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801
00804 804화
그 차이를 알기에 태수가 놀리듯이 물었다.
“난리 났겠는데?”
“치프부터 3년 차, 2년 차, 1년 차, 지금 인턴인 본과 동기들까지 모두 뭐라고 했어요.”
“그래서?”
“죄송하다고 했죠. 그런데 그 교수님이 다음 수술에 절 부르셨어요.”
반전이 있자 태수의 눈빛이 반짝였다.
“수술실에 들어가서는?”
“교수님이 수술하시면서 이것저것 물어보셨어요. 여기에 사용되는 수술 도구가 뭐냐는 식으로요.”
“충분히 대답은 했을 거고.”
태수는 자신과 수십 번 넘게 수술한 조서영이기에 확신했다.
조서영도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대답하니까 더 물어보시고, 수술 끝나고 교수실로 오라고 하셔서 폐렴으로 휴학했으면서 어떻게 그걸 알고 있냐고 물어보셨어요.”
“그래서?”
“선배님 이야기를 했어요. 그랬더니 교수님이 선배님이랑 친하냐고 물어보시고…….”
조서영의 말에 태수가 얼른 끼어들었다.
“잠깐, 그게 언제 있었던 일인데?”
“저번 주요.”
이해가 됐다.
그때라면 태수에 대한 기사가 넘쳐날 시간이었다.
“그럼 물어볼 만하네.”
“네. 그래서 술직하게 대답했더니, 그때부터 계속 흉부외과로 오라고 하세요. 외과에서도 그렇고요.”
조서영의 이야기를 쭉 들어 본 태수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변했다.
“이거 괜히 나 때문에 네가 고생하는 거 같은데.”
“그건 아닌데, 정신과 교수님들이 왜 정신과에 오려고 하냐고 오히려 물어보세요.”
“그 수술 실력에 왜 정신과냐고?”
태수가 유추해서 묻자 조서영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교수님한테 그래. 뭔 상관이냐고. 내가 꿈을 키우는 건 정신과지, 외과 쪽이 아니라고 말이야.”
“말씀을 드렸는데 별로 크게 신뢰하진 않으시는 거 같아요. 저도 딱히 외과가 싫은 건 아니고요.”
조서영은 그게 고민인 것 같았다.
태수는 그런 조서영을 바라보며 진심으로 조언했다.
“난 원래 목표가 흉부외과 전문의였어.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외과 전문의가 되었지만.”
“전에 들었던 거 같아요.”
“그래도 지금 잘 먹고 잘 살잖아. 가끔 사고도 치면서. 그러니까 누구의 말에 따라가지 말고 네 생각대로 해.”
“정신과 간다고 했는데요.”
“그건 상관없어. 목표가 변하더라도 의사라는 건 변함이 없잖아.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결정만 내리면 되는 거야.”
태수의 진심 어린 조언에 조서영은 우울한 표정이 조금씩 사라졌다.
“고마워요.”
“별말씀을. 이제 내려갈까?”
태수가 일어나려 하자 조서영이 망설이다 얼른 말했다.
“저기, 다른 고민도 있는데요.”
“해 봐.”
태수가 선선하게 나오자 잠시 고민하는 듯싶던 조서영이 방긋 웃었다.
“아뇨. 다음에 할래요.”
“편한 대로 해.”
태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조서영의 마음은 알았지만 아직은 시기상조였다.
나중에 이런 이야기를 한다면 그때 생각해도 늦지않단 마음이었다.
조영규와 조서영은 늦은 밤이 되어서야 집을 나섰다. 대문 앞에까지 나온 태수가 조영규에게 손을 내밀었다.
“만나서 반갑고, 애들하고 잘 놀아 줘서 고맙고.”
“애들이 착하더라. 내 친구 조카라 그런지 몰라도 정말 착한 거 같아.”
“하긴 삼촌을 보면 조카가 정확히 보이긴 하지.”
태수가 능청을 떨자 조영규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언제 봐도 그 넉살은 적응이 안 된다니까.”
“지내다보면 언젠가 다 적응이 돼. 그게 인생이잖아. 조만간 다시 보자.”
“언제 오는데?”
“때가 되면 자기 발로 오겠지.”
섣불리 확답을 할 수 없을 일이기에 태수는 두루뭉술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조영규는 그런 태수를 이해하는 것 같았다.
조영규가 봐도 지금 태수는 바빠도 너무 바쁜 의사중에 한명이었다.
“보고싶으면 나중에 내가 한 번 올라가도 되지.”
“그러면 내가 또 곱게 안 보내겠지.”
태수가 냉큼 대답했다.
