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645
00648 648화
그 모습을 본 태수가 옅은 미소를 보이며 물었다.
“수술, 계속 진행해도 될까?”
“죽어라 따라붙겠습니다.”
“좋았어. 의사가 그 정도는 되어야지. 그리고 의무병들!”
태수가 갑자기 부르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의무병들이 깜짝 놀라 대답했다.
“네!”
“지금부터 절대, 절대로 이쪽에 시선 돌리지 마라. 이건 부탁이 아니라 경고다.”
태수의 목소리가 차가웠다.
가급적이면 존대를 해 주던 말투도 완전히 사라진 싸늘한 경고였다.
그들도 귀가 있기에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짐작했다. 그래서 그런지 바로 시선을 반대로 돌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 모습을 한 번 더 확인한 후에야 태수의 시선이 다시 환부로 향했다.
간의 병변에 집중할수록 눈빛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덕분에 어딘지 모르게 훈풍이 불어오던 수술실 분위기도 점점 싸늘하게 가라앉아 갔다.
그렇게 몸과 마음에 긴장감을 끌어올린 후였다.
태수가 옆으로 손을 내밀며 말했다.
“메스.”
턱.
메스를 받아 든 태수는 단단하게 손에 쥐었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다시 한 번 간을 쓸어내리며 이상 부위를 확인했다.
확인을 마친 순간이었다.
이젠 시작해야 할 때다.
‘후우.’
속으로 길게 숨을 내쉬었다.
태수 또한 쉽지 않은 수술을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기쁠 리 없었다.
솔직히 말해 지금이라도 헬기가 도착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길 바라는 마음이 너무도 간절했다.
그러나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걸 알기에 마음을 차갑게 가라앉혀야 했다.
잠시 동안 메스를 든 태수가 환부를 싸늘하게 노려봤다.
기다려도 시작을 하지 않자 이동환 중위가 의아하게 바라볼 정도였다.
“선배님…….”
“간다.”
눈빛을 반짝임과 동시에 태수는 메스를 놀렸다.
메스가 거침없이 헤집기 시작하자 간의 일부분이 뭉텅이로 잘려 나갔다.
그와 동시였다.
푸아악!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던 출혈이 무시무시하게 터져 나왔다.
각오하고 있었다지만 막상 펼쳐진 상황에 이동환 중위가 당황했다.
“거, 거즈!”
“거즈보다 이걸로 피를 퍼내세요!”
이선정 간호사가 어디서 구해 왔는지 스테인리스 계량컵을 내밀었다.
말 그대로 피를 퍼 내야 할 수준의 출혈이다.
얼떨결에 받아 든 이동환 중위는 생각할 틈도 없이 반사적으로 피를 퍼내기 시작했다.
이선정 간호사가 얼른 김소훈 일병에게 소리쳤다.
“이쪽 보지 말고 피 더 달고 최대한 부어요!”
“이미 붓고 있습니다!”
“짜요. 그냥 쥐어짜라고요.”
이선정 간호사의 다급한 말에 김소훈 일병이 당황했다.
“그, 그래도 됩니까?”
“지금 따질 정신이 있어요?”
“아닙니다!”
김소훈 일병은 고개를 반대로 돌린 채 소리쳐 대답하고는 수혈팩을 쥐어짜기 시작했다.
억지로 수혈량을 늘리자 수혈팩이 빠르게 쪼그라들었다.
김소훈 일병은 총 3개의 수혈팩을 교체해 가면서 계속 쥐어짰다.
처음에는 어색한 손길이었지만 익숙해졌는지 속도가 상당히 빨랐다.
“이건 조금 더……. 이건 교체. 넌 빨리 내려가라고!”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 김소훈 일병은 혼잣말을 뇌까리며 수혈팩과 씨름했다.
박주천 상병과 최용복 상병 또한 한가하지 않았다.
리트렉터는 그냥 막연히 당긴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적당한 힘과 자세를 일정하게 유지해야 한다.
몇 시간 동안 수술해서 그런지 얼굴이 시뻘겋고 팔 근육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잠깐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니 팔 근육이 더욱 당겨 인상이 절로 찌푸려지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덩치가 작은 최용복 상병의 힘이 살짝 풀려 갔다.
바로 이동환 중위의 따끔한 소리가 들려왔다.
“최 상병!”
“죄송합니다. 으아악!”
최용복 상병이 소리까지 지르며 다시 힘을 내자 이동환 중위가 독려했다.
“용복아, 씨발, 버텨.”
“버티고 있습니다만, 팔이…….”
“지랄하지 말고 버티라고. 팔이 아프면 어깨를 물어 당겨서라도 버티라고!”
“아아악! 군대 진짜 뭐 같네!”
최용복 상병이 짜증을 버럭 냈다.
그렇게 소리치면서도 리트렉터를 당기는 손은 그대로 유지했다.
시선은 반대로 돌린 채 수술 장면은 바라보지도 않았다.
