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768
00771 771화
태수는 주영수에게 말했다.
“그런 이야기는 하지 말고 밥부터 먹자. 첫 식사가 좀 자유분방하지만, 오늘은 이렇게 먹고 다음에는 좀 더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네. 잘 먹겠습니다.”
끄덕.
씩씩한 주영수의 대답과 달리 주미성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젓가락을 들었다.
처음에는 조금 딱딱한 식사 분위기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은 분위기가 부드럽게 변했다.
그건 주영수의 역할이 컸다.
“어제는 출근 안 하시고, 오늘은 진짜 일찍 들어오셨네요.”
“요즘 놀고먹어.”
“의사가 그래도 돼요?”
“아, 일이 좀 있거든. 그러니까…….”
태수는 지금 자기의 일을 거침없이 이야기했다. 같이 살고 있다면 숨김없이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 탓이다.
그 이야기를 듣던 주영수가 인상을 찌푸렸다.
“진짜 나쁜 사람들이네요.”
“그래?”
“그럼요. 다른 건 몰라도 그 어린애를 살려 주신 거잖아요. 그게 어떻게 살렸는지보다 지금 살아 있다는 게 더 중요한 거 아닌가요?”
“그렇지.”
태수가 화답하자 주영수는 조금 흥분한 얼굴로 계속 말했다.
“저도 그래요. 누나…… 좌우간 그랬어도 선생님이 살려 주신 거잖아요. 그리고 약속도 지키고요. 그래서 전 선생님에게 감사해요.”
“그건 좀 다른 문제긴 하지.”
“똑같아요. 도움을 준 분에게 다른 소리를 하는 건 정말 나쁜 거예요.”
주영수는 살짝 얼굴까지 벌게져 가며 태수를 옹호했다.
그때 주미성이 자그맣게 한마디 했다.
“저도 영수랑 같은 생각이에요.”
태수와의 대화를 어려워하는 주미성까지도 그렇게 편을 들어 줬다.
그냥 식사 자리에서 나온 살아가는 이야기다.
그런데 듣고 있던 태수는 이상하게 가슴이 찌릿했다.
아이들이 관심을 보여 주니 태수도 자연스레 궁금한 게 생겼다.
“영수야, 학교는?”
“항상 똑같아요.”
“열심히 해야지.”
“저도 아는데, 공부가 진짜 힘들어요.”
주영수의 말에 태수가 가만히 바라봤다.
“세상 살면서 뭐가 쉽겠어.”
“그건 그런데, 공부를 하는 게 솔직히 희망은 없는 거 같아요.”
그 소리에 조용히 있던 주미성이 주영수를 노려봤다.
“너…….”
“현실적으로 그렇잖아. 좋은 대학을 간다고 해도 등록금도 내기 힘들고.”
“그건 내가 알아서 해.”
주미성이 딱 잘라 말하자 주영수는 차분하게 고개를 저었다.
“누나가 그 비싼 등록금을 몇 년 동안 무슨 수로 감당해.”
“그래도…….”
“나도 안 된다고만 생각한 건 아니야. 다만, 공부만 한다고 해서 내가 누나를 편안하게 살게 해 줄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는 거라고.”
주영수는 나름대로 고민을 많이 했는지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주미성도 현실적인 문제를 부정할 순 없는 입장이었다.
태수는 그런 남매를 가만히 바라보며 사과부터 했다.
“족발 하나 사 주면서 내가 괜한 걸 물었나 보다.”
“아니에요. 언젠가는 할 말이었으니까요.”
주영수가 덤덤하게 말했지만 주미성은 아직 할 말이 남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아직 태수 앞에서 감정을 잘 드러내지 못했다.
그건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일이기에 태수는 보채지 않았다.
그는 일단 주미성을 뒤로하고 주영수에게 물었다.
“그럼 특별히 뭔가 하고 싶은 게 있어?”
“…….”
“그걸 정하기 전까지는 누나 말대로 공부를 하는 건 어떨까?”
태수가 중재안을 제시했다.
이건 강요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가족이란 울타리가 단단해지지 않았기에 서로 민감한 부분을 깊게 파고들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두 아이의 생각은 각자 달랐지만 깊이가 느껴졌다.
아마 어린 나이에 사회를 경험하며 살아야 했기에 안 좋은 것도 빨리 깨우친 게 아닌가 싶었다.
태수가 대답을 기다릴 때였다.
그의 말이 아예 설득력이 없는 건 아니었는지 주영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그러려고요. 목적도 없이 공부도 안 하면 그건 진짜 나쁜 거니까요.”
“공부를 한다고 무조건 목적이 나오는 것도 아니지만.”
“그건 그래요.”
“그럼 이 족발 뜯으면서 오늘부터 깊게 생각해 봐. 그리고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봐. 나도 사회 경험이 많진 않지만 조언 정도는 해 줄 수 있을 거야.”
태수는 그렇게 말하며 가장 큰 뼈를 내밀었다.
뼈에 살점이 많이 붙어 있었다.
그걸 받아 든 주영수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제대로 뜯기 시작했다.
