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642
00645 645화
동시에 이선정 간호사는 수면제를 서서히 IV에 주입하기 시작했다.
그 양이 상당히 많았다. 일반적인 수면제로는 수술 중에 반응이 올 수 있기에 약을 강하게 사용했다.
수면제의 작용 본질은 마취제와 비슷하기에 진하게 투여하면 잠든 동안엔 웬만한 충격에 깨어나지 않게 된다.
복용하는 것보다 작용 시간도 빠르고 효과도 확실했다.
이내 차상철 병장은 서서히 잠에 빠져 들어갔다.
스르륵.
차상철 병장의 손이 기운 없이 흘러내렸다.
얼른 낚아챈 태수는 그 손을 원위치에 내려놓았다.
그런 움직임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좀 더 확실하게 수면에 빠진 걸 확인해야 했다.
태수는 그를 부르며 가볍게 뺨을 때려 봤다.
“차 병장.”
탁탁.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살짝 꼬집어도 봤지만 역시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깊은 수면에 빠져든 걸 확인한 태수가 이선정 간호사에게 손을 내밀었다.
“부피바카인 주세요.”
“여기요.”
이선정 간호사가 준비된 주사기를 내밀었다.
태수는 환부와 그 주변에 골고루 주사했다.
부피바카인의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1분 정도다.
그사이 태수는 이동환 중위와 의무병들을 둘러봤다. 그들 뒤쪽으로 익숙한 의료 기계가 눈에 들어왔다.
인공호흡기였다.
그 순간 태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음에는 이선정 간호사가 인공호흡기가 있다고 했었다.
그런데 왜 조금 전에 수술에 대해 상의할 때는 인공호흡기를 이야기하지 않고 엠부백을 준비하겠다고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수술에 필요한 의료 기계였기에 태수는 바로 이동환 물었다.
“저거 인공호흡기 아니야?”
“아, 아까 간호사님께도 말씀드렸는데 고장 났습니다. 수리해 달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아직 작동이 안 됩니다.”
“저게 작동하면 좀 더 안심할 수 있을 텐데.”
“죄송합니다. 대신에 아까 말씀드린 대로 엠부백은 제대로 준비해 놓았습니다.”
이동환 중위의 말에 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용할 일이 없길 바라야겠지.”
“네.”
이동환 중위의 대답을 들은 후였다. 태수의 시선이 의무병들에게로 향했다.
“다들 신경안정제 먹었나?”
“네.”
“그래. 지금부터 수술을 시작할 거야. 조금 전에 본 응급처치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질 거고, 견디지 못하고 속이 뒤집어질 수도 있어.”
태수는 강렬한 눈빛으로 경고했다.
겁을 주기 위한 게 아니라 진심이라는 걸 눈치채자 의무병들이 움찔했다.
태수는 개의치 않고 이어서 말했다.
“자, 지금이라도 수술에 참여하고 싶지 않다면 나가도 좋아.”
“…….”
의무병들은 대답 없이 이동환 중위와 서로의 눈치를 봤다.
그때 태수가 한마디 덧붙였다.
“시간 없으니까 짧게 말하지. 눈치 보지 말고 소신껏 행동해. 이 중위, 이 일로 절대 문책하지 않을 거지?”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 중위의 대답도 직접 들었으니까 이제 편한 대로 하도록. 가급적이면 빨리 결정해 줬으면 좋겠어.”
수술을 빨리 시작해야 하기에 태수는 무한정 시간을 주지 않았다.
의무병들은 대답하지도 움직이지도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문책?
안할 리가 없다.
이대로 돌아나간다면 앞으로 군생활은 제대로 꼬일 것이다.
‘빌어먹을.’
의무병들이 다들 인상을 구겼다.
수술을 시작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기에 태수는 계속 의무병들과 입씨름할 순 없었다.
그들에게 언제 들려올지 모를 대답을 기다리기보다 수술 준비를 서둘러야 했다.
“이 간호사님, 우리는 마저 준비하죠.”
“여기 수술 가운이요.”
이선정 간호사는 새로운 수술 가운을 펼쳐 들고 다가왔다. 총상이라는 이야기에 넉넉하게 챙겨 온 모양이다.
역시 세심한 부분은 남자들이 절대 따를수 없었다.
태수가 수술 가운을 입은 후 손을 내밀었다.
“준비됐습니까?”
“여기요.”
이선정 간호사가 주사기를 내밀었다.
