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714
00717 717화
곧 마취의가 약을 차례로 하나씩 신중하게 투여했다.
그사이에도 태수는 CPR을 이어 갔고, 중간중간 이기준이 제세동기로 충격을 줬다.
성재경과 임진호도 도우려 했지만 아직은 몸이 안정을 찾지 못했다. 더 솔직히 말한다면 안정을 찾을 틈도 없이 계속 몸을 움직인 탓이 컸다.
두 의사가 내심 부족한 체력을 원망할 때였다.
반응을 보며 약물을 투여하던 마취의가 태수에게 말했다.
“모두 투여했는데 아직 반응이 없어.”
“전신자극제도요?”
“물론이야.”
마취의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이런 상황까지 왔다면 그다음 일을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눈빛도 함께였다.
태수의 성격상 그럴 수는 없었고 아직 절망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절망이란 환자에게는 죽음을 말한다.
죽음은 그리 쉽게 입에 떠올릴 단어가 아니다.
더구나 의사라면 특히 외과의사라면……
이 팔에 힘이 남아있는 한.
그리고 의지란 놈이 뇌리에 있는한.
포기란 없다.
태수 눈빛이 섬뜩한 광채를 뿜으며 뭔가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는 걸 경험과 본능이 동시에 일깨웠다.
태수는 환자의 얼굴을 바라봤다.
이은진.
15세 소녀.
사춘기라 특히 예민했던 소녀였다.
낯을 너무 가려 태수와는 이렇다 할 대화도 제대로 나눠 보지 못한 아이기도 했다.
평소에 대화라도 많이 나눴다면…….
그 생각이 든 순간 태수가 시선을 급히 돌렸다.
이은진과 많은 대화를 나눴던 의사가 생각난 탓이다.
비록 태수와 친하지 않다고 해도 다른 의사랑 친하게 지내는 아이들이 있었다.
이은진도 그런 경우였다.
이내 태수의 시선은 아직 바닥에 누워 있는 유병태에게 고정되었다. CPR을 하다가 지칠 대로 지쳐 아직 일어나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기절한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태수는 바로 그를 불렀다.
“유 선생!”
“…….”
“이 아이, 이대로 떠나보낼 거야!”
그 말과 동시였다.
번뜩!
그 소리에 눈을 뜬 유병태가 태수를 바라봤다.
“뭐, 뭐야, 무슨 일이야?”
“지금 은진이 귀에 대고 얼른 최대한 편안하게, 그리고 안정적인 목소리로 말해 줘.”
“갑자기 무슨 말을?”
“아무 말이나. 빨리.”
유병태는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아직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한 듯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몸은 본능적으로 이은진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태수가 다시 이야기했다.
“심장을 되돌리려면 누군가 불러 줘야 해. 그게 지금은 유 선생밖에 없어. 가능한지, 가능하지 않은지는 나중에 생각하자.”
태수는 그렇게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물론 이런 식으로 의식 없는 환자를 자극하기 위해 대화를 유도하는 방법이 있었다.
문제는 심장이 멈춘 환자와의 대화가 생소하단 점이다.
그러나 유병태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이은진에게 다가갈 뿐이다.
조금은 자신 없어 보이는 몸짓을 보자 태수가 한마디 더 거들었다.
“지금 은진이가 보호자로 인지할 사람은 너뿐이야.”
“그런가?”
“이번 수술도 은진이가 너보고 해 달라고 했다며. 그런데 네가 자신이 없다고 성 선배와 임 선배에게 부탁드린 거고.”
“그건 그런데.”
“살리고 싶다며. 은진이가 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해야 할 거 아니야.”
태수가 대화하는 사이 CPR은 잠시 이선정 간호사가 맡고 있었다.
그녀도 수많은 야전 경험으로 CPR만큼은 의사들보다 뛰어난 안정감을 보였다.
그때였다.
“샷!”
이기준의 충격 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CPR에서 여유가 생긴 이선정 간호사가 한마디 보탰다.
“유 선생님이 밤에 은진이 보러 몇 번 왔었다면서요.”
“…….”
“은진이도 그걸 기억하고 있다고요. 그러니까 얼른요.”
이선정 간호사가 보채는 사이 CPR은 다시 태수가 담당했다.
“열여섯…… 열일곱……. 유 선생!”
태수가 강하게 재촉했다.
남은 방법이 이거밖에 없다고 생각될 정도였기에 그 목소리가 단호하기까지 했다.
유병태도 의사다.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았다.
“알았어. 잠깐만 숨 좀 쉬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유병태는 엉망이 된 몸으로 힘겹게 다가왔다.
조금 쉬었다지만 아직 회복되지 않은 탓이다.
