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743
00746 746화
그렇다고 그들의 목소리에 신경 쓸 틈은 없었다.
태수는 손끝 감각을 최대한 일깨우며 환부를 조심스레 살폈다. 곧장 끈적끈적한 피들이 손에 달라붙었기에 감각이 제대로 느껴지진 않았다.
그래도 태수는 예리한 눈빛으로 현재 상황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손끝을 움직였다.
‘여긴 췌장 끝, 이쪽이 비장이 있던 자리.’
손끝을 따라 느껴지는 감각을 더욱 곤두세우던 중이었다.
수술 준비를 마친 유병태가 빠르게 다가와 옆에 섰다. 이런 상황에서 어시스던트는 집도의의 반대가 아닌 옆에 서는 게 옳았다.
유병태는 태수의 눈빛으로 무언가를 찾고 있음을 대번에 알아챘다.
그럼 자신이 할 일은?
유병태는 뒤따라 옆에 다가온 간호장교에게 요청했다.
“디버. 썩션.”
“썩션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왜죠?”
“이 수술실에 있던 게 가득 차서 통을 비우려면 약간 시간이 필요합니다.”
간호장교의 대답을 들은 유병태가 눈을 굴린 후 말했다.
“의료 카트에 거즈하고 수술 패드 왕창 담아서 가져다주세요. 그리고 정 소위님은 썩션부터 다시 가동하게 해 주세요.”
“그럼 수술 도구를 건네 드릴 수가 없습니다.”
“저기 계시잖습니까.”
유병태가 턱짓한 곳에선 최소현 중위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최 선생님, 이선정 간호사님 호출했습니다.”
“…….”
태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손끝 감각에 모든 걸 집중하고 있기에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런 태수를 다시 불러 흐름을 깰 순 없었다.
최소현 중위도 어느새 할 일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때 유병태가 최소현 중위에게 말했다.
“지원 부탁합니다.”
“알겠습니다.”
“디버.”
척.
유병태가 오더를 내리자 최소현 중위는 반사적으로 디버를 건넸다.
군병원에서 지금까지 가장 많이 호흡을 맞췄던 두 사람이기에 보여 줄 수 있는 신속함이었다.
디버를 받아 든 유병태는 즉각 환부를 좀 더 벌려 줬다. 그런 배려에 태수는 손을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조금 더 넓어졌다.
오밀조밀하게 뭉쳐 있는 혈관들과 근육, 장기들도 공간이 생긴 만큼 좀 더 명확하게 구분이 되어 갔다.
이미 완전히 집중한 태수는 미묘한 차이를 확실히 느꼈다. 하지만 그 고마움을 표현할 만큼 여유롭진 않았다.
머리는 냉정했지만 가슴은 계속 쿵쾅거리는 중이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집도의를 밀어내고 꿰어 찬 자리였다.
스스로 책임도 지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렇다고 막상 이 아이가 잘못되었을 때 딱히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무조건 살려야 했다.
지금까지 어렵게 살아 병까지 얻은 아이에게 새로운 삶을 보여 줘야 했다.
그리고 태수 자신을 위해서도 살려야 했다.
크게 문제가 될 상황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 자리에 섰으면 그에 대한 결과를 보여 줘야 했다.
그렇지 못한다면 자신은 설 자리가 없었다.
그런 빌어먹을 상황을 만들려고 수술실을 박차고 들어오지 않았다.
살린다.
무슨 수를 써서든.
아이와 자신.
모두를 위한 태수의 절실한 투쟁이었다.
그건 유병태도 다르지 않았다.
만약에라도 이 수술이 잘못된다면?
문득 그 생각이 들자 유병태는 디버를 잡은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절대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을 거다.
지금까지 지켜봐 온 태수를 믿었다. 하지만 태수만 믿는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란 걸 알고 있다.
태수가 수술을 더욱 확실하게 이어 갈 수 있도록 하는 게 바로 지금 자신의 위치다.
그걸 잘 알고 있는 유병태이기에 신경에 잔뜩 날을 세웠다.
“썩션은 아직 준비 안 됐습니까?”
“거의 되어 갑니다.”
“빨리, 조금만 더 빨리 부탁할게요.”
초조함을 감추려는 듯 유병태의 말투가 차분하게 내려앉았다.
태수의 손끝은 아직도 환부 속을 헤매고 있었다.
그때 그의 눈빛이 살짝 반짝였다.
아주 미약하지만 혈관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는 느낌.
