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67
00068 68화
이야기하는 사이 수술실안이다.
기다렸다는 듯이 마취과 의사가 전신마취제를 투입했다.
곧 김성미는 스르륵 잠이 들듯이 마취 됐다.
그제야 태수는 몸을 움직여 밖에서 대기 중인 하석준 과장에게로 향했다.
잠시 후 하석준 과장과 이명석 치프가 제 위치에 섰다.
“시작하지.”
하석준 과장의 말이 끝나자 이명석 치프가 선창하듯 크게 인사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태수를 포함한 다른 의료진들이 후창을 하고야 수술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체온 보호를 위해 덮어놓은 천을 걷자 20대 여자의 아름다운 몸이 드러났다. 그러나 태수는 그걸 보고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그저 환자였다.
감성적으로 접근해서 좋을 게 없었다.
그리고 수술을 해야 하는 부분은 그 속이다.
카프레네의 기억 때문인지 수없이 많은 여자들에 나신을 본 느낌이다.
특별한 느낌보다 덤덤함이 앞섰다.
‘이것도 문제네.’
태수가 쓴 미소를 지었다.
그때 하석준 과장이 메스로 수술의 시작을 알렸다.
태수는 참관의 위치에 서서 하석준 과장에게 수술도구를 건네주는 역할이다.
하석준 과장 수술에 이 위치에 선 건 이번이 두 번째다.
태수는 하석준 과장의 손놀림을 또 한 번 눈으로 확인했다. 약간은 거칠지만 군더더기가 많이 빠진 손놀림이다.
이명석 치프가 보조하니 금세 가슴이 열리고 그 속에 있는 장기들이 조명에 비춰졌다.
우선 시야확보가 중요했다.
주요 혈관을 겸자로 일부 차단하고, 리찰슨과 디바로 간과 위를 견인해 췌장을 드러나게 했다.
태수는 한 손으로는 썩션을 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하석준 과장에게 수술 기구를 건넸다.
물론 틈틈이 썩션이 아닌 포셉을 이용해 시야확보에 손을 보탰다.
남들이 보기에는 태수가 약간 도움을 주는 모습이다.
그러나 속사정은 조금 달랐다.
태수는 자신이 면밀히 분석한 EMR과 카프레네의 경험을 통해 환부를 하석준 과장에게 명확하게 보였다.
물론 그 손길은 드러나지 않았기에 의심을 피했다.
태수의 합세로 집도의 한 명에 어시스던트가 두 명이 함께 하는 상황도 연출됐다.
물론 하석준 과장의 손놀림은 그만큼 자유로워졌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장점은 수술 시간이 예상보다 짧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수술이 이어지던 중이었다.
드러난 췌장 변성부위가 확인 됐다.
좀 더 신중하게 둘러본 하석준 과장 얼굴에 자그마한 미소가 떠올랐다.
“다행히 SMV에 붙어 있지는 않네.”
마스크 속에서 들려온 음색이지만 기쁨이 가득 느껴졌다. 환자에게 부담을 줄여줄 수 있고, 수술도 빨리 끝날 일이다.
그래서 더 좋아하는 듯 했다.
태수도 그 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보기에도 췌장과 SMV와 떨어진 상태였다. 그리고 변성 부위를 눈으로 직접 보니 그 부분만 떼어내도 문제가 없을 거 같았다.
큰 수술로 이어지지 않으니 태수 눈가에도 자그마한 미소가 떠올랐다.
힘이 나는지 하석준 과장 손길이 조금 빨라졌다.
뒤를 이어 보조하는 이명석 치프 손길도 분주해졌다.
또한 수술 간호사들과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는 마취의 손도 바빴다.
집도의의 속도에 따라 수술에 참가하는 모든 의료진들의 움직임도 변할 수밖에 없었다.
한 시간 쯤 흘렀을까?
쉬는 시간이 됐다.
일부러 쉬는 시간을 만들어낸 하석준 과장이 태수와 독대했다.
하석준 과장이 태수에게 물었다.
“이번 환자는 별 이상 없이 끝날 거 같지?”
“조금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습니다만.”
“또? 이번에는 뭔데?”
하석준 과장은 순탄하게 진행되는 수술에 브레이크가 걸리자 살짝 짜증을 보였다.
그러나 태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제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SPTP는 변성부위를 제거해도 양성 종양이 생성될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어디?”
“여기 있습니다.”
태수는 기다렸다는 듯이 휴대폰을 꺼내 미리 준비해 놓은 화면을 보여줬다.
원문으로 된 내용을 빠르게 눈으로 훑은 하석준 과장은 낮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여기 보시면 변성부위 보다 조금 더 넓게 절개해서 아예 변질된 세포까지 들어내야 한다고 합니다만.”
“그게 어디까지인지 어떻게 알아?”
“변성 조짐이 있는 부위는 딱딱해 진답니다. 육안으로는 확인하기 힘들어도 촉감으로는 확인할 수 있다네요.”
