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791
00794 794화
태수의 오더대로 이선정 간호사와 구연정 대위는 식염수로 개흉 부위를 촉촉하게 적셨다.
다른 보건의들은 조금 긴장이 풀린 얼굴로 수술대에서 멀어졌다.
“에그그.”
옆에 다가온 유병태가 앓는 소리를 냈다.
그러자 성재경이 한마디 했다.
“최 선생도 가만히 있는데 앓는 소리는.”
“저는 정상 범위입니다. 이 녀석이 이상한 거라고요.”
유병태가 삐쭉거리자 태수가 말했다.
“나도 힘들어. 목도 마르고.”
“그래. 우리 시원하게 물이나 한 잔씩 하자.”
유병태는 얼른 몸을 움직였다.
아직 수술 중이라 어디에 몸을 기댈 순 없었다. 하지만 날카롭던 신경을 무디게 하는 것만으로도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았다.
이내 멸균 종이컵에 물을 따라온 유병태가 각자에게 내밀었다.
“한 잔씩 받으시고, 이젠 수술이 안전하게 마무리되길.”
잔을 눈높이까지 올려 보인 유병태가 단숨에 물을 들이켰다.
태수와 성재경도 똑같은 행동을 하고는 물을 한 번에 털어 넣었다.
꿀꺽.
“크, 이거야!”
시원하고 청량한 느낌.
타들어 가던 목이 촉촉하게 변하니 더욱 힘이 나는 것 같았다.
약속된 쉬는 시간이 끝날 무렵이었다.
다행히 그사이 환자는 별문제 없었다.
지속적으로 확인하는 여성현의 표정에도 안도감이 떠오를 정도였다
그걸 확인한 태수는 다시 수술을 이어 가기 전에 의료진들을 정리했다.
“우선 유 선생은 나가서 쉬고 있어.”
“내가 있어야…….”
“흉부 수술이야.”
태수가 딱 잘라 말하자 유병태가 입맛을 다셨다.
“내가 그쪽은 좀 젬병이긴 하지.”
“이따가 부를 거니까 실망하지 말고.”
“부르지 마. 또 피 말리기 싫어.”
말은 그렇게 하지만 눈빛은 불러 달라는 듯이 뜨거웠다.
고개를 끄덕인 태수는 이어서 성재경에게 말했다.
“선배는 씨암을 담당해 주시겠습니까?”
“계속?”
“네. 씨암으로 보면서 진행하는 게 속도가 더 빠를 겁니다.”
“그러려고 애초부터 찾은 거였는데, 늦게 들어와서 이 사단이 난 거지. 좌우간 난 오케이야.”
성재경이 허락하자 태수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
다음으로 태수는 시선을 돌려 IV를 담당하고 있는 보건의에게 말했다.
“선배도 쉬셔도 될 거 같습니다.”
“들어와서 이거 짠 거밖에 없는 거 같은데.”
“또 필요하면 날아 들어오셔야죠.”
“그거야 얼마든지. 여기 IV는 일단 막아 놓을게.”
보건의는 자신이 추가로 연결한 수혈팩에 연결된 톱니바퀴를 돌려 혈액이 들어가는 걸 차단했다.
이어서 유병태와 보건의가 수술실 밖으로 향했다.
성재경도 납복을 착용하고 씨암을 다시 가동할 준비를 이어 갔다.
그때 태수의 시선이 이기준에게로 옮겨졌다.
이기준이 먼저 말했다.
“난 충분히 계속 이어 갈 수 있어.”
“아니야. 나가서 쉬어.”
“…….”
“나가는 길에 조현민 선배 들어와 달라고 하고.”
조현민은 흉부외과 3년 차 보건의였다.
태수의 말은 곧 어시스던트를 바꾸겠다는 이야기였다.
당연히 이기준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이유는?”
“정말 몰라?”
“엄연히 내 분야…….”
“내 수술에서는 통하지 않는 핑계야.”
태수는 딱 잘라 이기준의 변명을 막아 버렸다.
이렇게 되면 이기준은 꼼짝없이 수술실 밖으로 나가야 했다.
체념한 건지, 아니면 포기가 빠른 건지 이기준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수술대를 돌아 태수를 지나쳐 가며 나지막이 물었다.
“개인적인 감정은?”
“없어. 지금은 환자가 최우선이야.”
“거기까지만 듣지. 좌우간 수술 잘 마무리 지어.”
“…….”
태수가 가만히 있자 이기준은 되려 쿨하게 말했다.
“그렇게 볼 거 없어. 멀리서 보면 수술실에서 나름 최선을 다하고 물러나는 모습일 테니까. 실제로 흉부 수술할 때는 상당히 도왔고.”
“그건 인정.”
“그럼 된 거잖아.”
“환자에 대해서는 걱정되지 않아?”
태수의 물음에 이기준은 빙긋 미소를 지었다.
“네가 있는데 무슨 걱정을 해. 비꼬는 거 아니야. 그 상황도 이겨 낸 네가 남은 수술을 망칠 리가 없단 거지.”
“…….”
“나도 수술 잘되길 빌어. 그 마음으로 밖에서 응원하고 있지.”
