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735
00738 738화
바로 확인을 마친 상대가 태수에게 말했다.
“아, 이 아이, 안 그래도 좀 지켜보고 있던 중이야.”
“그래?”
“어제부터 목이 계속 마르다고 하더라고. 물도 많이 마시고 소변도 자주 본다고 했고.”
“음.”
태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내분비내과 의사가 이어서 말했다.
“일단 어젠 가습기를 설치하고 영양사에게 말해서 식사에 염분을 많이 줄이도록 했어.”
“그런데도 이런 상황이라면 의심이 되는데.”
“그러게. 이 정도라면 일단 혈당 검사부터 해 봐야 할 거 같아.”
내분비내과 의사가 동의하자 태수가 말했다.
“아직 아이고 증세가 오래되진 않았으니까 혈당 유지는 어렵지 않을 거 같은데.”
“그렇게 되게 해야지. 그보다 고마워. 안 그래도 누군가 가서 좀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 건 아닌가 하고 있었거든.”
“내가 선수를 잘 친 건가?”
“그럼. 이렇게 증거를 마련해 줬으니까 우리가 더 빨리 움직일 수 있지. 그보다 검사부터 하러 가 봐야겠네. 좌우간 고마워.”
내분비내과 의사는 태수에게 인사한 후 곧 의료 카트를 준비한 간호장교와 함께 병실로 향했다.
태수는 그 모습을 보며 가급적이면 당뇨가 아니라 일시적인 증상이길 바랐다.
아니, 빨리 발견한 거라면 당뇨가 심해지기 전에 호전시킬 수도 있다.
태수가 그쪽을 바라보는 사이 이기준이 다가왔다.
“최 선생이 오늘 외과 병동 담당이었어?”
“이 선생도?”
“아니, 아니. 난 오후에 수술이 있어. 그보다 커피 한잔할까?”
“그래. 좀 여유 있으니까 가자고.”
태수가 흔쾌히 수락하자 이기준은 먼저 걸어갔다.
커피를 각각 든 두 의사는 자연스럽게 옥상에 도착했다.
같은 장소에서 각각 다른 기분을 느끼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쉴 수 있다는 공통점은 있었다.
이기준이 뭘 보고 있는지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채 커피를 마셨다.
태수는 그런 이기준을 향해 나지막이 말했다.
“박성민 선배하고 민수, 지금 우리 집에 와 있어.”
“어쩐 일로.”
너무도 덤덤한 이기준의 대답이었지만 태수도 느긋하게 이야기했다.
“휴가 받아서 온 모양이야.”
“잘됐네. 오랜만에 반가운 사람들도 만나고.”
“이틀 정도 시간이 더 있다니까 저녁이라도 같이 먹는 게 어때?”
“…….”
선뜻 대답할 것 같던 이기준의 입이 다물어져 있자 태수가 의아하게 물었다.
“두 사람한테 별로 안 좋은 감정 있어?”
“아니, 전혀.”
“그런데?”
“음, 아니야. 대답부터 하자면, 안 만나도 될 거 같아.”
이기준의 말을 들은 태수는 더 궁금해졌다.
“왜?”
“굳이 서로 보려고 애쓸 필요도 없잖아.”
“…….”
태수가 가만히 바라보자 이번에는 이기준이 이어서 물었다.
“박 선배하고 민수는 나 보고 싶다고 해?”
“아직 이야기 안 해 봤는데.”
“그럼 됐어. 커피나 마시자.”
이기준은 끝까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거부했다.
태수는 그런 이기준의 생각이 궁금했다.
“민수야 그렇다고 치고, 박 선배는 연성에서 꽤 오래 같이 있지 않았어?”
“같이 있었지. 그런데 만나면 어색해. 괜히 과거의 별로 안 좋은 걸 추억하면서 시시콜콜 떠들기도 귀찮고.”
“…….”
“혹시 내 소식 물으면 잘 산다고 그래. 물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이기준은 차가운 말과 달리 태수에겐 빙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고는 안전펜스 밖으로 다시 시선을 옮겼다.
태수도 똑같이 안전펜스 밖을 바라봤다.
이기준의 냉정한 표현에도 태수는 표정 변화가 없었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할 뿐이었다.
태수만큼은 이기준의 성격이 어떤지 알고 있기에 이해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태수와 이기준은 안전펜스 밖을 바라보며 몇 마디 대화를 더 나눴다.
썩 중요한 이야기는 없었고 그저 사소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주로 입원한 환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뿐이었다.
그렇게 덤덤한 대화가 이어지는가 싶더니 이기준이 시계를 보고 태수에게 말했다.
