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81
00082 82화
강치현 아내 눈동자가 작게 움직였다.
머릿속으로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태수는 더 말하지 않고 기다렸다.
계속 권유하면 태수가 동성의료원의 의술을 부정하는 꼴이 된다.
허나 태수는 그저 더 나은 방법을 제시하는 것뿐이다.
진심을 보였으니 강치현 아내가 내어줄 답을 기다리는 게 순서다.
진중한 기다림 끝에 강치현 아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거기가면 정말 수술하지 않아도 되는 건가요?”
“그건 저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정밀검사를 받은 후에도 수술 소견을 보일수도 있는 부분이니까요.”
“그럼.”
“만에 하나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태수의 말을 들은 강치현 아내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야 그렇죠.”
“제가 응급실에서부터 모셔온 분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남 같지만은 않아요. 쾌차 하시되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지셨으면 합니다.”
“혹시…….”
강치현 아내가 일부러 말꼬리를 흐리자 태수가 얼른 말했다.
“말씀하십시오.”
“혹시 위험한 수술인가요? 담당해주시는 의사 분은 그렇게 위험한 수술이 아니라고 했는데요.”
“맞습니다. 위험한 수술은 아닙니다. 하지만 살아가는데 불편한 수술이죠.”
태수의 말도 옳았다.
김정태 전문의가 수술하려는 수술법을 대충 짐작했다.
incision and drainage(절개배농술, 고름주머니를 제거하는 수술.)
아니면 partial gastrectomy(부분위절제술)
두 가지 경우였다.
그리고 그걸 결정하는 건 김정태 전문의였다.
고름주머니만 들어낼지, 위를 일부절제할지는 수술이 끝나야 EMR로 확인할 수 있다.
수술실에 들어가게 되면 태수는 어떤 행동도 할 수 없다.
그게 지금 현재 태수의 위치다.
그걸 알기에 일부러 이런 자리를 만들어 권유하는 중이기도 했다.
태수가 단호하게 말하자 강치현 아내 눈빛이 또 한 번 흔들렸다.
“많이 불편할까요? 가장 안전한 게 수술이라던데요.”
“어떤 이유로든 몸에 칼을 대면 불편해집니다. 특히나 위장이 일부 사라진다면 작아진 위가 사라진 부분까지 모두 일해야 하니까 부담도 되겠죠.”
“그건 그러네요.”
“전 여기까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차분하게 생각하시고 충분히 상의하신 후에 결정하세요.”
태수가 대화를 마치려하자 강치현 아내가 물었다.
“그런데 왜 이런 말씀을 해주시는 거죠?”
“의사니까요.”
찡긋 미소를 지은 태수는 널찍한 걸음으로 옥상을 나섰다.
며칠 후 강치현 환자는 수술을 거부하고 희망대로 한길병원으로 이송됐다.
태수는 강치현 아내에게 전날 이송에 대한 결심을 직접 들었다. 태수는 자신의 소견을 세세하게 적어 강치현 아내 손에 쥐어줬다.
임상사례가 적힌 카프레네 저서의 내용을 일부 발췌하고, 정밀검사에서 특히 주목해야할 점 까지 적힌 내용이다.
한길병원 의사들이 참고한다면 충분히 자연치유를 유도할 수 있을 정도다.
태수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배려는 그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치현 아내는 고맙다고 연신 고개를 숙이며 태수를 난감하게 했다.
그것도 이젠 과거의 일이다.
그날 저녁.
인터넷을 확인한 태수의 눈빛이 반짝였다.
“됐어!”
태수의 주먹이 거세게 쥐어졌다.
얼굴에는 새로운 희망으로 가득했다.
이젠?
더 거리낄 게 없다.
태수의 얼굴에 진한 미소가 가득 했다.
강치현 환자가 이송된 다음날 오전이었다.
태수가 간호사실에서 차트를 정리할 때였다.
“최 선생!”
태수를 향한 으르렁거림이 들려왔다.
태수가 고개를 들어보자 김정태 전문의가 잔뜩 노려보고 있었다.
간호사들은 이상한 분위기를 직감하고 슬쩍 자리를 피했다. 주변에 환자도 없는 걸 확인한 김정태 전문의 목소리가 스산하게 변했다.
“너 뭐야?”
“무슨 말씀이십니까?”
“무슨 말씀? 할 말 없나?”
김정태 전문의의 살벌한 물음에도 태수는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대답했다.
“어떤 건 말씀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뭐? 몰라? 아니면 모르는 척 하고 싶나?”