가루를 낸 근이완제를 물에 개어 주사기에 담아 놓은 거였다.
태수는 그걸 받아 들고 잠든 차상철 병장의 입을 벌려 식도에 정확하게 흘려 넣었다.
위가 일부 찢어진 상태라 흡수율이 떨어질 터였다.
그걸 감안해서 준비한 양이었기에 태수는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신중하게 흘려 넣었다.
꿀꺽.
무의식중에 차상철 병장은 근이완제를 삼켰다.
그리고 잠시 기다리자 근이완제 약효가 나타나는지 차상철 병장의 몸은 힘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축 처졌다.
그렇게 태수가 수술 준비를 하는 사이, 이동환 중위도 몸을 움직였다. 그가 의무병들에게 말했다.
“다들 알다시피 난 외과의 외 자도 모른다. 수술에 참여하는 것도 인턴 이후 처음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야. 하지만 여기 누구보다 열심히 참여할 생각이다.”
“…….”
“이 부대 군의관인 내 책임이니까 참여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 물론 부정하진 않겠다. 하지만 책임 문제를 떠나서 저 자식은 살려야겠다.”
이동환 중위의 말에 의무병들이 멈칫했다.
개의치 않고 이동환 중위는 이어서 말했다.
“내 앞에서 누군가 죽어 갈 때, 자리를 피하거나 손 놓고 구경하는 무책임한 놈은 되고 싶지 않아.”
“…….”
“같은 마음이라면 뛰어들고, 아니면 나가. 앞서 말했지만 그로 인한 문책은 절대로 없을 테니까.”
말을 마친 이동환 중위가 수술 장갑을 착용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서 비장함까지 느껴졌다.
꾸욱. 꾹.
장갑 낀 손으로 괜히 깍지를 낀 이동환 중위가 낮게 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의 얼굴에도 긴장감이 가득했다.
억지로 이겨 내고 있지만 금방이라도 손끝이 파르르 떨릴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의무병들은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다.
군생활이 꼬인다는 생각은 이제 접었다.
생에 첫 수술이다.
손발이 떨리도록 두려웠다.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런데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누군가는 살리기 위해서 스스로와 싸우고 있는데, 자신은 도망칠 생각부터 한다는 게 한심했다.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뛰어들기에는 공포가 앞섰다.
대부분 차상철 병장과 특별한 인연도 없다.
내무반이 달라서 몇 번 인사하고 이야기한 게 다였다.
그런데도 측은함이 들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도 군인이고 자신들도 군인이기 때문이다.
태수의 말대로 군대에서 죽는 것만큼 허무한 건 없다.
자신들이 수술에 직접 참여하는 것도 아니고, 약간의 도움만 주면 된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외면할 순 없었다.
결정을 내렸는지 최용복 상병이 먼저 말했다.
“참여하겠습니다.”
“저도 하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다른 의무병들도 이어서 대답했다.
결심을 입 밖으로 내뱉어서 그런지 의무병들의 눈빛이 강렬하게 변했다.
그제야 이동환 중위의 초조한 얼굴에 자그마한 미소가 감돌았다.
“니들 이제 군 생활 핀 줄 알아.”
“감사합니다.”
의무병들이 멋쩍은 얼굴로 대답한 후였다.
이동환 중위가 고개를 돌려 태수에게 말했다.
“선배님, 다들 준비됐습니다.”
“기다리다가 내 숨이 먼저 넘어가겠어.”
“죄송합니다.”
“무슨. 다들 마음 단단히 먹은 거 같으니까 그게 더 다행이지. 그럼 시작해 보자고.”
태수가 집도의 자리에 서자 이동환 중위도 얼른 어시스던트 자리에 다가섰다.
반면, 의무병들은 자기 위치를 찾지 못해 우물쭈물했다.
그런 그들에게 이선정 간호사가 말했다.
“수술 시작하면 김소훈 일병은 1분에 한 번씩 자동혈압계 수치를 말해 줘요. 혈액도 같이 관리해 줘야 하고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박주천 상병하고 최용복 상병은 선생님들 곁에 서 줘요. 아마 힘을 많이 써야 할 거예요.”
“갑니다.”
이선정 간호사의 말에 의무병들이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다들 제 위치를 잡자 태수가 메스를 들었다.
“지금부터 수술 시작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동환 중위가 씩씩하게 외치자 의무병들도 일단 따라했다.
말처럼 가뿐하게 끝날 수술은 아니다.