주미성이 그런 주영수를 걱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봤다.
태수는 주미성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네가 걱정하는 것보다 영수는 강한 아이야.”
“…….”
“너도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한 아이고. 이건 너 먹어.”
태수는 살점이 잔뜩 붙은 족발을 내밀었다.
주미성은 그 족발을 잠시 바라보다 곧 가져갔다.
남매가 말없이 족발을 뜯고 있는 모습을 보니 태수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 웃음을 감추려 그도 얼른 두 번째로 큰 뼈를 양손으로 들고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족발을 양손으로 들고 뜯는 모습.
솔직히 남에게 보여 주기가 그렇게 쉬운 건 아니었다.
조금 부끄러운 모습을 서로에게 보여 줘서 그런지 간간이 마주치는 시선 속에 희미한 웃음기가 느껴졌다.
그때 태수가 넌지시 물었다.
“학교에선 별 일 없어?”
“없어요.”
“진짜.”
“네.”
아직 어린 소녀다.
거짓말이라면 티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제야 태수가 안심했다.
생각외로 강형사가 일을 잘 처리한 모양이다.
‘그래. 모르게 지나가라.’
태수의 깊은 속마음이었다.
다음 날.
아침부터 보건의들은 격분한 상태였다.
“공고 봤어?”
“이번 주 내로 징계위원회가 열린다고?”
“이야, 서로 갈 데까지 가 보자는 거지?”
다들 이 일이 이렇게까지 번져야 한다는 것 자체에 어이없어 했다.
태수도 소식을 들었지만 여전히 덤덤한 얼굴이었다. 복도를 지나는데 김용철 중령이 반대편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가까이 마주 선 순간 김용철 중령이 나지막이 말했다.
“조만간 보자고.”
득의만면한 미소를 지으며 그가 먼저 멀어져 갔다.
징계위원회는 모두 자신의 편이라는 걸 은연중에 알리는 것 같았다.
태수는 관심도 없었다. 수첩을 꺼내 들고 메모를 확인할 뿐이었다.
“오늘 수형이하고 몇몇 애들이 퇴원하는 날이네.”
약속대로 자그마한 파티를 열어 줘야 할 것 같았다.
탁.
수첩을 접은 태수는 이 사실을 이야기하기 위해 전수형과 아이들이 입원해 있는 병실로 향했다.
병실로 다가가니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복도까지 울렸다.
바로 병실 문을 연 태수가 한 소리 했다.
“좀 조용히 해라.”
“와, 선생님이다!”
아이들은 야단치는 태수를 향해 달려들다시피 했다.
의사와 환자 사이가 아니라 그저 동네 친한 형을 대하는 모습이었다.
처음 볼 때는 병상에 누워 꼼짝도 못하던 아이들이다.
그 아이들이 두 발을 딛고 달려오는 모습만으로도 태수의 얼굴에는 활기찬 미소가 가득했다.
아이들과의 수다는 언제나 길게 이어졌다.
전수형이 병상에 걸터앉아 보호자 침대에 앉은 태수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이따가 퇴원하면 진짜 치킨 사 주시는 거죠?”
“몇 번을 물어.”
“어른들은 항상 약속을 안 지키거든요.”
의미심장한 말이었지만 태수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내가 언제 약속 안 지킨 적 있어?”
“아니요. 아저씨는 없죠.”
“형이니까 약속을 잘 지키는 거야.”
“맨날 형 타령.”
전수형이 삐쭉거리자 태수도 한 소리 했다.
“그놈의 아저씨 타령.”
“나이상으로는 아저씨죠. 형은 진짜 아니에요.”
“내 마음은 아직도 스무 살이거든?”
“저도 마음은 스무 살인데, 친구할까요?”
전수형이 슬쩍 엉기자 주변에 모여 있던 아이들이 크게 웃었다.
“하하하.”
“역시 수형이 형이 최고야.”
태수의 눈치를 보는 아이들은 없었다. 이 정도 대화는 두 사람 사이에 흔히 있는 일인 탓이다.
태수도 말장난에 흥분할 생각이 없었다.
장난으로 눈을 흘기긴 했다.
“저건 배 속을 고쳐 놨는데 왜 주둥이가 쌩쌩하냐고.”
“그러게 말이에요.”
“너 말하는 거야.”
“그러게요.”
생글생글 웃으며 말장난을 하는 전수형의 모습은 영락없는 악동이었다.
그런 짓궂은 장난도 마음 편한 상대에게만 한다는 걸 알기에 태수도 웃으며 받아 줬다.
그렇게 밝은 대화가 이어지던 중이었다.
투다다다!
창밖으로 시끄러운 헬기 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무슨 헬기?
아이들이 얼른 창가로 모여 하늘을 바라봤다.
“이거 헬기 소리 맞지?”
“헬기 어디 있어?”
“나도 안 보여.”
흔하게 볼 수 있는 헬기가 아니기에 아이들의 눈빛이 초롱초롱했다.
태수 또한 여기에 와서 처음 듣는 헬기 소리에 의아해했다.
태수가 생각하는 사이, 아이들의 투정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만 들리고 안 보여.”