너무도 미묘한 감각이었지만 압력 차이가 있어 느낄 수 있었다.
“지혈클램프.”
“여기요.”
턱.
그걸 받아 든 태수는 지혈클램프로 얼른 출혈 부위를 잡았다.
불행히도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곳곳에서 터진 출혈 부위 중 그저 하나일 뿐이다. 게다가 아주 중요한 출혈 부위도 아니었기에 전체적인 출혈량은 눈에 띄게 줄어들지 않았다.
태수도 알기에 더욱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리고 터진 혈관이 또 하나 태수의 손끝을 간질였다.
“티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턱.
수술 도구가 먼저 도착했다.
확인하니 원하던 티스포셉이었다. 말하기 전에 손에 얹어졌다는 건 미리 준비하고 있었단 이야기였다.
누가?
태수가 처음으로 환부에서 시선을 돌렸다.
그런 그의 시선에는 비장한 눈빛을 한 이선정 간호사가 가득했다.
언제 들어왔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태수의 집중력이 흐트러지려는 걸 눈치챈 이선정 간호사가 나지막이 말했다.
“계속하세요.”
끄덕.
고갯짓으로 대답한 태수는 바로 환부에 집중했다.
세밀하면서도 조심스럽게.
눈에 보이지 않는 혈관을 찾는 건 엄청난 집중력과 인내심이 필요했다.
태수가 집중하고 있는 사이였다.
디버로 환부를 당기고 있는 유병태에게 최소현 중위가 썩션을 내밀었다.
“준비됐어요.”
“주세요. 그리고 거즈를 아래쪽에 더 밀어 넣어 주세요.”
“최 선생님 손에 방해되지 않을까요?”
“도움이 될 겁니다.”
유병태는 확신했다. 그리고 증명해 보이듯이 썩션을 바로 태수의 손 옆으로 밀어 넣었다.
콰륵콰륵.
꽤나 시끄러운 작동 소리가 수술실을 울렸다.
하지만 태수는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이 정도 소음과 썩션의 얇은 흡입구 정도에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유병태가 직접 확인해 보이자 최소현 중위도 얼른 거즈를 환부 아래쪽으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그때 태수가 집도한 후 처음으로 마취의의 긍정적인 목소리가 수술실을 울렸다.
“맥박은 낮지만 유지되고 있어. 그리고 전체적으로 출혈도 좀 줄어든 거 같고.”
내뱉는 목소리가 조심스러웠다.
상황을 알려야 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일 뿐, 태수의 집중을 방해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그건 마취의뿐만이 아니었다.
이선정 간호사가 들어옴으로써 할 일에서 밀려난 간호장교는 수혈을 전담했다.
때에 따라 수액과 수혈팩을 교환해야 하는 자리다.
그녀는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였다.
마취의의 보조 간호사 또한 마찬가지였다.
수술실은 정적에 휩싸였다.
물론 ECG(심전도 모니터)와 썩션 등등 의료 기계 소리는 끊임없이 들려왔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의료진들의 목소리는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
지금까지 허둥거렸던 모습도 완전히 안정을 찾은 상태였다.
눈에 띌 정도로 출혈이 줄어든 것도 아니었고, 환자 상태가 급격하게 좋아진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다들 안정감을 찾았다.
그걸 아직 수술실 한쪽에 남아 있는 군의관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가득했다.
자신들이 수술할 때는 상상도 할 수 없던 모습 탓이었다.
“이 대위님.”
“조용.”
“…….”
“지금은 떠드는 게 아니야.”
집도의였던 군의관의 말에 어시스던트였던 군의관은 침묵하며 고개만 끄덕였다.
그들의 시선은 어느새 태수와 유병태에게 향해 있었다.
처음 수술실에 쳐들어왔을 때는 불쾌함이 앞섰다.
어쩌면 보건의들에 비해서 실력이 떨어지기에 자격지심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태수의 거친 발언도 그들의 기분을 상당히 상하게 했다.
그로 인한 불쾌한 마음이 풀린 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태수와 유병태의 모습은 누구라도 시선을 잡아끌 만했다.
어떤 일에 온전히 몰두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은 그들이 갖고 있는 불쾌함조차 잊을 만큼 아름다웠다.
성별을 떠나, 지금 서로의 위치를 떠나 아름답다는 표현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저 모습에 스스로 반성하게 되었다.
조금 전 자신들은 지혈하는 데 있어 정말 최선을 다했을까.
