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761
00764 764화
지친 마취의답지 않은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맥박이 더 좋아지고 있어. 혈압도 올라가고 있고.”
“그렇지!”
유병태가 추임새를 넣자 마취의가 머뭇거리며 태수에게 말했다.
“최 선생…… 내가 아까는…….”
“수술 중에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의견 교환 아니었습니까.”
“흠흠! 그런가?”
“그럼요. 그리고 오늘 제 운이 좋은 겁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완벽하게 장담하면서 진행한 일은 아닙니다.”
태수가 비교적 여유 있는 부분을 수술하며 말하자 마취의가 슬쩍 대화를 이어 갔다.
“그래도 내가 잘한 건 아니지.”
“아니요. 제가 그 상황에서 몇 번이나 더 생각할 수 있도록 잡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뭐, 그렇다면.”
“그런데 저도 선생님도 너무 시간을 끌긴 했습니다. 그게 좀 걱정이 되네요.”
태수는 진솔하게 말했다.
누굴 탓하는 게 아니라 상황이 그렇다는 이야기였다.
그걸 마취의도 알고 있는지 멋쩍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거야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다 하면서 조금이라도 후유증을 줄여야지.”
“저도 꾸준히 관찰하도록 하겠습니다. 요즘 병동 담당이라 그런 일은 좀 잘합니다.”
“그나저나 김용철 중령님도 너무하시지. 솔직히 의사가 실력으로 승부하는 거지, 절차는 개뿔.”
“그건 나중에 커피 한잔하시면서 이야기하시죠.”
“그럴까? 이젠 조용히 할 테니까 집중해서 얼른 끝내 버려.”
마취의가 힘을 실어 주자 태수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의사들끼리 수술실에서 의견 차이는 빈번하게 발생한다.
물론 가끔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 입장 차이를 보일 수도 있지만, 그건 극히 드물었다.
대부분의 경우는 환자의 안전 때문에 의견을 대립한다.
그 순간이 지나가면 의사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서로를 격려한다.
대립하는 그 순간은 치열할지라도 그런 일을 통해 친분을 쌓는 것이 의사인 탓이었다.
좀 더 활기찬 기분이 되자 수술 진행 속도도 조금 더 올라갔다.
그렇게 파열된 간의 절단면을 깔끔하게 절제하고 대망을 이용해 봉합했다.
회복력이 좋은 간이 제 모습만큼 다시 자라려면 시간이 좀 필요할 터였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치료만 꾸준히 받는다면 부작용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 싶었다.
첫 번째 안도감이다.
그다음으로 췌장과 비장의 출혈도 잡았다.
다행히 췌장과 비장은 출혈이 크지 않기에 간단하게 마무리 지었고, 자연 치유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았다.
손상된 장간막 처치도 그다지 까다롭지 않았다.
순탄하게 진행된 수술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 무렵이었다.
내내 조용히 전신관리를 하던 마취의의 의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 선생,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왜 그러십니까?”
“도뇨관에서 소변이 안 나오는 거야 워낙 대수술이니까 그렇다고 치고, 혈압이 이상하게 올라가 있는데.”
유병태가 태수보다 먼저 물었다.
“혹시 출혈이 없어서 이제 정상으로 돌아오는 거 아닙니까?”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치고는 상당히 높은 편이야.”
“그런 경우가 없는 건 아니잖습니까.”
“그건 그런데, 뭔가 석연치가 않은 거 같아.”
마취의가 계속 의구심을 보였다.
그제야 태수의 시선이 환부에서 벗어나 ECG(심전도 모니터)로 향했다.
마취의의 말이 옳았다. 아깐 잡히지도 않던 혈압이 이젠 높다고 할 정도로 올라간 상태였다.
게다가 맥박도 규칙적인데 한 번씩 툭툭 튀는 듯이 변화가 있었다.
그걸 바라보던 태수의 눈빛이 점점 차갑게 내려앉았다.
이대로 의구심만 보이고 끝낼 문제가 아니다.
태수가 손목을 틀어 유병태에게 니들홀더와 믹스터를 건네며 말했다.
“봉합 좀 마무리해 줘.”
“뭐가 이상한 건데?”
“확실하진 않은데 이상한 건 맞아.”
“그럼 살펴보고 와. 내가 네 앞이라서 어시스던트하고 있지, 봉합도 꼼꼼하게 못할 정도로 얼빠진 전문의는 아니니까.”
유병태가 기세 좋게 니들홀더와 믹스터를 받아 들었다.
부담을 줄여 주기 위한 농담이란 걸 알기에 태수는 부드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찡긋 미소를 지은 유병태는 태수 대신 봉합을 이어 갔다.
그사이 태수는 수술대에서 처음으로 벗어나 보조해 주는 간호장교에게 손을 내밀었다.
“stethoscope(청진기).”
