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774
00777 777화
태수는 그런 클라크 장군에게 물었다.
“반가운 분들을 만나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시단 말씀이시죠?”
“그렇습니다만.”
“그럼 저도 전화를 좀 해야 할 거 같아서 말입니다.”
“편하신 대로 하셔도 됩니다. 저도 사인할 게 몇 개 남아서 마저 처리해야 합니다.”
클라크 장군은 그렇게 말하며 책상으로 향했다.
할 일?
없어 보였다.
방금 오늘 하루를 위해 며칠 전부터 준비했다고 했다. 그런데 말을 바꾼 건, 태수가 혹시라도 부담스러워할까 봐 일부러 자리를 비켜 주는 모양이었다.
아주 작아 보이는 사소한 배려에도 태수는 고마움을 느꼈다.
햇살 좋은 창가로 다가선 태수는 곧 휴대폰을 들어 이선정 간호사에게 전화했다.
통화 연결음이 몇 번 울리기도 전에 이선정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어떻게 되셨어요?”
“뭐가 말입니까?”
“단시간에 너무 힘을 빼셨나, 왜 말귀를 못 알아들으세요? 제가 지금 수술 잘 끝났는지 묻지, 다른 걸 묻겠어요?”
이선정 간호사는 기다리다 갑갑해졌는지 목소리가 곱지 않았다.
태수도 그 심정을 이해했기에 수더분하게 대답했다.
“응급은 응급인데, 수술은 아니었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실은 여기서 반가운 얼굴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이 간호사님도 기억하실 겁니다. 그러니까…….”
태수가 클라크 장군을 만나고 나눴던 이야기들을 간단하게 추려서 말했다.
그러자 이선정 간호사의 목소리가 대번에 올라갔다.
“그러니까 거기 클라크 대령, 아니지, 장군님이 부른 거였다고요?”
“저도 여기 도착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분한테 저도 미안한 게 참 많은데요.”
“다음에는 같이 놀러 오도록 하죠.”
태수가 별생각 없이 대답하자 이선정 간호사가 확인차 물었다.
“정말 환자는 없는 거예요?”
“네, 없습니다.”
“그럼 진짜 다행이고요.”
“그리고 실은…….”
태수는 주한미군 사령관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입이 무거운 이선정 간호사에겐 이야기를 해 두는 게 좋을 것 같단 판단 때문이었다.
그의 생각이 옳았는지 이선정 간호사는 흥분하기보단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럼 사령관이 직접 배경이 되어 주겠다는 거네요.”
“그렇습니다.”
“이건 진짜 오 마이 갓, 이네요. 이번 일은 아주 재미있게 마무리될 거 같은 느낌도 들고요.”
“그렇다고…….”
태수가 뭐라고 말하려 했지만 이선정 간호사의 목소리가 빨랐다.
“알아요. 제가 떠들지 않아도 알아서 밝혀질 건데 입 아프고 싶지 않아요.”
“감사합니다.”
“그건 그렇고, 오늘은 프리하시니까 아주 제대로 즐기시겠는데요?”
“물론 약 올리려고 전화한 것도 있습니다만, 더 중요한 일이 있어서 말입니다.”
태수가 밉지 않게 말하자 이선정 간호사가 호기심을 보였다.
“무슨 중요한 일이요?”
“전수형하고 아이들 퇴원하는 날이잖습니까.”
“그렇죠. 아, 혹시 약속 때문에 전화 주신 거예요?”
“네. 유 선생하고 이 간호사님이 저 대신에 진행해 주시겠습니까? 지금은 도저히 날아갈 수가 없을 거 같습니다.”
태수도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클라크 장군은 또 달랐다.
아이들에겐 직접 치킨을 사 주지 못해 미안했지만, 잠깐이라도 태수도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그런 마음을 십분 이해하는지 이선정 간호사가 바로 대답했다.
“알았어요. 유 선생님하고 제가 알아서 진행할게요.”
“그보다 그쪽은 별일 없습니까?”
“별일 많죠. 선생님에 대해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말씀 좀 잘 해 주십시오.”
태수가 양해를 구하자 이선정 간호사의 의미심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의사분들 말고도 찾는 분이 계시는데, 그분은 어떻게 할까요?”
“간호장교분들 말입니까?”
“아니요. 기자가 선생님을 찾던데요. 이번 일에 대해 열심히 캐고 다니는 모양이고요. 어떻게 대답할까 하다가 일단 피했어요.”
이야기를 듣던 태수가 호기심을 느꼈다.
“기자가 제 뒤를 캐고 있단 말입니까?”
