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593
00596 596화
태수는 그런 조서영을 바라보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아니. 언제 말 놓으라고 할지 기다리고 있었지.”
“그러셨어요?”
“솔직히 너랑 나랑 나이 차이가 몇이냐. 게다가 친구 동생인데 계속 말 높이는 게 쉬운 줄 알아?”
봇물 터진 태수의 반응에 조서영이 얼떨떨하게 대답했다.
“그건 아니죠.”
“그럼 됐어. 앞으로 편하게 이야기하자고.”
“저기, 선생님.”
“오빠. 단 진료시엔 선생님이라 불러.”
태수가 슬쩍 호칭을 정정해 줬다.
태수도 남자인데 선생님보단 오빠라는 호칭이 더 듣고 싶었다.
조서영은 어느 정도 눈치챘는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빠.”
“크, 짜릿하네.”
태수가 약간 과장된 음성을 내뱉자 그게 웃겼는지 조서영의 미소가 진해졌다.
그것도 잠시였다.
묻고 싶은 게 있는지 짐짓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그동안 제가 환자라서 존대해 주신 거예요?”
“당연하지.”
“아니었으면요?”
“바로 반말이지.”
태수가 소탈하게 말하자 조서영은 묘한 얼굴로 바라봤다.
“만약에 제 병이 낫는 데 더 오래 걸렸으면요?”
“그때까지 존대했겠지.”
“환자라서요?”
끄덕.
태수는 고갯짓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 모습에 조서영은 뭔가 복잡한 표정으로 변했다.
나이와 상관없이 환자는 무조건 존중해 준단 뜻이었다.
그게 조서영의 마음에 크게 와 닿았다.
곧 조서영은 태수를 다시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 많이 알려 주세요.”
“난 친절한 선배는 못 돼서 일일이 알려 주진 못해.”
“그럼…….”
“눈치껏 배워 가.”
태수는 찡긋 미소를 지었다.
다음 날, 태수는 이선정 간호사에게 간밤의 이야기를 전했다. 그런데 기뻐할 줄 알았던 이선정 간호사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서영 씨가 출근하신다고요?”
“좋아하실 줄 알았는데요.”
“딱히 싫은 건 아닌데, 그리 좋지도 않네요.”
“누가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잖습니까.”
태수가 의아하게 묻자 이선정 간호사가 쓴 미소를 지었다.
“그게 의사 선생님이길 바랐지, 병아리이길 바란 적은 없거든요.”
“잘 키운 병아리 한 마리가 열 닭 안 부러운 법입니다.”
“어쨌든 출근한다니까 지켜보면 알겠죠. 그보다 담당자에게는 이야기하셨어요?”
“이제 해야죠.”
태수의 대답을 들은 이선정 간호사가 깜짝 놀랐다.
“그럼 이야기가 마무리되기도 전에 저에게 말씀하신 거예요?”
“당연하죠. 저에게 우선순위는 간호사님이니까요.”
“감사한 말씀인데, 담당자에게도 말씀해 주세요. 아르바이트비도 책정해야 하잖아요.”
“알겠습니다. 바로 전화하겠습니다.”
“전 나가 있을게요.”
이선정 간호사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멀어져 갔다.
조서영이 도움이 될지, 아니면 혹이 될지 아직 보여 준 게 없어서 더 저러는 모양이다.
태수는 큰 기대가 없기에 그런 고민도 없었다.
간단한 처치만 도와 줘도 충분하다고 판단했을 뿐이다.
생각을 정리한 태수는 바로 김석철에게 전화했다.
“아이고, 최 선생님.”
이젠 목소리에 반가움이 가득했다.
태수는 여러 이야기 할 거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부탁드렸던 간호사는 어떻게 됐습니까?”
“아, 그게…….”
“역시 어렵나 보죠?”
“아무래도 지역 내 간호사 정원이 있다 보니까 한 명 더 추가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계속 결재를 올리는 중이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김석철은 장황하게 이야기하며 쩔쩔맸다.
태수는 다그치기 위해 전화한 게 아니었기에 덤덤하게 말했다.
“안 되는 걸 억지로 밀어붙일 수는 없죠.”
“이거 참, 다른 분도 아니고 최 선생님이 말씀하신 거라서.”
“아닙니다. 그건 좀 더 시간을 두기로 하시죠.”
태수가 한발 양보하자 김석철의 목소리가 대번에 밝아졌다.
“정말 그래도 되겠습니까?”
