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802
00805 805화
-군병원에서 불우 아동을 위한 자선 수술을 진행하는 공중보건의들이 또 한 번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외과 전문의 최태수를 중심으로 난치병으로 고생하는 아이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전해 주고 싶다는 의견으로 이번에 큰 결단을 내렸다. 세간에선 이번 난치병 치료를 주도하는 최태수, 그리고 공중보건의들에 대한 칭찬의 목소리가 또 한 번 높아지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마지막 기사 내용까지 확인한 태수의 눈이 커졌다.
“이 간호사님, 저 말고 군병원 공중보건의 중에 최태수란 의사가 또 있습니까?”
“제 눈앞에 계시는 분 말고는 모르겠는데요.”
“그러면 이 기사에 실린 최태수는 누굽니까?”
“제 눈앞에 계시는 분인 거 같은데요.”
이선정 간호사가 담담하게 대답하자 태수는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하하. 제가 언제 이런 말을 했습니까?”
“저도 궁금해서 올라온 거예요. 만약에 이런 일을 꾸미고 계셨으면 저에게 먼저 말씀을 해 주셨을 테니까요.”
“전 금시초문입니다.”
태수와 이선정 간호사는 어이없는 얼굴로 변했다.
사실 태수의 입장에선 아닌 밤중에 홍두깨였다.
태수는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이어 가지 않고 곧장 휴대폰을 들어 공우혁에게 전화했다. 이런 일에 있어선 고민하기보단 확인하는 편이 더 빨랐다.
공우혁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아, 최 선생, 안 그래도…….”
“핵심만 듣고 싶습니다만.”
“벌써 흥분하지 말고, 일단 병원으로 와.”
공우혁이 애써 차분하게 말했지만 태수 입장은 또 달랐다.
“아직 강원도라 가려면 시간이 좀 걸립니다. 그리고 저도 모르는 일이 세상에 어떻게 알려진 겁니까?”
“우리도, 아니 아무도 몰랐어.”
“이런 기사가 났는데 그 전까지 아무도 몰랐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래서 우리도 백방으로 조사했다고. 역으로 파고 들어가 보니까 진짜 의외의 이름이 나오더라고. 김용철 중령이라고.”
공우혁에게서 그 이름이 들린 순간이 되자 태수의 머리를 강하게 때리는 기억 하나가 있었다.
-선물을 준비했어.
김용철 중령의 목소리와 의미심장한 미소까지 떠올랐다.
사아악.
태수는 척추부터 뒷골까지 소름이 끼쳤다.
속된 말로 솜털까지 곤두서는 느낌이다.
공우혁의 말대로라면 통화로 해결할 일이 아니었다. 태수는 갑자기 마음이 바빠진 느낌이 들자 서둘러 말했다.
“최대한 출발하겠습니다.”
“빨리 와.”
통화를 마친 태수는 이선정 간호사에게 상황을 이야기했다.
“실은…… 이래서 김 중령 작품이랍니다.”
“어떻게요? 헌병대에서 수사받는 사람이, 아무런 권한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이런 기사를 마음대로 낼 수가 있는 건데요?”
“그걸 가서 자세한 내막을 들어 봐야죠.”
“준비할게요. 애들은 일어났으니까 씻고 옷만 입으면 돼요.”
“저도 금방 내려가겠습니다.”
태수의 말이 끝나자 이선정 간호사는 방을 나섰다.
탁.
방문이 닫히고 혼자가 된 태수는 순간 머리가 복잡했다.
난치병 수술.
직감을 떠나 김용철 중령이 꾸민 일이라면?
골치가 지끈거렸다.
이건 일반 수술들과는 성격이 완전히 달랐다. 난치병은 말 그대로 치료 과정이 어렵고 난해한 병들이다.
이걸 치료하겠다고 자신이 호언장담한 꼴이 되었다.
태수가 말하지 않았어도 이미 상황은 그렇게 돌아가고 있었다.
“뭐 이런 개 같은.”
태수는 옷을 갈아입는 내내 자신도 모르게 욕이 흘러나왔다.
문단속을 꼼꼼히 마친 태수와 이선정 간호사, 아이들이 대문 밖에 있는 차에 도착한 순간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물인 이기남 이장이 다가왔다.
“가나?”
“아! 이장님, 안 그래도 인사를 드리러 가려고 했는데요. 사실은…….”
태수가 말하기 전에 이기남 이장이 먼저 이해한단 얼굴로 부드럽게 어깨를 다독여 주며 말했다.
툭툭.
“그런 일이 있었으면 먼저 말을 하지 그랬어.”
“네?”