“여기 있습니다.”
간호장교가 지친 기색을 숨기며 내밀었다.
태수는 지금까지 군소리 한 번 없이 보조해 준 그녀에게 말했다.
“조금만 더 고생하시면 됩니다.”
“괜찮습니다. 문제없습니다.”
“그래요. 부탁합니다.”
태수는 든든한 그녀의 눈빛에 눈웃음으로 화답하며 청진기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귀에 꽂은 태수는 차분한 얼굴로 아이의 심장에 청진기를 댔다.
두근두근.
심장박동 소리가 나쁘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심실과 심방을 오가는 혈류 소리도 상당히 양호한 편이었다.
‘별문제 없는 거 같은데.’
생각은 그랬지만 심장의 문제만으로 장담할 문제는 아니다.
혹시라도 드러나지 않은 문제가 있을 수도 있었다.
수술 집도를 한다는 건 한 사람의 생명을 쥐고 있단 뜻과 같았다.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목숨이다.
아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신에게 맡겨졌으면 확실하게 확인해서 안전하게 돌려주는 게 옳았다.
혈압과 맥박에서 이상을 보였기에 심장뿐 아니라 그 주변까지도 면밀하게 확인하는 게 중요했다.
그런 생각으로 태수는 좀 더 신중한 손길로 심장 주변을 청진기로 확인했다.
그때였다.
쉬이익, 틱.
이상한 흐름을 감지한 태수가 멈칫했다.
‘뭐지?’
이런 소리가 들릴 상황이 아니었다.
태수는 다시 귀에 신경을 집중해 봤다.
그러나 들려오지 않았다.
너무 예민하게 굴었다고 생각할 즈음이었다.
쉬이익, 틱. 쉬이익.
또 한 번 혈류의 흐름이 어딘가 걸린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청진판의 위치를 통해 그 내부를 상상해 본 태수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
상행대동맥.
그렇다면 대동맥박리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대동맥은 3개의 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막, 근막, 외막.
그중 대동맥의 내막이 찢어지며 근막에 가성내강(임의로 만들어진 공간)이 생긴 걸 대동맥박리라고 한다.
이런 소리가 들리는 건 진성내강(원래 피가 흐르는 공간)으로 쏟아지던 피가 가성내강을 휘돌아 내려간다는 걸 의미했다.
확신은 아니지만 추측이 그러했다.
그 의심은 또 한 번 들려온 부자연스러운 소리에 조금씩 확신으로 변해 갔다.
이 부자연스러운 혈행 소리는 아주 은밀했다.
그걸 빨리 간파할 수 있었던 건 그동안 태수가 오감을 이용한 진찰을 거듭 수련해 온 게 컸다.
정말 대동맥박리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면 이렇게 시간을 끌 때가 아니었다.
급성대동맥박리는 심낭압전, 대동맥판막폐쇄부전증 등등 여러 가지 상황으로 악화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급성대동맥박리 자체가 시간당 1퍼센트 이상의 생존 확률을 깎아 먹는다.
발견과 즉시 수술을 하는 게 가장 올바른 대처 방법이다.
이건 카프레네의 지식에서도 강력히 경고하는 내용이었고, 그동안 흉부외과적인 케이스를 공부하면서 심도 깊게 살폈던 부분도 바로 급성대동맥박리다.
이유도 없이 발생했다?
절대 그럴 리가 없었다.
태수는 왜 이 아이에게 급성대동맥박리가 진행되고 있는지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더는 살펴보고 지체할 틈이 없었다.
태수는 바로 옆에서 대기하고 있는 간호장교에게 물었다.
“rib retractor(개흉기), osteotome(뼈 절단기), artificial blood vessel(인공혈관) 있죠?”
“있습니다만.”
“바로 준비해 주세요.”
“…….”
간호장교는 순간 어벙벙한 얼굴로 태수를 바라봤다.
지금 요청한 수술 도구는 흉부외과에서 사용하는 것들이다.
인공혈관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그 외에 다른 수술 도구는 일반외과에서 사용한 적이 없었다.
최소한 자신이 간호장교를 하면서 경험한 건 그랬다.
그녀가 망설이는 사이였다.
마취의도 그 이야기를 들었는지 태수에게 빠르게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 개흉기를 찾아? 뭐, 기흉이라도 생겼어?”
“acute aortic dissection(급성대동맥박리)입니다.”
“그러니까 급성…… 뭐?”
마취의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수술실을 가득 울린 소리였기에 유병태도 환부에서 손을 떼고 얼른 물었다.
“최 선생, 그게 무슨 소리야? 급성대동맥박리라니.”
“빨리 수술로 잡아야 해.”
“아니…… 그건…….”
유병태는 눈을 끔뻑거렸다.
외과 전문의인 태수가 갑자기 흉부외과 수술을 하겠다니.
