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806
00809 809화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또 한 주가 시작될 월요일이었다.
공중보건의들은 아침부터 정신없이 움직여야 했다. 난치병 어린이 수술에 대한 문제 때문은 아니었다.
오늘이 바로 1차로 선별되어 수술을 받은 아이들이 모두 퇴원하는 날이었다. 그동안 정이 많이 쌓였기에 공중보건의들은 조촐한 파티를 준비하고 있었다.
기쁘면서도 섭섭한 기분.
모든 공중보건의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이었다. 그 마음을 지우기 위해 유난히 말도 많았다.
“음식점 예약 확인했어?”
“주문한 구급상자는 왜 아직도 안 와? 업체에 빨리 전화해 봐.”
“마지막 CBC(혈액검사) 결과부터 확인하고, 내과 계열은 아이들에게 주의사항 이야기해 줘야지.”
사방에서 각자 이야기를 하자 회의실은 정신줄을 놓기 적당한 분위기였다.
아이들에게 전해 줄 필기구 등 선물 포장을 진두지휘하는 건 다름 아닌 이선정 간호사였다. 여자이기에 꼼꼼함은 남자보다 훨씬 강했다.
그걸 노린 공중보건의들이 이선정 간호사에게 밀어붙인 탓이다.
덕분에 이선정 간호사가 정신없이 바빴다.
“유 선생님, 그건 저쪽으로 가야 한다니까요.”
“알겠습니다.”
“유 선생님, 그거 내려놓고 저쪽부터 도와주세요.”
“네.”
“유 선생님.”
“왜 자꾸 저만 불러요!”
반복되는 부름에 유병태가 울컥 짜증을 냈지만, 이선정 간호사는 재미가 들렸는지 계속 오더를 내렸다.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에 선물을 준비하던 분위기가 더욱 활기찼다.
여기에 간호장교들도 힘을 더했다. 평소에는 간호사실을 지켰지만, 오늘은 먼저 다가와 아이들의 선물 준비를 도왔다.
물론 여자들만으로는 힘과 손이 부족하기에 일부 공중보건의들이 합세했다.
태수도 그들과 같이 아이들의 퇴원 준비를 도왔다.
그렇게 다들 준비 사항을 확인하고 선물을 살피는 중이었다.
성재경이 다가와 태수에게 말했다.
“최 선생은 좀 쉬지.”
“유종의 미는 거둬야죠.”
“머릿속이 복잡하지 않아?”
“그 일과 이 일은 엄연히 다른 문제 아닙니까. 그건 확실하게 구분하고 있습니다.”
태수는 어제보다는 한결 표정이 밝았다.
모두가 고생하는데 혼자만 머리 싸맬 수도 없었고, 그럴 이유도 없었다.
우선 아이들을 퇴원시킨 후에 다음 일을 생각해도 늦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는 사이 식당 예약도 확인하고, 아이들에게 줄 선물도 준비가 끝나 갔다.
업체에 주문한 구급상자들도 속속 도착했다.
그렇게 준비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후였다.
아이들을 마지막으로 확인하러 갔던 내과 계열 공중보건의들이 회의실에 들어서며 말했다.
“퇴원할 준비 다 됐어요.”
“그럼 자가용으로 이동하자고.”
“선물 상자 하나씩 들고.”
“자자, 갑시다!”
공중보건의들이 선물 상자를 들고 나서자 태수도 그쪽으로 향했다.
막 회의실을 나선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띠리릭.
발신자를 확인하자 외국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
스미스의 전화란 걸 직감한 태수는 옆에 선 유병태에게 말했다.
“난 전화 좀 받고 가야 할 거 같아.”
“알았어. 천천히 와.”
유병태는 별다른 생각 없이 대꾸하곤 먼저 움직였다.
이선정 간호사가 가만히 서서 바라보자 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가라는 의미이기에 이선정 간호사도 자리를 피했다.
다들 이동하는 사이 태수는 다시 회의실로 들어왔다.
아무도 없는 걸 한 번 더 확인한 후에야 그는 휴대폰을 들었다.
“박사님.”
“거두절미하고 본론부터 이야기하지.”
“네.”
태수는 다소 긴장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기도 했다.
곧 스미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문의 자격증 취득은 가능할 거 같아.”
“아자!”
“한가지만 명심하게. 절대 마냥 좋아하기만 할 일은 아닐 거야.”
스미스의 의미심장한 목소리에 태수가 기쁨을 억누르고 차분하게 물었다.
“조건이 뭡니까?”