“캐고 있다기보다는 진행되는 일들을 조사하는 거 같더라고요. 기사로 내려는 거 같고요.”
“일이 재미있게 흘러가네요.”
“어떻게, 제가 말려 볼까요?”
이선정 간호사의 질문에 태수는 생각하고 자시고 할 틈도 없이 곧바로 대답했다.
“아니요. 놔두십시오.”
“네? 시끄러워지는 거 별로 안 좋아하시잖아요.”
“이젠 시끄러워도 될 거 같습니다.”
태수가 태연하게 대답하자 이선정 간호사의 목소리가 장난스럽게 변했다.
“오호, 뒤에 든든한 배경이 생기셔서 그런 거예요?”
“다 떠나서 이번 일은 좀 알려져야 될 거 같아서요.”
“군병원 이미지에 타격이 클 텐데요. 김 중령은 자리까지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에요.”
“모든 뿌린 대로 거두는 거 아니겠습니까.”
태수의 단호한 목소리에 이선정 간호사가 화답했다.
“그럼요. 전 혹시나 선생님이 기자 좀 말려 달라고 하실까 봐 조마조마했다고요.”
“말리라는 말씀은 드리지 않을 겁니다. 대신 적당히 수위 조절 하시면서 이야기해 주실 거라는 건 믿습니다.”
“그런 건 걱정 마세요. 어차피 여기 한번 둘러보고 이미 사라졌으니까요.”
“알아서 쓰겠죠. 그럼 뒷일 좀 부탁하겠습니다.”
태수는 부탁을 마치고 통화를 끊었다.
기자가 캐고 다닌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솔직히 태수도 궁금해졌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였다.
클라크 장군이 태수에게 다가와 물었다.
“그럼 이제 출발하시겠습니까?”
“얼마든지요.”
“가시죠.”
“이거 미군 장군의 안내를 받게 되는 날이 오다니.”
태수의 말에 클라크 장군도 밝게 웃으며 안내를 시작했다.
같은 시각.
군병원과 조금 떨어진 음식점에 대령과 기자가 마주하고 있었다.
기자는 한상 떡하니 차려진 모습에 살짝 비아냥거렸다.
“이거 이런 대접은 처음 같습니다만.”
“별거 없습니다. 얼굴 모르는 사이도 아닌데, 그동안 너무 소홀한 거 같아서 모신 겁니다.”
“모시다니요. 언제부터 그런 표현을 쓰셨다고.”
기자가 슬쩍 떠봤지만 대령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말했다.
“혹시라도 그동안 섭섭하신 게 있었다면 이번 식사로 좀 푸시기 바랍니다.”
“제가 뭐 섭섭할 거나 있겠습니까. 국민의 알 권리를 조금이라도 충족시켜 드리려는 거지요.”
“그동안 제한된 게 많으시지 않습니까?”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툭하면 대외비니 군사 비밀이니 들먹이면서 죄다 막지 않았습니까?”
기자가 불만스레 한마디 하자 대령이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죄송하게 생각합니다만, 저희도 사정이라는 게 있잖습니까.”
“그래서 이번 일도 슬쩍 넘어가려고 이렇게 저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건 아니고요?”
“슬쩍 넘어가려는 게 아니라 오해를 풀겠다는 겁니다.”
“오해라. 제가 어떤 부분을 어떻게 오해하고 있는지부터 들어 보도록 하죠.”
기자의 말에 대령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식사부터 권했다.
“먹는 거 앞에 두고 딱딱한 이야기는 삼가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먹다가 체하기 전에 확실하게 경계를 긋고 먹는 게 제 속이 편할 거 같습니다만.”
기자 역시 만만치 않았다.
뜻대로 순순히 풀려 가지 않자 대령이 눈썹을 꿈틀거렸지만 그뿐이었다.
대령은 바로 원래대로 표정을 되돌리고 차분하게 말했다.
“우선 아까 보도 자료 보여 주신 거 말입니다. 그중에 두 가지 오해가 발견되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첫 번째는 군병원에 민간인이 들어온 걸 제지했단 부분입니다.”
“그건 제가 여러 곳에서 확인한 겁니다만.”
기자가 딴죽을 걸자 대령이 외려 물었다.
“그 출처가 어디입니까?”
“에이, 왜 이러실까. 제가 여기 하루 이틀 온 것도 아닌데. 누가 알려 줬다고 말하면 그 친구는 목 날아갈 거 아닙니까.”
“그런 사실 없습니다.”
“대령님, 자리 마련해 주신 건 기쁜데, 제가 믿을 만한 이야기를 하셔야 좋은 결과를 얻지 않으시겠습니까?”