소리만 들어도 끔찍한데 직접 본다면 견뎌 낼 자신이 없던 터였다.
치료실이 온통 번잡하고 시끄러웠지만 태수의 주변은 고요했다.
얼마나 고요한지 태수만 다른 공간에 있는 듯한 착각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태수가 침착할 수 있는 건 출혈을 무시한 탓이 컸다.
지금 출혈까지 신경 쓰면 안 된다. 잠깐이라도 환부를 방치하는 순간 이 수술은 되돌릴 수 없다.
수술이 빨리 진행되면 출혈은 자연적으로 줄어들 터였다.
그걸 알기에 태수는 손을 움직이기에 바빴다.
“메젠바움, 믹스터, 엘리스, 코커, 인터네셔널 포셉…….”
태수의 입에서 수시로 수술 도구 이름이 터져 나왔다.
그걸 보조하는 건 역시 이선정 간호사의 몫이었다.
태수에게 수술 도구를 건네고 그 짧은 시간에 다리에 연결한 수혈팩까지 확인, 교체했다.
이동 거리가 짧았지만 그녀의 몸은 마치 2개가 된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태수는 그런 사정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디바키, 러시안 포셉, 모스키토…… 빨리!”
“여기요.”
태수와 이선정 간호사가 쉴 새 없이 수술 도구를 교환하며 딱딱해진 간의 조직 하나까지 걷어 내려 모진 애를 썼다.
반대편에 자리한 이동환 중위도 죽을 맛이었다.
주변에 거즈가 남아나질 않았다.
걷어 내고 또 걷어 내고.
반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출혈이 정리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태수의 질책도 들려왔다.
“이 중위!”
“하고 있습니다. 하고 있다고요.”
“더 빨리.”
“알겠습니다. 이 개새끼, 다쳐도 꼭 이런 데를 다치냐고!”
악에 받친 짜증이다.
그렇게 차상철 병장에게 괜한 욕을 하면서도 손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한 손으로는 간을 떠받치고 있어야 하기에, 다른 손만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거즈를 넣고 빼는 일을 이어 갔다.
태수가 간의 병변을 모두 제거하는 데는 그로부터 30여 분이 더 걸렸다.
그러나 누구도 그렇게 시간이 흐른 걸 느끼지 못했다.
그만큼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정신없는 시간이었다.
“끄으응.”
“아윽.”
리트렉터를 당기는 의무병들의 신음 가득한 비명 소리가 계속 흘러나왔다.
두 사람의 몸에는 이미 땀이 가득했다.
얼마나 땀이 나는지 수술 가운까지 젖을 정도였다.
혼자 동떨어져 혈액과 바이탈을 확인하는 김소훈 일병 상태도 만만치 않았다.
띡!
자동혈압계에서 소리만 들리면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현재 혈압은…….”
그러면서도 쏟아지는 출혈보다 더 많은 수혈을 해야 했다.
그의 뒤에 쌓여 있던, 피로 가득한 수혈팩은 텅텅 빈 게 더욱 많이 보였다.
얼마나 피 말리는 시간이었는지 자기 피를 쏟아 낸 것처럼 안색이 안쓰럽게 변한 상태였다.
이동환 중위도 형편이 만만치 않았다.
그가 서 있는 바닥 주변으로는 말 그대로 피바다였다.
피 묻은 거즈가 얼마나 많이 쌓였는지 바닥이 미끄러워 발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땀을 닦아 줄 보조 인원이 없었다.
거즈로 대충 닦아 내는 게 전부였다. 피가 묻은 거즈로 땀을 훔치는 바람에 이마에 핏자국이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간을 들고 있는 손길도, 거즈로 출혈을 걷어 내는 일도 한 번도 쉬지 않았다.
땀과 뒤섞인 핏물이 흘러내린 그의 얼굴이 괴기스러울 정도였다.
태수와 이선정 간호사라고 멀쩡하진 않았다.
이미 수술에 온 정신이 쏠려 있기에 태수와 이선정 간호사는 자신들의 상태가 어떤지 모를 뿐이었다.
그때, 간 뒤쪽에서 수술 도구를 정신없이 움직이던 태수가 낮고 강하게 말했다.
“이제 지혈 들어갑니다.”
“니들홀더하고 믹스터요.”
“니들홀더 하나 더 준비해 주시고요, 출혈을 더 걷어 내 주세요.”
“알았어요.”
이선정 간호사는 얼른 태수의 지시에 맞게 몸을 움직였다.
니들홀더를 쥔 태수가 봉합사로 출혈 부위를 하나씩 꿰매기 시작했다.
잘라 낸 면적이 너무 커다랗기에 그 자그마한 혈관들을 일일이 봉합하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태수는 눈에 보이는, 그리고 손을 쓸 수 있는 혈관들은 모두 일단 차단했다.
그 외에는?
분말로 된 지혈제를 쏟아 붓는 걸로 대처했다.