태수는 공부 많이 한 뉘앙스로 말했다.
물론 머릿속에 있는 내용이었다.
태수의 말에 하석준 과장이 씁쓸한 얼굴로 물었다.
“카프레네 저서에 있는 내용 맞지?”
“네.”
“그 양반은 드물다는 SPTP를 많이 째봤나 보네. 어떻게 그거까지 알아.”
투덜거렸지만 카프레네라는 전설적인 써전에 저서에 있는 내용이라니 그런가 보다 할 뿐이었다.
태수는 그런 하석준 과장을 지켜보다 기회를 틈타 슬쩍 입을 열었다.
“과장님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뭐가?”
“제가 계속 봉합 연습 중인데 매몰법이라는 게 있다던데요.”
태수의 물음에 하석준 과장이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피부 아래에서 흡수성 봉합사로 루프 모양으로 봉합한다는데, 그렇게 하면 어떻게 됩니까?”
“어떻게 될까?”
“잘 모르겠습니다. 겉으로 봉합하는 것도 아직 제대로 못해서요.”
하석준 과장이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늘은 매몰법으로 봉합해 볼까?”
“직접 보여주시는 겁니까?”
“열심히 공부했으니까 그 정도 서비스는 해 줘야지.”
“감사합니다.”
태수가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그런 태수를 가만히 바라보던 하석준 과장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앞으로는 대놓고 말하는 방법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아.”
“네?”
“20대 여자환자인데 흉터가 크게 남으면 안 좋지 않겠냐고.”
“…….”
순간 태수가 멈칫했다.
속마음을 들킨 탓이었다.
그러나 하석준 과장은 질책하지 않고 계속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환자랑 잘 지내는 모습. 물론 보기 좋아. 하지만 왜 그렇게 하지 말라는지 알고 있나?”
“감정적인 부분이 수술에 개입되게 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환자를 냉정하게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겠지. 그런데 환자도 그럴까?”
그 말에는 태수도 답할 수 없었다.
카프레네의 경험을 살펴도 환자와 일정부분 가까이 하지 말라고 했다.
사랑이 싹 틀 수도 있지만 집착이 될 경우도 대비하란 뜻이다.
태수의 침묵에 하석준 과장은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적당한 선이라는 거 참 힘들어. 나도 아직 중심점을 못 찾았으니까.”
“그러시군요.”
“그건 스스로 알아보도록 하고. 좌우간 봉합은 매몰법으로 하자고.”
“감사합니다.”
태수가 인사하자 하석준 과장이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 정도 서비스는 해야지. 아, 물론 이것도 빚에 포함되는 거야.”
“또요?”
“그게 싫으면 괜한 핑계를 대지 말았어야지.”
하석준 과장이 부드럽게 질책하자 태수도 삐쭉거렸다.
“그럼 전 언제 빚을 다 갚을 수 있는 겁니까?”
“어머니의 생명이 돈으로 환산 되나?”
“아니요.”
“그럼 빚 갚는 데 좀 오래 걸리겠네. 자, 그럼 다시 시작해 볼까?”
하석준 과장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그 뒤를 따라가던 태수는 의외로 의심장한 미소를 띠웠다.
계속 빚을 갚아야 한다?
그 말을 돌려서 하면 계속 수술실에 들어올 수 있다는 이야기와 같았다.
눈으로 보는 것도 공부다. 그리고 기구를 사용해 조금씩 장기를 대하는 감각을 느끼는 중이다.
이런 기회가 많으면 많을수록 태수에게 좋았다.
하석준 과장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다.
상부상조하는 일이지만 일부러 빚이라는 말로 태수를 잡아두려는 모양이다.
‘저 분도 참 재밌어.’
태수의 눈매가 부드럽게 변했다.
수술은 무사히 끝이 났다.
하석준 과장은 태수의 말대로 매몰법으로 봉합했다. 그래서 그런지 환부는 생각보다 눈에 드러나지 않았다.
윗배가 칼로 그어진 정도의 상처다.
그조차도 십여 센티미터가 될 정도로 길었지만 흉측한 흉터로 남진 않을 게 분명했다.
태수는 ICU에서 김성미가 깨어나길 기다리며 킵 했다.
소변통에 소변이 잘 흘러나왔다. 혈액이 원활하게 순환하고 신장도 제 역할을 한다는 뜻이었다.
깨어나기만 하면 큰 문제가 없을 거 같았다.
태수는 수시로 변하는 상황을 차트에 기입하면서 계속 자리를 지켰다.
시간이 흘러 늦은 밤이 됐다.
“으음.”
김성미의 입에서 작은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눈꺼풀에 덮인 눈도 조금씩 움직이는 게 확인 됐다.
태수는 반사적으로 시계부터 확인했다.
수술이 끝나고 4시간이 지났다.
마취과 의사가 예상한 시간과 비슷했다.
내심 안도한 태수가 조심스럽게 김성미를 불렀다.
“김성미 환자분, 김성미 환자분?”