“추천에 의한 특별 케이스인 만큼 확실한 실력을 보여 달라는 게 조건이야. 아마도 일반적인 흉부외과 전문의 테스트보다 훨씬 강도가 심할걸세. 그 준비 과정에서 난 어떤 조언도 해 줄 수 없어.”
“음.”
“수술실에 들어가서 참관을 하겠지만 그건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거지,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단 이야기지.”
스미스의 이야기는 거기서 우선 끝이 났다.
태수는 그런 스미스에게 덤덤하지만 당차게 말했다.
“그건 각오했습니다.”
“각오했다라. 그렇게 만만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야. 어떤 환자가 어떤 증세로 닥터 최를 기다릴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수술을 성공시키는 건 실력이 되어야겠죠.”
“자신이 있단 이야기로 들리는데?”
스미스의 물음에 태수는 짧고 굵게 대답했다.
“기회를 만들어 주셨으니까 최선을 다해 보답해야죠.”
“그렇다면 나한테 인사할 필요는 없겠어.”
“네?”
“아니야.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고, 일정이 잡히는 대로 연락 줄 테니까 미국으로 건너오도록 해.”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태수는 정중하게 통화를 마쳤다.
그리고.
“아자잣!”
두 손을 불끈 쥔 채 기쁨을 만끽했다.
드디어 이번 일을 추진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을 제거할 실마리를 잡았다.
물론 미국에서 수술에 성공하고 확실하게 인정을 받아야 흉부외과 자격증이 주어질 터였다.
힘든 일이지만 태수는 빙그레 웃었다.
자신에겐 카프레네의 기억과 수많은 임상 경험이 있다. 어떤 수술이 될지 몰라도 자신감은 여전했다.
“하면 되지.”
어떤 환자가 선정될진 모르지만, 수술은 어떻게든 성공시켜 보일 터였다.
이제 남은 건 군병원장과의 담판이다.
물론 태수는 서두르지 않았다.
지금은 정든 아이들과의 이별이 먼저였다.
태수는 힘찬 걸음걸이로 회의실을 나섰다.
두어 시간이 지난 후, 썰렁했던 회의장은 어느새 아이들을 배웅하고 돌아온 공중보건의들로 가득했다.
“아까 그 녀석 눈물 보이는데, 내 마음이 다 짠하더라.”
“난 언제 한번 연락하라고 했어. 이게 보통 인연은 아니잖아.”
“그보다 애들이 다 퇴원했다고 생각하니까 시원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네.”
“그러게. 못해 준 것도 많은데. 잘 지내겠지.”
공중보건의들은 서로서로 대화하며 아쉬움을 애써 감췄다. 그야말로 밤을 지새우며 돌본 아이들이다.
어찌 서운하지 않겠는가.
다들 깊은 감상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침묵이 흐를 무렵이었다.
벌컥.
나갔던 공우혁이 회의실에 들어와 서둘러 단상에 섰다. 그러자 회의실 내 공중보건의들은 자연스럽게 조용해졌다.
공우혁은 공중보건의들을 둘러보며 첫마디를 꺼냈다.
“다들 아이들 보내느라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알고 계시겠지만 지금 이 시간부로 우리는 1차로 온 환자에 대한 일정은 모두 마무리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고생하셨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공우혁의 말이 끝난 순간이었다.
짝짝짝!
공중보건의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박수를 쳤다.
그리고 서로서로를 바라보며 큰 목소리로 격려와 위로를 건넸다.
“수고하셨습니다!”
“이런 날 우리끼리 근사하게 한잔해야죠.”
“시원섭섭하다고 해도 일단 개운한 건 개운한 거네요. 고생하셨어요.”
그렇게 인사가 끝없이 이어지던 중이었다.
탕탕.
공우혁이 단상을 가볍게 치자 웅성거리던 목소리들이 다시 수그러들었다.
“일단 이번 주는 휴식 주입니다. 다음 주부터 2차로 선별된 아이들이 도착할 테니까 몸 관리에 신경 써 주시기 바랍니다.”
“네!”
“그리고 보건복지부에서 특별히 식당을 잡아 놨다니까 거기서 남은 이야기를 이어 가는 게 좋겠습니다.”
공우혁의 말에 공중보건의들의 얼굴에 화색이 감돌았다.
“웬일이래요, 얼굴도 안 비치던 양반들이.”
“이런 날까지 뒤로 빼면 욕먹으니까 얼른 이때다 하고 달려드는 거지.”
“그보다 지금 갑니까?”
“배가 좀 부르긴 한데, 술 배는 따로 있으니까 상관없긴 하죠.”
