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818
00821 821화
아마도 한국 내에서, 미군 의료진들에게 수술실에서 처음으로 경례를 받은 의사는 태수일지도 몰랐다.
느낌이 야릇했다.
그렇지만 태수는 빠르게 감정을 차갑게 식혔다.
지금은 감정에 휘둘릴 때가 아닌 탓이다. 서둘러 수술 가운까지 입은 태수가 유일하게 비어 있는 집도의 자리에 섰다.
그들의 수술 가운이 인상적이었다.
수술 가운 가운데에 굵은 펜으로 이름이 적혀 있던 탓이다. 태수가 자신들을 모르니 호명하기 쉽게 표시해 놓은 모양이다.
이 하나로도 그들의 세심한 배려가 느껴졌다.
그러나 지금은 일일이 감탄할 때가 아니기에 태수는 마취의에게 시선을 돌렸다.
“마취 상태는 어떻습니까?”
“전신마취와 더불어 모르핀을 추가해 놓았습니다.”
“수혈팩과 기타 약도 넉넉하게 있습니까?”
“철저하게 준비해 놓았습니다.”
마취의가 즉각적으로 답하자 태수가 빠르게 눈을 굴린 후 이야기했다.
“수술이 시작되면 제가 환자 반응에 신경 쓰지 못할 겁니다. 5분 단위로 바이탈을 소리 내 알려 주시고, 수혈은 두 군데에서 진행하되, 단 한 번도 끊어지면 안 됩니다.”
“썰!”
“부탁드립니다.”
태수가 시선을 돌리자 마취의는 주변 의료진들에게 말했다.
“너, 그리고 너, 혈액팩 관리해.”
“알겠습니다.”
“너는 저기 선반 앞에 있어. 필요한 걸 요청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3초 내로 가져와.”
“이동합니다.”
마취의가 주변에 있는 인원들을 적절하게 배치했다.
태수가 필요해서 일부러 요청한 인물들이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반대편에 있는 제1어시스던트에게로 향했다.
이름을 확인한 태수가 움찔했다.
“마이클 소령?”
“썰.”
“여기는 왜…….”
“이 환자 집도는 자신 없지만, 가장 확실하게 어시스던트할 의사가 저라고 판단했을 뿐입니다.”
마이클 소령의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태수는 그런 그에게 나지막이 경고했다.
“저 마음이 급하면 욕도 합니다.”
“각오했습니다.”
“좋습니다. 지금부터 딱 1분 후에 수술 시작합니다. 그때까지 가지고 있는 모든 감정들을 버리세요. 단 하나도 남김없이.”
태수는 의료진들의 마음을 단단히 굳히게 했다.
그건 사실 그들에게 하는 말이 아닌, 태수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그만큼 이 수술을 진행하는 데 흔들림이 없어야 했다.
그리고 정확하게 1분 후.
태수가 메스를 쥔 채 선언했다.
“지금부터 수술 시작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의료진들의 씩씩한 외침이 수술실을 가득 울렸다.
손을 옆으로 내밀자 간호장교는 당연하다는 듯이 메스를 건네줬다.
모든 수술의 시작이 바로 메스인 탓이다.
태수는 제임스가 선물해 준 그 따스함을 다시 한 번 메스를 통해 느꼈다.
-환자 앞에서는 국적도, 인종도, 이념도 필요 없어.
태수는 제임스가 해 준 조언을 떠올렸다.
그가 누구였든 이 순간만큼은 자신에게 생명을 맡긴 환자일 뿐이었다.
그 생각으로 머릿속을 가득 채운 후에야 태수는 메스를 진중하게 움직였다.
그런데 태수는 이례적으로 마치 심장 수술을 하듯이 흉부 한가운데를 갈랐다.
왼쪽 폐만 수술하려면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런 의구심이 모든 의료진의 눈에 떠올랐다. 그러나 누구 하나 태수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그의 오더를 따르겠다고 결심하고 들어온 만큼 그저 따를 생각인 탓이다.
이 수술실에서만큼은 태수가 주한미군 사령관보다 더 강력한 권력자였다.
흉부를 가르자 고여 있던 피가 갈라진 살 틈으로 흘러나왔다.
그 모습을 본 마이클 소령이 먼저 움직였다.
“썩션, 보비.”
마이클 소령이 지혈하는 사이였다.
삑삑.
ECG(심전도 모니터)의 소리가 요란하게 변했다.
태수는 앞서 이야기한 대로 마취의 쪽으로는 시선도 돌리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마취의는 더욱 세세하고 빠르게 오더를 내렸다.
“hemostatic(지혈제) 추가하고, 수혈 좀 더 많이, 포도당도 더 열어.”
