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795
00798 798화
시간이 흐르고 흐르는 사이 복부 수술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중간부터 속도를 올렸다고 해도 정말 긴 수술이었다.
그사이 성과는 엄청났다.
우선 췌장과 비장의 문제를 해결했다. 그리고 소장과 대장을 부분 절제, 절개 및 문합하는 수술까지 진행했다.
그 중간중간 쇠구슬을 꼼꼼하게 빼내는 일도 잊지 않았다. 그런 엄청난 수술을 이어 가는 의료진이 멀쩡할 리는 없었다.
흥이 올랐던 태수도 집중력의 한계는 분명히 존재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유병태와 호흡을 맞춘다는 생각에 힘든 줄도 몰랐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지금까지 무리한 게 한 번에 몰려와서 그런지 체력적인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마스크 속 입술은 정말 엉망이었다.
힘들 때마다 바짝 마른 입술을 깨물며 온전한 정신을 유지한 탓이다. 얼마나 마른 입술이었으면 곳곳이 갈라져 피가 나오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온 피의 비릿한 느낌.
그건 환자가 온몸으로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태수가 지금까지 수술을 이어 갈 수 있는 건 그 비릿한 피 맛으로 정신을 일깨운 게 컸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아니, 수술할 때는 그보다 더한 것도 해야 한다.
시작부터 끝까지 날카로운 정신을 단 한 번도 무뎌지게 할 수 없던 탓이다.
몸은 지쳐 갈지라도 집중력은 유지해야 한다.
그런 이유로 태수의 양쪽 발등 또한 온전하지 않았다. 얼마나 스스로 밟았는지 발등이 퉁퉁 부어 찌릿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 속사정과 달리 눈빛은 여전히 또랑또랑했고, 흐트러짐을 보이지 않았다.
태수 상태만 안 좋은 게 아니었다.
이선정 간호사의 상태는 특히나 심했다. 가녀린 몸에 체력도 남들보다 월등하게 뛰어나지 않다.
그럼에도 수술이 오래 진행되는 동안 한 번도 태수 곁을 떠난 적이 없었다.
잠깐의 쉬는 시간으로 보충한 체력이 지금까지 남아 있을 리도 없었다.
그런 그녀가 버틸 수 있는 건 딱 하나, 정신력 때문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태수보다 더욱 정신력이 강한 이선정 간호사였기에 지금까지 쓰러지지 않았다.
그 외의 의료진도 무사한 사람이 없었다.
태수의 속도에 맞춰 스스로를 한계까지 몰아붙인 유병태의 얼굴은 반쪽이 되어 있었다. 보조하는 최소현 중위 또한 수술 도구를 건네는 손끝이 가느다랗게 떨려 왔다.
여성현과 마취팀도 백짓장처럼 창백하다 못해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성재경도 태수와 유병태를 번갈아 도우며 체력을 소모해 상태가 좋지 않았다.
참여한 의료진 모두 한계가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런데도 그들은 누구 하나 흐트러짐 없이 수술을 이어 가고 있었다.
대신 말수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
“…….”
태수와 유병태는 서로 대화를 나눌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여성현도 의욕을 불어넣기 위한 잔소리를 종종 건넸지만 지금은 침묵하고 있었다.
다만 필요한 오더만 말했다.
“수혈은 좀 더 줄이고, 비타민 좀 더 추가하자고.”
“네.”
대답하는 목소리도 기운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누구 하나 손을 멈추진 않았다.
그런 시간이 길어질 무렵 수술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탁.
쇠구슬을 밧드(철제 그릇)에 옮겨 놓은 태수가 힐끔 쳐다봤다.
흉부에서 제거한 쇠구슬까지 합쳐 대략 50여 개다.
부피로 보면 절대 한 방을 맞은 게 아니었다.
대략 두 발 정도.
이걸로만 봐도 격발한 초보 사냥꾼은 혼자가 아닌 것 같았다.
말도 안 되게 많은 총알이 몸에 박혔지만, 산탄총의 유효사거리가 짧아서 다행이었다.
태수는 직감했다.
분명히 일반 산탄총알은 아니다.
뭔가 개조한 것이 분명한 듯 보였다.
그건 그들 사정이다.
태수 입장에서는 수술만 중요할 뿐이다.
유효사거리가 조금만 더 길었어도 살아 있는 상태로 군병원에 도착하지 못했을 거란 걸 수술을 하면 할수록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총기 제한 국가라 다행이지.’
이런 일이 비일비재로 벌어지던 미국이나 분쟁 지역에 비하면 한국은 정말 천국이었다.
