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686
00689 689화
긴 인사가 끝난 후에야 태수와 팀장을 포함한 구급대원들이 둘러앉았다.
팀장이 먼저 자신을 소개했다.
“이성준입니다.”
이성준 팀장은 50대로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관리가 얼마나 대단한지 아직도 30대 후반 정도?
직업상 여러 사람을 대해서 그런지 성격이 유들유들한 것 같았다.
그 외에 다른 대원들도 소개를 마쳤다.
박정훈, 송대성.
악수할 때 두 손을 맞잡을 만큼 서로를 예의 있게 대했다.
그렇게 인사가 끝난 후였다.
태수가 자신에게 집중된 관심을 돌렸다.
“이렇게 그날 도와주신 분들을 다시 찾아뵙게 되어서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습니다.”
“또 그 말씀을.”
“인사는 늦었지만 감사함은 한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그때도 지금도 저희는 저희 일을 하는 거뿐입니다.”
이성준 팀장이 말하자 태수의 눈빛이 그윽해졌다.
“그 말씀을 들으니까 더욱 감사합니다.”
“저희도 최 선생님이 찾아주셔서 기쁩니다.”
서로 좋은 이야기가 오갈 때였다.
성규석 대원이 슬쩍 태수와 이성준 팀장의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이거…… 실례가 아닐까 모르겠는데.”
“실례라는 걸 알면 하지 않는 게 맞지.”
“그건 그렇습니다.”
성규석 대원이 얼른 입을 다물자 태수가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닙니다.”
“궁금하신 게 있으면 얼마든지 물어보십시오. 제가 아는 건 모두 답해 드리겠습니다.”
“이거 괜히 이야기를 꺼내서.”
성규석 대원은 주변의 시선에 난처한 기색을 보였다.
그러나 태수는 그에게만 집중하며 말했다.
“전 정말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물어보셔도 됩니다.”
“그럼 실례 좀 하겠습니다. 사실은 그 당시에 궁금했던 부분이긴 했는데, 사망하신 분이 외국인이셨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그렇습니다.”
태수는 카프레네의 이야기에도 차분하게 대답했다.
먼저 산에 다녀온 덕분이었다.
태수의 수더분한 대답에 성규석 대원도 좀 더 편안하게 물었다.
“쓸데없는 궁금증인 건 아는데, 관계가 어떻게 되시는지 좀 이해가 안 돼서요.”
“제 마음속의 스승님이십니다.”
“그래요?”
성규석 대원은 외려 의아해했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그때 상황과 태수의 말이 조금 다른 탓이었다.
그때는 분명히 무연고 사망자로 기록되었을 터였다.
아니, 그가 누군지 성규석 대원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그럴 법도 했다.
카프레네는 의사 세계에선 절대적인 존재지만, 그 외의 직업군에는 그렇게 널리 알려진 인물이 아니었다.
미국이었다면 또 이야기가 달랐을지 몰라도 한국에서는 이런 반응이 당연했다.
그때 의아해하는 성규석 대원에게 이성준 팀장이 한마디 했다.
“스승님이시라잖아.”
“그러게요. 최 선생님, 죄송합니다. 제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쓸데없는 걸 여쭤봤네요. 그보다 그분 장례는 잘 치르셨습니까?”
성규석 대원이 얼른 말을 돌리자 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해 주신 덕분에 안전하게 고국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다행입니다.”
대답한 성규석 대원이 종이컵을 입으로 가져갔다.
왠지 잠시 대화가 멈춘 느낌이다.
아니면 쓸데없는 생각 때문에 더 묻기가 껄끄러운 걸지도 몰랐다.
반면, 태수는 전혀 그런 느낌을 받지 않았다.
태수가 얼핏 시간을 확인했다.
아침 일찍부터 산을 올라갔다 와서 그런지 이제 점심시간이었다.
태수가 조심스레 물었다.
“식사하실 시간이시죠?”
“아, 좀 늦게 먹어도 됩니다.”
“그게 아니라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가 식사 한 끼 대접하고 싶어서요.”
“무슨 밥을 사 주십니까.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이성준 팀장이 예상대로 극구 사양했지만 태수도 이대로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그냥 밥 한 끼 같이 먹는 겁니다. 반가운 사이에 그 정도는 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그게…….”
“전 진짜 반갑고 감사한데…….”
태수는 일부러 말꼬리를 흐렸다.
아쉬움을 목소리뿐만 아니라 표정으로도 표현하자 이성준 팀장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이거 자리를 오래 비울 수도 없는 입장이고.”
