키우시면 저 정말 화낼 겁니다.”
“알았다니까.”
어머니도 잔소리는 싫은지 건성으로 대답하며 넘겼다.
잠깐 자리잡고 태수는 어머니에게 그 동안 하지 못한 이야기를 조금 곁들였다.
아무리 외과 전체가 태수를 배려해준다고 해도 레지던트 1년차임에는 변함이 없다.
다른 레지던트들이 도와주는 만큼 태수도 해야 할 일을 빼먹지 않았다.
덕분에 어머니 옆에 계속 있긴 힘들었다. 하지만 모처럼 시간을 내 잠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렇게 10여분 정도 이야기를 마친 후였다.
“그럼 가 볼게요. 다른 환자도 진료해야해요.”
“그래.”
“어디 편찮으시면 바로 말씀하세요. 누나.”
태수가 부르자 누나는 바로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바로 너한테 전화할게.”
“그럼 가볼게.”
인사를 마친 태수가 돌아설 때였다.
옆에 있던 40대 초반의 여자환자가 슬쩍 태수를 불렀다.
“선생님.”
“네. 어디 불편한데 있으세요?”
“연성대학병원에서 인턴하셨다고요?”
“네? 아, 네.”
태수가 얼떨떨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무래도 어머니가 이야기한 모양이다.
틀린 말도 아니었지만 굳이 내세울 이야기도 아니다.
그러나 환자는 다른 모양이었다.
“저 좀 한 번 더 봐주세요. 다리도 뻐근한 거 같고, 몸도 계속 찌뿌듯하고요.”
“과장님 불러드릴까요?”
“선생님이 그냥 보시면 되지, 뭘 불러요. 여기까지 스카우트 돼서 왔으면 얼마나 잘 할 거야. 그렇죠?”
환자의 말에 태수가 멈칫했다.
스카우트?
그러나 이어서 들려오는 환자의 말에 태수는 기가 막혔다.
“선생님 어머니한테 다 들었어요. 얼마나 잘하면 멀리까지 스카우트 돼서 왔을까. 그러니까 저 좀 한 번 더 봐줘요.”
“아니, 그게 아니고요.”
“그러지 마시고요.”
환자의 끈질긴 부탁에 난감해진 태수가 슬쩍 어머니를 바라봤다. 어머니는 아예 고개를 반대로 돌려 태수 시선을 피하는 상태였다.
태수는 그 모습에 짜증이 나기보다 귀엽다는 느낌이 먼저 들었다.
아직도 동네 이웃들에게 자신을 자랑하고 다닌단 소문은 들었다. 그런데 같은 병원에 입원한 환자에게는 오죽할까?
어머니의 자부심이 만들어낸 웃지 못할 이벤트였다.
결국 태수는 가볍게 환자 상태를 확인하고 조언을 전해준 후에야 병실을 나섰다.
그 순간 태수 머릿속에 문승현의 차가운 태도가 스쳤다.
‘이래서 그랬나?’
만약 그렇다면 이해하고 넘어가야 했다.
드디어 수술날 아침이 밝았다.
오늘도 어김없이 7시에 과장을 필두로 태수까지 의사들이 총 출동해서 환자들과 아침인사를 나눴다.
병실을 하나씩 돌던 중 어머니 병실에 도착했다.
어머니 앞에 우르르 선 의사들 중 하석준 과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어머님, 오늘 컨디션은 어떠세요?”
“며칠 전보다 훨씬 좋아졌어요.”
“그래도 수술을 받으셔야 더 좋아지십니다.”
“그럼요.”
어머니가 환하게 대답하자 하석준 과장은 다소 안도한 얼굴로 이야기 했다.
“오늘 수술은 제가 진행할 겁니다. 여기 옆에 있는 이명석 선생님이 잘 보조해줄 겁니다.”
과장의 소개에 이명석 치프가 가볍게 고개 숙였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 네. 그런데 과장님.”
어머니의 부름에 하석준 과장이 바로 응답했다.
“네. 말씀하시죠.”
“우리 태수는…….”
“최 선생이요? 어머니가 무사히 수술을 받고 나오시면 며칠 동안 전담으로 간호하게 할 겁니다. 최 선생이 아주 잘 해낼 거고요.”
하석준 과장이 태수를 칭찬했지만 어머니 얼굴은 오히려 어두워졌다.
“과장님. 수술 다시 생각해 봐도 될까요?”
“네? 어머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마른하늘의 날벼락 같은 말에 하석준 과장 얼굴이 황당하게 변해갔다. 뿐만 아니라 옆에 있던 치프 및 레지던트들은 물론 태수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먼저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어머니가 앞선 탓이다.
이렇게 되니 상황이 난감해진 태수가 쓴 미소를 삼켰다.
그때 어머니의 대답이 들려왔다.
“전 과장님이 말씀하시기 전까지 태수도 함께 수술해주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면 좀 그러네요.”
“음.”
하석준 과장 얼굴에 작은 당혹감이 스쳤다.
그때 태수가 얼른 나서서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 제가 아직 수술실에 들어갈 정도는 아니고요.”
“난 그랬으면 좋겠어.”
완강한 어머니의 모습에 태수도 난감했다.