이기준은 그 말을 끝으로 태수를 지나쳐 갔다.
태수는 이기준의 꺼먼 속을 애써 이해하고 싶진 않았다.
다만 한가지, 흉부를 수술할 때 그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는 건 인정했다.
그리고 흉부와 복부의 경계를 명확하게 나누고, 감정에 앞서 뛰어들지 않은 건 차라리 혼선을 줄였다.
차가울 정도로 냉정한 모습이 나쁘다는 건 아니었다.
다만, 예전 응급 상황에서 죽이 척척 맞았던 그 순간이 기억나자 마음이 썩 편하지 않았다.
이기준이 수술실을 나간 데 대해서는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곧 이기준의 대타로 조현민이 들어왔다. 조현민은 날카로운 인상에 차분하고 냉정한 성격이었다.
그런 단점과 다르게 흉부외과 대표로 포용력이 좋았다.
평소 생활하는 모습을 많이 봤고, 여러 수술 영상을 통해 수술실에서의 모습도 알고 있기에 요청한 터였다.
그 냉정함과 포용력을 태수는 기대하며 요청했다.
그런 기대에 걸맞게 조현민은 차분하게 태수 앞으로 다가왔다.
“날 요청할 줄은 몰랐는데?”
“잘 부탁드립니다.”
“내가 부탁해야지. 이제부터 할 일은?”
수술 순서에 대해 묻자 태수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흉부 곳곳에 박힌 쇠구슬을 죄다 빼내는 겁니다.”
“예상대로네. 그런데 이 선생은 왜 내보낸 거야?”
“지쳐서 계속 부려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태수의 말에 조현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수술 대기실에 들어오는 얼굴이 많이 지쳐 보이더니. 그보다 최 선생은 안 지쳐?”
“아직 괜찮습니다.”
“그래. 수술도 체력이 있어야 해 먹는 거니까. 그래도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수술 대기실에 대기하는 의사만 한 트럭이니까.”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시작하실까요?”
태수가 묻자 조현민은 대답 대신 납복을 들고 어시스던트 자리로 향했다.
태수도 그제야 납복을 착용하고 집도의 자리에 서서 성재경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성재경은 손으로 오케이 사인을 보였다.
이선정 간호사도 어느새 납복을 입고 옆에 섰다.
“저도 준비됐어요.”
“여 선생님.”
태수가 부르자 뒤돌아선 여성현이 한 손만 머리 위로 들어 크게 원을 만들며 말했다.
“이쪽도 오케이.”
“좋습니다. 그럼 수술 이어서 진행하겠습니다.”
태수의 선언에 수술실 내의 모든 의료진들이 다시 한 번 인사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도요. 씨암 준비됐습니까?”
“언제든지!”
“오른쪽 폐부터 시작하겠습니다.”
태수의 말이 끝나자 성재경이 씨암을 조작했다.
지이잉.
씨암의 촬영 부위가 환자의 오른쪽 폐 위쪽에 위치하자 그 속이 모니터에 떠올랐다.
씨암은 어느새 어시스던트 뒤쪽으로 옮겨진 상태였다.
수술하면서 태수가 힐끔 눈만 돌려도 모니터가 훤히 보일 정도로 위치도 절묘했다.
성재경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 태수는 이선정 간호사에게 손을 내밀었다.
“믹스터, 보비. 이 간호사님은 썩션 준비해 주시고요.”
“그럼요. 믹스터, 보비, 여기 있어요.”
그리고 이선정 간호사는 종이 고깔을 뒤집어 고정시킨 썩션을 들어 올렸다. 쇠구슬을 빨아들이기 위한 장치다.
어시스던트인 조현민은 리트렉터와 썩션을 들었다. 조현민이 든 썩션은 출혈을 흡입하는 용도였다.
모두가 준비된 걸 확인한 태수는 씨암 모니터를 힐끔거리며 손을 움직였다.
“여기.”
“빨아들일게요.”
“출혈 흡입할게.”
태수가 위치를 지정하자 이선정 간호사와 조현민이 차례로 움직였다.
쇠구슬에 꺼멓게 변한 조직을 제거하고 마무리하는 건 태수의 몫이었다.
“모두 긁어냈고, 이제 지혈합니다……. 지혈 끝. 옆으로 이동.”
태수가 말한 순간이었다.
성재경이 씨암으로 먼저 위치를 잡고, 태수는 쇠구슬이 어떻게 박혀 있는지부터 확인하고 그에 따라 적절한 오더를 내렸다.
그러면 이선정 간호사와 조현민이 차례로 움직였다.
그사이 여성현과 보조로 들어온 보건의는 환자의 바이탈을 확인하며 최적의 컨디션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편안하게 단숨에 쇠구슬이 제거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순간도 종종 있었다.
태수의 오더로 이선정 간호사가 쇠구슬을 폐에서 뽑아낸 순간이다.
삑삑!
ECG(심전도 모니터)의 소리가 급격히 변화했다.
“혈압 떨어져! 피!”
“갑니다!”
마취의들이 바삐 움직이는 사이, 수술하는 태수와 조현민도 정신이 없었다.
