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790
00793 793화
그때였다.
우우우웅.
씨암 가동 소리가 들려왔다.
가동하는 시간이 조금 걸리기에 그사이 임진호가 태수 옆으로 다가섰다.
“진짜 미안해. 군병원 쪽에도 응급 터져서 인원이 없었어. 그것도 핑계라는 거 아는데, 진짜 늦어서 미안해.”
“아닙니다. 그보다.”
“알아. 우리도 수술 방해할 생각 없어. 대신에 필요하면 언제든지 손 흔들어. 성 선생하고 유 선생보다 더 빨리 들어올게.”
“감사합니다.”
인사는 했지만 고개조차 숙이지 못했다.
아직 안정된 상황이 아니었기에 안심할 수가 없던 탓이다.
임진호도 그걸 알기에 다른 보건의들에게 소리쳤다.
“이제 빠지자!”
“가자. 야야, 넌 남아서 수혈팩 계속 짜야지!”
우르르.
정신없이 들어왔던 보건의들은 나갈 때도 번잡했다.
다시 수술실이 조용해졌다.
누구 하나 이 상황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아직 응급 상황이 이어지고 있던 탓이다.
태수가 가동된 씨암에 다가가려 하자 성재경이 막아섰다.
“내가 작동할게.”
그 말과 동시에 씨암으로 다가간 성재경은 실시간으로 상태를 알려 줄 모니터를 태수 방향으로 돌렸다.
유병태도 어느새 어시스던트 자리에 와 있었다.
“준비됐어.”
“저도요.”
이선정 간호사도 태수 옆에 다가섰다.
모두 태수를 향해 재촉하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태수는 짧고 굵게 고개를 끄덕이고 성재경에게 오더를 내렸다.
“씨암 작동.”
“작동 시작.”
“위장으로 이동.”
“이동.”
위이잉.
씨암의 촬영 부위가 서서히 움직이더니 위장을 비추기 시작했다.
그사이 태수는 유병태에게 오더를 내렸다.
“유 선생, 거즈 모두 걷어 내.”
“오케이.”
“여 선생님, 아직도 그 상태 그대로입니까?”
“혈액이 더 추가되어서 그런지 몰라도 맥박이 아주 조금 늦어졌어. 당장 심부전은 오지 않겠지만 큰 변화는 아니야. 혈액 더 짜라고!”
여성현은 이기준과 지금 막 들어온 보건의를 독촉했다.
태수는 모니터로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영상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았다.
물론 손은 유병태와 함께 무조건 집어넣은 거즈를 걷어 내기에 바빴다.
곧 씨암을 통해 위장의 상황이 태수 눈에 들어왔다.
직접 조종하는 성재경도 봤는지 먼저 탄식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러니까 피가 안 멈추지.”
부러진 갈비뼈와 쇠구슬이 아주 교묘하게 얽혀 위장을 찌른 모습이었다.
쇠구슬과 갈비뼈가 만들어 낸 틈이 넓어서 보통 수술 방법으론 절대 지혈이 될 수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근육이완제의 영향으로 근육이 수축하지 못해 상황이 더욱 악화되어 있었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역시 위장 옆을 지나는 동맥의 파열이었다.
찢어진 게 아니라 쇠구슬의 영향으로 완전히 짓이겨져 버렸다.
하행대동맥에서 뻗어 나온 가지 중에 하나였지만 그리 얇지 않은 동맥이라 출혈이 많았다.
결코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환자 상태를 정확히 안다는 건 정말 중요했다. 응급상황을 안다는 건 최소한 수술 방법을 연구할 수 있단 뜻이다.
그동안 그러지 못했던 건 눈으로 확인할 수 없던 탓이었다. 이제 확인을 했으니 당연히 방법이 있다.
태수는 좌우로 빠르게 눈을 굴리며 순서를 떠올렸다.
자신을 포함해 외과 전문의는 총 3명.
이 인원이라면 가능한 수술 방법이다.
제임스에게 배운 방법에 자신의 경험을 더해 급조한 수술법이다. 당장은 이 이상의 수술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태수는 성재경과 유병태에게 차례로 말했다.
“선배, 씨암은 그대로 두시고 제 옆에서 어시스던트 좀 부탁합니다.”
“오케이.”
“유 선생.”
“그래, 뭘 할까?”
유병태가 눈빛을 반짝이자 태수가 덤덤하게 말했다.
“거즈 넣어.”
“……기껏 뺐는데 또 넣으라고?”
“이번에도 최대한 많이.”
태수의 흔들림 없는 목소리에 유병태는 복잡한 미소를 지었다.
“오케이.”
“바로 시작할 테니까 다들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대처해 주십시오.”
태수는 그렇게 말하고 바로 이선정 간호사에게 손을 내밀었다.
“메스, 보비.”
“여기요.”