이 자리에 밀려난 것만 기분 나빠하고 있진 않을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저 자리에 있다면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군의관들은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 뜨거운 가슴은 지금 자신에게 무언가를 원하고 있었다.
‘도와라.’
‘내가 할 수 있는 걸 지금이라도 해라.’
그리고 그 마음의 외침이 자존심을 뒤흔들었다.
자존심?
그것도 내세울 곳에서 내세울 일이다.
자신들은 완전히 태수와 유병태에게 졌다.
환자를 대하는 마음도.
살리겠다는 열정도.
마지막으로 의사의 본분으로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패배였다.
그걸 머리보다 마음이 먼저 인정했기에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그들이 마음속부터 변화하는 사이였다.
태수는 2개의 출혈 부위를 더 지혈했다.
이젠 환부를 더 젖혀야 한다. 완전히 개방시켜서 직접 눈으로 보고 출혈 부위를 찾아야 할 때였다.
태수는 바로 유병태에게 오더를 내렸다.
“리트렉터 하나 더 걸고 오른쪽으로 당겨 줘.”
“내가 지금 손이……. 끙.”
디버를 당기며 썩션을 움직이는 유병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태수는 빠르게 주변을 둘러봤다.
각자 바쁘다.
놀고 있는 손이…….
군의관들에게 시선이 닿은 태수는 거침없이 말했다.
“이쪽으로, 빨리!”
“…….”
“손 모자란 거 안 보입니까?”
태수가 재촉한 순간이었다.
거목처럼 뿌리를 내린 듯 꿈쩍하지 않을 것 같던 군의관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태수의 목소리에 끌려가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군의관들도 자신들이 왜 움직이는지 얼핏 눈치를 채고 있었다.
그래서 거부 없이 수술대에 다가갈 수 있었다.
태수는 다가선 그들에게 곧바로 오더를 내렸다.
“아미네이비(리트렉터의 일종)으로 여기 좀 당겨 주시고, 디버 인계받아 주세요.”
군의관들은 더 생각하지 않기로 했는지 순순히 태수의 오더를 따랐다.
곧 군의관들이 리트렉터들을 당기기 시작했다.
“끙!”
잠깐이나마 쉬어서 힘이 충전되었는지 환부가 확실하게 벌어졌다.
태수는 그들을 힐끔거리지도 않았다.
이게 당연했다.
그렇기에 그는 환부에만 시선을 집중했다.
몇 개의 잔출혈을 잡아서 그런지 조금은 나은 상태였다.
하지만 아직 멀었다.
태수는 환부를 내려다보며 마취의에게 물었다.
“adrenalin(아드레날린) 투여했습니까?”
“당연하지! 비타민C하고 비타민K도 진즉에 투여했어.”
아드레날린은 혈관을 수축시키는 효과가 있고, 비타민C와 비타민K는 혈액 응고를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그 약들이 투여되었다면 멈추는 기색이라도 있어야 했다.
그런데 태수가 직접 확인했지만 자잘한 출혈을 잡은 것 외에 주요 출혈점이 지혈되어 가는 걸 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삼투압을 이용하는 것도 지혈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
“그럼 포도당을 추가해 주세요.”
“알았어. 포도당 준비해!”
마취의가 서둘러 재촉하자 보조하던 간호장교가 서둘러 움직였다.
태수는 오더가 끝나자 바로 이어서 물었다.
“수혈 상황은요?”
“아직은 많이 들어가.”
“바이탈은요?”
“맥박은 낮지만 안정을 찾았는데, 혈압은 아직.”
마취의는 태수의 질문에 대한 대답 외에는 말하지 않았다. 집중하고 있는 태수의 정신을 흩트리지 않으려는 모양이었다.
태수도 그걸 알고 있었다.
아직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난 건 아니기에 마취의의 판단이 옳았다.
자잘한 대화는 생략한 태수의 시선이 계속 환부를 향해 있었다.
비장절제술만으로 이런 출혈은 일어날 수가 없었다.
자잘할 출혈점 몇 곳을 지혈해 보니 혈관에 힘이 느껴지지 않았었다.
혈관도 많이 좁아졌고 피를 뿜어내는 압력도 낮았다.
체내 혈액 보유량이 부족할 수도 있지만, 이건 영양실조를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서 주로 찾아볼 수 있는 현상들이란 기억이 떠올랐다.
‘이런.’
태수의 시선이 바쁘게 환자의 흉부로 향했다.
가느다란 카테터가 연결된 흔적이 보였다. 그건 고영양의 주사제를 주입하기 위해 설치해 놓은 중심정맥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