이별의 시간은 금방 다가왔다. 태수와 조영규는 굳게 잡은 손을 몇 번이고 흔든 후에야 악수를 멈췄다.
그다음 순서로 태수는 조서영에게 시선을 향했다.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게 옳은 거야. 누구도 네 인생을 대신 살아 주진 않으니까.”
“고마워요.”
“늦었다. 오랜만에 쉬는 날인데 가서 푹 쉬어.”
태수는 간단하게 인사를 마쳤다.
그 모습에 조서영의 눈빛에 자그마한 실망이 스쳤다.
태수도 봤지만 그에 대해서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태수 머리에는 다른 마음이 들어갈 여유가 없었다.
소년소녀가장 환자들.
그 하나만해도 머리가 터질 정도로 복잡했다.
이 판국에 연애에 정신팔렸다간 수술에서 실수하기 십상이다.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
조영규와 조서영을 배웅한 후, 태수는 이선정 간호사와 아이들이 앉아 있는 거실로 다가섰다.
TV는 꺼져 있었고, 두런두런 이야기 중이었다.
태수의 귀가 쫑긋거리자 이선정 간호사가 미소를 지우지않은 채 물었다.
“궁금하세요?”
“네, 상당히요.”
태수가 얼른 대답하자 다들 크게 웃었다.
“하하.”
“호호.”
그렇게 웃는 사이 태수는 세 사람에게 바짝 다가가며 물었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계셨습니까?”
“조 선생이 미성이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줬나 봐요.”
“무슨 이야기요?”
“예쁜 애들만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요.”
그 말에 더욱 아리송해진 태수는 주미성을 바라봤다. 시선을 마주친 주미성은 얼른 손을 내저었다.
“그런 이야기 한 적 없어요.”
“그럼?”
“초곡리가 좋다고요.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좋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어서 좋다고 이야기했어요.”
“그중에서 뭐가 제일 좋았어?”
태수가 묻자 주미성은 고민하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바다에 나갔던 거요.”
“저도요!”
주영수도 얼른 끼어들었다.
그러고 보니 여기에 온 후로 아이들이 더욱 밝아진 것 같았다.
이젠 자기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도 어려워하지 않아 더욱 태수를 흡족하게 했다.
그때 주미성이 이어서 말했다.
“배를 타고 나간 건 처음인데, 진짜 신세계였어요.”
“어떤 점이?”
“세상이 진짜 넓구나. 내가 지금까지 보고 듣고 한 건 정말 별게 아니었구나. 뭐, 이런 거요.”
주미성의 말에 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자연을 마주 보면 누구나 숙연해지기 마련이지.”
“네. 그리고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뭔가 마음속이 시원해진 거 같아요.”
“다행이네.”
“그래서…….”
주미성이 말을 얼버무리자 태수가 의아한 얼굴로 바라봤다.
“그래서?”
“이젠 예전 일은 생각하지 않으려고요.”
“…….”
“선생님을 만난 후로는 누구도 절 이상한 눈으로 보지 않았어요. 가끔 사람들이 쳐다보긴 하지만요.”
주미성은 하기 힘든 이야기였는지 바지를 꽉 잡은 채 이야기했다.
태수가 봐도 얼마나 가슴 졸이며 하는 말인줄 대번에 알아챘다.
그때 태수의 손이 무의식적으로 주미성에게로 향했다.
주미성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자의 손길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러나 이젠 다가오는 태수의 손길을 가만히 지켜만 봤다.
이선정 간호사도 그런 변화가 놀랍단 듯 눈이 점점 커졌다.
그사이 태수의 손은 주미성의 머리로 향했다.
슥슥.
가볍게 쓰다듬으며 태수가 말했다.
“어려운 이야기인데 이렇게 시원하게 말해 줘서 고마워.”
“아니에요.”
“이제 우리 바다에서 뱃머리에 같이 앉아 있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서로서로 의지하면서 살자.”
태수의 말에 주미성이 멈칫하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희가 폐를 끼치는 건데요.”
“누가 그런 소리를 해. 난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 없어.”
“…….”
“초곡리 어른들에게 말했듯 내가 삼촌이라면 우리는 가족이잖아.”
그 말과 함께 태수는 양손을 뻗어 주미성과 주영수의 손을 각각 잡았다.
그리고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주미성과 주영수도 어떤 말도 없었다.
그저 태수와 맞잡은 손에 힘이 들어갈 뿐이었다.
그 세 사람을 지켜보는 이선정 간호사의 얼굴에도 보름달이 둥실 떠올랐다.
그때부터 네 사람은 밤이 늦도록 이야기를 나눴다.