그걸 받아 든 태수는 이미 갈라진 위장 옆으로 다시 자그마한 구멍을 만들었다.
출혈 부위와 가장 가까운 장소라 그런지 가르자마자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여기서 피가 나온다면 위장으로 흘러들어가는 피의 양은 줄어들 터였다.
태수는 그 생각과 동시에 보비로 피부부터 태우며 지혈에 들어갔다.
그사이 도착한 성재경은 리트렉터를 이용해 좁은 환부를 최대한 넓게 벌렸다.
손가락 하나 들어갈 크기가 4개는 들어갈 정도로 넓어졌다.
“더?”
“아니요. 스톱. 썩션.”
“썩션 오케이.”
콰륵콰륵.
성재경의 손길에 썩션이 흘러내리는 피를 빨아들였다.
태수는 시야가 충분히 확보될 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바로 보비를 안으로 집어넣고 시선을 씨암 모니터로 돌렸다.
출혈 부위를 향해 다가가는 보비의 모습이 그대로 모니터에 비쳐졌다.
전원을 끈 상태에서 움직이는 터라 지금 보비는 그저 쇠막대에 불과했다.
태수는 씨암 모니터에 집중하며 조금씩 손끝을 움직였다.
그러나 씨암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건 한계가 명확했다. 어느 정도까지만 접근한 태수는 더 자세한 위치를 잡지 않고 유병태에게 말했다.
“전원 올릴게.”
“오케이.”
유병태는 바로 인터네셔널 포셉을 빼고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기다란 집게로 수술 도구를 교체했다.
보비가 작동하며 자칫 금속 재질의 수술 도구에 닿으면 감전 우려가 있던 탓이다.
그렇게 높은 전압을 사용하진 않지만 안전은 중요했다.
유병태가 바로 수술 도구를 바꾸는 사이 태수는 보비의 전원을 올렸다.
치직!
환자의 배 속에 들어가 있던 보비에서 곧 전기 자극 소리와 함께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피뿐만 아니라 근육도 같이 자극을 받았는지 살 태우는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들 그 냄새는 신경 쓰지 않았다.
태수는 특히나 더 했다.
씨암으로 향한 시선도 다시 환부로 돌렸다.
성재경이 빨아들이는 출혈의 양이 줄어들 때까지 이대로 계속 전기 자극을 줄 생각이었다.
터무니없는 장소를 태우며 지혈하는 게 아니기에 시선에 흔들림이 없었다.
흘러내리는 피를 빨아들이던 성재경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이렇게 되면 모두 지지는 꼴이 되는 거 아니야?”
“최대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게…… 현명할지도.”
성재경은 곧 납득했다.
정확히 환부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차라리 광범위하게 전기적인 지혈을 진행하는 게 옳았다.
태수는 아예 그렇게 할 작정인 모양이다.
스스로 믿는 한 가지.
수없이 단련된 생생한 감각을 굳게 신뢰했다.
태수의 움직임에 따라 하얀 연기도 방향을 조금씩 바뀌며 허공으로 사라졌다. 그러는 사이 성재경이 먼저 반응했다.
“출혈이 줄어드는 거 같은데.”
“맥박도 조금 느려졌어.”
“거즈에 흡수되는 피의 양도 줄어드는 거 같습니다.”
여성현과 유병태가 이어서 변화하는 상황을 이야기했다.
마지막으로 이기준이 한마디 했다.
“피는 계속 들어가는데, 약간 저항이 생겼어.”
저항이 있다는 건 체내 혈액 보유량이 많아지고 있단 뜻이다.
모두의 의견이 일치했다.
그러나 태수는 바로 반응하지 않았다.
치직, 치직.
좀 더 신중한 얼굴로 보비를 놀렸다.
힐끔거리며 씨암 모니터로 보비가 움직이는 방향을 확인하기도 했다.
씨암이 이동식 엑스레이라도 혈관까지 일일이 표시해 줄 만큼 자세한 화면을 보여 주진 않았다.
보비를 움직이는 손끝 감각에 반은 씨암 모니터를 참고하고, 나머지 반은 순전히 태수의 감각이었다.
그렇게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였다.
태수는 여전히 보비를 움직이며 지혈을 이어 갔다.
수많은 임상 경험과 감각.
믿을 건 그뿐이다.
그때 여성현의 밝아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혈압 잡혔어!”
“아자!”
다들 기뻐하는 사이 태수가 한마디 했다.
“아직입니다.”
“…….”
그 말에 펄쩍 뛰려던 의사들은 얼른 냉정을 되찾았다.
태수의 말이 옳았다.
이제 혈압이 잡혔을 뿐, 정말 중요한 혈관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직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았다.
분위기를 다시 안정시킨 후에야 태수는 환부에서 보비를 꺼냈다.
이렇게 출혈이 줄었다는 건 혈관 일부가 지혈되었다는 거다.
