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639
00642 642화
시야가 제한된 만큼 행동도 제약이 많았다.
특히나 계속 흘러나오는 피 때문에 시야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았다.
그때까지 차분하게 대기하고 있던 이선정 간호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썩션은 구경할 수도 없었다. 그저 최선이 흡수성이 좋은 거즈로 피를 빨아들이는 게 전부였다.
이선정 간호사가 처음으로 지시했던 의무병을 가리켰다.
“이름이?”
“상병 최용복.”
“최용복 상병, 미안한데 거기 거즈 좀 가져다주실래요?”
“알겠습니다!”
최용복 상병은 재빨리 몸을 움직여 이선정 간호사에게 거즈를 건넸다.
그걸 받아들자마자 이선정 간호사는 재빠르게 벌어진 환부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거즈가 피를 쭉쭉 빨아들이면 걷어 내고 새로운 거즈로 교체하기를 반복했다.
그 손길이 빠르고 정확했다.
그런 수고로 인해 피가 걷혀 가고 잠깐씩 내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태수는 그 틈을 이용해 내부를 살폈다.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아도 호흡이 척척 맞아 떨어졌다.
리트렉터를 당기며 두 사람의 흐름을 지켜본 이동환 중위는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한편, 차상철 병장은 진짜 죽을 맛이었다.
진통제와 국소마취제로 고통에서 상당히 해방됐다. 그런데 그 후에는 자신의 배를 가르고 피를 걷어 내고 있었다.
특히나 피가 흥건히 묻은 거즈가 계속 눈앞을 왔다 갔다 하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맨 정신으로 그걸 본다는 건 상당히 힘든 일이었다.
물론 국소마취제의 효과로 인해 아픔을 느끼진 못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차상철 병장은 그냥 고통이 느껴졌다.
“아으윽, 으윽!”
그 소리에 태수가 고통스러워하는 차상철 병장을 바라봤다. 눈빛을 보아하니 무척이나 혼란스러워하는 게 느껴졌다.
태수는 그런 차상철 병장에게 따끔하게 소리쳤다.
“정신 차려!”
“너, 너무 아픕니다.”
“아프기는 뭐가 아파. 보고 있으니까 괜히 아픈 것처럼 느껴지는 거야.”
태수가 따끔하게 말했지만 차상철 병장은 괴로운 얼굴로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으윽, 아아악!”
“지랄하고 있네.”
태수가 어이없이 바라봤다.
정말 아프다면 메스를 댄 순간 이미 자지러졌어야 했다.
지금까지 반응이 없었다. 그런데 피 묻은 거즈를 보고 괜한 공포심에 고통이 상상되어 실제처럼 느껴지는 착각 중이었다.
아예 고통이 없진 않을 터였다.
그러나 부피바카인은 강력한 국소마취제이기에 저렇게까지 소리칠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있을 터였다.
버티자고 한다면 충분히 버틸 수 있는 고통이다.
이런 나약한 모습을 태수는 정말 싫어했다.
아무리 환자라 해도 엄살을 피우는 거라면 태수는 한 치의 인정도 봐줄 생각이 없었다.
이선정 간호사도 그걸 알고 있었다.
더 방치하면 태수가 정말 화를 낼지도 모르기에 조심스럽게 물었다.
“수면제로 재울까요?”
“아니요. 버티는 게 좋습니다.”
“계속 저렇게 시끄럽게 굴면 화내실 거잖아요.”
이선정 간호사의 걱정에도 태수는 손을 움직이며 말했다.
“정 시끄럽게 하면 한 대 쳐서 기절시킬 겁니다.”
“그래도 그건 좀 과격한 거 같아요.”
“그래서 안 하는 겁니다. 잘못 때리면 문제가 더 커지니까요.”
태수가 싸늘하게 이야기하며 조치를 이어 갔다.
반대편에서 듣고 있던 이동환 중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해 보신 적 있습니까?”
“효과가 좋아.”
“부작용은요?”
“당연히 버티는 것보다 훨씬 상태가 안 좋아지지. 아무래도 기절하면 온몸의 긴장이 풀어지니까. 거기 조금 더 당겨 줘.”
태수가 아주 태평하게 이야기했다.
그 모든 이야기를 생생히 들은 차상철 병장은 고통을 상상으로 느끼는 중에도 얼굴이 하얗게 질려 갔다.
그때였다.
태수가 힐끔 차상철 병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중에 고생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 줄게.”
“끄응. 아, 아닙니다.”
“아프다며.”