“갑자기 출혈? 왜?”
“폐동맥의 일부를 상처 내고 압박하고 있던 거 같습니다.”
“진짜 가지가지 하네. 피는 계속 뽑아낼 테니까 출혈점부터 잡아.”
조현민이 이야기하는 사이 이미 태수는 출혈점을 찾고 있었다.
씨암으로는 쇠구슬의 위치만 파악할 뿐, 그 이상을 바라긴 힘들었다.
이런 변수는 온전히 태수가 감내해야 했다.
그러나 태수의 얼굴에 당혹감은 떠오르지 않았다.
이 정도 변수?
정말 처절할 정도로 경험했다.
카슈미르를 떠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응급 상황에서의 순발력은 아직 건재했다.
태수의 손이 빠르게 움직이자 곧 ECG(심전도 모니터)의 날카로운 기계음이 줄어들었다.
“다시 안정.”
“피 적당히 추가하겠습니다.”
“후우. 이거 피 말리게 혈압이 계속 왔다 갔다 하네.”
여성현은 긴장했다가 풀어졌다를 반복하자 지치는 모양이었다.
태수는 수술을 이어 가며 여성현에게 말했다.
“청심환이라도 하나 드시고 오시죠.”
“나 말고 환자부터. 진짜 마음 같아서는 포도당에 신경안정제라도 놔주고 싶어. 계속 이렇게 혈압이 들쭉날쭉하니까 지칠 거 아니냐고.”
“신경안정제보다는 청심환이 효과가 좋을 겁니다.”
“진짜 나도 하나 먹고, 환자도 하나 먹일까. 잠깐 깨웠다가 먹이고 다시 재우면 되잖아.”
여성현의 말은 순도 백퍼센트의 농담이다.
절대 수술 중에 그런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
여성현도 반복되는 긴장과 이완에 정말 지친 탓인지 실없는 농담이 절로 나왔다.
대화를 듣고 있던 조현민은 태수를 대단하단 시선으로 바라봤다.
이런 순간에도 여유를 부릴 수 있다. 그게 쉽지 않다는 건 어시스던트하고 있는 자신이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조현민도 순간순간 집중력이 흐트러질 정도인데, 태수는 그런 기색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지독한 놈.’
조현민이 내심 혀를 내둘렀다.
수술 대기실에서는 조현민과 같은 시선들이 모니터에 집중되어 있었다.
“응급 상황 끝나고 여섯 번째지?”
“이런 급격한 변화면 ECG(심전도 모니터)가 먼저 고장 나는 거 아니야?”
“기계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지. 저 속에서 수술하는 쟤들이 대단하다.”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켜보는 자신들도 손에 땀이 흥건한데 수술하는 의사들은 오죽할까.
그런 부담감을 이겨 내고 수술을 진행하는 모든 의료진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그건 의술에 자세한 지식이 없는 김성국 기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군병원에 출입하지만 의료 전문 기자가 아니라 군 전문 기자다.
사건 사고를 조사하기 편한 곳이 군병원이라 자주 들락거렸던 것뿐이다.
주워들은 건 풍월뿐, 의술은 아니었다.
그런 그의 눈에도 이 수술은 대단하게 느껴졌다.
김성국 기자가 옆에 앉은 공우혁에게 나지막이 물었다.
“이 정도면 진짜 대단한 거죠?”
“말도 못하죠.”
“그런데 수술실에 들어가면 안 지칩니까? 벌써 몇 시간이나 지났는데, 초기 멤버들이 아직도 생생한 거 같아서요.”
김성국 기자의 질문에 공우혁이 힐끔 옆으로 눈짓했다.
수술 대기실 한쪽에는 졸고 있는 유병태와 가만히 휴식을 취하는 이기준이 자리하고 있었다.
김성국 기자가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공우혁이 말했다.
“저게 정상입니다.”
“그럼 최 선생이나 다른 분들은요?”
“미친 거죠.”
“네?”
김성국 기자가 깜짝 놀란 얼굴로 바라봤지만 공우혁은 덤덤하게 이어서 말했다.
“미쳐야 의사 합니다. 특히나 수술하는 놈들은 더욱 미쳐야 합니다. 안 그러면 절대 견디지 못할 짓입니다.”
“…….”
“지금 뻗어 있는 쟤들도 지금 당장 수술실에 들어가라면 벌떡 일어날 겁니다. 자신의 몸은 나중입니다. 일단 환자부터 살린 후에 자기를 돌보는 게 의사니까요.”
“여기 계신 분들은 제가 알고 있는 의사들과 조금 다른 거 같은데요.”
김성국 기자의 말에 공우혁은 고개를 저었다.
“절대 다르지 않습니다. 그 어떤 의사도, 그야말로 인성이 파탄난 인간이 아니면 환자 생명을 두고 장난치진 않습니다. 다만 생명이 위급에 처한 상황이 아닐 때는 각자 개성이 표출되긴 하겠죠.”
“그런가요?”
“저 모습을 보고도 제 말이 의심되십니까?”
공우혁은 수술이 진행 중인 모니터를 다시 가리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