그사이 다시 씨암을 움직이던 성재경이 태수에게 말했다.
“복부는 모두 제거한 거 같은데.”
“제가 살펴봐도 없는 거 같습니다.”
유병태의 대답 후에는 여성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젠 혈압, 맥박 모두 안정적이야. 물론 군데군데서 출혈이 조금씩 있긴 하지만 그건 자연 치유 할 거고.”
“다른 수치는요?”
“소변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고, 체온은 올리는 중이야. 수술실 온도가 높은 편이라 저체온증은 없는 거 같아.”
“다행입니다.”
“이젠 우리가 죽을 거 같다는 게 문제라고.”
여성현이 앓는 소리를 냈다.
정말 지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투정이기에 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마무리해야죠. 정형외과하고 신경외과 호출해 주십시오.”
“아, 이제야 그 말이 들려오다니. 마취의도 무조건 바꿀 거야.”
“편하신 대로요.”
“자자, 빨리 전화부터 해.”
여성현이 재촉하자 이미 도착해 있던 성재경이 전화기를 들고 있었다.
“이쪽은 거의 마무리됐어. 정형하고 신경 같이 들어와도 될 거 같아……. 10분? 알았어.”
“마취의도.”
빽 소리치는 여성현 말에 성재경이 한마디 더했다.
“마취의도 교체야.”
통화 내용은 모두 들었기에 태수는 유병태에게 말했다.
“마지막까지 힘내자.”
“당연하지. 여기까지 와서 퍼질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고.”
유병태는 지친 얼굴에 억지로 눈웃음을 그려 보였다.
어떤 상황이든지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그 시선이 태수도 좋았다.
“그럼 발포어부터 제거하자.”
“자자, 마무리 들어갑니다. 모두 힘냅시다!”
“아자!”
마지막이라는 말이 반가웠는지 다들 없는 힘도 쥐어짜 손을 움직였다.
발포어를 제거하고 봉합사로 피부 봉합까지 마무리 지었다.
쇠구슬로 생겨난 구멍에서 자잘한 출혈과 진물이 흘러나왔다. 흉부와 마찬가지로 소독만 해 줄 뿐 구멍을 메울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게 마무리가 되자 태수는 수술대에서 손을 뗐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 이건 수고 정도가 아니지.”
“에구구.”
다들 앓는 소리가 먼저였다.
수술 성공의 기쁨은 아직 내보이지 않았다. 자신들만 수술이 끝났다고 기뻐하는 건 경솔한 행동이었다.
남은 수술도 무사히 마무리가 되어야 정말 수술이 끝난 것이다.
그래도 이제 환자의 목숨을 위협하는 문제는 모두 사라졌다.
그에 대한 기쁨은 의료진들이 서로 부드러운 눈빛을 교환하는 걸로 대신했다.
태수와 유병태를 포함한 의료진들은 다른 수술팀을 넋 놓고 기다리지 않았다.
손, 발 등.
수술하지 않은 부분들을 집중적으로 살폈다.
다음 수술팀이 좀 더 원활하게 수술할 수 있도록 환자 상태에 대해 알아 두는 게 당연했다.
특히 태수 눈빛이 애잔했다.
‘잘 버티셨습니다.’
사진을 손에 움켜쥔 생명력에 대한 경의도 함께였다.
그때였다.
그르릉.
수술실 문이 열리고 교대할 보건의들과 간호장교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이제야 우리 차례야?”
“여 선생, 교대하러 왔어.”
“자자, 지친 분들은 얼른 나가시고, 남은 수술은 아주 신속하게 끝내 버리자고.”
다들 밝은 목소리로 들어왔다.
지쳐 있을 기존 수술팀에 대한 배려였다.
그사이 태수의 옆으로 정형외과 3년 차 보건의가 다가왔다.
“최 선생, 괜찮아?”
“아니요, 절대 안 괜찮습니다.”
“괜찮은 게 이상한 일이지. 그보다 수고했어.”
“마무리 잘 부탁합니다. 이번에는 진짜 고생한 거 같습니다.”
태수는 자기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평소라면 아니라고 말했을지도 모르지만 이번 수술은 정말 고생했다.
그걸 알고 있는지 상대가 격려의 눈빛을 보냈다.
“뒤는 우리에게 맡기고 어서 가서 쉬어.”
“그럴 겁니다만, 말씀드릴 게 있어서요.”
“아차차, 그렇지. 이야기해 봐.”
“팔다리에 있는 쇠구슬은…….”