마취의의 오더를 들은 다른 의료진들도 빠르게 움직였다.
그사이 태수는 개흉을 이어 가며 아직 수술에 참여하지 못한 제2어시스던트를 불렀다.
“콜린스 대위, 비장 쪽으로 드레인 하나 연결해 주세요.”
“썰!”
이름이 불린 콜린스 대위는 얼른 태수 쪽으로 돌아와 드레인 연결을 시작했다.
좁은 공간이었지만 태수의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엿보였다.
태수는 개의치 않고 계속 개흉을 진행해 나갔다.
발포어(고정형 리트렉터)까지 설치를 마치자 흉부가 넓게 벌어졌다.
내부를 확인한 마이클 소령은 흔들리는 눈빛을 억지로 다잡았다. 만약 태수가 감정을 감추라고 하지 않았다면 단말마를 내질렀을지도 모른다.
그건 태수도 마찬가지였다.
웬만한 환부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을 태수였지만 이건 정말 심했다.
왼쪽 폐는 폐막(폐를 감싼 얇은 막)이 완전히 찢어져 조직들이 흉부 곳곳을 떠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심장 또한 강한 간접 충격을 받았던지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웠고, 왼쪽 폐로 향하는 폐동맥은 조각난 갈비뼈가 박혀 있었다.
흉부를 감싼 갈비뼈도 왼쪽은 완전히 산산조각 난 상태였다.
osteotome(뼈 절단기)로 오른쪽 갈비뼈만 잘라 내면 될 정도였다.
이내 절단한 갈비뼈까지 들어내자 폐와 심장이 더욱 적나라하게 눈앞에 보였다. 그런데 흉부에는 출혈과 함께 크고 작은 조직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태수가 떠다니는 조직 중 하나를 발견하고 오더를 내렸다.
“클램프.”
턱.
수술 도구가 손에 쥐여지자 태수는 조심스럽게 그 조직을 집어서 끌어올렸다.
그리고 유심히 살펴보고는 나지막이 말했다.
“역시 폐 조직입니다.”
“그럼 이게 모두……?”
“폐라는 거죠.”
“음.”
마이클 소령은 침음성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태수는 폐 조직을 밧드(철제 그릇)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우선 왼쪽 폐부터 확인합니다.”
그의 시선이 왼쪽 폐동맥과 폐정맥으로 향했다.
갈가리 찢어진 폐인데 폐동맥과 폐정맥이 무사할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환자가 버틸 수 있었던 건 갈비뼈 조각이 폐동맥을 꽉 틀어막고 있던 탓이다.
폐정맥은 짓이겨진 부분과 그나마 멀리 떨어져 있어 직접적인 출혈이 없었다.
만약 폐동맥이나 폐정맥이 완전히 파열되었다면 지금까지 버틸 수 없을 터였다.
‘죽으라는 법은 없나.’
태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런 말이 절로 떠오를 정도로 이 상황은 천운이었다.
태수는 그런 생각을 일단 털어 버렸다.
“지혈클램프 하나 더.”
태수는 2개의 지혈클램프를 이용해 폐동맥과 폐정맥을 물려 버렸다.
혈액을 완전히 차단하자 찢어진 폐에서 출혈도 서서히 멈춰 갔다.
그 외에 자잘한 혈관들에서도 출혈이 흘러나왔지만 그건 지금 당장 중요한 건 아니었다.
태수는 그 후 폐가 아닌 심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럼 지혈은 됐으니까 심장부터 확인합니다. 마이클 소령은 썩션을 이용해서 계속 흡입하면서 출혈 부위를 확인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썩션, 보비.”
마이클 소령이 수술 도구를 잡자 태수도 옆에 있는 간호장교에게 손을 내밀었다.
“후크, 인터네셔널 포셉.”
“여기 있습니다.”
탁.
수술 도구가 쥐여지자 태수는 짓이겨진 폐를 뒤로하고 심장에 집중했다.
그사이 마이클 소령은 조금 놀랐다.
군병원에 있는 의사들 모두 자신이 없다고, 손을 대기 힘들다고 판단한 수술이다. 그런 수술을 태수는 거침없이 이어 갔다.
결정을 할 때까지 잠시 시간이 지체되었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결정을 내린 후에는 단 한 번도 손길에 망설임이 없었다.
태수에게는 이 큰 수술이 그저 그런 정도인가? 그런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렇다고 마이클 소령이 손을 쉬는 건 아니었다.
썩션으로 피를 흡입하고, 수술 도구를 이용해 떠다니는 폐 조직들을 걷어 냈다. 그 외에 자잘한 출혈을 확인하고 보비로 지혈도 진행했다.
그사이 태수는 심장 확인에 몰두했다.