이젠 서로에게 어떠한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말 그대로 피만 안 섞인 한 가족이 된 것 같았다.
그제야 시계를 본 태수가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한마디 했다.
“다들 이제 그만 자자.”
“네.”
“내일 늦게 출발할 거니까 아주 푹 쉬어.”
태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주미성과 주영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두 아이 모두 이상했다.
평소 같으면 바로 인사하고 들어갔을 텐데 쭈뼛거리는 모습이 의아했다.
태수는 재촉하지 않고 무슨 말을 할지 차분하게 기다려 줬다.
그러자 두 아이가 서로 눈빛으로 사인을 보내고 태수를 바라봤다.
“안녕히 주무세요, 삼촌.”
“…….”
태수는 생각지도 못한 호칭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삼촌이라니.
설마 이런 말을 들을 줄 몰랐다.
태수가 잠시 대꾸할 말을 잊어버린 채 하염없이 두 아이만 바라봤다.
툭.
이선정 간호사가 눈치빠르게 얼른 등을 밀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태수가 얼떨떨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 그래. 잘 자.”
“네, 삼촌. 내일 봬요. 이모도 안녕히 주무세요.”
꾸벅.
동시에 고개를 숙인 아이들은 부끄러운지 2층으로 쏜살같이 올라갔다.
삼촌이라.
전혀 예상치 못했던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선정 간호사가 멍해진 얼굴이었다.
“저보고 이모래요.”
“전 삼촌이랍니다.”
그리고.
순간 침묵이 흘렀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선이 두 사람 마음에 소리없이 흘렀다. 무언가 생각이 날 듯 한데 머리는 도무지 돌아가지 않았다.
꽤 시간이 지난후에야 태수가 겨우 입을 열었다.
“기분 좋은 날이네요.”
“저도요.”
“초곡리가 풍수지리상 우리에게 좋은 모양입니다.”
“호호.”
이선정 간호사가 태수의 엉뚱한 말에 결국 웃고말았다.
드디어 돌아가는 날 아침이 밝았다.
태수는 아직 이불 속에서 잠든 채였다. 늦잠을 잘 수 있을 만큼 자고 느지막이 출발할 계획이었던 탓에 푹 잠에 빠져들었다.
긴장의 끈을 놓아서 그런지 태수는 햇살이 비추는데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평화로운 시간도 그렇게 오래 가지 않았다.
벌컥.
방문이 급격히 열리더니 이선정 간호사가 태수를 다급하게 흔들어 깨웠다.
“선생님, 선생님!”
“으음.”
이선정 간호사가 소란스레 불렀지만 태수는 신음을 흘리며 슬쩍 몸을 들썩일 뿐이었다. 아직 잠에서 깬 모습이 아니다.
그 모습을 본 이선정 간호사가 눈빛을 굳히며 나지막이 말했다.
“emergency(응급)이에요.”
그 말과 동시에 태수의 눈이 거짓말처럼 번쩍 떠졌다.
이어서 벌떡 일어난 태수가 정신도 제대로 못 차리고 비틀거렸다. 그러면서도 할 말은 다 했다.
“흐으음. 환자 상태는…… 어떻습니까?”
“비틀거리고 있어요.”
“그럼 균형 감각하고 지각 능력부터……. 그거 맞죠? 좌우간 테스트하라고 하세요.”
“제 생각에는 물부터 한 컵 마시게 하는 게 좋을 거 같은데요.”
이선정 간호사가 말하자 태수가 거의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물보다는 포도당을 IV로.”
“아침부터 선생님을 찌를 수는 없잖아요.”
“저, 저요?”
“일단 물부터 드세요.”
이선정 간호사는 옆에 놓아둔 물 컵부터 건넸다.
벌컥.
일단 물을 마신 태수는 그제야 서서히 정신이 드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응급 상황인데 가장 멀리 있는 저에게 연락이 온 겁니까?”
“일단 이거부터 확인해 보세요.”
이선정 간호사는 여러 말 하지 않고 휴대폰을 건넸다.
아직 흐리멍덩한 눈빛으로 액정을 확인하니 시야가 뿌옜다. 몇 번 눈을 깜빡이며 뻑뻑한 눈을 부드럽게 하자 그제야 화면이 똑바로 보였다.
휴대폰 액정에는 인터넷 기사가 떠올라 있었다. 태수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제목으로 향했다.
-난치병 환자 수술에 군병원 공중보건의들이 발 벗고 나서
태수가 뚱딴지같은 기사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음, 이런 이야기는 컴퍼런스에서 한번도 없었던 거 같은데요.”
“제목 말고 그 밑의 기사를 보셔야죠.”
이선정 간호사의 말에 따라 태수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