“그러면 이쪽으로 주문할까요? 모두 같이 드실 수 있게 말입니다.”
“그건 또 실례죠. 여기 애들이 몇 명인데.”
이성준 팀장이 얼른 손을 내저었지만 태수는 미동도 없었다.
“제가 원래 배가 고프면 꿈쩍도 하지 않아서 말입니다. 아침 일찍부터 움직였더니 힘이 하나도 없네요.”
“최 선생님.”
“이렇게 헤어질 순 없는 거 아닙니까. 아직 나눌 대화도 많은데요.”
“그렇기는 한데요.”
“저로 인해 출동에 지장을 드리면 안 되니까 여기서 같이 드시는 걸로 하면 안 되겠습니까.”
태수가 정중하게 부탁하자 이성준 팀장은 난감했다.
“여긴 애들 땀 냄새가 고약한데.”
“사람 향기가 나긴 하네요.”
“거참.”
“그럼 메뉴는 뭐로 할까요?”
태수는 아예 작정한 듯이 적극적으로 물었다. 그러자 구급대원들도 더 거절하기 난처한 상황이 되었다.
나가자니 출동이 걱정되어 사무실을 비울 수도 없다.
결국 태수가 하자는 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최 선생님한테 못 당하겠습니다.”
“대접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보다 메뉴는……?”
“우리는 자장면 좋아하는데, 어떠십니까?”
이성준 팀장은 기세 좋게 가장 저렴한 메뉴를 불렀다.
뻔히 속이 보이는 말에 태수도 진한 미소를 지으며 수긍했다.
“저도 좋아합니다.”
“그럼 사 주시는 거니까 곱빼기 정도 먹어도 되겠죠?”
“얼마든지요.”
“좋습니다. 그럼 인원에 맞게 자장 곱빼기로 주문하겠습니다.”
“거기에 탕수육, 양장피, 난자완스도 주문하시는 걸로 알겠습니다.”
태수가 딱 잘라 말을 마무리 지어 버리자 이성준 팀장이 한 방 먹었다는 표정으로 변했다.
“이거 참.”
“그렇게 해 주실 거죠?”
“…….”
이성준 팀장이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자 성규석 대원을 포함한 다른 대원들이 슬쩍 이성준 팀장을 바라봤다.
태수와 자리한 그들뿐만 아니라 다른 구급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간절한 시선을 한가득 느낀 이성준 팀장은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거 애들이 눈치가 없어서 부담이나 드리고, 면목이 없네요.”
“무슨 말씀을요. 전 무조건 푸짐하게 먹는 편입니다.”
태수는 여유로운 미소를 잃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최고급 갈비집으로 데려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들의 일이 언제 어느 때 출동 명령이 떨어질지 모르기에 그럴 순 없었다. 그저 푸짐하게 한 끼 대접할 수 있음에 감사할 뿐이었다.
잠시 후, 식사가 도착하고 모두가 바닥에 둘러앉았다.
이성준 팀장이 또 한 번 사과했다.
“자리가 마땅치 않아서.”
“음식은 이렇게 같이 먹어야 맛이죠. 얼른 드시죠.”
“그럼 잘 먹겠습니다.”
이성준 팀장이 먼저 인사하자 뒤따라 다른 대원들이 크게 소리를 냈다.
“잘 먹겠습니다. 우와!”
그럴듯한 중식 요리가 펼쳐지자 다들 행복한 표정들이었다.
그리고 젓가락이 빠르게 움직였다.
역시 사람은 배에 뭔가가 들어가니 더욱 푸근해져인지, 식사를 하는 중간중간 편안한 대화도 오갔다.
“얼마 전에 사고 사례 내려온 거 보고 강원도에 계신 줄 알았습니다.”
“실은 좋은 일에 함께하기 위해서 옮기게 되었습니다.”
“무슨 좋은 일이요?”
다들 궁금해하자 태수는 감출 일도 아니기에 곧이곧대로 대답했다.
“분당에 있는 군병원에서 소년 소녀 가장들을 수술해 준다고 해서, 거기에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그런 일을 군에서요?”
“군하고 보건복지부하고 같이 하는 일이랍니다.”
“가끔은 쓸 데 있는 일도 하네요.”
이성준 팀장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웬일로 그런 일을 다 하지?”
“그게 당연한 거지.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어려운 아이들 도와주는 건데 당연히 국가가 나서야지.”
“무조건 순수한 의도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보이는 것만 생각하자고.”
그런 대화가 오가는 사이였다.
이성준 팀장은 계속 태수에게 물었다.
“그럼 계속 분당에 계시는 겁니까?”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당분간은 거기 있을 거 같습니다.”
