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789
00792 792화
띠리릭.
수화기가 울리자 공우혁이 반사적으로 전화를 받았다.
“……성 선생, 진정해. 우리가 직접 움직이고 있어. ……미안해. 진짜 미안하다고 최 선생에게도 전해 줘. 어떻게든 빨리 들여보내 줄게.”
통화를 마친 공우혁은 팔걸이를 내리쳤다.
탁!
마음 같아서는 자신도 움직이고 싶지만, 이곳에 혼자인 관계로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 공우혁을 더욱 안달하게 했다.
그러나 수술실에서는 공우혁의 사정을 알 수가 없었다.
성재경이 바로 태수에게 통화 내용을 전달했다.
“보건의들이 직접 씨암을 가지러 갔나 봐. 그리고 공 선생이 직접 미안하다고 전해 달라는데.”
“…….”
스윽.
태수는 손만 들어 의사를 표시했다.
청진기에 좀 더 집중하겠다는 뜻이었다.
그걸 알아들었는지 성재경은 조용히 다가와서 더 도울 게 없는지 살폈다.
태수는 더욱 청진기에 귀를 집중하고 왼손으로 다시 환부를 조심스럽게 훑었다.
계속 피를 뽑아내고 있어서 그런지 위장이 딱딱하진 않았다. 그렇다면 어디선가 계속 피가 유입되고 있다는 뜻이다.
반면, 위장을 직격한 쇠구슬은 없었다.
확실한 건 위장에 피가 스며들고 있다는 거다.
예측하는 사이 신경을 자극하는 ECG(심전도 모니터)의 소리가 더욱 커졌다.
삐빅, 삑!
불규칙한 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여성현의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최 선생, 혈압이 안 잡혀! 이젠 뭐라도 해야 돼!”
“dopamin(도파민, 강심제 일종) 추가.”
“이미 했어! 혈액도 계속 들어가고 있고, 승압제도 추가했다고. 혈장까지도 추가했는데 더는 못 버틴다니까.”
“…….”
태수의 입이 저절로 다물어졌다.
그때 유병태가 버럭 소리쳤다.
“지랄, 뭐 하는데 아직도 깜깜 무소식이냐고. 진짜 누구 하나 죽어 나자빠져야 들어올 거야, 뭐야!”
“진정해.”
“야, 최! 너 지금 이 상황에……. 아니다. 미안하다.”
유병태는 바로 태수에게 사과했다. 아무리 자신의 마음이 급하다고 해도 태수만큼은 아닐 터였다.
태수의 말에 약간 안정을 찾은 느낌도 들었다.
그때까지도 이기준은 수술대에 붙어 있었지만 왠지 멀리 떨어져 있는 느낌이었다.
태수는 그런 이기준은 신경 쓰지 않고 성재경에게 말했다.
“째야겠습니다.”
“짼다고? 복부를 열어? 그럼…….”
“그 정도는 아니고요. 구 대위, 지혈제 가득 묻힌 거즈 좀 준비해 주세요. 이 간호사, 메스.”
태수의 오더에 이선정 간호사와 구연정 대위는 두말하지 않고 손을 움직였다.
턱.
이선정 간호사가 건네준 메스를 든 순간 태수의 눈빛이 급격히 냉정해졌다.
임시방편일 뿐이다.
씨암이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끌기 위한 방법일 뿐이다.
하지만 이 방법 자체가 모험이다.
피할 여유가 있다면 피하고 싶은…….
모험을 할 수밖에 없는 건 환자의 상황이 그만큼 좋지 않은 탓이다.
생각도 짧았지만 태수의 손은 망설임 없이 복부로 향했다.
자신이 예상했던 바로 그 지점이다. 태수가 쥔 메스는 드레인이 연결된 구멍을 위아래로 좀 더 길게 갈랐다.
드레인보다 더욱 상처가 벌어지자 그 사이로 피가 몽글몽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예측된 상황이기에 태수는 수술 도구를 교체했다.
“인터네셔널 포셉, 준비된 거즈랑 같이.”
그 말과 동시에 이선정 간호사와 반대편에 있는 구연정 대위가 동시에 손을 뻗었다.
“여기요.”
“여기 있습니다.”
태수는 인터네셔널 포셉으로 지혈제가 가득 묻은 거즈를 잡자마자 그대로 벌어진 틈에 쑤셔 넣기 시작했다.
“하나 더, 더, 더더더, 계속!”
태수는 밧드(철제 그릇)에 담긴 거즈를 몽땅 위장으로 집어넣었다. 그 모습까지 본 성재경이 먼저 움직였다.
“썩션, 후크!”
성재경은 직접 썩션과 후크를 찾아 양손에 쥐었다.
썩션으로 흘러내리는 피를 빨아들였다. 그리고 후크로는 태수가 좀 더 거즈를 원활하게 넣을 수 있도록 약간의 공간을 확보해 줬다.
