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759
00762 762화
그때였다.
유병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피를 흡수한 패드부터 걷어 낼게.”
“잠깐.”
“왜?”
“간이 상당히 파열됐어.”
태수의 말에 유병태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그럼?”
“썩션 빼고 패드는 더 많이 집어넣어. 그리고 선생님, 지혈제 최대한 많이 투여해 주십시오.”
태수가 차분하다 못해 싸늘하게 말하자 마취의도 얼른 대답했다.
“알았어. 여기 지혈제 2앰풀 더 추가. 계속 준비해 주고.”
그러는 사이 태수와 유병태는 수술 패드를 계속 환부에 집어넣었다.
흡수성이 뛰어난 수술 패드가 온통 뻘겋게 물들어 갈 때였다.
태수는 갈라놓은 환부를 손으로 눌렀다.
“지혈될 때까지만 기다리자고.”
“바이탈이 너무 안 좋아.”
“알아. 이 상태에서 계속 수술 못하는 거 알잖아.”
“…….”
“나도 마음이 급해. 그런데 서두른다고 되는 건 없어.”
태수가 침착하게 말하자 유병태도 다급함을 서서히 지워 갔다.
“그럼 난 일단 수혈하고 수액부터 계속 추가할게.”
“혈압 잡힐 때까지만 부탁할게.”
끄덕.
유병태는 고개만 끄덕이고는 바로 수술대 옆으로 옮겨 갔다.
태수는 환부를 더욱 강하게 눌렀다.
지혈제가 어느 정도만 효과를 발휘해도 출혈은 확연히 줄어들 터였다.
그때까지는 이렇게 버텨야 했다.
이건 대형 출혈이 아니라 초대형 출혈이다. 달리 말해 무턱대고 피를 걷어 내며 수술할 수 있는 성질의 상처가 아니다.
생명이 경각에 달린 이야기란 의미였다.
그걸 알기에 태수는 환부를 압박한 채 기다렸다.
딱 10분만.
수혈과 수액이 계속 추가되고 있기에 어떻게든 버틸 근거는 있다.
만약 더 상태가 나빠지면 다른 방법을 써야겠지만 지금은 이게 최선이다.
“버텨라, 아가야.”
태수가 힘껏 격려했다.
째깍째깍.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다.
출혈 부위를 압박하고 있는 태수도.
혈액과 수액을 계속 들이붓는 유병태도.
실시간으로 변하는 환자 상태에 맞춰 각종 주사를 투여하는 마취의도.
심지어는 수술에 참여한 간호장교들까지도.
모두가 가슴 졸일 정도로 초조한지 온몸이 식은땀으로 자연스럽게 젖어 갔다. 그야말로 피가 마르는 일초일초란 말이 절대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게 5분 정도 지났을까?
띡띡.
조용해질 거라 기대한 ECG(심전도 모니터)에서 들려오던 소리가 반대로 점점 커져 갔다.
그와 동시에 마취의가 안색이 돌변한 채 버럭 소리쳤다.
“심박이 더 빨라지고 있어! 혈액이 부족하다고!”
“이렇게, 이렇게 쏟아 넣고 있잖습니까!”
“그걸 누가 몰라?”
마취의와 유병태간에 날카로운 목소리가 오갔다.
생명이 경각에 달린 문제라 그런지 피차 양보가 없었다. 이 순간엔 선후배 따지고 자시고 할 마음의 여유조차 없던 탓이다.
그사이 태수는 예리한 시선으로 ECG(심전도 모니터)의 파동을 확인했다.
맥박이 더욱 빨라지면?
너무 무리한 심장의 운동이 심실세동이나 심실빈맥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렇게 진행되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흘러간다는 아찔함이 스쳤다.
그 전에 예방이 중요했다.
판단이 서자 동시에 태수는 마취의에게 말했다.
“antiarrhythmic(항부정맥제)부터 추가해 주세요.”
“그다음에는?”
“아드레날린 준비해서 상황 보고 조금씩 주사해 주시고요.”
“V-fib(ventricular fibrillation, 심실세동)까진 오지 않겠지?”
마취의가 고래고래 소리쳐 물었다.
그 목소리 속에는 이런 상황에서 수술을 강행한 태수에 대한 원망도 상당히 담겨 있었다.
그러나 태수는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았다.
“오지 않게 하려고 대비하는 겁니다.”
“진짜 미치겠네.”
“그냥 기다리고 있는다고 해서 해결되는 건 없습니다.”
“……여기 항부정맥제하고 아드레날린 준비해.”
마취의가 영 못마땅한 눈빛으로 태수를 노려보면서 할 수 없다 듯 간호장교에게 오더를 내렸다.