태수의 부름에 반응하듯 김성미 눈꺼풀이 조금씩 올라갔다.
흐리멍덩한 눈빛에 조금씩 초점이 잡히기 시작하자 태수가 물었다.
“저 알아보시겠습니까?”
“최……. 선생님.”
힘없는 목소리였지만 분명한 발음이었다.
그제야 긴장을 털어낸 태수가 미소를 띠었다.
“수술 아주 잘 됐습니다.”
“정말……. 이요?”
“그럼요. 지금 중환자실인데 며칠 차도 지켜보고 일반병실로 옮길 겁니다.”
끄덕.
김성미가 미약한 고갯짓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태수는 그제야 기지개를 피며 입을 열었다.
“이제 저도 쉬러 가야겠습니다.”
“어머. 저 때문에?”
“아뇨 환자때문이죠.”
태수가 환하게 웃으며 멀어져갔다.
김성미의 회복은 상상외로 빨라 드디어 퇴원날이 밝았다.
젊어서 그런지 예상보다 빠른 회복속도였다.
인상을 찡그리던 전과 달리 한껏 밝아진 김성미 얼굴은 귀여웠다.
상처도 곱게 아물어 커다란 수술을 한 것치고는 상처가 크지 않았다. 레이저 시술로 몇 번 치료하면 어느 정도는 커버가 될 정도였다.
“됐어.”
멀리서 바라보던 태수는 그제야 안도하며 빙긋 웃을 뿐이다.
다만 가슴 한쪽이 약간 허전한 느낌?
그건 사실이다.
마침내 또다시 오프날이다.
단 하루였지만 태수에게는 의미 깊은 시간이다. 그런데 병원을 나섰지만 막상 갈 곳이 마땅하지 않았다.
공주에 어떤 연고도 없던 탓이다.
오랜만에 가운을 벗었지만 갈 곳 없는 신세라서 그럴까?
조금은 처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조차도 곧 털어냈다.
자유라는 소중함을 알기에 그런 한탄도 지금은 사치였다.
“집에 갈까?”
어머니의 회복상태가 걱정됐다.
그러나 거리가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이동수단도 대중교통뿐이라 선뜻 출발하지 못하고 막막함이 앞섰다.
그렇게 병원 현관에 서서 고민할 때였다.
“최 선생.”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자 응급실 레지던트 3년차인 이철준이 손을 들어 아는 척 했다.
그런데 그도 사복차림이다.
“선배님.”
태수가 반기자 다가온 이철준이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물었다.
“너도 오늘 오프야?”
“네. 선배님도요?”
“그렇지. 그런데 이런 우연도 있나?”
“그러게 말입니다.”
태수와 이철준은 조금은 어색해 했다.
병원 안에서 수시로 만나는 사이라지만 그거야 일이었다.
사적으로는 만나서 대화한 적도 극히 드물었기에 이런 순간이 묘한 느낌으로 다가온 모양이다.
멋쩍은 태수가 어떤 말을 할지 생각할 때였다.
이철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넌 오늘 뭐하냐?”
“집에 좀 다녀올까 생각 중입니다.”
“집? 어딘데?”
이철준이 궁금한 얼굴로 바라보자 태수가 입을 열었다.
“평택 쪽입니다.”
태수가 손에 든 커피를 거의 마셔갈 즈음이다.딱!
손가락을 강하게 튕긴 이철준이 태수에게 말했다.
“가자.”
“터미널까지 태워주실겁니까?”
“내 차로 가자.”
“감사합니다.”
태수가 씩씩하게 대답하고 이철준의 뒤를 이어 차에 올랐다.
부웅.
다시 출발한 차는 공주터미널 쪽이 아니라 서울 쪽으로 향했다. 의아함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철준은 거침없이 공주 IC를 통과했다.
그제야 뭔가 이상함을 느낀 태수가 빠르게 물었다.
“선배님. 어디 가십니까?”
“니네 집에.”
“네?”
“가자고 했잖아.”
그 말을 들은 태수가 조금 전 기억을 더듬어봤다.
“그럼 가자고 하셨던 게.”
“몰랐어?”
“거리가 먼데요.”
“난 집이 대구 쪽이야. 너 태워다 주고 조금만 더 가면 돼.”
이철준의 말에 태수가 머릿속으로 지도를 떠올렸다.
그러나 방향은 완전히 달랐다.
“너무 멉니다.”
“거 새끼. 전에 간식 얻어먹은 게 계속 얹혀있어서 선심 좀 쓰려고 해도 난리네.”
“…….”
“마, 사람이 얻어먹고 입 씻는 법이 어디 있냐?”
이철준이 묻자 태수가 쓴 미소를 지었다.
“없습니다.”
“그러니까 가자고. 내 차도 아닌데 좀 밟을까? 넌 네비에 주소 좀 찍어.”
짓궂게 말한 이철준은 보란 듯이 가속페달을 힘차게 밟았다.
부아앙!
탄력을 받은 차는 빠르게 북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