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838
00841 841화
그렇다고 걱정을 완전히 떨쳐 낸 건 아니었다.
“자세하고 또 자세하게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제 생각이 충분히 전달되었다니 다행입니다.”
“그러면 전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합니까?”
리카르도의 얼굴에 다시 두려움이 떠올랐다.
당연할지도 모른다. 태수가 최선을 다한다고 했지만 위험성이 높은 수술인 탓이다.
태수는 그런 리카르도를 향해 진지하게 말했다.
“우선 가족에게 보낼 편지 한 통을 써 놓으세요. 그리고 그 편지는 반드시 가지고 계세요.”
“무슨 뜻인지요?”
“그 편지를 가족에게 읽게 하고 싶습니까?”
태수의 질문에 리카르도는 사정없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절대, 절대 싫습니다.”
“그러니까 가지고만 계세요. 그리고 수술실 들어갈 때까지 계속 생각하세요. 이 편지를 읽게 할 것인가, 아니면 내 입으로 말할 것인가.”
“당연히…….”
“직접 이야기하고 싶으시죠?”
태수가 대신 말하자 리카르도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그래야죠. 당연히 그래야죠.”
“지금 그 마음이면 됩니다. 나머지는 저에게 맡겨 주세요. 저 또한 환자분이 가족들에게 마음을 고백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태수는 손을 뻗어 리카르도의 손등을 가볍게 덮었다.
그러자 리카르도가 손을 뒤집어 태수의 손을 꽉 쥐었다.
복합적인 병을 앓고 있어서 힘이 많이 빠졌다. 하지만 간절함과 절실함이 가득한 손길이었다.
태수는 그 손길이 마치 자신의 손을 으스러뜨리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리카르도가 지금 어떤 마음인지 전달되어 오는 것 같았다.
태수도 그런 리카르도의 손을 꽉 쥐었다.
서로 눈이 마주쳤다.
살아야 할 절실함이 있는 환자.
살려야 할 절실함이 있는 의사.
단지 그뿐이다.
리카르도에게 설명을 마친 태수는 천천히 병실을 나섰다.
이제 머릿속에는 오로지 수술만 남았다.
쉽지않은 수술이기에 골머리가 지끈거리는 상태로 복도를 걸어가던 태수에게 데이먼이 다가왔다.
데이먼 표정이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태수가 다가가자 두 사람은 이내 가까운 거리를 두고 마주 섰다. 덤덤한 표정으로 데이먼이 먼저 입을 열었다.
“환자는 잘 만나고 오셨습니까?”
“전 잘 만났는데, 닥터 데이먼은요?”
“전 차 한 잔 더 마시고 나왔습니다.”
“…….”
태수가 대꾸 없이 바라보자 데이먼이 빙긋 미소를 지으며 뒷말을 이었다.
“다음에는 꼭 이야기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게 전부입니까?”
“네, 전부입니다.”
데이먼이 덤덤한 얼굴로 바라보자 태수도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제가 아는 스미스 박사님이 맞네요. 정말 다행입니다.”
“그보다 이젠 숙소로 돌아가셔야죠?”
데이먼이 묻자 태수는 고개를 저었다.
“돌아가기 전에 스텝들과 수술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지금 말씀이십니까?”
“오늘 이야기해야 내일은 푹 쉬면서 체력을 보존할 거 같아서요.”
“그러시다면 일단 이야기는 해 보겠습니다.”
그쪽 수술 스케줄이 어쩐지 몰라 데이먼은 확답을 주진 못했다.
태수는 알아봐 준다는 호의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뜻이 통하면 길이 생기는 건지 수술 스텝들은 태수와 수술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데 다들 동의했다.
태수 홀로 소회의실에서 기다리자 잠시 후 데이먼이 여러 명의 사람들을 이끌고 들어왔다.
“이쪽부터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집도의 수술 보조 간호사인 에밀리아…….”
수술 보조 간호사부터 마취의, 인공심폐기 기사까지.
수술에 필요한 모든 인원들이었다.
소개가 모두 끝나자 태수는 그들을 향해 인사부터 했다.
“태수 최라고 합니다. 이번 수술 잘 부탁드립니다.”
“우리도 잘 부탁합니다.”
태수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냉담했다. 같은 의료진이지만 생전 처음 보는 사이기에 불만도, 환영도 없었다.
