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614
00617 617화
좋은 생각이 떠오르자 태수는 이선정 간호사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건 이쪽에서도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저희는 어떻게 할까요?”
“대기하세요. 삼척종합병원에 도착하면 한 번 더 전화드리겠습니다.”
태수는 그렇게 통화를 마친후 곧바로 이원종에게 다가갔다.
그는 어느새 모닥불을 끄고 깔끔하게 흙으로 덮어 불씨까지 정리하고 있었다.
태수는 다가가자마자 말했다.
“한 가지만 더 부탁드려도 됩니까?”
“뭔데?”
“실종 신고가 접수되지 않았답니다.”
태수는 조금 엉뚱한 말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눈치 빠른 이원종은 그게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아들었다.
“그러니까 지금 나보고 저 사람 일행을 찾아 달라는 거잖아.”
“무리한 부탁이라는 건 압니다만.”
“무리하지. 얼마나 무리한지 알려 줘? 저 사람이 어디서 굴러떨어졌는지 몰라. 그걸 역추적해서 올라가야 한다고. 그리고 올라간다고 바로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나?”
“…….”
“저쪽에서도 저 사람 찾는다고 돌아다니고 있을 거라고. 그런데 이 산속을 혼자 뒤지면서 일행을 찾아 달라는 게 말이 되냐고.”
이원종의 짜증 어린 목소리에 태수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무리한 부탁이긴 했다.
“죄송합니다. 못 들은 걸로…….”
“뭘 또 못 들은 걸로 해. 다 들었는데.”
“잊어 주십시오.”
“잊는다고 달라지는 게 있나. 누군가는 저 사람을 찾아서 산을 헤매고 있을 텐데.”
이원종의 말투가 조금은 이상했다.
태수가 의아하게 바라보자 이원종이 뒷머리를 박박 긁으며 말했다.
“뭘 그렇게 봐. 저 사람 찾는다고 다른 사람이 미아가 되면 어떻게 하라고. 여기 또 올라올 거야?”
“그건 아니죠.”
“나도 두 번 겪고 싶지 않으니까 별수 있냐고. 올라가야지.”
“아저씨.”
태수가 놀라 불렀지만 이원종은 산을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젠장. 오늘 일진 사납네.”
“…….”
“조만간 집에 내려갈 거니까 그때 최 선생이 나한테 어떻게 하는지 두고 보겠어.”
“절대적으로 만족시켜 드리겠습니다.”
태수가 강단 좋게 말하자 이원종이 찡긋 미소를 지었다.
“그럼 나 신경 쓰지 말고 알아서 움직여. 일행 찾게 되면 마을까지 데려다줄 테니까 걱정 말고.”
“감사합니다.”
“산에서 누가 뒤지는 게 싫은 거뿐이야.”
말은 그랬지만 눈빛에는 따스함이 넘쳐흘렀다.
비록 삶이 거칠지라도 심성만큼은 누구보다 착했다.
태수가 한마디 덧붙이려 할 때 이원종이 먼저 몸을 움직였다.
휙휙.
한 마리의 야생동물처럼 산을 올라가는 모습이 날렵했다.
그렇게 이원종은 금세 태수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솔직히 고마웠다.
환자를 발견하자마자 알려 준 연락도 고마웠고, 지금까지 도와준 진심어린 행동이 너무도 감사했다.
그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다.
환자는 이미 싸늘한 시신으로 변한 후일 것이다.
그런데도 칭찬 한 번 듣는 게 쑥스러워 도망치듯 이 자리를 벗어났다.
그건 이원종뿐만 아니라 이기남 이장이나 김동석, 박지석 등등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산사람이고 바닷사람이고 모두 순박한 게 초곡리의 가장 큰 특징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그사이 다시 한 번 부목 상태를 확인하던 박창민 대원이 다급하게 태수를 찾았다.
“최 선생님!”
“갑니다!”
태수는 외침과 동시에 재빨리 환자에게로 다가갔다.
“으음.”
환자의 입에서 자그마한 침음성이 들려왔다.
괴로움을 느낀다는 건 깨어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부스스.
억지로 눈을 뜬 환자가 좌우로 시선을 돌렸다.
“여…… 여기가…….”
“비탈길에서 구르셨습니다. 기억하십니까?”
태수는 기쁨을 감추고 최대한 침착하게 물었다.
그러자 인상을 한 번 찌푸린 환자가 허탈한 표정으로 변했다.
“으윽. 오, 온몸이 다 쑤시…….”