“네. 대신에 제가 아르바이트를 한 명 고용할까 하는데요.”
“아르바이트라니요? 간호사를요?”
“의사는 아니고 의학도입니다. 본과 4학년 진급하려다 1년 휴학한 친구고요.”
“아, 네. 그렇군요.”
김석철이 얼떨떨하게 대답하자 태수가 이어서 말했다.
“그 친구를 복학할 때까지 아르바이트로 고용했으면 합니다.”
“뭐, 그게 좋으시다면.”
“그럼 아르바이트 비용은 어떻게 됩니까?”
“네?”
김석철의 놀란 목소리에 태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그럼 공짜로 와서 일하라는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서요. 저도 이거 참,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하시면 저도 참 난감합니다.”
“제가 선생님께 어떻게 그럽니까. 그래도 이게 전례가 있는지도 봐야 하고요.”
김석철이 또다시 시간을 끌려 하자 태수의 눈빛이 서서히 변했다.
김석철과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태수는 보건소 운영이 더욱 중요했다.
간호사를 못 보내 준다.
아르바이트를 고용하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한다.
계속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이야기에 태수도 더는 유하게 나갈 수가 없었다.
“만약에 그것도 어렵다면 다음 주 월요일까지 간호사를 보내 주십시오.”
“아, 아닙니다. 아무래도 최 선생님하고 마음이 맞는 분이 일하기 편하시겠죠.”
“딱히 이 학생이 아니라도 상관없는데요.”
“그래도 나이가 어리면 최 선생님이 대하기 편할 거 아닙니까. 저도 그게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르바이트 비용은 어떻게 된다고요? 아직 의사가 아니어도 곧 의사가 될 건데 섭섭하게 책정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만.”
태수가 은연중에 압박하자 김석철이 얼른 대답했다.
“그건 제가 최대한 신경 쓰겠습니다. 그래도 상부와 조율을 해야 할 부분이 좀 있어서요.”
“내일까지 기다리겠습니다.”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여기서 많은 고생을 해야 할 친구니까 꼭 좀 신경 써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김석철은 쩔쩔맸다.
이젠 태수의 비위를 건드릴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부탁드립니다. 그럼.”
태수는 그렇게 통화를 마무리 지었다.
기왕 고용할 거라면 확실하게 대우해 주고 싶었다.
그래야 학비에 도움이 될 거고, 그만큼 열심히 일할 거라 판단한 터였다.
태수는 이건 자기 생각이 옳다고 믿었다.
다음 날 오후.
이선정 간호사가 종이를 들고 들어왔다.
“시 보건소에서 공문이 내려왔는데요.”
“내용은요?”
“아르바이트 고용하라고요. 월급은 여기.”
이선정 간호사가 공문을 내밀었다.
태수는 내용을 빠르게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괜찮네요.”
“만약에 시 보건소에서 거부했으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셨어요?”
“거절하긴 힘들었을 겁니다. 초곡리 보건소에 환자가 많아졌다는 건 그쪽에서 더 잘 알 테니깐요.”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이선정 간호사는 아직 걱정이 많은 모양이다.
태수는 그런 이선정 간호사에게 말했다.
“저도 부담에서 좀 벗어나고 싶지만, 간호사님 덜 고생하시라고 고용하는 겁니다. 물론 가르쳐 주고 싶은 생각도 있고요.”
“그래도 인턴도 불안한데 본과생이면 아무래도 더 신경 쓰일 거 같아요.”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없겠죠. 그리고 일하면서 트라우마(정신적외상)를 겪는 경우도 있고요.”
이선정 간호사가 본인을 빗대어 말하자 태수가 움찔했다.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알아요. 좌우간 좀 지켜보고 이야기하자고요. 제가 너무 앞서가는 걸 수도 있으니까요.”
“어린 동생인데 예쁘게 봐 주세요.”
태수의 말에 이선정 간호사가 쓴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할게요.”
“그럼 다음 환자 들어오라고 해 주세요.”
“알았어요.”
“오늘 저녁에 약속 잊지 마시고요.”
태수가 어제 못 마셨던 술 이야기를 하자 이선정 간호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진료실을 나갔다.
그리고 열린 문틈으로 환자가 들어왔다.
옆 마을에서 건너온 환자다.
태수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 숙였다.
“어머님, 안녕하셨어요?
“나 아파.”
“어디가요? 자 찾아볼까요.”