두근두근.
자신의 심장 뛰는 소리가 귀를 자극할 정도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래도 침착해야 했다.
그런 생각이 강했는지 아직 불안감을 털어 내지 못한 얼굴로도 억지로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바로 이은진의 귀로 다가간 유병태가 나지막이 말했다.
“은진아, 은진아?”
“…….”
반응이 있을 리가 없었다.
“비켜. 샷!”
이기준이 한 번 더 충격을 준 사이 태수가 말했다.
“이름만 부르지 말고 무슨 말이라도 해 봐.”
“흠흠. 은진아, 너 그거 기억하니? 음, 그러니까 우리 다 나으면 사진 찍기로 한 거. 내가, 내가 찍자고 했잖아. 기억해?”
혼자만의 대화.
익숙하지 않은지 유병태의 목소리가 조금은 어색했다.
그러나 태수는 더 재촉하지 않았다.
유병태는 정말 노력하고 있다.
간절히 바라는 화답.
오로지 한 사람, 이은진뿐이었다.
태수는 CPR을, 이기준이 제세동기를 담당하고 있고, 이선정 간호사를 포함한 다른 의료진들은 계속 혈액을 관리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모두의 시선은 이쪽에 고정되어 있었다.
마취의도 바이탈을 확인하고 추가적으로 약물을 투여하면서도 이쪽을 힐끔거렸다.
아직은 이은진에게서 어떠한 반응도 오지 않았다.
그렇게 유병태가 몇 마디를 더 했지만 변화는 없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응급상황이 너무 오래 지속되어 쉽게 깨어나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푹푹.
태수가 다시 이어받은 CPR을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 갔다.
머릿속이 또다시 땀으로 찌들고, 팔 근육이 뻐근해 오고 있지만 멈추지 않았다.
아직 익스파이어는 아니다.
그걸 선언할 사람은 현재 집도의인 태수 자신이다. 그러나 태수는 익스파이어를 선언할 생각이 애초부터 없었다.
살아날 수 있다.
아직 살아갈 날이 너무도 창창한 아이다.
이대로 떠나보낼 수는 없다.
그것도 원치 않은 주변 환경으로 인해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 아이이기에 더더욱 그런 마음이 강했다.
‘뛰라고. 조금이라도 좀 뛰어 보라고!’
태수는 가슴을 압박하며 속으로 처절하게 빌었다.
그건 태수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의료진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아주 조금만 더 하면 심장이 다시 뛸 거다.
출혈도 잡아 놓았고, 피도 충분히 돌고 있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그런데 아직 뛰지 않는 이은진의 심장이 야속하기만 했다.
그사이 홀로 이은진에게 뇌까리던 유병태의 눈시울이 뻘겋게 변해 갔다.
“인마, 이제 정신 좀 차려. 너 미용사가 되는 게 꿈이라며. 그 험한 직업을 선택했으면 악다구니를 보여야지!”
“…….”
“내가 학원 등록시켜 줄게, 인마. 나 돈 잘 벌어. 그런데 그거 하나 못해 주겠냐? 은진아, 은진아!”
유병태는 자기 가슴을 쥐어짰다.
그동안 이은진과 대화하며 깊어진 정이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모양이었다.
지금 유병태의 모습은 의사가 아니라 그저 이은진과 친한 아저씨일 뿐이었다.
제세동기를 들고 있던 이기준이 태수에게 조용히 물었다.
“너무 감정이 격해진 거 아니야?”
“더 해야지. 헉헉.”
“뭐?”
“진심이, 훅훅, 그렇게 쉽게 통하지 않아.”
태수는 CPR을 쉬지 않으면서도 예리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있었다.
이기준은 그런 태수의 말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은 얼굴이었다.
태수는 이기준을 굳이 이해시킬 생각이 없었다.
느껴야만 알 수 있는 일을 말로 설명할 수 없던 탓이다.
CPR을 이어 가며 태수의 시선은 다시 유병태에게로 향했다.
유병태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감정이 격해진 그는 수술대에 머리를 대고 되뇌듯 중얼거렸다.
“제발…… 제발 좀.”
“…….”
“이제 그만하고 좀 일어나라고!”
유병태의 가슴 가득 맺힌 무언가가 터진 듯한 목소리가 수술실을 가득 울렸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삑삑.
ECG(심전도 모니터)에서 들려오는 색다른 소리.
그 소리에 모든 의료진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가장 근처에 있던 마취의가 빠르게 확인을 마치고 외쳤다.
“뛰…… 뛰어.”
“정말입니까?”
“뛰었어. 아니, 다시 뛰어.”
