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628
00631 631화
언제나 장난기 넘치는 행동과 말만 골라서 하지만, 속은 누구보다 깊고 정이 많았다.
태수는 그런 박성민의 미소를 떠올리며 부탁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당연히 부탁해야지. 신속대응센터의 히어로인 이 박성민이가 친히 환자를 봐주시겠다고 하는데.”
“그럼요. 항상 황송하죠.”
“그렇지! 바로 그 마음, 변하지 않고 변해서도 안 되는 그 마음. 아직까지 잘 간직하고 있는 관계로 특별 관리 해 드리겠다. 넌 아무 걱정 말고 보내도록.”
박성민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에 태수도 미소 지었다.
“부탁드립니다.”
“오케이! 그럼 밤이 늦었고 우리도 술자리 파하고 들어가야 하니까 전화는 여기서……. 아차, 팀장님, 하실 말씀이…… 없으시다고요. 태수야, 팀장님이 할 말 없으시다니까 끊는다. 굿밤해라.”
뚝.
통화가 갑자기 종료되었다.
박성민만의 통화법이라는 걸 알면서도 당할 때마다 황당했다.
그러나 태수는 푸근한 얼굴로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술자리를 바로 파하겠다는 그 말.
그 하나로도 내일을 준비하겠다는 마음이 느껴졌다.
항상 마음이 뭉클하도록 고마웠다.
태수가 신속대응센터의 의료진들을 떠올리는 사이였다.
병실 안은 차분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조홍찬의 부인은 병상 옆에 꼭 붙어 앉은 채 조홍찬을 향한 시선이 떠날 줄 몰랐다.
그리고 조홍민과 외과장은 병실 한쪽에서 자그맣게 대화 중이었다.
이야기가 거의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렇게 진행될 거 같습니다.”
“그렇군요.”
“자세한 건 저희 원무과에서 다시 연락을 드릴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건 걱정 마십시오.”
조홍민의 말에 외과장이 가볍게 고개 숙였다.
“이런 이야기부터 하게 되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다시 한 번 환자분의 쾌유를 마음으로 빕니다.”
“최 선생님께 다 들었습니다. 수술에 필요한 걸 아낌없이 지원해 주셨다고요. 제가 뭐라고 인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실 거 없습니다.”
“그래도…….”
조홍민이 다시 인사하려 하자 외과장이 먼저 말했다.
“밖에서 잠깐 최 선생과 이야기했는데, 신속대응센터로 이송을 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고요.”
“그렇습니다만.”
“결정은 보호자분들께서 어련히 알아서 하시겠지만, 주제넘게 한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외과장이 진중하게 말하자 조홍민도 차분하게 응대했다.
“말씀하세요.”
“죽어라 수술해서 환자 생명을 지켜 준 집도의 의견입니다. 뭔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네요.”
“…….”
“제 짧은 생각이었습니다. 그럼 환자분을 위해 좋은 결정 내리시길 바랍니다. 먼저 일어납니다.”
외과장은 대화를 마무리 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같은 시각.
태수는 진료실을 나섰다. 이대로 진료실에서 무작정 쉬고 있을 수는 없던 탓이다.
유승원 과장의 시선을 피해 움직인 태수는 수술실 안을 들여다봤다.
온갖 의료 장비들로 꽉 찼던 수술실이 썰렁한 제 모습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그걸 둘러보는 태수의 표정이 썩 밝진 않았다.
“욕심나네.”
그가 작게 중얼거릴 때였다.
뒤에서 유승원 과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가 그리 욕심나나?”
“아, 과장님.”
“참, 쉬라고 해도 말을 안 들어.”
“다들 바쁘신데 저만 쉴 수가 없어서요.”
“하여간.”
유승원 과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순간이었다.
외과장의 푸근한 목소리가 가까이서 울렸다.
“최 선생 성격 알면서도 쉬라고 하면 되나.”
“그건 저도 알지만, 욕심이 난다지 않습니까.”
유승원 과장의 고자질에 외과장이 태수에게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뭐가 욕심나?”
“수술실이 꽉 찬 게 보기 좋았거든요.”
“하여간 직업병이 무섭다니까.”
“과장님이 제 입장이라면 욕심 안 나시겠습니까? 여기에 이런 의료 기계들이 있으면 저는 둘째 치고, 이렇게 많은 분들이 덜 피곤하실 텐데 말입니다.”
