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590
00593 593화
땀으로 가득한 태수의 손이 서서히 멈춰 갔다. 반대쪽에서 어시스던트하는 김준혁의 얼굴도 온통 땀투성이였다.
간호사들이 계속 땀을 닦아 주고 있지만 그보다 흐르는 땀이 더 많았다.
최고의 컨디션을 만들어 놓길 잘했다.
그런 준비 과정이 없었다면 탈진해 앞으로 이어질 수술은 엄두도 내지 못했을 터였다.
주변의 걱정에도 철저하게 스스로를 관리한 보람이 이제야 찾아왔다.
태수는 그러는 와중에도 분리하고 문합한 소장을 상세하게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체외에 늘어진 소장이기에 살펴보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그건 김준혁도 마찬가지였다.
반대편에서 박리 상태를 확인한 김준혁이 감탄 어린 목소리를 냈다.
“진짜 깔끔하게 박리되었습니다.”
“내가 봐도 나쁘진 않을 거 같아.”
“나쁘지 않다니요.”
김준혁이 황당한 얼굴로 바라봤지만 태수는 개의치 않았다.
“아직 수술 중이야. 결론을 내리긴 일러.”
“그건 그렇습니다.”
김준혁이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였다. 태수의 시선이 마취의에게로 향했다.
“선생님, 환자 상태는 어떻습니까?”
“별다른 이상 없습니다. 바이탈도 양호하고요.”
“다행입니다.”
“바로 이어서 수술하실 겁니까?”
마취의가 묻자 태수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딱 10분만 쉬고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쉬신다고요?”
마취의의 얼굴에 놀라움이 스쳤다.
그건 마취의뿐만이 아니라 김준혁도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수술 중 한 번도 쉬지 않았던 태수가 자청해서 쉬겠다니까 어안이 벙벙했다.
간호사들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태수는 그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 10분 동안 다들 최대한 편안하게 쉬십시오.”
그렇게 말을 마친 태수가 먼저 수술대를 벗어났다.
체외로 늘어진 소장은 10분 정도 그대로 둔다고 해서 문제가 되진 않았다.
수술대에서 멀어진 태수는 수술실을 나가진 않았다. 그저 잠깐 몸을 움직여 근육을 이완시키려 노력 중이었다.
그런 태수의 옆으로 김준혁이 다가왔다.
5시간 만에 수술대에서 처음 벗어났지만 아직 얼떨떨한 표정이다.
“선생님, 혹시 무슨 문제 있습니까?”
“전혀.”
“그런데 갑자기 쉬자고 하셔서 다들 의아한 모양입니다.”
“한숨 돌리고 시작해야 해. 지금부터는 나도 엄청 날카로워질 거니까.”
태수의 말에 김준혁이 멈칫했다.
신속대응센터의 에이스.
태수의 실력을 일컫는 별명이기도 했다.
그만큼 뛰어난 실력으로 많은 의사와 환자들에게 인정받고 있는 게 바로 태수였다.
아직 전국적으로 태수의 소문이 퍼지진 않았지만 최소한 충청에서는 유명했다.
그런 태수가 날카로워질 정도의 수술이라니.
일전에 조정근의 숨이 넘어갈 상황에서도 침착했기에 앞으로 이어질 수술이 얼마나 대단할지 김준혁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몸을 풀며 지친 몸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던 태수가 나지막이 말했다.
“김 선생도 각오해야 할 거야.”
“이젠 망설이지 않을 겁니다.”
“그거면 됐어.”
태수가 고개를 끄덕였지만 김준혁의 표정은 씁쓸하게 변했다.
“그런데 선생님은 좀 걱정되는데요. 너무 피곤하신 거 같아서요.”
“환자 앞에 두고 의사 걱정은 사치 아닌가?”
“…….”
“가서 조금이라도 더 쉬어.”
태수는 그렇게 김준혁을 원래 자리로 돌려보냈다.
수술실에 침묵이 찾아왔다.
다들 긴장된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면서도 한마디도 벙긋거리지 못했다.
“…….”
“…….”
쉬는 시간이 이어질수록 수술실은 묵직한 분위기로 변해 갔다.
그렇게 10분이 지난 후였다.
시간을 확인함과 동시에 태수는 속으로 작게 숨을 내쉬었다.
이제 제임스와 살을 붙이고 사무엘 박사와 완성시킨 수술 방법을 시도해야 할 때다.
태수가 직접 이 수술의 뼈대를 잡았다.