“진짜 모르겠습니다만.”
“그런데 강치현 환자가 왜 deport(이송) 됐지? 강치현 아내랑 너랑 같이 있는 모습이 여러 번 목격됐다던데.”
그제야 태수는 김정태 전문의가 날선 얼굴로 자신을 찾은 걸 알아챘다.
‘벌써 알려졌나?’
어떻게 된 건지 궁금했지만 물어볼 상대가 주변에 없었다.
상대가 있어도 물어볼 상황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태수가 꿀릴 건 없었다.
외려 태수는 당당하게 말했다.
“그게 환자를 위한 길이었습니다. 강치현 환자는 수술하면 실직할 우려가 있었습니다.”
“환자를 위해? 니가 뭔데, 니가 뭔데 환자에게 이래라 저래라야!”
김정태 전문의 입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이미 주체하지 못할 화에 얼굴은 뻘겋다 못해 검붉게 변했다. 손끝까지 부들부들 떨리는 게 평소 차가운 도시 남자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었다.
반면 태수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제가 phlegmonous gastritis에 대한 사례를 조사했는데, 수술하지 않고 완치된 케이스가 있었습니다. 강치현 환자가 그 사례에 적합해서 추천했습니다.”
“뭐?”
“수술도 중요하지만 환자가 고통 없이 완치되는 게 낫다고 배웠습니다.”
“배워? 어떤 빌어먹을 새끼가 레지던트 따위보고 판단하라고 했어?”
김정태 전문의 잡아먹을 듯한 질문에도 태수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카프레네 박사님입니다.”
“그 박사님은 담당의사 허락은 받지 말라고 하셨나?”
“선생님이 제 말을 들어주셨습니까?”
태수가 외려 반문하자 김정태 전문의가 순간 멈칫했다.
태수가 자신을 찾아왔던 일이 기억난 탓이다.
그때 태수가 찾아와 수술이 아니라 치료로 완치하자고 했다면 어떻게 반응했을까?
개소리라고 쫓아냈을 게 머릿속에 훤히 그려졌다.
김정태 전문의는 뻔히 그 상황을 짐작하면서도 다른 말을 내뱉었다.
“해보지도 않고 또 마음대로 판단하나? 이건 카프레네 박사님의 문제가 아니라 니 문제야. 네 독단이 문제라고.”
“그렇긴 합니다.”
태수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김정태 전문의 얼굴에 순간 황당함이 떠올랐다.
“하!”
“멋대로 한 건 죄송합니다만 들어주지 않으실 거 같아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걸 말이라고 하나!”
쾅!
김정태 전문의가 테이블을 강하게 내리치며 격분을 드러냈다.
그 소리가 스스로의 귀에 닿았는지 김정태 전문의가 순간 움찔했다.
슬쩍 주변을 둘러보자 한쪽으로 물러난 간호사들 시선이 곱지 않았다.
이성적으로 호감을 느끼는 건 김정태 전문의라 할지라도, 태수는 언제나 간호사들을 배려해주고 편들어줬다.
그런 태수가 짓눌릴 듯 혼나니 그 동안 쌓이고 쌓인 정이 김정태 전문의를 노려보게 했다.
한편 김정태 전문의도 스스로 당황했다.
이렇게까지 감정을 들어내는 경우가 거의 없던 탓이다.
모든 게 태수 때문이다.
하지만 그걸 알아줄 사람이 당장 주변에는 없었다. 그런 김정태 전문의와 달리 태수는 끝까지 차분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어차피 틀어진 사이다.
더 안 좋아질 감정도 없다.
그리고 생각한 것도 있기에 이토록 당당할 수 있었다.
간호사실에 묘한 침묵이 흘렀다.
태수도, 김정태 전문의도, 지켜보는 간호사들도 어떤 말도 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때였다.
“여기 분위기가 왜 이래?”
들려오는 목소리에 시선을 돌려보자 하석준 과장이 예리한 눈빛으로 태수와 김정태 전문의를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히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티가 났다.
“…….”
“…….”
태수와 김정태 전문의 모두 침묵했다.
번갈아 한 번 더 바라본 하석준 과장이 낮고 강하게 말했다.
“두 사람 모두, 따라와.”
휙!
하얀 가운을 거칠게 나부끼며 돌아선 하석준 과장이 몸을 움직였다.
동시에 태수와 김정태 전문의 시선이 마주쳤다.
상황이야 어쨌건 하석준 과장을 따라가야 할 상황이다.