그런 눈빛을 받으면서도 태수는 여전히 흔들림이 없다.
지금 동료 의료진과 말다툼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상대적으로 아이의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던 탓이다.
계속 환부를 압박한다고 피가 멈출 기미도 없다.
그렇다면?
과감하게 수술 방법을 바꿔야 할 것 같았다.
잠시도 쉬지 않고 환부를 압박하던 태수는 혈액과 수혈 관리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유병태에게 물었다.
“혈액 얼마나 들어갔어?”
“다섯 팩 정도.”
“일단 이쪽으로 돌아와.”
태수가 부르자 유병태는 얼른 반대편 어시스던트 자리로 돌아왔다.
마취의와 다르게 차분한 모습이었다. 태수가 허둥대지 않으니 유병태도 애써 침착하려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그 침착함이 완벽하진 않았다. 당장이라도 뭔가 일을 저지를 것처럼 눈빛이 강렬했다.
평소 유병태 성격이라면 그러고도 남았다.
태수는 그런 유병태에게 말했다.
“이젠 방법이 없어.”
“그래서 어쩌자고. 지금 패드를 모두 빼내면 그 출혈을 어떻게 감당할 건데?”
“…….”
“뭐라도 방법을 찾은 후에 진행하든가 해야 하잖아.”
유병태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그도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손을 쓸 방법이 없단 걸 알고 있었다.
그때 태수가 말했다.
“네 말대로 뾰족한 묘수는 없어.”
“그럼 어떻게 하자고.”
“빼내야지.”
“그럼 애가 그때까지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절레절레.
태수는 고갯짓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 모습을 본 유병태의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태수의 생각대로 정면으로 부딪치는 방법이 최선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막상 결행하려니 확률이 희박했다.
태수도 그걸 모르지 않았다.
“누군가 그러더라. 이 환자가 산다고 생각하며 수술하면 살고, 죽는다고 생각하며 수술하면 죽는다고.”
“…….”
“확률은 따지지 말고 살릴 수 있다는 생각만 하자.”
태수의 말에 유병태는 마스크로 가려진 입술을 꽉 깨물었다.
무모한 방법일지 몰라도 태수의 말이 옳았다. 알고 있지만 실천할 수 없는 건 두려움 때문인지도 몰랐다.
태수는 그런 유병태의 눈빛을 봤는지 이어서 말했다.
“넌 내 오더를 따랐을 뿐이야.”
“개소리 집어치워.”
“…….”
“살리겠다며, 같이하자며. 그럼 책임 따지기 전에 결과부터 만들어 내. 환자 죽은 후에 책임 소재 따질 생각이었으면 애초에 이 수술에 들어오지도 않았어.”
유병태가 악을 쓰듯 으르렁거렸다.
그 모습에 태수의 눈빛이 처음으로 부드럽게 변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유병태의 대책 없는 악다구니가 지금 그에겐 힘이 되었다.
그때 마취의가 두 의사를 책망했다.
“니들 계속 떠들 거야? 포기한 거면 나 먼저 나가고.”
“어딜 가시려고요. 거기 꼼짝도 말고 계십시오.”
“…….”
“지금부터 출혈 잡을 테니까 전신관리 확실하게 부탁드리겠습니다.”
태수가 번쩍이는 눈빛으로 말하자 마취의는 고개만 끄덕였다. 말은 그래도 마취의도 피가 바짝바짝 말라 가는 표정이다.
태수는 겸사겸사 ECG(심전도 모니터)를 확인했다.
심박수가 조금씩이지만 꾸준히 상승하는 중이었다. 충분한 혈액이 공급되지 않자 심장은 피를 더 요구하며 거칠게 요동치는 중이었다.
가만히 바라보던 태수가 마취의에게 물었다.
“cardioinhibition(심장 억제) 가능하죠?”
“심박수를 느리게 하라고? 이 상황에?”
“부탁합니다.”
태수의 말에 마취의는 경악했다.
“그건 진짜 위험해. 과부하가 진행 중인 심장을 억제하다가 그 효과가 지나치면 바로 멈추는 거 몰라?”
“여기서 시간 더 끌어도 멈춥니다.”
“그거야…….”
“정 못 미더우시면, 몇 번이나 거부했지만 집도의 권한을 들먹여서 어쩔 수 없이 투여했다고 하십시오!”
미적지근한 마취의 태도를 참다못한 태수가 신경질을 버럭 냈다.
그러자 마취의도 같이 화를 냈다.
“누가 내 경력 때문에 거부하는 건 줄 알아? 저 아이한테 위험하다고!”
“저도 압니다!”
“…….”
“…….”
태수와 마취의는 격하게 서로를 노려봤다.