태수도 그런 부분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존스홉킨스에서 첫 수술이니까 많이 도와주십시오.”
“우린 집도의의 지시대로 따를 뿐입니다.”
“일단 자리에 앉으시죠. 잠깐 나가서 변변치 않지만 음료수와 과자를 조금 준비했습니다.”
테이블에는 이미 태수가 가져다 놓은 음료수와 과자가 놓여 있었다.
다들 그런 모습이 조금 생소한 표정이다.
우리, 같이.
이런 개념이 부족한 곳이다.
정해진 일만 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다 보니 이런 호의가 도대체 익숙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태수는 어리둥절해하는 그들에게 한마디 덧붙였다.
“회의 중에 목 좀 축이시라고요.”
“아, 네. 감사합니다.”
스텝들은 우물쭈물하며 자리에 앉았다. 데이먼도 곧 태수와 가까운 위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자그마한 회의실 가운데 선 태수는 스텝들을 크게 둘러보며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리카르도 환자 수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보겠습니다. 중간에 질문이 있으시면 바로 말씀하셔도 됩니다. 이번 수술은……”
태수는 곧바로 본격적인 설명에 들어갔다.
데이먼과 한차례 상의하고 스미스에게 브리핑했던 수술 진행 내용 그대로였다.
같은 이야기를 다시 반복해야 하지만 태수의 얼굴에서는 지겹단 표정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난해한 수술인 경우 집도의와 어시스던트가 주도하지만, 보조하는 스텝들의 역할도 매우 중요했다.
그들이 얼마나 능동적으로 도와주느냐에 따라 수술 결과가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던 탓이다.
수많은 의료진들과 수술해 본 태수는 스텝의 중요성을 알기에 이런 자리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태수의 열정탓인지 의료 스텝들도 하나씩 입을 열었다.
“그건……”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그러니까……”
태수는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했다.
태수도 스텝들도 모두 공감하는 건 하나였다.
지금 대화가 정작 수술에 들어가면 정말 중요했다.
스텝들과의 회의는 그날 하루로 끝나지 않았고, 다음 날까지 짬짬이 시간을 내 줄곧 이어졌다.
서로 처음 손발을 맞춰야 하는 수술이기에 자그마한 것 하나까지도 여러 번 상의한 탓에 회의가 길어졌다.
드디어 수술 날이 밝았다.
수술복을 갈아입은 태수가 수술 대기실에 앉아 마음을 가라앉히려 정신 집중에 들어갔다.
이젠 정말 흉부외과 전문의 자격 테스트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미 태수는 테스트에 대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언제나 수술은 환자를 위해서 진행되어야 한다.
흉부외과 전문의 자격증은?
수술을 성공한 후에 주어지는 보상일 뿐이다.
태수의 머릿속에는 모든 잡생각이 지워지고 오로지 수술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 차올랐다.
벌써부터 수술할 환자의 심장을 입체적으로 상상하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이쯤에서 들어가고.’
그렇게 태수가 이미지 트레이닝에 몰두하고 있을 때였다.
끼익.
문이 열리고 수술복을 입은 스미스가 대기실 안으로 들어왔다.
문소리에 이미지 트레이닝에서 벗어난 태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상대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끄덕.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다가온 스미스는 옆자리에 털썩 자리하며 태수에게 물었다.
“기분이 어떤가?”
“심장이 쫄깃합니다.”
“테스트라서 더 떨리나?”
“아니요. 테스트와 상관없이 환자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태수의 말에 스미스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제일 중요한 건 테스트 아닌가?”
“그건 수술에 성공하면 받는 보상이죠.”
“음.”
“제가 혹시라도 실수하게 된다면 거침없이 밀어내 주십시오.”
태수는 스미스에게 진심으로 부탁했다.
눈빛으로 진위를 판단했는지 스미스가 이내 대답했다.
“말하지 않아도 그렇게 할 거야.”
“든든하네요.”
“그보다 내가 나서지 않게 해야겠지.”
“그럼요. 그런데 그렇게 되면 오래 서 계셔야 하니까 의자라도 준비시키겠습니다.”
태수는 자신도 모르게 가라앉은 마음을 농담으로 털어 냈다.
그런 노력이 스미스의 눈에도 보이는 것 같았다.
“재밌는 성격이야.”
“…….”
“그런데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야.”
“말씀하십시오.”