“훅훅. 하나도 안…… 아픕니다.”
억지로 숨을 내쉬며 차상철 병장이 고개를 흔들었다.
태수가 몰아붙이자 남자로서 악다구니가 발휘되는 모양이다. 어쩌면 태수의 주먹이 더 무서운 걸지도 모르지만 그건 관계없었다.
스스로 상상의 고통을 지우려는 노력이 보였다.
태수는 그런 차상철 병장을 향해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버텨. 이를 악물고 버티든지, 딴생각을 해서 버티든지 버티고 있으라고. 그래야 나중에 친구들한테 총상 자국을 자랑이라도 할 거 아니야.”
“아, 아닙니다.”
“아니기는 무슨. 너 같은 녀석들이 제대하고 술 한잔 걸치고 썰 풀면 완전 3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수준으로 자랑한다고.”
태수는 신속하게 환부를 살피면서도 태연하게 이야기했다.
말과 행동이 너무도 달랐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환부를 살피는 일도 중요하지만, 차상철 병장의 흔들린 정신도 바로잡아야 했다.
그게 아니라면 상당히 커다란 정신적인 후유증을 겪을 수 있었다.
태수는 그런 점도 염두에 두고 환부를 계속 확인했다.
환자의 미래까지 염두에 둔 치료.
태수가 추구하는 의술이다.
다행히 태수의 윽박지름이 통했는지 차상철 병장은 신음 소리를 억눌렀다.
“음, 윽!”
눈도 꽉 감은 상태였다.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눈을 뜨고 보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인위적으로 눈을 가릴 수도 있지만, 그건 외려 불안감을 키울 뿐이다.
스스로 절제하는 게 버틸 의지를 키우는 데 좋았다.
그사이, 태수는 환부를 거의 파악했다.
“후우! 쉽지 않겠어.”
“어떤데요?”
“portal vein(문맥)에 문제가 있고, stomach(위)와 liver(간)도 laceration(열상)이야.”
태수는 일부러 어려운 의학 용어들로 이야기했다.
환자와 의무병들이 알아들을 수 없게 만들려는 의도였다.
이럴때는 모르는 것이 약이다.
그와 반대로 이동환 중위와 이선정 간호사는 곧바로 알아듣고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한마디로 위와 간이 총알에 찢어졌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 출혈은 문맥이 상처를 입어 흘러나오고 있다는 소리였다.
다행히 문맥은 정맥에 속하기에 동맥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생명에 지장을 덜 준다.
그러나 조금 나은 정도지, 안전한 수준은 절대 아니었다.
이동환 중위가 빠르게 태수에게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portal vein(문맥)만 조치하고 일단 멈춰야 해. 나머지는 여기서 진행할 일이 아니야.”
“뭘 준비할까요?”
“클립.”
태수의 말에 이동환 중위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클립이라면…….”
“그래, 종이 끼우는 그거. 여기 있지?”
“있긴 합니다만.”
“빨리 좀 부탁해.”
태수가 진심 어린 눈빛으로 말하자 이동환 중위는 눈을 끔벅이며 의무병에게 지시했다.
“거기 서랍에 클립 좀 가져와.”
“바로 갑니다.”
대답과 동시에 박주천 상병이 빠르게 움직였다.
이선정 간호사가 대신 받아 재빨리 소독까지 마치고 태수에게 넘겼다.
태수는 상처 난 문맥의 위아래를 클립으로 집어 버렸다. 그러고 나자 흐르던 피가 서서히 멈춰 가기 시작했다.
“후. 이 정도면 충분해.”
반대편에서 똑똑히 지켜본 이동환 중위가 황당한 얼굴로 물었다.
“왜 클립으로 혈관을 집으신 겁니까? 지혈 클램프로 집는 게 더 좋지 않습니까?”
“이송 중에 흔들리면 빠질 수도 있잖아.”
“아!”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는 이게 더 나아.”
태수의 대답을 들은 이동환 중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혹시 이것도 외국에서 배우신 겁니까?”
“그렇다고 봐야지. 그보다 식염수 좀 있나?”
“그건 많습니다.”
“그럼 그걸로 내부를 좀 씻어 내자고. 피가 엉겨 붙으면 수술하는 데 곤란하니까.”
“그, 그러시죠.”
이동환 중위는 얼떨떨한 얼굴로 대답했다.
클립으로 지혈 도구를 대신한다는 자체가 너무도 놀라운 모양이었다.
태수도 그런 낌새를 느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몇 가지 조치를 더 마무리 지은 후였다.