아무리 기존 수술 방법들을 짜깁기해서 응용한 수술법이라 해도 첫 시도다.
이게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태수도 아직 확신이 없었다.
다만,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수술법 중 이 이상의 방법이 없단 건 확신했다.
‘할 수 있어.’
스스로를 강하게 다그친 태수는 성큼 수술대로 다가섰다.
김준혁도 얼른 반대편에 다가섰다.
묘한 긴장감이 수술실을 가득 메우고 있을 때였다.
태수는 한 번 더 ECG(심전도 모니터)를 확인했다.
출혈 문제도 없고 심장에 이상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그래프는 일정했다.
그 외에 혈압과 맥박, 산소포화도도 좋았다.
알지만 한 번 더 확인하니 안도감이 더욱 커졌다.
최소한 수술 중에 차윤재가 사망할 일은 없다.
만약 이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다면 태수로서는 더 이상의 방법이 없다.
그가 자신도 모르게 죽음보다 못한 삶을 이어 온 차윤재의 얼굴을 봤다.
그 아이가 지금 태수에게 모든 걸 맡긴 채 수술대에 곤히 잠들어 있었다.
약속.
무조건 지켜야 한다.
실패라는 단어를 머릿속에서 지웠다.
실수 또한 지웠다.
지금은 무조건 성공한다.
그렇게만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마음을 굳게 다잡은 태수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수술실을 울렸다.
“장 상태는요?”
“조금 말랐지만 식염수로 충분히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는 정도예요.”
“그럼 식염수로 장부터 적셔 주시고, 그다음에 특별 주문한 감압튜브들 좀 준비해 주세요.”
“알겠어요.”
간호사들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태수도 넋 놓고 있는 게 아니라 직접 수술 도구를 들고 텅텅 빈 차윤재의 복부로 다가갔다.
유착을 일으키는 조직들을 조금이라도 더 제거하기 위함이다.
태수의 손놀림을 본 김준혁은 눈치 좋게 따라붙었다.
그렇게 몇 곳을 보안하던 중이었다.
“선생님, 준비 끝났어요.”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금부터 감압튜브 삽입을 시작하겠습니다.”
선언과 동시에 태수는 감압튜브 설치에 들어갔다.
일반적인 감압튜브는 비강(콧속)을 통해 삽입한다. 얇은 관을 위를 통해 장까지 밀어 넣고 흡입기를 설치한다.
그렇게 되면 흡입기를 통해 장 내용물이 흡입되고 장 속의 압력이 줄어든다.
장을 부풀지 않게 유지하며 박리된 부분들이 고정될 때까지 기다리는 방법이기도 했다.
태수는 그걸 응용해 수술 계획을 잡았다.
소장의 모든 부분에 감압튜브를 넣어서 전체적인 압력을 낮추는 거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의 감압튜브로는 어림도 없었다.
군데군데 소장에 작은 구멍을 내 감압튜브를 여러 곳에 설치했다.
장을 체외로 꺼내 늘어놓은 것도 그 수술을 위해서였다.
출혈도 없고, 심장에 격한 이상을 일으키는 수술은 아니었다.
그러나 하나의 감압튜브를 삽입하는 데에 엄청난 집중력과 미세한 손 감각이 필요했다.
감압튜브의 위치들이 조금이라도 달라지면 필요 이상의 감압으로 장이 꿈적도 하지 않을 수 있다.
너무 느슨하게 삽입한다면 감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태수는 그런 이유로 손끝의 미세한 감각을 끌어올려 감압튜브를 신중하게 설치하기 시작했다.
소장에 전체적으로 감압튜브를 설치하는 건 1시간 가까이 소요되었다.
그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로 모두 수술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감압튜브를 설치한 후에는 소장이 가장 이상적으로 운동할 수 있는 위치와 방향을 잡아 꼼꼼하게 성형했다.
소장 속에 삽입된 감압튜브의 위치까지 생각하며 위치를 잡아야 하기에 그 신중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수술이 진행되는 사이, 태수의 낯빛은 꺼멓게 죽어 갔다.
좀 더, 조금만 더.
태수가 다시 배 속에 안착된 소장의 감압튜브 위치를 조절했다.
한참이나 미세하게 조절을 마친 그가 손을 뗐다.
“후우.”
길게 한숨을 내쉼과 동시였다.
휘청.
그의 몸이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그 모습을 본 김준혁이 낮게 소리쳤다.
“선생님!”
“괜찮아. 괜찮다고.”