보건의와 군의관이란 개념은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의사 대 의사로 다른 견해를 내보이고 있을 뿐이었다.
유병태는 그런 두 사람에게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지금은 나설 때가 아니다.
결론이 난 후에 태수의 편을 들어도 늦지 않았다.
하지만 할 말은 있었다.
“지금 이렇게 우리끼리 다툴 때가 아니잖습니까.”
그 소리에 태수와 마취의가 동시에 유병태에게 버럭 소리쳤다.
“그걸 누가 몰라?”
“나도 알아!”
두 사람의 질책에 유병태도 붉으락푸르락 변해 갔다.
의견이 무시당해서가 아니라 결정을 내리지 못한 두 사람에 대한 분노였다.
태수와 마취의는 그 후로도 계속 서로를 노려봤다.
팽팽하게 대립된 눈빛은 누구 하나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때 마취의가 솟구친 억하심정을 억누르고 나지막이 말했다.
“최 선생, 마음은 알지만 위험해. 진짜 위험하다고.”
“믿어 주십시오.”
“미치겠네.”
“더 시간 끌 수 없다는 거 아시잖습니까. 여기서 그냥 진행하게 되면 수술실이 또다시 피바다가 될지 모릅니다.”
태수는 지금 김용철 중령이 자신을 옥죄고 있는 그 수술을 언급했다.
그러자 마취의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때 태수가 쐐기를 박듯이 한마디 덧붙였다.
“비장을 제거하던 그때 상황보다 더 심각합니다. 이대로 강행하게 되면, 간이 완전히 파열된 상태라 이번엔 피바다로 끝나지 않을 겁니다.”
“…….”
“선생님.”
태수가 재촉하듯 부른 후였다.
마취의가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보조하는 간호장교에게 말했다.
“후우. 준비해.”
“감사합니다.”
“최 선생, 착각하지 마. 내가 시간 끌어서 문제가 됐다는 소리는 듣기 싫었을 뿐이니까.”
“더 늦기 전에 결정을 내려 주셔서 감사할 뿐입니다.”
태수의 말에 마취의는 시선을 피했다.
마취의는 간호장교에게서 건네받은 약을 IV에 추가했다.
효과는 금방 나타나기 시작했다.
상승 곡선을 그리던 아이의 심박수가 일정 구간에서 멈추더니 떨어지기 시작했다.
억지로 심장박동을 늦추는 상황이었다.
자연스럽게 혈행도 느려져 출혈을 억제할 수 있다.
이렇게 좋은 방법을 왜 그동안 사용하지 않았을까.
그건 후유증 때문이었다.
열심히 엔진을 돌리며 달려가는 자동차의 시동을 끄면 어떻게 될까.
엔진은 물론 미션이나 브레이크 등등 가속과 감속에 관련된 여러 부품에 심한 무리가 간다.
인체도 마찬가지다.
대동맥과 대정맥의 기능도 문제가 생기고, 혈행이 터무니없이 느려지면 폐의 기능이 저하된다.
그게 지속되면 뇌에 공급되는 산소가 줄어들 수도 있다.
이 모든 걸 감내해야 하는 게 태수가 선택한 방법이었다.
어쩌면 마취의가 격하게 반대한 게 옳은 판단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태수는 그 조언을 정중히 거절했다.
후유증을 걱정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태수는 후유증에 대해 마음 깊이 걱정했다. 다만 그보다 중요한 건 심장이 뛰게 하는 일이었기에 우선순위를 뒤로 미룬 것뿐이다.
최선은 단 하나였다.
빨리 조치를 마치고 후유증을 최소한으로 줄인다.
그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래서 태수는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았다.
“유 선생, 후유증을 최소화하려면 최대한 빨리 출혈부터 잡고 승압제 투여해야 해.”
“나도 그건 아는데…….”
“못해?”
태수가 도발적으로 묻자 유병태가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너나 대충 하지 마.”
끄덕.
유병태가 호기를 보이자 태수는 고갯짓으로 대답했다.
그때였다.
마취의가 대뜸 수술실이 울리도록 소리쳤다.
“지금!”
“시작합니다.”
“15분 안에 끝내, 무조건!”
그 소리와 동시에 태수와 유병태의 눈빛이 동시에 번뜩였다.
그리고 두 의사의 양손이 재빨리 움직였다.
“거즈부터 빼!”
“썩션, 디버로 여기 좀 당겨요.”
입으로 오더만 내릴 뿐, 눈과 손은 환부에 고정된 상태였다.
환부 속을 가득 채운 수술 패드부터 뺐다.
철퍼덕!
피를 잔뜩 머금은 수술 패드는 찰진 소리를 내며 수술실 바닥에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