태수의 얼굴이 밝아졌다.
“이제 이송만 하면 되겠어.”
“고생하셨습니다.”
“무슨 소리를. 그보다 다들 고생 많았어요.”
태수가 도와준 의무병들에게 인사했다.
그들도 얼른 차렷 자세로 몸을 굳히며 크게 응답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씩씩한 그들의 인사가 끝난 후였다.
이동환 중위가 김소훈 일병에게 지시했다.
“본부 가서 헬리콥터가 어디쯤 도착했는지 확인해 봐.”
“다녀오겠습니다.”
타다닥.
김소훈 일병이 쏜살같이 치료실을 나갔다.
그사이 이선정 간호사는 수술 도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태수는 차상철 병장의 얼굴 쪽으로 다가갔다.
아직 두 눈을 질끈 감고 있는 모습이다.
“자나?”
“아닙…… 니다.”
“응급처치는 끝났어. 눈 떠도 돼.”
태수의 말이 끝난 후에야 차상철 병장은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태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물었다.
“지금 몸 상태 어때?”
“배에 이상한 느낌이 좀 듭니다. 그 외에는 아프지 않습니다.”
“아예 안 아픈 건 아니지?”
태수가 꼬집어 묻자 차상철 병장이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그…… 그렇습니다.”
“가장 아픈 부위는 마취해 놓은 상태라서 조금 이상한 느낌일 거야. 그 외에 아픈 거는 마취되지 않은 신경 때문이고.”
“알겠습니다.”
“아까보다 목소리가 좋아진 거 같은데.”
태수의 말에 차상철 병장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예 보지 않으니까 괜찮아졌습니다.”
“그래. 다 마음먹기 나름이더라고.”
“그런 거 같습니다.”
“그래도 궁금했을 텐데 잘 참았어. 지금 네 상태는 통합병원 가면 말끔하게 나을 수 있어.”
태수가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자 차상철 병장의 얼굴에 안도감이 떠올랐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곧 헬리콥터가 도착할 거 같으니까 아무 생각 말고 쉬고 있어.”
“알겠습니다.”
“보아하니 병원에서 전역하겠지만, 사회에 나가더라도 지금처럼 굳게 마음먹고.”
“명심하겠습니다.”
차상철 병장이 굳은 목소리로 대답하자 태수도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움직였다.
이선정 간호사가 왕진 가방을 갈무리하고 있었다.
“다 챙겼습니까?”
“깔끔하게 챙겼어요.”
“그럼 우리도 이제 갈 준비 해야죠.”
“그러게요. 정말 큰일이 아니라서 다행이에요.”
“누가 아니랍니까. 돌아가는 길에 따뜻한 국밥이나 드시죠.”
태수의 말에 이선정 간호사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거 좋은 생각 같아요.”
“제가 그런 머리는 좋습니다. 그럼 잠깐 인사 좀 하고 오겠습니다.”
태수는 이선정 간호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이번에는 이동환 중위에게로 향했다.
“이 중위.”
“선배님, 이젠 정말 괜찮을까요?”
“환자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지 않는다면 문제없을 거야.”
“다행입니다. 그런데 총알은 어떻게 됐습니까?”
“안쪽에 박혀 있는데 꺼내기가 좀 애매해서 놔뒀어. 아마 병원에서 수술하면 꺼낼 수 있을 거야. 처치하는 내내 많이 걱정했지?”
“진짜 십년감수한 거 같습니다.”
이동환 중위가 엄살을 떨자 태수가 격려했다.
“흔하지 않은 상처니까 더 긴장했을 거야. 다음에는 좀 더 의연하게 대처하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거고.”
“그런 일이 없어야죠. 그런데 만약 헬리콥터가 더 늦어진다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저 정도면 차로 이동해도 될 거야. 물론 크게 꿀렁거리지 않게 조심해서 운전해야겠지만 말이지.”
태수의 말에 이동환 중위가 반색했다.
“그래도 된다면 차라리 차로 이송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헬리콥터가 더 빠르긴 하지.”
“그건 또 그렇죠. 그보다 이제 가시는 겁니까?”
“물론. 외부인이 오랫동안 여기 있어 봐야 좋은 소리 못 들어.”
태수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
모두와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이젠 정말 떠나려는 순간이었다.
드르륵!
치료실 문이 다급하게 열리더니 김소훈 일병이 질겁한 얼굴로 소리쳤다.
“큰일 났습니다!”
“…….”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김소훈 일병에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