“…….”
김준혁은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정말 온 힘을 다해 수술한다는 말의 뜻을 태수를 통해 눈으로 확인한 터였다.
같이 수술을 했지만 자신은 멀쩡한데 집도한 태수는 기진맥진했다.
태수가 직접 온 신경을 집중해 감압튜브를 하나하나 설치한 탓이었다. 게다가 장의 움직임까지 예상하며 수술했기에 심력이 얼마나 소모되었는지는 언급할 필요도 없었다.
김준혁은 그런 태수가 놀랍다 못해 존경스러웠다.
자신이 보기에도 정말 까다로운 수술이다. 그걸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끝까지 해낸 태수이기에 놀라움이 더했다.
반면, 태수는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김준혁에게 말했다.
“내가 감압튜브 건드린 건 없지?”
“네? 아, 네. 없습니다.”
“확실히 있어, 없어?”
“절대 안 건드리셨습니다.”
김준혁이 확실하게 대답하자 그제야 태수의 얼굴에서 긴장감이 서서히 풀어졌다.
“그럼 이제 감압튜브를 고정시키자고.”
“진짜 괜찮으십니까?”
“수술 끝날 때까지만 괜찮을 거 같아.”
태수는 꺼멓게 죽은 얼굴에 쓴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도 소장 곳곳에 튀어나온 감압튜브의 끝을 봉합사로 고정시켰다.
그리고 잠시 후, 수술이 끝났다.
일부러 수술 부위를 닫지 않았다.
경과를 보고 감압튜브를 하나씩 제거해야 하는 탓이다. 그걸 모두 제거한 후에 수술 부위를 완전히 봉합할 계획이다.
태수는 곳곳에 늘어진 감압튜브를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
남은 건 하늘의 뜻이다.
이렇게 했는데도 장폐색이 진행된다면?
솔직히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확인을 마친 태수가 김준혁과 마취의의 등을 돌아보며 고개 숙였다.
“긴 시간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인사하는 의료진들의 표정이 아리송했다.
지금은 수술 종료에 날듯이 기뻐할 때가 아니다.
그저 모든 힘을 쏟아낸 태수의 퍼렇게 질린 얼굴이 인상적일 뿐이다.
차윤재가 김준혁과 중환자실로 이동하는 걸 보고야 태수도 수술실을 나섰다.
솔직히 한 걸음 내딛는 것도 어질어질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을 위해서 억지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태수가 걸어간 곳은 장일수 외과장실이었다.
장일수 외과장과 차윤재의 보호자, 그리고 태수가 응접 소파에 자리했다.
장일수 외과장이 태수를 바라보며 걱정부터 보였다.
“최 선생, 괜찮나?”
“좀 힘드네요.”
“몇 시간을 수술했는데 멀쩡한 게 이상하지. 일단 좀 쉬지 그래.”
장일수 외과장의 말에 보호자는 사색이 된 얼굴로 더듬거렸다.
“이거 죄송해서…… 정말 드릴 말씀이…….”
“말씀부터 드리고 쉬면 멀쩡해질 겁니다. 진짜 괜찮습니다.”
“그래도…….”
차윤재 어머니는 안절부절못한 채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그러나 태수는 그런 어머니를 차분하게 바라봤다.
그 시선을 느낀 탓일까?
어머니는 억지로 자신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어떤 이야기가 흘러나올지 모르기에 불안과 초조가 엇갈렸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고 했던가.
그동안 수없는 수술을 옆에서 묵묵히 간호하며 견뎌 온 어머니의 마음은 그렇게 무르지 않았다.
애써 침착함을 찾은 그녀를 바라보며 태수가 차분하게 말했다.
“우선 제가 할 수 있는 건 모두 했습니다.”
“…….”
“이제부터는 장일수 외과장님이 전력으로 도와주실 겁니다. 그 전에 윤재의 마음이 더 중요합니다.”
“말씀하세요.”
차윤재 어머니는 태수의 말 한마디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고 있었다.
태수는 그런 차윤재 어머니를 바라보며 말했다.
“윤재는 회복에 대한 의지가 강한 아이입니다. 그런 아이에게는 자신이 낫고 있다는 성과를 보여 주는 게 중요합니다.”
“어떻게요?”
“우선 일주일 정도는 장일수 외과장님께서 감압을 하실 겁니다.”
태수의 말에 장일수 외과장은 고개만 끄덕였다.
이미 회복 방법과 순서에 대해 태수에게 들은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