태수가 지식과 경험이 많다는 건 알지만 이건 너무도 황당했다.
특히나 대동맥은 인체에서 가장 중요한 혈관 중 하나였다. 그걸 잘못 건드리기라도 한다면 지금까지 버텨 온 아이의 고생이 물거품으로 변할 수도 있었다.
태수는 개의치 않은 채 간호장교를 재촉했다.
“최대한 빨리 준비해 주십시오.”
“그건…….”
간호장교가 머뭇거릴 때였다.
마취의가 태수를 향해 말했다. 전처럼 날이 선 목소리가 아니라 조금은 차분해진 표정이었다.
“최 선생, 그거 확실한 거야?”
“확실합니다.”
“내가 알기로는 급성대동맥박리를 진단하려면 최소한 MRI나 CT를 촬영해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면 혈관 조영술이나 심장 초음파라도 해야지.”
“일반적인 상황으로는 선생님 말씀이 옳습니다.”
태수가 인정하자 마취의는 신중하게 물었다.
“그런데 청진기만으로 확인하고 급성대동맥박리를 진단하는 건 너무 섣부르지 않아?”
“혈행 이상을 제 귀로 똑똑히 들었습니다.”
“그럼 내 귀에도 들리겠지.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는 그게 억측이 될 수도 있어.”
“무슨 말씀이십니까?”
태수가 진지하게 묻자 마취의가 이치대로 말했다.
“막상 열었는데 아무런 이상도 없으면 그때는 어떻게 할 거야. 아니니까 다행입니다, 이렇게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이상할 정도로 높아진 혈압, 불규칙한 심장박동, 대동맥에서 들리는 이질적인 소리. 이 정도면 충분한 거 아닙니까?”
“그건 증거가 될 수 없다는 걸 최 선생도 알잖아.”
“…….”
태수가 침묵하자 마취의가 나지막이 말했다.
“솔직히 말할게. 나 아까 다툰 것도 별 감정 없어. 차라리 속 시원하게 서로 소리치고 싸워서 친근감까지 들어.”
“그건 저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는 이야기야. 만약에 최 선생 말이 맞는다고 해도 이건 건드리면 안 돼. 절대로.”
마취의가 강조해서 말했지만 태수는 고개를 저었다.
“최대한 빨리 수술해야 합니다.”
“아니, 정 그렇다면 임시 봉합이라도 하고 검사를 해 보자고.”
“저도 그럴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몇 시간은 없을지 몰라도 한두 시간은 있잖아. 그렇게 속 끓이지 말고 차라리 흉부외과를 소집해.”
마취의는 걱정되어 태수를 만류했다.
태수도 알지만 지금 그렇게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다.
급성대동맥박리.
특히 상행대동맥에 발병하면 무조건 수술이다. 그것도 최대한 빨리 수술해야 한다.
“선생님, 아까와 같습니다. 이번에도 제 편에 서 주십시오.”
“이건 편 가르는 문제가 아니잖아. 보건의들이 늦는다면 일단 군의관들을 불러서 시간이라도 벌어 놓고 나중에 바꾸라고.”
“제 생각이 맞는다면 시간이 없습니다.”
태수의 말에 마취의보다 유병태가 한발 빨랐다.
“무슨 소리야? 시간이 없다니?”
“지금까지 수술한 시간이 5시간, 아이가 여기 도착해서 수술실에 들어온 시간까지 합치면 6시간이 넘어.”
“그건 그렇긴 한데.”
“지금 흉부외과 의사들을 부른다고 해도 최소 1시간 이상 필요해. 그런데 기다리자고?”
태수가 외려 묻자 유병태는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마냥 기다릴 순 없지.”
“그러니까 우리가 해야지. 할 수 있지?”
“어시스던트 정도야 인턴 때 몇 번 해 봤으니까 할 수는 있는데…….”
유병태가 말끝을 흐리자 그 틈을 비집고 마취의가 나섰다.
흥분하지도 않고 냉정할 정도로 차가운 말투였다.
“내가 이 말은 아껴 뒀는데 어쩔 수 없네. 최 선생이 지금 흉부 열면 그 이후는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거 걱정할 때는 아닌 거 같습니다.”
“내 상관이지만 김용철 중령님이 이를 갈고 있는 거 몰라? 이번에 문제 터지면 그때는 징계위원회가 열릴 수도 있어.”
“상관없습니다.”
태수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저런 답답한 의사를 봤나. 군인들이 꽉 막혔다고 욕 디지게 먹는데 지는 더하네.”
“이건 욕먹고 안 먹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나도 알아. 누가 대동맥박리의 위험함을 몰라? 내가 말하는 건 그게 아니잖아.”
“전 진행합니다. 아니, 해야 합니다.”
태수의 목소리는 간결하고 단호했다.
마취의를 응시하는 눈빛엔 결연함까지 깃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