태수는 의학 용어까지 들먹이며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 소리에 상대가 깜짝 놀랐다.
“최 선생, 정형외과 수술도 할 줄 알아?”
“총상 중에 가장 많은 게 골절이라서요.”
“혹시 신경외과 수술도 하나?”
외과의 모든 분야를 다룰 수 있냐는 질문이다.
기대 어린 그의 질문에 태수는 고개를 크게 저었다.
“신경외과는 못합니다.”
“말이 안 되잖아. 팔다리를 수술하는데 신경을 다루지 못한다니. 우리도 손발에 있는 신경은 다룬다고.”
“물론 기본적인 건 할 줄 알지만 정말 중요한 뇌는 다뤄 본 적이 없습니다.”
“언제 기회가 되면…….”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지금만 해도 충분히 벅차서요. 그럼 부탁드립니다.”
태수가 나가려 하자 상대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그래, 쉬어. 뒷일은 우리가 절대로 안전하게 마무리 지을 테니까 걱정 말고 쉬라고.”
그의 말이 끝나고 나서야 태수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기다리고 있던 이선정 간호사를 비롯한 수술팀과 함께 수술실을 나갔다.
“이제야 해방이다.”
“그래, 해방이다.”
유병태의 감탄에 태수도 동감했다.
휘청거리는 몸도, 뻑뻑해진 눈도 이제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수술실을 나선 의료진들 앞에 공우혁이 다가섰다.
“다들 진짜 고생했어. 모두 입술이 아주 다 망가졌네. 눈은 다 판다가 됐고 말이야.”
“지금까지 계셨습니까?”
“당연한 말을 왜 해. 수술 끝나면 바로 중환자실로 모시고 가서 킵해야지.”
공우혁의 목소리엔 기다리다 지친 기색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고생한 의료진들에 대한 감탄만이 가득했다.
다들 미소만 띠우며 바라보고 있자 공우혁이 이어서 말했다.
“다들 이 길로 집으로 가.”
“아직 수술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임진호 선생이 그러던데, 이젠 총알 뺄 일도 없으니까 최 선생은 필요 없다고. 흉부외과에서도 심장에 문제 생기면 자신들이 바로 뛰어 들어갈 거라던데.”
그렇게 말하는 공우혁은 아예 수술 대기실로 향하는 길을 막고 선 상태였다.
그때 성재경이 대표로 말을 받았다.
“알았어. 우리는 그럼 이대로 들어갈게.”
“그래. 내일까지 아주 푹 쉬라고.”
“그래야 할 거 같아. 내일 쉬고 모레 보자고.”
성재경은 아예 결정을 내리고는 태수를 바라봤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눈빛으로 압박했다. 이선정 간호사를 비롯해 다들 태수에게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수술실에서나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집도의다.
수술실을 벗어난 지금은 자신들의 말을 따라야 한다는 걸 강하게 어필하는 눈빛이었다.
사방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눈빛에 태수도 두 손을 들었다.
“저도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진짜요?”
“그럼요. 이 몸 상태로 뭘 하겠습니까.”
덜덜.
태수는 가늘게 떨리는 팔을 내보였다.
미소를 짓고 있지만 안면근육도 뻣뻣하게 굳어져 있었다.
태수가 동의하자 다들 얼굴이 밝아졌다.
“그럼 갑니다.”
“가자고!”
다들 얼른 몸을 움직였고, 태수 또한 그들과 함께였다.
혹시나 문제가 생기더라도 대기하는 의사들의 실력으로 충분히 회복시킬 수 있었다.
그걸 알기에 수술실을 떠나는 태수의 발걸음에 미련은 남지 않았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퇴근할 준비를 마친 후였다.
“먼저 갈게. 진짜 죽겠다.”
“나도. 내일, 아니 모레 봐.”
“나도 간다.”
의사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해장국이라도 한 그릇 하면 좋겠지만 그럴 정신도 없던 터였다.
태수는 현관과 가까운 복도 벤치에 앉아 이선정 간호사를 기다렸다.
확실히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씻는 게 느린 모양이었다.
주변에는 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이미 밤이 늦었기에 일찍 잠자리에 드는 군병원에서는 이런 적막함이 당연했다.
턱.
벽에 머리를 기댄 태수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후우.”
떨리는 몸을 조금이라도 가라앉히려 했지만 그리 큰 효과는 보지 못했다.
그때 태수의 옆에 다가와 자연스럽게 앉는 인물이 있었다.
“수고했습니다.”
익숙한 목소리에 돌아보자 김성국 기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