우선 예상한 대로 심장도 간접적으로 심대한 타격을 받아 좌심실이 살짝 부어오른 상황이었다.
심장박동이 불규칙한 건 이런 상황 탓이다.
그러나 이 부분은 당장 어떻게 손을 쓸 필요가 없었다. 경직된 심근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원상태로 돌아올 터였다.
물론 약간의 도움으로 자연 치유력을 끌어올릴 방법은 있었다.
인체에서 가장 중요한 장기이기에 수술의 안정성을 위해 그건 무조건 해 줘야 했다. 태수는 심장을 직접 손으로 잡고 뛰는 속도에 맞춰 가볍게 자극을 줬다.
다들 태수가 뭘 하고 있는지 의문을 표했다.
“저건 뭡니까? 직접 압박도 아니고…….”
“쉿, 조용히.”
누군가 경고하자 무심코 입을 열었던 상대가 얼른 침묵했다.
태수는 아예 듣지 못한 상태였다. 그저 심장의 움직임에 집중하며 가볍게 자극 주는 걸 이어 갈 뿐이었다.
근육이 뭉쳤을 때 그 부분을 자극하면 조금이나마 풀어진다.
그 효과를 이용한 행동이었다. 이건 어떤 의학적인 조치라고 보긴 힘들었다.
확실한 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은 아니란 것이다.
태수가 이런 방법을 알고 있는 건 역시 카프레네의 기억 때문이었다.
심장을 가볍게 자극한 지 1분 정도 지난 후였다.
약속한 5분이 흘렀는지 마취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재 바이탈은…….”
마취의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맥박이 조금 더 안정된 것 같았다.
태수는 그제야 심장을 다시 놓았다.
더 압박하면 맥박이 더욱 안정될 터였다. 하지만 남은 수술 부위가 너무 광범위하고 응급했기에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없었다.
태수가 심장에 신경 쓰는 1분 사이 마이클 소령은 흉부를 떠다니는 대부분의 폐 조직들을 걷어 냈다.
간호장교들도 도왔는지 산산이 부서진 갈비뼈들도 상당수가 제거되었다.
태수도 확인하고 마이클 소령에게 말했다.
“그 정도면 됐습니다.”
“지혈이 아직 덜되었습니다만.”
“폐가 더 중요합니다. 그럼 왼쪽 폐를 수술하겠습니다.”
태수는 감정 없는 목소리로 선언했다.
조금이라도 감정을 드러낸다면 수술하기 힘들 것 같았다.
그만큼 환자의 흉부 상황은 좋지 않았다.
태수는 이미 지혈해 놓은 폐정맥과 폐동맥을 다시 한 번 살폈다.
지혈클램프가 혈액을 잘 차단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순서였다. 다행히 지혈클램프는 자기 역할을 착실하게 해내고 있었다.
이어서 태수의 시선은 폐로 향했다.
폐의 50퍼센트 이상이 갈가리 찢긴 모습이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라 남은 50퍼센트 중에서도 일부가 괴사되어 가고 있다.
문제는 짓이겨진 부분이 폐 정중앙이라는 것이다.
폐 한가운데가 찢어져서 조직들이 떨어져 나간 상태다. 이걸 다시 수습하려는 생각을 누구라도 쉽게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태수는 이미 수술 방법을 생각한 후였다.
그것은 카프레네의 기억, 임상 기록에 태수 본인의 경험까지 더한 수술 방법이었다.
잠깐 살펴본 건 그 수술 방법대로 진행해도 될지 판단하려는 것뿐이었다.
“휴.”
작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다행히 생각해 온 방법대로 진행이 가능할 것 같았다.
결론이 나자 태수의 시선이 다시 마이클 소령에게 향했다.
“autografting(자가이식술)을 진행하겠습니다.”
“자가이식술을 말입니까?”
“시작하겠습니다.”
태수는 마이클 소령의 경악을 무시한 채 바로 손을 움직였다.
그렇게 되자 마이클 소령도 일단 놀란 마음을 뒤로 미뤄야 했다.
자가이식술.
말 그대로 환자의 장기를 떼어서 필요한 조치를 한 후 다시 연결하는 수술 방법을 말했다.
예전에 제임스와 연성대학병원에서 수술할 때 사용했던 방법이기도 했다.
이 수술의 장점은 환자 본인의 장기로 이뤄지는 수술이기에 면역 문제나 적응할 시간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다만 이 수술은 할 수 있는 의사들이 많지 않았다.
흉부외과 전문의도 아닌 태수가 그걸 하겠다니, 마이클 소령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모든 책임은 클라크 준장이 진다.
그걸 염두에 두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정말 가능한 건지 선뜻 믿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