어머니는 평소에는 자신을 업고 다닐 정도로 떠받들어줬다. 오히려 그런 믿음이 만들어낸 완곡함이었다.
태수도 마음 같아서는 직접 집도하고 싶다.
하지만 그게 마음처럼 쉽지 않다는 게 문제였다.
최고가 어시스던트다.
그조차도 이명석 치프가 버티고 있기에 쉽지 않다.
그래서 생각한 건 참관이다.
허나 그걸 지금 말할 순 없는 문제라 태수만 중간에서 난감했다.
그때 태수를 벼랑 끝에서 구해준 손길이 있었다.
“그럼 최 선생도 수술에 참여시키겠습니다.”
“네? 과장님.”
“조용.”
하석준 과장의 말에 태수가 멈칫했다.
그러나 하석준 과장은 개의치 않고 다시 어머니에게 말했다.
“최 선생이 어머니가 수술하시는 걸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볼 겁니다. 그러면 수술하시겠습니까?”
“음.”
“원래 의사들은 자기 가족은 수술하지 않습니다. 만약에 잘못되면 그 죄책감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어머니도 그건 좀 이해를 해주셔야 되는 부분입니다.”
차분한 하석준 과장의 목소리에 어머니 눈빛이 조금씩 흔들려갔다.
병원에서 오래 환자들을 다뤄본 만큼 차분하면서도 다부진 하석준 과장의 목소리가 신뢰를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고민하던 어머니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태수를 위한 거라면요.”
“그럼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대신에 최 선생이 직접 어머님을 수술실로 모셔올 거고, 끝날 때까지 절대 내보내지 않겠습니다. 그럼 되겠죠?”
끄덕.
어머니가 확답하듯 재차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하석준 과장 얼굴이 피어났다.
태수 또한 바라던 일이기에 속으로 한시름을 놓았다.
다만.
‘또 찍혔네.’
옆에서 노려보는 여러 시선이 느껴졌다.
어머니는 몰랐지만 태수를 난처하게 만든 상황이다.
이어서 회진을 마친 후 외과 의사 모두가 당직실에 들어왔다.
컨퍼런스를 위해서였다.
그때 하석준 과장이 말했다.
“일단 컨퍼런스부터 시작하지.”
그 말에 이명석 치프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TV를 켜고 준비된 자료를 브리핑하기 시작했다.
“53세 여자환자로 3일 전에 입원했습니다. chronic pancreatitis을 앓고 있으며 오늘 pancreas(췌장) 절제술을 실시할 예정입니다. 입원 후…….”
이어지는 컴퍼런스는 어머니의 수술과정까지 세세하게 설명한 후에야 끝이 났다.
하석준 과장은 기나긴 컨퍼런스가 끝난 후에야 입을 열었다. 그런데 나온 말이 조금 파격적이다.
“예정대로 어시스던트는 치프가 맡고, 최 선생도 수술에 한손 보탠다.”
“알겠습니다.”
“아, 최 선생이 오해할지도 몰라서 묻는 데, 왜 의사들을 혈육수술에 참여시키지 않는 줄 아나?”
하석준 과장 질문에 태수는 바로 대답했다.
“집도 혹은 어시스던트시 멘탈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 원칙적으로는 수술을 해도 상관은 없어. 하지만 예상치 못한 경우가 발생했을 때 내 가족이기 때문에 더 냉정하기가 힘들어.”
“네.”
“그 점은 최 선생이 이해해줬으면 하고, 이번 기회를 통해 의학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은 공부를 할 수 있길 바라지.”
“감사합니다.”
태수가 인사하자 하석준 과장이 말했다.
“그럼 이쯤에서 컨퍼런스는 마치고, 다들 각자 일 보도록 해.”
“수고하셨습니다.”
모두의 인사를 받은 하석준 과장은 천천히 일어나 당직실을 나섰다.
그때였다.
문승현이 슬쩍 태수를 향해 비아냥거렸다.
“스카우트까지 받아서 이 시골에 내려오신 분인데 오늘은 활약을 못하게 생기셨네.”
“선배님.”
“아아, 어머니 수술은 잘되길 빌지. 근데 연세가 있으셔서 힘드실텐데.”
문승현의 도를 넘어선 이죽거림에 태수 얼굴이 순간 사납게 굳어졌다.
어머니 일이다.
아무리 선배라도 지켜야 할 선이 있다.
‘이 인간이.’
태수가 막 폭발하려는 순간 이명석 치프의 날카로운 한마디가 들려왔다.
“문승현. 너 말 조심해라.”
“치프.”
“다른 사람도 아니고 최 선생 어머님이야.”
“…….”
문승현이 순간 말을 하지 못하자 이명석 치프가 이어서 말했다.
“사과해라.”
“그래도.”
“이건 니가 잘못한 거야. 둘 사이가 아무리 엿 같아도 가족 이야기는 아니지. 건드려서 안 되는 건 건들지 마.”
따끔한 이명석 치프 말에 문승현이 씁쓸한 얼굴로 사과했다.
“미안하다. 말이 좀 심했다.”
“아닙니다.”
태수는 억지로 대답하며 부르르 떨리는 주먹을 억지로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