“수술 시간 됐네. 먼저 가 볼게.”
“수고하고.”
“너도.”
이기준이 심드렁한 접대성 미소를 지으며 멀어져 갔다.
혼자 남게 된 태수는 계속 아래를 내려다봤다.
수도 병원 저 멀리 거대한 불빛이 홍수를 이루는 야경이 볼만했다. 초곡리를 떠난 지 얼마 안 된 터라 조금은 낯설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이기준도 참 대단한 녀석이었다. 정민수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박성민은 한때 부대끼고 지낸 사이였다.
그런데도 돌아서면 그저 남이었다.
“거참, 연구 대상이야.”
그 냉정함에 혀를 내두른 태수는 더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생각해 봐야 골머리만 아플 뿐, 좋은 결과를 찾아내기도 힘들었다.
태수는 문득 집에 있을 신속대응센터 의료진을 떠올렸다.
다들 뭐 하시나.
워낙 들이부어 대는 스타일들이라 혹시 속병이나 나지 않았는지 살짝 걱정이 머리를 드밀었다.
‘함께하면 좋을텐데.’
태수의 속마음이다.
서로 호흡을 맞춰 수술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기회가 생겨 이쪽에서 같이 수술하는 상상을 해 봤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그들이 군병원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로 복잡한 일들이 많았다. 게다가 오랜만에 완전한 자유를 누리고 있는 그들에게 다른 일을 쥐여 주고 싶지 않았다.
신속대응센터 의료진들을 생각하자 자연스레 하석준 팀장이 떠올랐다.
그동안 연락도 자주 못했는데 이렇게 생각난 김에 목소리라도 듣고 싶었다.
태수는 바로 휴대폰을 들었다.
통화 연결음이 몇 번 울리지 않아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팀장님, 안녕하셨습니까.”
“최 선생, 이거 나한테 전화한 거 보니까 박 선생과 치프가 그쪽으로 간 거 같은데. 내 예상이 맞나?”
하석준 팀장의 질문에 태수는 넉살 좋게 대답했다.
“정확하십니다.”
“그 두 사람이 집 안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진 않나 몰라.”
“간호사님들이 같이 계시니까 오히려 집이 깔끔해지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태수의 대답에 하석준 팀장이 살짝 놀랐다.
“간호사들이 같이 갔어?”
“홍 선생과 강 선생, 김 선생도 같이 왔습니다.”
“이거 1팀 휴가자들이 모두 그쪽으로 몰려갔나 봐.”
“그러게 말입니다. 다행히 이사장님이 마련해 주신 숙소가 커서 놀고먹는 데 별로 불편한 건 없습니다.”
태수의 말에 하석준 팀장의 목소리에 황당함이 가득했다.
“그러라고 마련해 주신 숙소가 아닌데 말이야.”
“같이 몰려와서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 여기밖에 없잖습니까. 이사장님이 이해해 주시지 않을까요?”
“당연히 이해해 주시겠지. 최 선생 목소리가 조금 들뜬 거 보니 반가운 모양이야.”
하석준 팀장이 약간 풀어진 목소리로 이야기하자 태수도 곧바로 화답했다.
“엄청 좋습니다. 팀장님도 함께하면 더 좋을 텐데 말입니다.”
“난 거기 가면 지갑만 털려.”
“하하. 그건 그러네요. 그보다 다들 어떻게 휴가를 받은 겁니까?”
태수가 묻자 하석준 팀장이 오히려 의아한 목소리로 반문했다.
“박 선생이 아무 말도 안 했어?”
“어제 술 마시다 쓰러졌습니다. 아마 지금까지 자고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하여간 그 친구도 어지간해. 휴가에 별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신속대응센터가 개원한 후로 누구 하나 제대로 쉰 적이 없어서 팀별로 돌아가며 쉬게 하란 이사장님 지시가 있었어.”
“제일 대단한 분은 역시 이사장님이신 거 같습니다.”
태수의 말에 하석준 팀장의 생각이 들려왔다.
“뵐 때마다 참 존경스러운 분이지. 그나저나 집을 무단 점거한 진상들이 돌아가면 한번 전화드려. 사석에서 가끔 최 선생 이야기를 하시니까 말이야.”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팀장님, 제가 휴가를 받게 되면 찾아뵙겠습니다.”
태수의 인사에 하석준 팀장이 농담을 건네 왔다.
“올 때 보건복지부에 영외의료행위에 대한 허락은 꼭 받아 오고.”
“저도 좀 쉬고 싶습니다.”
“하하. 그래도 꼭 받아 와. 그럼 서로 바쁜데 이만 끊지. 종종 전화하자고.”