태수가 진지하게 바라보자 스미스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심각한 이야기는 아니고, 내가 전에 찾으라고 한 건 찾은 건가?”
“저만의 길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지.”
스미스가 마음까지 뚫어 볼 정도로 깊은 눈빛으로 바라봤다.
태수도 일전의 일이 기억났다.
카프레네와 제임스와는 다른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라.
그게 스미스가 태수에게 건넨 조언이었다.
그 후 몇 가지 일들이 겹쳐져 태수는 자신만의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당연히 계획도 구체화 되어 가고 있는 중이었다.
당연히 태수는 그에 대해서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이 테스트를 받는 건 난치병 아이들을 수술하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그럼?”
“언젠가 걸어갈 저만의 길에 디딤돌이라고 생각합니다.”
태수가 분명한 뜻을 밝힌 건 아니었지만 스미스는 더 이상 대답을 독촉하진 않았다.
“솔직히 말하지. 카프레네의 성격과 비슷하고, 또 제임스의 의술을 이어받은 자네가 어떤 길을 걸어가게 될지 호기심이 당겨.”
“확인하시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을 겁니다.”
“어떤 계획인지는 몰라도 어느 정도 구체화 된 모양이네.”
“제가 상상력이 풍부한 편이라서요.”
“그게 과연 상상으로 끝날지 두 눈으로 볼지는 나중에 뚜껑을 열어 보면 알겠지.”
스미스의 얼굴은 의외로 담담했다.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나 갈 무렵이었다.
끼익.
한 번 더 수술 대기실 문이 열리더니 백인 남자 간호사가 들어와 말했다.
“수술 준비 끝났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가시죠.”
태수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자 스미스도 천천히 일어났다.
걸음을 옮기며 스미스가 태수에게 말했다.
“제임스를 매료시킨 수술 실력, 이번에도 기대하지.”
“전에 같이 수술했는데요.”
“집도하는 모습은 처음 보잖아. 이번 수술에서 왜 카프레네가 자네에게 반지를 줬는지 확실하게 증명해 보이게.”
“…….”
“말이 길어졌군. 어서 가자고.”
스미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먼저 걸어갔다.
태수는 한 발자국 거리를 두고 뒤를 따랐다.
반지에 대한 이야기는 핑계가 분명했다.
스미스가 원하는 건 지금까지 보여 줬던 호의에 대한 결과물이었다.
수술을 성공시키는 건 물론이고, 그와 다른 무언가 색다른 모습을 기대하는 것 같았다.
다만 그건 스미스만의 생각일 뿐이다.
스미스의 뒤에서 걷는 태수의 얼굴이 어느 순간 전혀 다른 사람처럼 돌변했다.
또 한 번의 생명과의 싸움이다.
무조건 이겨야 할 싸움이기도 했다.
‘불공평해.’
한 번이라도 지면 환자는 죽는다.
정말 불공평한 싸움이었다.
이내 태수와 스미스는 준비를 마치고 수술실에 들어갔다.
가볍게 둘러보니 수술실은 상당히 널찍한 편이었다.
신속대응센터의 수술실보다 조금 더 넓어 의료진 10명이 들어와 움직여도 공간이 충분해 보였다.
병원을 건축한 이후 몇 번의 개보수를 통해 이렇게 넓은 수술실로 탈바꿈했다.
특히 흉부외과 수술실이 넓은 편이었다. 상당히 부피가 큰 인공심폐기가 자리하고 있는데도 공간이 넉넉할 정도였다.
내막인즉, 스미스가 이렇게 큰 수술실로 개조하게끔 일조했다.
태수가 그 과거를 알고 있는 건 카프레네의 지식을 통해서였다.
항상 의학계에선 카프레네의 그늘에 가려진 스미스였지만, 존스홉킨스에서 그의 영향력은 상당했다.
거기까지 기억을 떠올리며 수술실을 둘러보던 태수는 곧 데이먼을 포함한 스텝들과 시선이 마주쳤다.
마스크로 입과 코를 가려 아리송했다.
하지만 이틀 동안 장시간 회의를 하며 익힌 얼굴들이었다.
끄덕.
태수는 가볍게 고갯짓을 해 보였다.
그러자 데이먼과 스텝들도 마주 고갯짓을 해 왔다.
짧게 오고 간 몸짓이었지만 피차 잘 부탁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