“모르는 척하기는. 난 그런 사정도 모르고 왜 안 돌아오냐고 떼를 쓴 꼴이 되지 않았느냔 말이야. 사람 참 음흉하기는.”
이기남 이장은 눈썹을 들썩이며 알아채기 힘든 미소를 보였다.
보아하니 이기남 이장도 아침 일찍 일어나 신문기사를 본 모양이다.
아니라고 말하기도 뭐하고 맞는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상황이기에, 태수는 어색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하하. 그, 그러게요.”
“이젠 돌아오라느니 그딴 소리 안 할 테니까 가끔 쉬러 와.”
“그래야죠.”
태수가 난처해하는 사이 이선정 간호사가 대신 나섰다.
“이장님, 저희 지금 올라가 봐야 돼요.”
“그래? 아이고, 내가 큰일 하는 사람들 바짓가랑이 붙잡으면 안 되지. 어여 가.”
“죄송해요. 다른 분들에게 이야기 좀 잘 해 주세요.”
“미안하기는. 여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조심해서 올라가.”
“그럼 갈게요.”
이선정 간호사가 깔끔하게 대화를 마무리해 버렸다.
여기서 지체할 시간조차 아깝다.
이내 모두가 차에 올라 배웅을 위해 서 있는 이기남 이장에게 인사했다.
“갑니다.”
“가라니까.”
“또 올게요.”
“그래그래.”
“할아버지, 안녕히 계세요.”
“오냐. 또 와라.”
인사를 모두 마친 후에야 태수는 차를 움직였다.
이기남 이장을 두고 떠나는 순간 억지로 미소 짓고 있던 태수의 표정이 급격히 변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김용철 중령에 대한 분노가 사그러들지 않았다.
‘뭐 이런 인간이 다 있어.’
아차하면 버럭 소리칠뻔했다.
힐끔 룸미러로 뒤를 보던 태수가 아차 했다.
아이들도 알지못할 싸한 분위기에 물들어 긴장된 얼굴들인 탓이다.
애써 미소를 지은 태수가 아이들에게 일부러 밝게 말했다.
“미안. 즐거운 여행이어야 하는데 마무리가 영 개운하지 않네. 대신에 다음에는 이런 일 없을 거야.”
“저희는 괜찮은데, 삼촌은 괜찮으세요?”
“나도 괜찮아. 배고프지? 휴게소 들러서 맛있는 거 먹고 가자.”
태수는 끝까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건 자신의 일이다.
이 일로 인해 아이들이 불안해하게 만드는 건 큰 잘못이다. 이제야 겨우 상처에서 벗어난 아이들에게 배려가 부족했단 후회도 들었다.
마음은 급했지만 태수는 최대한 여유 있게 분당으로 향했다.
정오가 지난 오후 무렵, 태수는 군병원 위병소에 들어섰다.
오는 길에 숙소에 잠시 들러 이선정 간호사와 아이들을 내려 준 후였다.
위병소 바리케이드가 열리자 그는 쏜살같이 차를 몰아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태수는 회의실에 도착했다.
오는 길에 중간 중간 통화를 해서 그런지 공우혁과 성재경이 초조한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다.
공우혁이 태수를 보고 먼저 말했다.
“이거 갑작스러운 일로 쉬지도 못하고 말이야.”
“또 쉬면 되죠.”
태수가 자리에 앉으며 말하자 공우혁이 기분 나쁜 표정을 억지로 삼켰다.
“진짜 이번 일은…….”
“공 선배, 그 전에 전응섭 환자 상태부터 듣고 싶습니다.”
“엥?”
“궁금합니다.”
태수의 말에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던 공우혁이 억지로 미소를 보였다.
“이 와중에도 수술한 환자부터 챙겨?”
“제가 집도한 수술이었잖습니까.”
“하긴.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전응섭 환자는 오늘 아침에 서울로 이송됐어. 그 후에 이미연도 이송했고.”
공우혁의 말에 태수가 눈을 크게 떴다.
벌써 이송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성급했단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두 사람 모두 이송해도 괜찮을 정도로 빠르게 회복된 겁니까?”
“그러니까 이송했지. 솔직히 전응섭 환자는 조금 무리한 이송이었지만, 가해자들 가족들이 어떻게든 옮겨 달라고 해서 진행했어.”
“그쪽에서 책임을 지겠다는 거네요.”
“원래부터 가족끼리 알던 사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정상참작을 노리는 거 같지만 그쪽 사정이고.”
공우혁은 이송한 사실에만 집중했다.
다른 관계까지는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물론 그건 태수도 마찬가지다.
“그럼 두 사람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 같으니까,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시죠.”
“그래야지.”
“우선 김용철 중령이…….”
“최 선생, 잠깐.”
공우혁이 제지하자 태수가 의아하게 바라봤다.