마취의의 말이 자꾸만 변했다.
그만큼 이은진의 맥박이 불안정하단 뜻이었다.
다들 초조함을 보였다.
이번에 만약 다시 심정지가 일어난다면?
그때는 가망이 없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던 탓이다.
그사이 ECG를 주시하며 CPR을 하던 태수가 갑자기 뒤로 물러섰다.
“이 선생, 샷!”
“알았어. 비켜!”
이기준이 충격기를 들고 다가오는 사이, 태수는 마취의 보조 간호장교에게 오더를 내렸다.
“리도카…….”
“준비됐어요.”
엉뚱하게도 이선정 간호사가 대답했다.
태수는 놀라지도 않았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이선정 간호사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던 탓이다.
태수는 바로 리도카인을 받아 들고 IV에 천천히 주입했다.
약효가 퍼질수록 미미한 심장의 변화가 ECG(심전도 모니터)에 떠올랐다.
아직 심장의 파장이 불안했다.
태수는 어느새 눈물을 지운 유병태에게 다시 말했다.
“왜 멈춰. 계속 말 걸어.”
“알았어. 그러니까 은진아, 내가…….”
유병태는 되는 대로 떠들었다.
환자와는 전혀 상관없는 병원 이야기까지 주절거렸다. 자신이 지금 뭐라고 이야기하는지 알고 있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태수는 그런 유병태를 막지 않았다.
유병태의 목소리가 이어질수록 이은진의 심장 파동은 활기차지고 있었다.
그건 마취의의 목소리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맥박 상승 중. 혈압도 잡혔어. 조금 더딘데 승압제 하나 더 추가해?”
“아니요. 지금은 아닙니다.”
“그럼?”
“일단 대기. 다들 뒤로 물러서 주세요.”
태수의 말에 의료진들은 조심스럽게 수술대와 멀어졌다.
그리고 그걸 모르는지 유병태는 계속 이은진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그때…….”
여전히 쓸데없는 이야기지만 다들 긴장된 얼굴로 지켜볼 뿐이었다.
그때 이기준이 태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이게 무슨 상황이야?”
“뭐가?”
“내 환자가 어레스트(심정지)일 때도 저런 방법은 써 본 적이 없어.”
“논문 발표는 있지 않아?”
태수가 묻자 이기준이 인정했다.
“몇 가지 있긴 하지. 그런데 아직까지 그 이유가 밝혀진 건 없었어.”
“나도 이유는 몰라.”
“경험은 해 봤다는 거 같은데.”
“아무래도.”
응급상황이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ECG(심전도 모니터)에 집중하며 대화를 이어 갔다.
지금은 끼어들 상황이 아닌 탓도 있었다.
이기준은 조금 날카로운 눈빛으로 물었다.
“어떤 케이스였지?”
“카슈미르의 한 마을에 임산부가 있었어. 정세가 불안해지자 조산 징후가 보여서 병원에 왔지.”
“그래서?”
“아이를 낳았지만 premature infant(미숙아)라서 제대로 숨을 쉬지 못했어. 그리고 수술 도구도 약도 없어서 마땅히 방법이 없었고.”
태수의 말을 이기준은 주의 깊게 들었다.
“그다음 이야기가 상당히 궁금한데.”
“결국 아이가 숨을 거뒀지.”
“산모는 당연히 살려 달라고 했을 테고. 넌 심장마사지를 했을 거고.”
“그런데 살아나지 않았어. 체온도 내려갔고, 몸도 굳어 가기 시작할 무렵에서야 나도 이만 포기하자고 어렵게 이야기했지.”
태수의 목소리에 감정 변화가 느껴지지 않자 이기준의 눈빛이 차분하게 변했다.
“그다음은?”
“산모가 아이를 묻어 주기 전에 한 번만 안아 보고 싶다고 했어. 건네줬더니 산모는 아이를 안고 울지도 않고 웃지도 않고 그저 사랑스럽다는 목소리로 말했어.”
“뭐라고?”
“마호메트, 잘 자렴. 엄마가 여기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이렇게 말이야. 그리고 삼십 분 후에 아이는 자고 있었어.”
태수의 말을 들은 이기준이 움찔했다.
“죽었다며.”
“그래. 내가 직접 선언했고.”
“그런데…….”
“생명의 신비를 누가 알겠어. 내가 그 마을을 떠날 때는 그 아이가 방긋 미소를 지어 주더라. 내가 그걸 직접 겪었는데 누구의 죽음을 함부로 논할 수 있을까.”
태수의 목소리는 덤덤했다.
하지만 지금 유병태와 이은진을 통해 재현된 그때 그 모습을 두 눈에 가득 담아 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