통화를 마치고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은 태수가 다시 안전펜스 밖을 바라봤다.
휴가 때 영외의료행위에 대한 허락을 꼭 받아 오라니.
하석준 팀장다운 말에 태수는 해맑은 미소를 떠올렸다.
오전 시간을 여유롭게 보낸 태수였지만 오후는 조금 달랐다.
내일 외과 수술이 예정된 아이들을 직접 검사할 생각 때문이었다.
태수가 부탁하자 내과 계열 의사들은 모두 만류했다.
“최 선생, 우리가 해도 된다니까.”
“아닙니다. 좀 쉬십시오.”
“우리야 매일 하는 건데, 최 선생은 오랜만에 수술실 안 들어가는 거잖아.”
“그래서 그런지 좀이 쑤시네요. 먼저 갑니다.”
태수는 조금은 막무가내로 일을 떠맡았다. 자신이 조금 부지런하면 모두에게 여유가 생긴다는 걸 알고 있던 탓이다.
그뿐이 아니라 내일 수술할 아이들과 인간적인 교류가 필요하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태수는 검사받을 아이를 데리러 병동으로 향했다.
잠시 후.
내일 오전에 계획된 외과 수술을 받을 아이들에 대한 검사를 우선적으로 마무리 지었다.
그다음 순서는 내일 오후에 수술이 예정될 박지영을 만나는 것이다.
태수는 간호장교 2명과 함께 501호에 들어갔다.
안에 있던 이선정 간호사가 제일 먼저 태수와 간호장교들을 반겼다.
“지영이 검사실로 데려가려고 오셨어요?”
“네. 얼른 진행해야죠.”
대답한 태수는 이선정 간호사의 어깨 너머로 힐끔 주미성을 바라봤다.
주미성은 가만히 누워서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태수를 봤는지 이선정 간호사가 말했다.
“그냥 이런저런 생각을 하나 봐요.”
“대화는 잘합니까?”
“꾸준히 하고 있어요. 특별히 좋아지거나 나빠지는 것도 없고요.”
“계속 지켜봐 주십시오.”
태수는 그렇게 말을 마치고 박지영에게 향했다.
박지영이 먼저 태수에게 삐쭉거렸다.
“기다리다가 숨넘어가겠어요.”
“그래서 빨리 왔잖아.”
“얼른 검사하러 가요. 어서요.”
“너처럼 수술 빨리 해 달란 애는 처음이다.”
태수가 질렸다는 얼굴로 말하자 박지영이 툴툴거렸다.
“전 진짜 갑갑했다고요.”
“다 나으면 도대체 얼마나 말괄량이가 될지 정말 기대가 될 정도야.”
“실망시키진 않을게요.”
“그래. 한번 보자고. 자, 그럼 이동합시다.”
태수가 오더를 내리자 간호장교들이 바지런히 움직였다.
곧 이동 준비가 끝나자 병상이 그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병실을 나서자 간호장교들이 뒤로 빠지고 대기하던 의무병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원래는 의무병들이 들어가서 병상 이동을 진행했다. 그러나 주미성이 태수를 제외한 남자들을 워낙 경계한 탓에 그마저도 조심스러웠다.
오죽하면 내과 계열에서도 약을 처방할 때 이선정 간호사를 통하겠는가.
다행스러운 건 주미성의 회복 과정을 다른 의사들이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태수가 하루에 한두 번 정도 확인하는 게 전부였지만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게다가 회복이 빠른 편이라 수술 부위만 아물면 조만간 퇴원해도 될 정도였다.
간호장교들에서 의무병들로 바뀌자 병상이 이동하는 속도가 확연히 달라졌다.
그르릉.
묵직한 바퀴 소리를 내며 박지영을 태운 병상이 검사실로 향했다.
여러 가지 검사를 진행하고 나자 어느새 늦은 오후 무렵이었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지만 태수는 개의치 않고 검사를 꼼꼼하게 마무리 지었다.
마지막으로 박지영을 병실로 다시 데려다주고 말했다.
“지금부터 금식이야.”
“네.”
“몰래 먹지 말고.”
“안 먹어요.”
박지영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수술을 기다렸던 만큼 지시에 순순히 따랐다. 박지영의 간절한 눈빛을 본 태수는 길게 이야기하지 않고 병실을 나섰다.
얼마 후.
태수는 유병태와 비뇨기과 의사를 불러 간호사실에서 만났다. 노트북으로 검사 영상을 확인하며 의견을 나누기 위함이었다.
세 사람이 나란히 서서 검사 결과를 놓고 토론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