그사이 유병태는 반대쪽, 구연정 대위의 옆으로 지혈제와 거즈 뭉치를 들고 다가섰다. 태수를 돕고 싶어도 공간이 부족해 다른 걸 보조했다.
“여기 지혈제 묻힌 거즈!”
“감사합니다.”
“인사할 생각 하지 마시고, 일단 빨리 전달해 주세요.”
유병태의 신속한 움직임에 구연정 대위는 거즈를 한 장씩 분리할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이기준은 어느새 유병태의 몫이었던 수혈팩과 포도당을 짜고 있었다.
가장 쉬운 일이었다.
지금은 누구 하나 그런 이기준을 신경 쓰는 의료진이 없었다.
태수는 모두의 신속한 도움을 받아 배 속으로 거즈를 집어넣고 또 집어넣었다.
태수의 생각은 어찌 보면 단순했다.
지혈제가 가득한 거즈로 위장을 채우면 출혈을 잠시라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이게 백퍼센트 통할 거란 자신감은 없었다.
다만 자신의 경험으로 찾아낸 그 부위가 맞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뿐이다. 사실 어떻게든 환자의 심장이 멈추는 일만은 막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임기응변이었다.
삑삑삑!
ECG(심전도 모니터)의 소리는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태수의 귀에는 더욱 날카롭고 신경질적으로 들려올 뿐이었다. 수술을 시작하고 지금까지 최대한 안정을 유지했지만 이젠 한계에 다다랐다.
이 수술을 대기실에서 기자가 지켜보고 있단 것도.
체면을 구긴 군병원에서 트집거리를 잡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있단 사실도.
어느 하나도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관심도 없었지만, 지금은 아예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태수는 계속 지혈제를 묻힌 거즈를 안으로 집어넣으며 소리쳐 물었다.
“마취의, 바이탈!”
“혈압 안 잡히고, 맥박 급상승 중!”
“변화가 아예 없습니까?”
“안 좋아져. 더 안 좋아지고 있다고.”
여성현의 목소리에도 다급함과 초조함이 가득했다.
마음 같아서는 본인도 같이 직접 손을 쓰고 싶다는 게 목소리로도 느껴졌다.
그 마음이 느껴질 정도로 환자의 바이탈은 형편없었다.
이대로 조금 더 지나면 처음으로 심장이 멈출지도 모른다.
심정지.
그 한 번의 심정지가 이 수술의 성패를 크게 좌우할 수도 있다.
피해야 한다.
어떻게든 피해야 옳았다.
태수의 시선이 빠르게 주변으로 향했다.
“이 선생, 더 짜!”
“짜고 있어.”
“유 선생.”
“오케이! 내가 간다. 간다고!”
유병태는 액체형 지혈제를 아예 거즈 위에 넘어뜨려 버리고 이기준에게로 향했다.
“이 선생, 포도당만 맡아. 혈액은 내가.”
“마음대로.”
“너 진짜……. 젠장.”
지금까지도 태연한 이기준의 모습에 유병태는 울컥한 마음을 억지로 다스렸다.
화를 낼 때가 아니라 어떻게든 환자를 좀 더 안정시키는 게 중요한 탓이다.
유병태는 수혈팩을 잡자마자 강하고 빠르게 연속적으로 자극했다. 무턱대고 강하게 쥐어짜는 것보다 효과적인 방법인 탓이다.
유병태가 수혈을 적극적이고 빠르게 변화시키며 여성현에게 물었다.
“맥박 좀 느려졌습니까?”
“더 짜. 이 순간이 세상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무조건 짜.”
“에이.”
유병태는 손아귀가 굳어질 듯한 근육 경련을 느끼면서도 수혈팩을 압박했다.
그 가상한 노력에도 무심한 ECG(심전도 그래프)의 소리는 변함이 없었다.
달리 말해 그 정도로도 부족하단 뜻이다.
태수는 순간적으로 되돌아봤다.
건드리지 않았으면 아무런 일도 없었을까.
말짱 개소리다.
언젠가는 더욱 커다란 문제가 환자의 생명을 위협했을 게 분명했다.
차라리 지금 터진 게 다행이지만, 문제가 사라진 건 아니다.
이젠 위장에 거즈를 더 집어넣을 틈이 없었다. 얼마나 집어넣었는지 위장 부근만 크게 부풀었다.
그럼에도 태수는 억지로 쑤셔 넣고 또 쑤셔 넣었다.
“하나만 더. 제발 하나만 더 들어가라고.”
잔잔하게 울리는 태수의 목소리.
그 말이 비수가 되어 모두의 마음을 찔렀다. 하지만 정작 환자에게는 닿지 않은 모양이었다.
턱.
이선정 간호사가 보다 못하겠는지 태수의 손을 잡았다.
“이젠 더 못 들어가요.”
“하나는, 하나는 더 들어갑니다.”
“선생님.”
이선정 간호사가 간절히 불렀지만 태수는 그 손을 무시한 채 응급처치에만 몰두했다.