태수는 얼른 환자에게 다가가 살갑게 진료를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주말이 지난 월요일 아침.
태수는 출근 시간에 맞춰 2층에서 내려왔다. 그런데 마지막 계단에서 막 벗어난 순간 귀가 따가웠다.
“뭐 하다가 이제 나와.”
“기다리다가 아파 뒤지겠네.”
원망 어린 목소리에 바라보니 몇몇 환자들이 그를 타박했다.
그중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진료를 받는 이기남 이장과 김동석도 있었다.
태수는 얼른 다가가 인사부터 했다.
“좋은 월요일 아침입니다.”
“좋거나 말거나, 왜 이렇게 늦어.”
이기남 이장이 한 소리 하자 태수는 억울함을 토로했다.
“아직 진료 시간 아니거든요.”
“전에는 밤이고 낮이고 아프다면 쪼르르 달려오더니.”
“그건 진짜 응급 환자분들이셨잖습니까.”
“나도 응급해.”
이기남 이장이 툴툴거리자 김동석도 한 소리 했다.
“최 선생도 많이 게을러졌어.”
“그건 진짜 억울해서 눈물까지 나오려고 하네요. 그런데 들어가서 기다리시지, 왜 나와 계십니까?”
“접수는 진작 했고, 기다리다 지쳐서 나와 있는 거야.”
“제가 늦은 게 아닙니다. 아직 진료 시간 30분 전이라니까요.”
태수가 항의를 해도 그들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의사가 환자 기다리게 하면 되겠냐고.”
“이거 참.”
“빨리 들어가서 허여멀건한 가운부터 입고 진료하라니까.”
“네네,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빨리 움직이겠습니다.”
짓궂은 원성에 태수도 이젠 포기한 채 이 상황에 순응하기 시작했다.
그런 태수의 반응에 이기남 이장과 김동석이 득의만면한 미소를 지었다.
“하여간 요즘 젊은 애들은 빠져 가지고.”
“그러게 말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안 그랬는데요.”
대놓고 타박하는 소리에 태수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
“알았다니까요. 그런데 서영이 안에 없습니까?”
“오기로 했어?”
“오늘부터 출근하기로 했는데요.”
“좀 늦나 보지. 내가 서영이한테 진료받으러 온 건 아니잖아. 어서 가.”
나무라는 이기남 이장의 말에 태수도 이젠 두 손을 들었다.
“지금 간다고요.”
“빨리 가라고.”
이기남 이장이 끝까지 태수를 재촉할 때였다.
빠아아앙!
갑자기 들려오는 경적 소리.
그 소리에 태수를 비롯한 이기남 이장 등 보건소 현관에 서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자그마한 마당을 지나 정문으로 향했다.
그와 동시였다.
정문을 쏜살같이 통과하는 승용차가 보였다.
그 승용차를 본 태수의 눈빛이 번뜩였다.
조영규의 차다.
조서영이 늦어서 저렇게 급하게 달려온다?
그건 아닐 터였다.
그 생각이 미처 마무리되기도 전이었다.
끼이익.
승용차가 바로 앞에 멈춰 서더니 열린 차창으로 조영규가 소리쳤다.
“심장마비래!”
순간 주변에 있던 이기남 이장과 김동석 등 대기 환자들이 크게 동요했다.
“심장마비라니!”
“아니, 누가!”
그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태수는 이미 뒷좌석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뒷좌석 안에는 길게 누운 50대 남성과 그 위에서 흉부 압박을 하는 조서영이 보였다.
태수는 다급해하지 않고 최대한 침착한 얼굴로 조서영에게 물었다.
“현재 상황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저기 버스 정류장에 서 계셨는데 갑자기 쓰러지셨어요.”
“그리고?”
“CPR부터 하고요. 회복이 안 되는 거 같아서 바로 이쪽으로 모시고 온 거예요.”
그 말에 태수가 한 소리 했다.
“전화부터 했어야지!”
“네? 아…….”
조서영이 아차 한 표정으로 변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그저 태수에게 데려가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태수는 애써 분노를 억눌렀다.
조서영에게 뭐라고 하는 건 나중이다.
우선 환자의 상태부터 확인하는 게 옳았다.
태수는 비좁은 뒷좌석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손을 환자의 목에 댔다.
아예 움직임이 없었다.
얼른 감은 눈을 까뒤집어 봤다.
흰자위만 보였다.
이미 기절한 상태란 뜻이다.
더 확인할 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