“하하!”
말속에 뼈가 있는 태수의 농담에 외과장과 유승원 과장이 동시에 크게 웃었다.
두 사람의 웃음에 태수도 미소를 짓다가 아차 했다.
“그런데 외과장님, 이야기는 잘 끝나셨습니까?”
“어느 정도는.”
“다행입니다.”
태수가 옅은 미소를 짓자 외과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이선정 간호사가 다가와 말했다.
“선생님, 병실에서 보호자가 찾아요.”
“실례지만 들어가 봐야겠습니다.”
태수의 말에 외과장이 말했다.
“다시 나오면 아마 우리는 없을 거 같은데.”
“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렇게 그냥 가시면 안 되는데요.”
“이 사람아, 시간이 몇 신데. 최 선생도 그렇고, 다들 얼굴이 말이 아니야. 얼른 마무리 짓고 좀 쉬도록 해. 나도 피곤해 죽겠어.”
“이거 참. 그럼 제가 조만간에 찾아뵙겠습니다.”
태수가 아쉬운 얼굴로 말하자 외과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야 언제라도 보면 되니까 신경 쓰지 말고, 얼른 들어가 봐.”
“감사합니다. 그리고 오늘 너무…….”
“들어가 보라니까.”
“그럼 연락드리겠습니다.”
태수는 과장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얼른 병실로 향했다.
병실에 들어선 태수는 보호자들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찾으셨습니까.”
“선생님이 아까…….”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환자분부터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태수가 정중하게 묻자 조홍민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양해 감사합니다.”
한 번 더 인사한 태수는 천천히 몸을 돌려 조홍찬에게 다가갔다.
쌔액, 쌔액.
인공호흡기 속 숨소리가 조금은 거칠었다. 자연적인 호흡이 아니기에 호흡 소리가 날 수도 있었다.
태수는 호흡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진료에 나섰다.
수술 후 아직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마취에서 깨어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태수는 각종 수치를 꼼꼼하게 확인하고 기록했다.
그사이 조홍찬의 부인과 조홍민은 그 모습을 진중한 눈빛으로 지켜봤다.
의술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이지만 태수가 어떤 마음인지는 느껴졌다.
그저 형식적으로 살피는 게 아니라, 정말 신경을 쓰고 있다는 느낌이 태수의 몸짓 하나, 손끝 하나에서도 흘러나왔다.
그런 태수가 신속대응센터로 이송하자고 한 말이 그저 사사로운 이익을 위한 게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조홍찬의 부인과 조홍민이 서로 마주 봤다.
끄덕.
말없이 조용히 두 사람만의 사인이 오갔다.
그걸 보지 못한 태수는 조홍찬을 살피기에 바빴다.
잠시 시간이 지난후에야 몸을 돌려 보호자들과 마주했다.
조홍찬의 부인이 얼른 태수에게 물었다.
“어떤가요?”
“아직은 수술 직후라 몸 상태가 그리 안정적이지 않습니다.”
“혹시 문제가 되는 건 아닌가요?”
“불안한 마음이시겠지만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수술실에서 나올 때보다는 나아지고 있으니까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거 같습니다.”
민감할 수 있는 문제이기에 태수는 침착하게 말했다.
느낌상 성공적인 수술이지만 경솔하게 말하긴 너무 일렀다.
그때 조홍민이 조금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선생님, 하나 여쭤 봐도 됩니까?”
“뭐든지 말씀하십시오.”
“보통 수술 끝나면 환자랑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하는데, 괜찮은 건가요?”
조홍민의 물음에 태수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두 분은 지금 환자 회복에 아주 큰 도움을 주고 계십니다.”
“제가 좀 이해가 안 돼서 그러는데…….”
“조금 더 자세하게 말씀드린다면, 두 분이 나누는 대화나 숨소리 하나까지도 환자분은 알고 있을 겁니다.”
태수가 대답하자 조홍민의 의구심이 외려 커졌다.
“마취에서 깨어나지도 않았는데요?”
“혹시 무의식이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들어 봤습니다.”
“지금 환자분이 그렇습니다. 의식은 없지만, 무의식이 사랑하는 가족들의 따스한 시선과 걱정하는 목소리를 분명히 느끼고 있습니다.”
확신하는 태수를 보며 조홍민이 눈을 슬쩍 굴렸다.