시간도 없고 공간도 없다.
오로지 이 순간은 태수와 환자뿐이었다.
아무도 그런 태수를 만류하지 못했다.
대신 모두의 표정이 무겁게 변했다.
어쩌면 이젠 한계에 다다랐다고 생각하는지도 몰랐다.
태수이기에 이만큼 버텨 냈을 터였다. 보건의 중에서 가장 실력이 좋고, 총상을 많이 다뤄 본 태수이기에 지금까지 버텼다.
수술실에 들어온 모든 의료진이 그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태수는 몰랐다.
태수는 이 상황조차도 실패란 생각 따윈 떠올리지도 않았다.
“제발, 버티라고요, 제발.”
“…….”
“이건 진짜 개죽음이잖아, 좀!”
결국 억누르고 억눌렀던 태수의 감정이 폭발했다.
그 순간이었다.
삐빅!
ECG(심전도 모니터)의 소리가 변했다. 그러나 너무도 짧고 빠르게 다시 원상태로 돌아왔다.
태수가 자신의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그때 여성현의 목소리가 수술실을 크게 울렸다.
“갑자기 환자 눈썹이 꿈틀거렸어!”
“네?”
“최 선생, 이거 말도 안 되고 정말 어이없는 이야기라는 거 나도 아는데, 환자가 듣고 있어. 최 선생 말에 환자가 반응하는 걸 내가 똑똑히 봤다고!”
턱턱.
여성현이 자기 가슴을 격하게 후려치며 빠르게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유병태가 눈치 빠르게 얼른 이어서 이야기했다.
“나도 봤어. 진짜 봤다고. 이 선생도 봤지?”
“나는 글쎄……. 큭! 왜 밟아?”
“이 선생도 봤대. 성 선배는요?”
유병태가 얼른 대답을 요구하자 성재경이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봤어.”
“저도요.”
“저도 봤습니다.”
이선정 간호사와 구연정 대위까지도 똑같이 대답했다.
과연 정말 모두가 봤을까.
솔직히 본 사람은 없었다.
여성현이 착시 현상을 일으켰다.
하지만 봤다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단 하나뿐이다.
포기하지 말자.
포기하기에는 아직 환자의 심장이 뛰고 있다.
태수가 포기했다고 생각하고 독려하는 게 아니다. 태수에게 힘을 주면서 자신들도 나약해진 마음을 털어 내겠단 뜻이었다.
모두 하나의 마음으로 응원하자 태수 또한 흥분했던 마음이 빠르게 가라앉았다.
“갑시다. 어떻게든, 어떻게든 살려 냅시다.”
끄덕.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 순간이다.
태수는 이제 마지막 수단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개흉된 상태로 개복수술을 진행하는 방법이다.
이런 과다한 출혈과 쇼크를 안고 있는 환자에게는 정말 최악의 수술 방법이다.
복합적인 문제로 손을 쓰지도 못하고 테이블 데스가 될 수도 있던 탓이다.
하지만 더 이상의 방법이 없었다.
그 생각으로 태수는 이선정 간호사에게 손을 내밀었다.
“메스.”
“여기요. 힘내세요.”
그녀도 이 최후의 수단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지만 메스를 건네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이대로 방치한다면 테이블 데스일 뿐이다.
다만 긴장 탓인지 무의식적으로 입술을 꼭 깨물었다.
이선정 간호사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서 그런지 메스가 더욱 따뜻한 느낌이었다.
태수는 메스를 제대로 고쳐 쥐며 이선정 간호사에게 물었다.
“이번 수술 끝나면 초곡리 한번 갈까요?”
“네. 저도 아저씨, 아줌마들이 보고 싶어요.”
“떳떳하고 당당하게 갑시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태수가 쥔 메스가 환자의 복부에 닿았다.
동시에 힘을 주려는 순간이었다.
그르륵.
수술실 문이 열리더니 임진호가 달려 들어오며 소리쳤다.
“최 선생, 스톱!”
“…….”
딱.
태수의 손길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그와 동시에 여러 보건의들이 씨암을 끌고 들어왔다.
“전원 연결해!”
“바로 가동시키고, 수혈팩 전달해 줘!”
“한 명은 IV 연결하고 일단 쥐어짜라고!”
수술실에 들어온 보건의들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그리 넓지 않은 수술실이 정말 의사들로 꽉 찼다.
그보다 마음이 더욱더 차올랐다.
성재경도 감동했는지 살짝 붉어진 눈으로 보건의들에게 소리쳤다.
“야, 이 새끼들아! 필요한 놈 빼고 다 꺼져.”
“저 새끼가 물에서 구해 주니까 나 몰라라 하고 배 째라네.”
“먼지 날려, 새끼들아!”
“우리도 알아. 이거만 하고 꺼질 거야.”
오가는 대화 소리가 거칠다 못해 과격했다. 그러나 서로를 바라보는 얼굴에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