태수는 이미 메스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메스가 임시로 봉합해 놓은 봉합사를 끊고 상처를 더욱 길고 깊게 가르기 시작했다.
스윽.
살이 갈라지며 미세혈관에서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이동환 중위가 거즈를 들고 피를 닦았다.
피를 빨아들일 수도 없고 임의로 지혈할 수도 없는 상황이기에 신속함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혈압하고 맥박이…….”
눈치 빠른 김소훈 일병은 큰 목소리로 보고했다.
혈압이 빠르게 떨어지고 있고 맥박은 빠르게 올라갔다.
피가 부족해지면 일어나는 전형적인 반응이기에 태수가 망설임 없이 지시했다.
“혈액부터 부어 주세요!”
“최대로 열었습니다.”
김소훈 일병이 즉각 반응했다.
그러나 나아지고 있지 않다는 게 한눈에 보일 정도였다.
“제가 하나 더 연결할까요?”
“이 중위는 피를 걷어 내는 데 집중해.”
“앞서 말씀은 하셨지만 한도 끝도 없습니다.”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지만 막상 눈앞에 닥치니 이동환 중위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태수는 이선정 간호사에게 부탁했다.
“가루로 된 지혈제 좀 주세요.”
“여기요.”
그걸 받아 든 태수는 하얀 가루를 사정없이 상처에 부었다.
아니, 거의 쏟는다는 표현이 옳을 정도였다.
하얀 가루가 피와 함께 엉겨 붙으며 굳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획기적으로 출혈의 양이 줄어들진 않았다. 그래도 조금은 줄어드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이동환 중위는 그 모습에 놀라기보다 걱정부터 보였다.
“이렇게 부어도 괜찮은 겁니까?”
“출혈만 신경 쓰면 진도를 나갈 수가 없잖아.”
“그건 그렇긴 한데요.”
“나중에 씻어 내면 괜찮아.”
태수는 그렇게 말하고 이어서 메스를 움직였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카슈미르에서 지겹도록 겪었던 상황인지라 얼굴 표정조차 흔들림이 없었다.
이내 환부를 만족할 만큼 갈랐는지 그가 의무병들에게 오더를 내렸다.
“걸고 당겨요!”
“네!”
태수와 이동환 중위 옆에 각각 서 있던 의무병들이 대답과 동시에 리트렉터를 걸치고 당겼다.
살을 벌리는 건 그렇게 단번에 이뤄지지 않았다.
그리고 힘도 상당히 많이 필요한 일이었다.
환부가 서서히 벌어지긴 했지만 아직 시야가 확보되고 수술을 할 공간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런 상황까진 몰랐던 의무병들이 얼굴을 잔뜩 일그러진 채로 힘을 가했다.
“끙.”
“더, 더!”
“으자!”
팔 근육이 뻣뻣하게 굳어질 정도로 당겼다.
젊고 팔팔한 청년들답게 힘꽤나 썼다. 덕분에 수술을 진행할 수 있을 정도로 환부가 벌어졌다.
태수는 인상을 퍽퍽 쓰고 있는 의무병들에게 천천히 말했다.
“그 상태 그대로 유지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힘든 거 압니다. 그래도 버텨 주세요.”
“끙. 네!”
악에 받친 그들의 대답을 듣고야 태수는 환부로 시선을 돌렸다.
수술 시작하고 30분 가까이 지나서야 시야가 확보되었다.
말도 안 될 정도로 느린 속도다.
하지만 그나마 진행이 되고 있다는 것에 만족해야 할 상황이었다.
태수도 시간적인 초조함을 머리에서 지웠다.
발만 동동 구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주어진대로 수술해야했다.
이런 수술이 시간에 쫓겨야 하는 대부분의 이유가 혈액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확보한 혈액이 많았다. 이 중위 말대로 더 준비되고 있다고 하니 혈액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지혈에 신경 쓰기보다 무한정 수혈하는 걸로 환자 생명을 유지할 예정이다.
정말 무식하고 과격한 방법이지만, 지금은 더 좋은 방법이 없었다.
그걸 증명하듯이 거즈로 계속 피를 걷어 내도 수혈 양이 충분하기에 차상철 병장은 이상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걸 확인한 태수는 환부 속을 들여다봤다.
역시 계속 흘러나오는 피로 인해서 중요한 치료 부위들이 가려지고 있다.
그런 태수의 시선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이동환 중위와 이선정 간호사가 바지런히 피를 걷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