“구경해 보고 싶었는데.”
“소리 진짜 크다.”
그때 전수형이 태수에게 물었다.
“아저씨, 헬기 타 봤어요?”
“징그러울 정도로.”
“에이, 거짓말.”
전수형이 믿지 않자 태수가 어깨를 들썩였다.
“믿거나 말거나.”
“그러지 말고, 진짜로 타 봤어요?”
“진짜라니까.”
태수의 심드렁한 반응이 더욱 호기심을 자극했는지 전수형이 이어서 물었다.
“느낌이 어때요?”
“진동 때문에 속 아프고, 소리 때문에 귀 아프고.”
“안 타 봤네. 진짜 타 본 사람들은 완전히 신세계라던데.”
“민간 헬기나 그렇지.”
군용 헬기는 덩치가 크기에 소리와 진동도 엄청났다. 그리고 몇 시간씩 타고 가면 좀이 쑤시기도 한다.
태수의 경험을 상상도 하지 못할 전수형이기에 믿을 수 없을 뿐이었다.
태수도 굳이 자세하게 설명할 생각은 하진 않았다.
헬기를 보고 싶은지 아이들은 창밖까지 고개를 내밀었다.
말없이 지켜보던 태수도 그 모습에 뭐라고 한마디 했다.
“인마, 그러면 위험하잖아.”
“괜찮아요.”
“그러다 떨어지면 어쩌려고.”
“선생님이 고쳐 주시겠죠.”
전수형이 당돌하게 대답하자 태수는 어이가 없었다.
“저건 큰 형이라는 게.”
그러나 크게 걱정되진 않았다.
호기심이 짙은 아이들이라도 몸까지 창밖으로 나가진 않았다. 아무리 궁금해도 자신의 몸은 소중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태수는 안심이 되지 않아 전수형 쪽으로 다가갔다.
그때 전수형이 모두가 듣도록 크게 소리쳤다.
“우와! 저거 미군 헬기 아니야?”
“미군 헬기?”
“성조기가 그려져 있고 양쪽에 기관총도 달려 있는데요? 끝내준다.”
아이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전수형이라 상식도 풍부한 모양이었다.
그 소리에 그나마 병상에 있던 다른 아이들도 창문으로 달려갔다.
“미군 헬기가 왔어요?”
“나도 볼래, 나도.”
아이들이 왁자지껄할 때였다.
전보다 더욱 위험해진 상황에 보다 못한 태수가 결국 큰 소리를 냈다.
“마! 이 자식들.”
“…….”
“좋은 건 좋은 거고, 그렇게 하면 위험하잖아!”
태수의 성난 모습을 처음 본 아이들이 서로 눈치를 봤다.
마냥 좋은 의사라고 알고 있어서 그런지 놀란 표정들도 여럿 보였다.
태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어서 말했다.
“다들 창문에서 나와.”
“네.”
“한 번만 더 위험한 짓 해 봐라. 특히 수형이 너…….”
“죄송합니다.”
전수형이 빠르게 사과했다.
반항기조차 쏙 사라진 긴장한 모습이었다.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태수는 그런 전수형과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퇴원하는 날이니까 특히 몸조심해야지.”
“네.”
“적당히 보고 퇴원 준비 해.”
그는 긴장한 아이들을 한 번씩 둘러보고는 병실을 나섰다.
탁.
병실 문을 닫는 순간 태수가 자기 머리를 쳤다.
“진짜 이놈의 승질머리.”
아이들의 안전을 위한다지만 그렇게까지 화를 낼 일은 아니었다.
겁먹은 아이들의 시선이 지금도 선명했다.
헤어지는 날에 이런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는데.
이렇게 한 번씩 울컥하는 성질 때문에 참 될 일도 안 되는 것 같았다.
한편, 미군 헬기는 군병원 옥상 착륙장을 향해 접근 중이었다.
투다다다!
시끄러운 프로펠러 소리에 다른 모든 소리가 차단될 정도였다.
뒷좌석에 자리한 미군 장교는 헬멧을 양손으로 지그시 누르고 있었다.
헬멧과 연결된 무전기에서 들려오는 소리조차 안 들릴 정도로 프로펠러 소음이 심한 탓이다.
덕분에 목소리도 높아졌다.
“지금 강하 중입니다. 곧 착륙장에 안착할 예정입니다.”
-조심해서 이동하도록.
“알겠습니다. 그런데 말씀하신 닥터 최란 의사를 어떻게 하란 말씀이십니까?”
-공문 보냈으니까 그쪽에서도 협조해 줄 거야. 어떻게든 데려오도록 해.
상대의 무전이 끝나자 미군 장교가 옆에 동승한 다른 장교에게 큰 소리로 물었다.
“도대체 닥터 최가 누군데 클라크 장군님이 이러시는 거야?”
“예전에 같이 전선에서 활약했다잖아.”
“그건 들었는데 이렇게까지 해야 되냐고.”
“억울하면 모가지 걸고 따지든가!”
“싫어.”
그는 대번에 거절한 후 헬기가 착륙장으로 내려가는 모습을 똑똑히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