혈액이 지혈 가루와 뒤엉켜 응고가 되고 있지만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았다.
가장 어렵고 힘든 간 수술이 거의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태수의 얼굴에도 서서히 미소가 떠오를 기미가 보였다.
이 정도면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다.
통합병원에서 후속 조치를 받아야 하지만, 운이 좋다면 회복력이 뛰어난 간은 멀쩡히 재생될 터였다.
그렇게 마무리를 이어 갔다.
마무리 역시 조금 더 시간이 걸리겠지만 큰 시름은 덜어 낼 정도로 환자 상태도 안정적이었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환호하고 싶은 순간이었다.
덜덜덜.
갑자기 환자의 몸이 급격히 떨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김소훈 일병의 식겁한 외침도 들려왔다.
“깨, 깨어나려 합니다!”
“뭐?”
태수가 얼른 시선을 환자에게로 향했다.
“으으으…….”
환자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신음 소리.
미간이 잔뜩 일그러지고 볼 근육이 계속 들썩이고 있었다.
아직 깨어난 건 아니다.
하지만 무의식 속에서도 엄청난 고통을 느끼며 수면제 약효를 뒤집고 억지로 깨어나는 중이었다.
이동환 중위의 다급한 목소리도 튀어나왔다.
“어, 어떻게 합니까?”
“선생님, 바로 수면제 추가 투여 할까요?”
이선정 간호사 또한 다급해진 모습이었다.
수술 중에 환자가 깨어난다면?
그건 정말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다.
그 마음이 두 사람의 표정과 목소리에서 고스란히 느껴졌다.
태수는 재촉하는 소리들로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자신까지 같이 다급해지면 안 된다.
집도의 자리에 섰으면 수술이 끝나고 환자가 안정될 때까지 절대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태수는 그런 생각이 이미 본능같이 굳어졌기에 날카로운 눈빛으로 차상철 병장을 바라봤다.
“이 간호사님, pressure bandage(압박붕대) 주세요.”
“네?”
“어서요!”
태수가 강한 목소리로 재촉하자 이선정 간호사가 움찔하더니 얼른 손을 움직였다.
“여기요.”
턱.
그걸 받아 든 태수는 그대로 차상철 병장의 얼굴로 다가갔다.
그리고 옆에서 혈액 관리 하는 김소훈 일병을 바라보며 말했다.
“입 벌려.”
“무슨…….”
“내 말 안 들리나?”
태수의 싸늘한 말투와 눈빛이 김소훈 일병에게 쏟아졌다.
현역 군인이라고 해도 아직 어린 나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태수의 눈빛을 이겨 낼 순 없었다.
김소훈 일병은 피곤함도 잊은 듯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변했다. 사고가 정지될 정도로 긴장했는지 그는 자기 입을 벌렸다.
“아.”
“너 말고!”
“죄송합니다!”
얼른 정신 차리고 사과한 김소훈 일병이 양손으로 차상철 병장의 입을 벌렸다.
아직 완전하게 깨어나지 않아서 그런지 순순히 입이 벌어졌다.
태수는 그 입속으로 압박붕대 뭉치를 그대로 쑤셔 넣었다.
콱!
입속이 압박붕대로 가득해 다물어지지가 않았다.
태수가 김소훈 일병에게 말했다.
“수면제 추가하고, 계속 수술할 테니까 그래도 깨어나면 주먹으로 갈겨.”
“네?”
“할 수 있지?”
“그, 그래도 제가 어떻게…….”
아무리 내무반이 달라 친하지 않더라도 상대는 병장이다. 김소훈 일병이 머뭇거리는 게 당연했다.
태수는 그런 김소훈 일병에게 화내지 않고 냉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커터 칼에 손가락 베여 본 적 있나?”
“이, 있습니다.”
“아팠지?”
“그렇습…… 니다.”
김소훈 일병이 가까스로 대답하자 태수는 차분하게 이어서 말했다.
“지금 차 병장이 느낄 고통은 커터 칼이 온 몸속을 헤집고 있는 거와 같아.”
“헉!”
“차 병장을 위해서라도 눈이 떠진다 싶으면 갈겨.”
태수가 굳은 눈빛으로 말하자 김소훈 일병이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병장 때려 보겠어. 하극상 아니니까 힘차게 갈기도록 해. 부탁한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오케이. 이 간호사님, 수면제는요?”
태수가 시선을 돌리자 이선정 간호사는 이미 대기 중이었다.
“아까보다 2배로 준비했어요!”
“한 번에 투여해 주시고, 수액을 많이 추가해 주세요.”
“알겠어요.”
이선정 간호사가 바로 수면제를 투여하자 태수는 다시 한 번 김소훈 일병을 바라봤다.
태수의 시선이 마주친 순간이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래. 부탁할게.”
김소훈 일병이 알아서 대답하자 태수는 고개를 묵직하게 끄덕이고는 다시 집도의 자리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