“왜 그러십니까?”
“군병원장이 이야기 좀 하자던데.”
“이 상황에서요?”
태수의 얼굴이 황당하게 변했지만 공우혁은 묵직한 얼굴로 대답했다.
“이 상황이니까 이야기를 하자는 거 같아. 병원장실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는데, 어떻게 할까?”
“음.”
“그쪽도 상당히 당황한 눈치야.”
“그건 제 알 바 아니고, 일단 만나는 걸로 하시죠.”
태수가 허락한 게 의아했는지 공우혁과 성재경은 놀란 표정으로 변했다.
“만나겠다고?”
“이런 상황에서 안 만나는 건 더 이상할 거 같습니다. 그리고 그쪽에게 따질 건 따지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도 들어 봐야 할 거 같고요.”
“그건 그렇지. 알았어. 일단 전화부터 할게.”
공우혁이 휴대폰을 주머니에서 꺼내며 자리를 피했다.
그러자 성재경이 태수에게 말했다.
“너무 흥분하지 마.”
“아직 흥분하지 않았습니다.”
“표정이 너무 좋지 않아.”
“좋은 게 이상하죠.”
태수의 목소리는 말과 달리 분노를 겨우 참느라 상당히 흔들렸다.
성재경도 이런 상황에서 태수에게 어떤 말을 건네기가 쉽지 않았다. 성재경이 머뭇거릴 때 태수가 물었다.
“지금까지 조사하신 게 있다고 하셨죠?”
“그렇지.”
“병원장 만나기 전에 먼저 알 수 있을까요? 알아야 힘이 되죠.”
태수의 말에 성재경은 책상 위에 있는 서류를 내밀었다.
“안 그래도 보기 편하게 정리해 놓은 게 있어.”
“감사합니다.”
“그런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고.”
“알겠습니다. 확인부터 하겠습니다.”
태수는 양해를 구하고 성재경이 건넨 서류를 확인했다.
우선 김용철 중령의 근황에 대해 적혀 있었다. 헌병대에서 조사가 마무리되어 구금 중이고, 곧 군법회의가 열린다고 한다.
그건 솔직히 태수의 관심사는 아니었다.
이어서 다음 내용으로 넘어가자 어떻게 기사가 났는지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거기까지만 확인한 태수는 우선 성재경과 대화를 이어 갔다.
“직위 해제 되기 전날, 그러니까 제가 미군을 방문하고 있을 때 저지른 일이란 말입니까?”
“그때까지는 전권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중요 서류를 수정하고 직인까지 찍을 수 있었다고 하더라고.”
“그래도 당사자가 헌병대에 끌려갔는데 모든 서류가 취소되는 거 아닙니까?”
“새로 온 중령이 당연히 중지시켰지. 그런데 문제는 이메일로 예약을 걸어서 일시에 전 신문사에 전달되게 해 놨다는 거야.”
성재경의 말에 태수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참 기발하시네요. 그런 머리를 다른 발전을 위해 좀 사용하시지.”
“내 말이.”
“그보다 왜 바로 보내지 않았을까요? 그럼 우리도 대처하기 수월했을 텐데요.”
태수가 예리한 눈빛으로 묻자 성재경이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화낼 텐데.”
“화가 나도 이유는 들어야죠.”
“그러니까…… 남들이 띄워 주는 걸 좀 즐겨 보라고 그랬다던데. 실은 내가 헌병대에 부탁해서 잠깐 통화했는데, 이 말은 꼭 전해 달라고 하더라고.”
“그거 미친 인간 아닙니까?”
태수가 버럭 소리치자 성재경이 맞장구쳤다.
“미친놈은 맞지.”
“죄송합니다. 제가 선배한테 화를 낼 일이 아닌데.”
“그게 중요한 건 아니잖아.”
성재경은 이해했지만 태수는 그렇지 못했다.
“그래도 죄송합니다. 그건 그렇고, 수사에 들어갔다면 이메일도 조사 대상 아닙니까?”
“외국 사이트를 이용한 모양이야. 가입도 그날 해서 아무도 몰랐던 거 같아.”
“진짜 어이가 없네요.”
태수의 심정은 황당 그 자체였다.
그 마음이 이해되는지 성재경이 말했다.
“우리도 역추적하면서 얼마나 황당했는지 몰라.”
“좌우간 김용철 중령이 끝까지 절 물고 늘어진 거네요.”
“그런 셈이지.”
“자신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보다 남을 먼저 탓하는 사람이니까 가능한 일이긴 한데, 이건 정말 터무니없는 일입니다.”
“누가 아니래.”
성재경은 태수의 말을 받아 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더 스스로 갑갑해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