“그러실 겁니다. 상당히 많이 다치셨거든요.”
“누, 누구…….”
“초곡리에서 보건소 밥 축내는 최태수라고 합니다.”
태수가 넉살 좋게 자신을 소개했지만 환자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끄응…….”
“실례지만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조…… 홍찬.”
환자, 아니 조홍찬은 가까스로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생각 외로 조홍찬은 목소리도 좋고 기억력도 괜찮아보였다.
두개골을 압박하고 있는 피를 빨리 빼냈던 게 그나마 상태가 양호하게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태수는 이원종이 떠올랐다.
그의 수고를 조금이라도 줄여 줘야 했기에 태수는 바로 이어서 물었다.
“조홍찬 씨, 혹시 일행이 있으십니까?”
“가족들이…….”
“어디 계십니까?”
“여기가 어딘지…….”
태수는 아차 싶었다.
비탈길을 굴러떨어진 조홍찬인데 위치를 정확하게 기억할 리가 없었다.
생각을 바꾼 태수가 다른 질문으로 넘어갔다.
“그럼 어디로 가시는 길이었죠?”
“가족들과 산 정상에…….”
“알겠습니다. 제 생각보다 훨씬 좋으신 거 같으니까 안심이 되네요. 곧 헬리콥터가 올 테니까 조금만 견뎌 주십시오.”
태수는 그렇게 말하고는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 이원종에게 전화했다.
그런데 통화가 되지 않았다.
연결이 되지 않는 지역이란 메시지만 들려왔다.
그걸 들은 후에야 태수는 대략적인 상황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었다.
경찰서에 실종 신고 접수가 되지 않은 건 이런 문제 때문인 것 같았다.
그럼 가족들은 조홍찬을 찾아 산속을 헤매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재빨리 이원종을 보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차하면 다들 산속에서 길을 잃어 미아가 될 확률이 컸다.
초겨울산에서 조난이란?
생명이 위태로움을 뜻한다는 걸 잘 알았다.
한시름을 돌린 태수와 박창민 대원 등 구급대원들이 잠시 휴식을 취했다.
물론 환자의 곁을 떠나지는 않았다. 가장 가까운 곳에 앉아서 지친 몸을 추스르며 잠깐 쉬고 있을 뿐이었다.
솔직히 편안했다.
산속이라 어둠이 빨리 찾아오고 있고 기온이 급강하는 단점은 있지만 운치는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태수의 표정은 뭔가 불안했다.
조홍찬은 카프레네와 비슷한 증상인데 상태가 너무 좋았다.
자신의 응급처지가 훌륭해서?
물론 그럴수도 있지만 불안감이 엄습했다.
좋은 일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뭔가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쓸데없는 걱정은 아닐까.
환자가 생각보다 건강하다면 좋은 일이다.
그때 박창민 대원이 태수에게 말했다.
“대충 5분 정도 후면 도착할 겁니다.”
“시간 참 안 가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TV 볼 때는 1시간도 정말 짧은데 왜 이럴 때는 이렇게 긴지 모르겠습니다.”
박창민 대원이 한쪽 입꼬리를 살짝 들어 올렸다.
태수도 같이 미소를 보이고는 다시 조홍찬에게 시선을 돌렸다.
다시 든 이상한 느낌에 태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왜 그러십니까?”
“잠시만요.”
태수는 박창민 대원의 물음에 건성으로 대답하고 조홍찬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안색이 전보다 하얗게 변한 느낌이다.
살짝 몸을 떠는 것도 보였다.
“흐으읍, 흐흡.”
퍼렇게 질린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것 또한 좋은 징조는 아니다.
태수는 심각한 얼굴로 조홍찬을 불렀다.
“조홍찬 씨, 제 말 들리세요?”
“…….”
대답이 없었다.
뭐지?
생각하기도 전이었다.
갑자기 조홍찬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동시에 목울대가 부푸는 것 같더니 입에서 검붉은 피가 토해졌다.
“우우욱, 컥컥!”
“헉!”
박창민 대원이 깜짝 놀랐다.
그뿐만이 아니라 다른 구급대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조홍찬의 입에서 멈췄던 피가 다시 흐르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격한 경련도 다시 시작되었다.
그 모습을 처음 보는 구급대원들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어 갔다.
그러나 태수는 아니었다.
갑작스럽게 급변한 조홍찬의 상태를 냉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검붉은 피.
객혈이 아닌 토혈이다.
그뿐 아니라 혈전들도 보였다. 소화기 계통에 생긴 문제가 이제야 돌출되어 나왔다는 추측밖에는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컥컥.”