김정태 전문의가 강하게 노려봤지만 태수는 개의치 않고 먼저 하석준 과장의 뒤를 따라갔다.
세 사람은 곧 과장실에 도착했다.
상석에 자리한 하석준 과장이 태수와 김정태 전문의를 번갈아 바라보며 좌우 소파를 가리켰다.
“앉아.”
짧지만 스산한 목소리에 태수와 김정태 전문의는 곧 몸을 움직여야 했다.
두 사람 모두 착석한 순간이었다.
하석준 과장이 소파에 등을 깊게 묻으며 나지막이 물었다.
“의사가 가운을 입고 말다툼을 해? 그것도 병원에서? 두 사람 정신이 있나 없나?”
“죄송합니다.”
태수는 바로 사과했다.
김정태 전문의에게 감정이 있지만 하석준 과장에게는 아니었다. 그리고 이유야 어찌됐던 잘못한 건 사실이기에 사과에 거리낌이 없었다.
그런 태수와 반대로 김정태 전문의는 싸늘하게 말했다.
“잘못한 걸 지적해 주는 건 선배로써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잘못? 어떤 잘못?”
“강치현 환자 deport건에 관한 일입니다. 최 선생이 중간에 개입 됐다더군요.”
“그래? 사실인가, 최 선생?”
하석준 과장의 질문에 태수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네.”
“내가 담당의사의 허락을 먼저 구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 말을 듣던 김정태 전문의 눈빛이 묘하게 변했다.
“과장님도 알고 계셨습니까?”
“김 선생. 지금 내가 말하는 중인 거 같은데 말이야.”
“죄송합니다.”
김정태 전문의는 바로 사과 했지만 입술을 자그맣게 들썩거렸다.
하석준 과장에게 표하는 작은 불만이다.
하석준 과장은 못 본 건지, 보지 않은 척 한건지 모르지만 태수에게 시선을 향하며 답을 원했다.
태수는 잠시 생각하다 솔직한 의견을 말했다.
“과장님이 허락을 구해야한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에 대한 이유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죄송합니다. 어차피 안 될 거라고 지레짐작하고 행동한 일입니다.”
“그 예측이 어떤 결과를 불러왔는지 아나?”
하석준 과장의 진중한 물음에 태수가 멈칫하며 대답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방금 간호사실에서 언성이 높아졌는데 모르겠다고 하는 건가?”
“그건.”
흘러나오던 태수의 입이 어느새 다물어졌다.
그 점에 있어서는 입이 백개가 있더라도 모든 말이 변명이다.
그때 태수에게서 시선을 돌린 하석준 과장이 김정태 전문의에게 물었다.
“김 선생. 그 일이 간호사실에서 소리를 칠 정도로 중요한 일인가?”
“제 허락도 없이 진행된 일입니다. 제가 당연히 화를 내야 하는 상황 아닙니까?”
따지는 김정태 전문의를 향해 하석준 과장이 나지막이 말했다.
“자네는 위아래가 중요하다고 해놓고 나한테 따지고 드는군.”
“네? 아, 그런 뜻이 아니라.”
“자네 위신이 서려면 아랫사람 위신도 챙겨. 그게 순서야. 간호사들이 최 선생을 어떻게 보겠나?”
“그 점은……. 잘못 했습니다.”
김정태 전문의의 입에서 억눌린 사과가 흘러나왔다.
진심에서 나오는 사과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건네는 사과일 뿐이다.
태수가 그걸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눈치가 없지 않았다.
형식적인 사과는 관심도 없다.
그 사이 하석준 과장은 다시 원래 주제로 돌아왔다.
“최 선생. 내가 말렸는데도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나?”
“멋대로 행동한 건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충분히 회복할 수 있는 병을 구태여 수술하는 건 옳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그게 옳은 판단이었다고 해도 병원 내에서는 썩 훌륭한 행동이 아니야. 최 선생의 결정으로 김 선생 입장이 난처해졌어.”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태수는 진심으로 사과했다.
김정태 전문의를 향한 사과는 아니었다.
물의를 일으켜 외과 이미지를 실추 시킨데 대한 미안함뿐이었다.
하석준 과장도 그걸 아는지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잠시 생각하던 하석준 과장이 태수에게 나지막이 물었다.
“내가 내 수술에는 무조건 참가하라고 해서 기고만장해진 건 아니겠지?”
“그건 절대 아닙니다.”
“조금이라도 그런 생각이 있었다면 지금 말해. 그래야 내가 덜 실망할 거 같으니까.”
“그런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습니다.”
태수의 눈빛에서 강한 진심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