기자가 날카롭게 말하자 대령이 한발 뒤로 뺐다.
“그렇다면 그 출처는 나중에 듣기로 하고. 위병소에서 잠깐 지체한 건 먼저 전화가 왔던 구급대가 맞는지 절차상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말씀은 생명보다 절차가 우선으로 들립니다만.”
“그건 아닙니다. 군병원은 응급상황의 경우 민간인을 수용하게 되어 있습니다. 다만 보안상 위병소에서 일차적으로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했을 뿐입니다.”
대령의 목소리에는 단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원래 당연히 해야 할 일일 뿐이었지, 그걸 문제 삼는 건 옳지 않단 목소리였다.
기자는 그 내용까지도 수첩에 적어 넣으며 말했다.
“확인차 출입에 약간 딜레이가 있었다……. 그건 내가 추가로 넣기로 하고, 그 외에 다른 건 무슨 오해가 있었다는 겁니까?”
“최태수 선생이 대동맥치환술을 실시하는 과정을 취재하시던 중 오해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정확하게 어떤 부분이죠?”
“응급상황 시 의사는 역량이 닿는 한 최선을 다해 환자를 수술해야 합니다. 그건 군의관들에게도 항상 교육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대령의 똑 떨어지는 목소리에 기자는 한쪽 입꼬리를 살짝 비틀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최 선생님의 징계위원회 소집은 어떻게 된 겁니까?”
“진상조사위원회의 성격이 더 강합니다. 그리고 수술 중에 사소한 실수를 했기에 그 부분에 대한 것만 징계 대상으로 분류되었습니다.”
“설령 그게 윗선에 보고를 하지 않았다든지 뭐, 이런 부분 아닙니까?”
“그건 너무 억측이신 거 같습니다.”
대령의 단호한 대답에 기자가 눈빛을 게슴츠레 빛냈다.
“제가 조사한 부분과 상당히 다른데요.”
“아마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하다 보니 와전된 모양입니다.”
“와전이라. 나 참, 이거 사람을 어떻게 보시고. 제가 펜대 굴리면서 몇 년을 버텼는데 그걸 믿으라는 겁니까?”
“…….”
대령의 입이 처음으로 다물어지자 기자가 이어서 말했다.
“그 많은 사람들이 같은 이야기를 하는데 그게 모두 오해다, 그렇게 이야기하면 제가 아이고, 조사를 개판으로 했습니다, 할까요?”
“아니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걸 아시는 분이 이 시점에서 왜 그렇게 솔직하지 못하실까.”
“…….”
“우리 그러지 말고 톡 까놓고 이야기합시다. 이거 누구 작품입니까? 누가 최 선생을 아예 몰아넣자고 한 거냐고요.”
기자가 외려 물었지만 대령은 대답하지 않고 말을 돌렸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이번 일에 대해 상당히 오해를 하고 있다는 것뿐입니다.”
“저도 이런 식으로 말씀하실 거 같아서 음식에 손도 안 댄 거 아시죠?”
“…….”
“전 군인이 아니라서 위에서 찍어 누른다고 가만히 당하고 있을 성격이 못 됩니다.”
기자가 제멋대로인 성격을 강조해 말했다.
계속 이런 식으로 대화를 이어 간다면 바로 데스크로 송고하겠다는 의미다.
그걸 막으려 이 자리를 만든 대령이기에 다른 미끼를 던져야 했다.
‘이건 쓰지 않길 바랐는데.’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니 어쩔 수 없었다.
속으로 생각하는 와중에도 눈썹 하나 변함없던 대령이 차분하게 말했다.
“그럼 몇 번의 기사에 대해 보도 자료를 최우선적으로 주는 건 어떠십니까?”
“저에게 우선권을 주신다고요?”
“효과는 더 말씀 안드려도 아실 거라 믿습니다.”
“흐음. 그것참, 구미가 당기기는 하는데.”
기자가 턱을 쓸며 짓궂은 눈빛을 보내자 대령은 나지막이 말했다.
“그것도 거부하신다면 서로 썩 달가운 사이가 되지 않을 거 같습니다만.”
“뭐, 정 그러시다면 이런저런 이야기는 빼도록 하죠. 대신에 최태수에 대한 개인적인 기사는 내보내도 됩니까?”
“어떤 기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알아보니까 이 의사가 그 의사입디다. 몇 년 전에 한 번 신문에 났던, 그 야전에서 실력 키운 의사 말입니다. 그 의사가 한 건 했으니까 뒤도 좀 캐 보고 하려고요.”
기자의 말은 태수가 했던 일들은 알리겠단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