조홍찬이 계속 피를 토하며 괴로워했다.
태수는 서두르지 않고 침착하게 다시 그를 불렀다.
“조홍찬 씨, 들립니까? 제 말 들리세요?”
태수의 부름이 들렸는지 조홍찬의 시선이 움직였다.
뻘겋게 충혈된 두 눈이 태수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피를 계속 토하며 태수에게 억지로 말했다.
“쿨럭쿨럭, 사, 살려…….”
“정신 차리세요. 저를 보란 말입니다.”
태수가 빠르고 강렬하게 조홍찬을 독촉했다.
그러나 공포에 잔뜩 질린 눈으로 조홍찬이 끊어지듯 목소리를 냈다.
“주, 죽기 싫…….”
“안 죽습니다. 안 죽게 할 거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세요, 조홍찬 씨!”
“제…… 발.”
툭.
말을 짜낸 후 두 눈을 까뒤집은 조홍찬의 고개가 갑자기 옆으로 뚝 떨어졌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박창민 대원을 포함해 구급대원들이 기겁했다.
동시에 태수는 반사적으로 그의 경동맥을 짚었다. 처음에 몰랐지만 아주 가늘게 뛰는 맥박이 느껴졌다.
몸도 계속 격하게 떨리고 있었다.
다행히 숨이 끊어진 건 아니다.
어떤 문제로 인해 피를 토하며 기절한 상황이다.
토혈을 할 수 있는 상황이?
태수가 머리를 맹렬히 회전시킬 때였다.
“저, 저기, 선생님!”
“네?”
“…….”
바라보니 박창민 대원이 한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태수는 바로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다가 눈을 크게 떴다.
위가 부풀어 있었다.
과식한 듯이 불룩 솟아오른 모양새였다.
바라보던 태수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이런 증상을 보이는 건 십이지장 혹은 위가 파열된 경우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위가 파열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산성이 강한 위액을 견디도록 만들어진 구조였기에 교통사고를 당해도 위는 안전한 경우가 많았다.
태수는 지극히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생각했다.
위가 부풀었다고 위 파열을 의심하는 건 너무도 단순한 생각이다.
만약 위의 문제가 아니라면 십이지장을 의심해 볼 수 있었다.
그 생각과 동시에 태수가 아차 싶었다.
간 파열.
파열된 간에서 피가 흘러 십이지장으로 흐르는 경우도 있다.
태수는 당황하지 않고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이곳에 도착한 지 시간이 꽤 지났다. 그런데 이제 토혈을 했다는 건 생각보다 간의 파열이 크지 않다고 해석할 수 있었다.
최악의 경우를 피했다는 거지, 안전하다는 건 아니었다.
이건 지금 당장 건드릴 수 없었다.
최대한 빨리 수술실로 이동해 개복해서 출혈을 잡는 것만이 방법이다.
태수의 시선이 박창민 대원에게로 향했다.
“헬리콥터는요?”
“다시 연락해 보겠습니다.”
그때였다.
투두두.
멀리서 요란한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은 순간 박창민 대원은 손에 쥔 휴대폰을 다시 넣었다.
“옵니다!”
“준비해요!”
태수가 바로 오더를 내리자 구급대원들이 다시 부산하게 움직였다.
“안전벨트부터 연결해!”
“이쪽으로 넘겨야지!”
“고리는 어디 갔어?”
구급대원들이 정신없이 환자를 들것에 꼼꼼하게 고정시켰다.
조금이라도 느슨하게 고정하면 환자가 허공에서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런 빌어먹을 경우는 보고 싶지도 않았기에 조금 무리가 가더라도 벨트를 꽉 죄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라 균형도 맞춰야 했다.
그런 작업들이 빠르게 이어지던 중이었다.
투두두두.
헬리콥터 소리가 이젠 귀를 먹먹하게 할 정도로 가까워졌다.
태수도 진료가방을 정리하고 등에 짊어졌다. 이제 환자와 같이 헬리콥터에 올라 곧바로 삼척종합병원으로 가야 했다.
병원에만 도착하면 된다.
이 환자는 무조건 살려야 한다.
지금까지의 경험이, 그리고 그동안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아 둔 지식들이 그렇게 말했다.
다급함도 덜어 내고 차분한 얼굴을 유지하기 시작했다.
박창민 대원은 자신의 배낭에서 팔뚝만 한 막대를 꺼내 들었다.
탁!
옆에 있는 바위에 강하게 내려친 순간 막대기에서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