“그렇군요.”
“왜 그러십니까?”
“아닙니다. 식사하십시오.”
이성준 팀장이 알 수 없는 표정을 짓자 태수는 그저 어깨만 으쓱거렸다.
다행히 식사를 하는 중에는 출동 명령이 떨어지지 않았다.
다들 배 터지게 식사를 하고 차까지 한 잔 더 마신 후에야 태수도 일어날 준비를 했다.
“이제 가 봐야 할 거 같습니다.”
“이거 좀 아쉽네요. 술이라도 한잔했으면 좋겠는데.”
“그럼 그냥 눌러앉을까요?”
“일이 없으시면 그래도 저희는 좋죠.”
대답하는 이성준 팀장의 얼굴이 밝았다. 그리고 다른 구급대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태수에 대해 들은 이야기로 호감이 있었고, 대화를 하며 친해진 이유도 있었다.
그리고 외과 의사와 구급대원의 사이는 초면이라 해도 알지 못할 끈끈함이 있었다.
서로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들이기에.
다들 시원하게 말하니 태수의 얼굴에 미소가 짙어졌다.
그때였다.
에에엥!
사무실에 설치된 사이렌이 울렸다.
거의 동시에 상황 대기를 하고 있던 구급대원이 외쳤다.
“응급 상황 발생! 출동하세요!”
그 소리에 어딘지 모르게 풀어져 보이던 구급대원들의 눈빛부터 달라졌다.
후다닥!
날렵하게 몸을 움직이는 모습에 태수가 깜짝 놀랄 정도였다.
그때 이성준 팀장이 미안함을 표했다.
“미안합니다. 우리 일이 원래 이래서요.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고요.”
“아닙니다. 오늘만 날인가요.”
“분당에 계신다니까 쉬는 날 한번 찾아뵙겠습니다.”
“얼른 가 보세요.”
태수가 등을 떠밀자 이성준 팀장도 고갯짓으로 인사하고 재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장비 챙겨!”
“빨리빨리 움직이라고!”
누구보다 재빠르게 움직이는 그들은 서로를 독촉하기에 바빴다.
잠깐 지체하는 그 순간에 사람이 죽어 갈지도 모른다는 사명감 때문인 것 같았다.
저들이 있기에 외과 의사란 직업도 빛이 날 수 있었다.
적어도 태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들을 더 방해하지 않기 위해 태수는 조용히 구급대를 나섰다.
가까이 세워 둔 차로 향하는 길이었다.
에에엥!
사이렌을 크게 울리며 구급차가 신속하게 출발했다.
조수석에 탑승한 이성준 팀장을 발견했다. 그도 동시에 태수를 발견했는지 거수경례를 올려 보였다.
태수는 그 모습에 화답하듯이 깊게 고개를 숙였다.
태수는 구급대와의 아쉬운 헤어짐을 뒤로하고 분당으로 향했다. 중간에 짬을 내 석재봉 과장을 만날까 했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오늘부터 남은 시간은 충분히 쉬고 군병원에 출근하는 게 옳았다.
분당에 도착한 태수는 비서실장이 보내 준 문자에 적힌 주소로 향했다.
멀리 군병원이 보이는 빌라였다.
그런데 빌라의 규모가 생각보다 컸다.
의아한 태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한 번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해 봤다.
역시 이 빌라였다.
얼떨떨한 얼굴로 주차를 한 태수는 관리인에게 전화했다.
통화 연결음이 몇 번 들린 후 전화가 연결되었다.
“여보세요?”
“실례합니다. 전 최태수라고 하는데…….”
태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상대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안녕하십니까. 말씀은 들었습니다. 금방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그리고 전화가 끊어졌다.
태수가 황당한 얼굴로 휴대폰을 내려다봤다.
으쓱.
가볍게 어깨를 들썩이며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태수 쪽으로 허겁지겁 달려오는 중년인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다가오자마자 인사했다.
“최태수 선생님 되시죠?”
“그렇습니다만.”
“비서실장님께서 보내 주신 사진이 있어서요. 반갑습니다.”
“저도 반갑습니다. 앞으로 신세 좀 지겠습니다.”
“신세는요. 일단 올라가시죠.”
관리인은 빠르게 태수를 안내했다.
빌라 2층의 첫 번째 집이 태수가 머물 숙소였다.
안으로 들어간 태수는 입이 쩍 벌어졌다.
방만 3개에 화장실도 2개였다. 거실도 널찍하고 부엌살림도 갖춰져 있었다.
“이게…….”
조금 넓은 원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예상이 완전히 뒤집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