“그걸 어떻게 확신하시는 건지요?”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수술 직후보다 지금이 훨씬 안정적으로 변했습니다.”
“그렇군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조홍민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다.
태수는 그런 조홍민에게 말했다.
“만약 두 분이 여기 계시는 게 환자분에게 좋지 않은 일이었다면, 제가 욕을 먹더라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을 겁니다.”
“그 말씀을 들으니까 조금 마음이 편해지네요. 사실 계속 여기 있어도 되는지 걱정을 좀 했거든요.”
“그 어떤 의사도 하지 못하는 일을 해 주고 계시는 거니까 제가 감사하죠.”
태수가 빙긋 미소를 짓자 보호자들의 얼굴에 안도감이 짙어졌다.
잠깐 대화가 끊긴 사이였다.
조홍민의 권유로 태수는 병실 한쪽에 마련된 간이 의자에 앉았다.
반대편에는 조홍민이 자리했고, 조홍찬의 부인은 침대 곁으로 바짝 다가선 모습이다.
대화 분위기가 만들어지자 태수가 물었다.
“저를 찾으셨다는데, 결정을 내리신 겁니까?”
“선생님 말씀대로 신속대응센터로 이동하겠습니다.”
“어려운 결정을 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태수는 깊게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조홍민이 손을 내저었다.
“저희 형님을 위한 일인데 이러시면 제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이러지 마십시오.”
“아닙니다.”
“이러시면 제 입장은 어떻겠습니까. 형님 생명을 구해 주신 분에게 인사나 받는 나쁜 놈이 될 거 아닙니까. 이제 고개 좀 들어 주세요.”
조홍민은 보다 못해 태수를 일으켰다.
그제야 몸을 다시 세운 태수가 결심 어린 눈빛으로 말했다.
“믿어 주신 만큼 최선의 치료를 부탁하겠습니다. 저도 주말이 되면 찾아가서 인사도 드리고, 직접 확인하겠습니다.”
“선생님께 부담 드리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그쪽 실력도 좋다는데 그렇게까지 하시면 죄송하죠.”
“저도 직접 확인을 해야죠. 그게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태수가 물러서지 않았다.
그렇다고 조홍민이 먼저 대화를 마무리 짓지도 않았다.
몇 번이나 같은 말이 오가는 사이였다.
보다 못하겠는지 조홍찬의 부인이 다가와 말했다.
“이제 두 분 다 그만하세요.”
“…….”
“그리고 선생님, 정말 힘드신 거 같은데 쉬셔야죠.”
그 말에 태수는 멈칫했다.
너무 오랫동안 여기에 머물면 서로 불편했다.
태수는 빠르게 생각한 후 말했다.
“그럼 전 진료실에 있겠습니다. 매시마다 확인하러 오겠지만, 혹시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찾아갈게요.”
“알겠습니다. 두 분도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틈틈이 쉬세요.”
태수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 사람은 한 번 더 마주 인사하며 서로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그러고 나서야 태수는 병실을 나왔다.
어느새 그의 손에는 휴대폰이 들려 있었다.
보호자가 이송을 승낙했지만 신속대응센터에선 구급차를 보내 줄 수 없는 상황이다.
참 염치가 없지만 유승원 과장에게 한 번 더 부탁해야 할 것 같았다.
지금쯤이면 삼척종합병원으로 돌아가는 길일 터였다. 아직 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걸 빠르게 계산한 후에야 태수는 통화를 시도했다.
곧 유승원 과장의 피로에 지쳐 갈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도 통화할 힘이 남아 있나?”
“정말 죄송합니다만, 꼭 부탁드릴 게 있어서 전화드렸습니다.”
“이번에도 내 간담부터 챙기고 들어야 하는 거 아니지?”
유승원 과장의 목소리에 약간의 여유가 담겨 있었다.
태수가 빙긋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건 아닙니다. 아까 부탁드렸던 것이기도 한데요.”
“구급차 보내 달라고 했던 거?”
“네, 맞습니다.”
태수의 대답에 유승원 과장은 덤덤한 목소리로 말해 왔다.
“보호자가 허락했나 보네. 그건 병원에 이야기해서 아침에 보내도록 하지.”
“계속 도움만 받고, 죄송합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 좀 냉정한 이야기일지 몰라도 우리는 그 모든 비용을 청구할 거니까.”
“물론 그렇게 하셔야죠.”
태수도 그에 수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