씨암으로 위치를 잡고 손끝 감각을 끌어올린 눈물 나는 결과였다.
‘고맙다.’
스스로에게 감사했다.
그토록 힘들었던 과거의 응급 상황이 지금은 힘이 됐다.
이젠 확실하게 눈으로 확인하고 지혈을 마무리 지어야 했다.
태수는 곧 이선정 간호사에게 부탁했다.
“디버 걸고 반대로 당겨 주세요.”
“네. 끙!”
이선정 간호사는 널찍한 리트렉터를 환부에 걸고 힘껏 당겼다.
손가락 4개 정도의 구멍이 주먹 하나 정도 들어갈 정도로 넓게 벌어졌다.
근육이 이완되어 있고 살에 탄성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지, 무턱대고 벌렸다면 환부가 찢어질 정도로 최대한 벌려 놓은 상태였다.
태수는 그 속으로 끝이 긴 수술 도구를 집어넣었다. 수술 도구들 틈으로 언뜻언뜻 내부 모습이 엿보였다.
태수는 그 자그마한 틈으로 시선을 최대한 집중해 보비를 움직여 간단하게 지혈해 놓은 혈관을 찾아 움직였다.
“여긴 아니고, 조금만 더.”
태수는 차분하고 신중하게 혈관을 찾아갔다.
성재경이 계속 썩션으로 출혈을 빨아들이고 있는 상황이라 다행히도 혈관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태수가 끝이 야무지게 맞물리는 지혈겸자로 혈관을 아예 집어 버렸다.
수술대에서 시선을 돌린 그는 여성현을 바라봤다.
눈치로 직감한 여성현은 손부터 들었다.
“잠시 대기.”
여성현이 뒤돌아 ECG(심전도 모니터) 및 인공호흡기, 기타 여러 가지 기계들을 공을 들여 살폈다.
절대 서두르지 않았다.
단편적인 모습만으로 결과를 알려 주면 태수의 수술에 혼선이 온단 걸 알고 있던 탓이다.
여성현이 뒤돌아 있는 시간이 너무도 길게 느껴졌다.
10초…… 20초…….
그리고 1분, 2분.
애간장이 녹아 없어질 만큼 초조한 시간이 지나갔다.
그사이 ECG(심전도 모니터)의 날카로운 소리는 사라졌다.
하지만 누구도 여성현을 재촉하지 않았다.
전신관리를 담당하는 그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져야만 안심할 수 있던 탓이다.
이젠 1초가 지나가는 것도 억겁같이 느껴질 만큼 긴장될 무렵이었다.
목석처럼 꿈쩍도 하지 않던 여성현이 천천히 몸을 돌려 모든 의사들을 바라봤다.
유병태가 심각한 여성현의 표정을 보고 빠르게 물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어떻게요.”
“…….”
“ECG(심전도 모니터) 소리는 줄었잖아요. 그랬는데도…… 뭐가 이상한 겁니까? 아, 거, 답답하게! 말 좀 해 주세요!”
유병태가 적극적인 성격답게 거침없는 목소리로 물어 왔다.
그때였다.
굳어 있던 여성현의 양쪽 입꼬리가 서서히 벌어졌다.
“혈압 돌아왔어. 맥박은 심장 수술 후라서 그런지 아직 불안정하지만 말이야.”
“그럼…….”
“굿이라고, 굿!”
척.
엄지를 힘차게 내민 여성현이 환하게 웃는 순간이었다.
“후아아아.”
“젠장.”
“아자!”
한숨을 쉬는 의사.
거친 목소리를 내는 의사.
환호성을 치는 의사까지.
모두 제각각의 감정으로 기쁨을 표현했다.
수술은 아직 초반이었지만 큰 고비를 먼저 넘겼다는 사실에 태수도 살짝 긴장이 풀어지는 것 같았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이렇게 간 졸여 보는 건 또 얼마만이야. 그보다 이분 간은 괜찮으신 겁니까?”
유병태가 아차 한 얼굴로 묻자 여성현이 고개를 저었다.
“나도 모르지.”
“그렇죠. 아직 개복은 안 했으니까 누구도 모르죠. 그래도 당장은 괜찮으니까, 그러니까 됐습니다.”
유병태는 들뜬 마음을 억지로 누르고 미소만 그려 보였다.
그때 태수가 여성현에게 물었다.
“우리 딱 5분만 쉬죠. 가능하겠습니까?”
“물론. 그리고 차라리 쉬려면 지금 쉬는 게 낫지. 좀 더 회복세를 지켜보고 수술 이어 가는 게 나으니까.”
“그럼 심장하고 폐가 마르지 않게 식염수 조금 부어 주시고, 다들 잠깐 쉬세요.”
태수는 조금 기운 빠진 목소리로 수술대에서 물러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