공중보건의들이 눈빛을 반짝일 때 공우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도 개운한 이 순간을 즐기고 싶지만, 아직 할 이야기들이 남아 있지 않습니까.”
“음.”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아실 거라 믿습니다. 그럼 어제 못다 한 이야기를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공우혁의 말이 끝나자 공중보건의들은 조용해졌다.
다들 공우혁이 무슨 이야기를 꺼낼지 짐작한 모양이었다.
난치병 아이들 수술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무거운 주제였다.
그러나 태수를 힐끔거리는 공중보건의?
단 한 명도 없었다.
이제 같은 배를 탔기에 태수만의 문제가 아니란 걸 아는 눈치였다.
공우혁이 진중한 얼굴로 말을 이어 갔다.
“그럼 우선 어제 흉부외과에서 알아보기로 한 일부터 이야기를 들어야 할 거 같은데요.”
공우혁이 흉부외과 쪽으로 눈길을 주자 조현민이 먼저 이야기했다.
“연락을 드려 봤지만, 힘들 거 같습니다.”
“저도 선례가 없어서 곤란하단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두 과의 전문의란 말에 펄펄 뛰던데요.”
들려오는 이야기는 달랐지만 뜻은 똑같았다.
안 된다.
태수도 예상한 바였다.
다른 공중보건의들도 같은 결과를 예측했는지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다.
태수가 흉부외과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하지 못하게 된다면?
이번 난치병 환자 건은 난해해도 지독하게 난해했다.
비록 지금까지 응급 상황을 무사히 넘겨오고 난이도 높은 수술을 원만하게 마무리 지은 태수의 실력을 공중보건의 전부가 알지만, 이건 상황 자체가 전혀 달랐다.
아차하면 최악의 수술을 각오해야 할 상황이란 건 모두가 이해하고 있었다. 그 누구도 함부로 입을 열기 힘든 무거운 침묵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그 뒤로 회의는 거의 이어지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문제가 현실의 벽에 가로막힌 탓이다.
공우혁이 얼굴이 어두워진 채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난치병 아이들을 수술할 마음을 먹었는데 여러 가지 걸리는 게 많은 거 같습니다.”
“그러게요.”
“좌우간 그건 당장 내일이 급한 일은 아니니까 다음 주에 다시 생각하기로 하고요. 우선 댁으로 돌아가셨다가 저녁 시간에 맞춰 식당으로 오시기 바랍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공중보건의들은 의외로 개운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중 일을 지금 고민해 봐야 소용없다는 걸 알고 있던 탓이다.
이내 공중보건의들이 회의실을 나가기 시작할 때에 태수가 공우혁에게 다가갔다.
“잠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기다려.”
공우혁이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곧 회의실에서 공중보건의들이 거의 다 빠져나갔다. 그런데 성재경과 유병태, 이선정 간호사가 남아 있었다.
태수가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안 가십니까?”
“무슨 작당을 하려는지 알고 싶어서.”
유병태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보아하니 태수가 공우혁에게 조심히 접근한 걸 눈치채고 기다린 모양이었다.
태수도 이들이라면 안심하고 이야기해도 될 것 같았다.
남은 인원들끼리 다시 회의실에 자리했다.
다들 바라보고 있자 태수는 시간 끌지 않고 이야기를 꺼냈다.
“미국에서 흉부외과 전문의 자격증 취득을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
“미, 미국에서? 미국 누가?”
“스미스 박사님이요.”
태수의 말에 모두가 입을 떡 벌렸다.
아무리 의과가 다르더라도 스미스는 모두가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유병태는 믿을 수 없단 얼굴로 물었다.
“혹시 전에 신속대응센터에서 수술한 그 스미스 박사님?”
“그래.”
“전설의 써전 카프레네 박사님이 작고한 후 손꼽히는 흉부외과 의사인 그 스미스 박사님 말하는 거야?”
“그렇다니까.”
“그러니까 존스홉킨스…….”
유병태가 계속 같은 말을 물으려 하자 성재경이 주의를 줬다.
“유 선생, 그만해.”
“아, 네.”
“그보다 최 선생, 스미스 박사님이 어떻게 기회를 주신다는 거지?”
성재경이 애써 침착하게 이야기했다.
최태수.
알면 알수록 자신들과는 스케일이 달랐다.
미군 장성이 헬기를 보내 줬고, 한술 더 떠 주한미군 사령관이 직접 군병원에 항의할 정도였다.
이젠 세계적인 명의의 이름까지 들먹이니 기가 막혀도 한참 막혔다.
그건 성재경뿐만 아니라 공우혁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