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844
00847 847화
그 순간 태수가 마취의를 바라봤다.
“무슨 일입니까?”
“혈압하고 맥박이 갑자기……. 어, 어?”
마취의가 당황하는 순간이다.
삐비빅!
ECG(심전도 모니터)의 소리가 시끄럽도록 요란하게 변했다.
갑자기 왜?
태수와 데이먼, 심지어는 지켜보던 스미스까지도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이었다.
그때였다.
“hemoptysis(객혈)!”
어시스던트 보조 간호사의 외침에 태수와 데이먼의 시선이 다시 그쪽으로 향했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 깨끗했던 인공호흡기 내부가 시뻘건 피로 가득했다. 어디서 시작된 출혈인지 감잡기 힘들었다.
왼쪽 폐를 수술하던 중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를 일으킬 수술은 아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태수는 머릿속이 살짝 복잡해졌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우선 응급처치부터 해야 했다.
태수는 냉정한 시선으로 피로 얼룩진 리카르도의 입을 바라봤다. 이대로 놔두면 출혈로 숨을 쉬지 못할 상황이다.
그걸 증명하듯이 마취의가 빠르게 소리쳤다.
“혈압 강하, 맥박 상승, 그리고 산소포화도…… 제로!”
역시 숨을 쉬지 못하고 있었다.
태수와 데이먼은 잠깐 사이 서로 눈빛이 마주쳤다.
이런 상황에 계속 수술을 이어 가자고 할 미친 의사는 없었다.
태수와 데이먼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리카르도의 입을 막고 있는 인공호흡기부터 벗겨 냈다.
주르륵!
인공호흡기에 가득 찬 피가 쏟아졌다.
그뿐만이 아니다.
입과 코에서 피가 계속 흘러나왔다.
일반 피가 아니다. 끈적끈적한 가래가 뒤섞인 오염된 피였다.
태수는 데이먼에게 바로 낮게 소리쳤다.
“썩션.”
“흡입합니다.”
콰륵콰륵.
데이먼은 곧장 약간 벌어진 입에 썩션을 넣고 출혈을 흡입하기 시작했다.
태수는 리카르도의 고개를 약간 옆으로 기울여 입속에 담겨 있던 피가 더욱 빠르게 흘러나올 수 있게 조치했다.
정말 일사천리로 진행된 일이었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아직도 리카르도의 객혈이 멈추지 않는단 점이었다.
마취의도 다급하게 말했다.
“환자가 계속 숨을 못 쉬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arrest(심정지)가 올 수 있습니다.”
“일단 혈액부터.”
“출혈량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출혈이 문제가 아니라 역시 산소 공급이 문제란 이야기였다.
지금까지 호흡이 멈춘 시간은 대략 30초.
앞으로 1분 이내에 다시 호흡을 확보해야 한다.
아니면 anaerobic(산소 부족)으로 심장과 대뇌의 기능이 정지될 수도 있었다.
만약 심장이 멈추게 된다면 그때는 제세동기도 소용이 없었다.
한 번 가른 심장은 회복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다시 가동하기 시작한 심장은 너무도 연약해 급격한 상황 변화에 제대로 대처할 수가 없다.
그리고 또 제세동기가 소용없는 이유.
간단히 말해 역시 폐에 산소가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 탓이다.
태수는 직감했다.
이제부터 단 한 번의 심정지도 일어나서는 안 된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정말 이 수술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테이블 데스.
수술 도중의 환자 사망이다.
집도의라면 누구나 피하고 싶은 최악의 순간이 찾아온다.
태수도 그걸 알기에 더욱 초조함을 느꼈다.
그렇다고 발만 동동 구를 생각은 없었다.
태수는 서둘러 손끝을 리카르도의 목에 댔다.
기도를 짚어 혈류를 느끼며 어디서부터 시작된 출혈인지 그 출혈점을 찾기 위해 신경을 집중했다.
그때 데이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닥터 최, 출혈이 멈추지 않습니다. respiratory obstruction(기도 막힘)이 계속된단 말입니다.”
“찾고 있습니다.”
“음.”
데이먼은 초조한 얼굴로 변했다.
아직 태수가 두 손을 들지 않았기에 섣부르게 나설 수 없었다.
아니, 나설 수가 없었다.
자신도 정확하게 어떤 문제로 출혈이 발생해 기도가 막혔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갓 뎀.”
데이먼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욕설이 터져 나왔다.
참관실에 있던 심사관들의 표정도 더불어 심각해졌다.
“다들 예상되는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현재까지 정황으로 봐서는 폐에 문제가 있다는 것 외에는 쉽게 판단하기 힘듭니다.”
“나라도 저 자리에 있었다면 상당히 골치 아팠겠습니다.”
심사관들은 걱정 어린 눈빛을 보이며 동요했지만 아직 흔들리진 않았다.
지금도 태수의 옆에서 냉정하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스미스를 믿고 있던 탓이다.
그런 반면 제임스의 시선은 단 한 번도 스미스에게로 향하지 않았다.
태수를 향한 눈빛만이 더욱 깊어질 뿐이었다.
제임스가 봐도 상황은 급하다.
매뉴얼대로 여기서 태수가 스미스에게 밀려난다면?
“음.”
제임스의 입에서 신음이 절로 나왔다.
무슨 일이 있어도 환자에게 더 이상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
제임스는 생각만 하고 있진 않았다. 입고 있던 양복의 윗도리는 이미 벗었고 넥타이를 풀고 있었다.
여차한 순간 바로 수술실로 뛰어갈 채비 중이었다.
그건 정말 만약의 상황이고 그럴 일이 없다고 믿고 있지만, 그래도 어떻게 될지 모르기에 준비하는 손길을 멈추지 않았다.
태수가 출혈점을 찾기 시작한 지 20초가 지났다.
하지만 아직 찾지 못해 객혈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환자의 respiratory obstruction(기도 막힘) 증세도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심정지가 일어날 확률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그 생각에 환자의 여기저기를 만져 보던 태수도 점점 입속이 말라가기 시작했다.
‘여기? 아니야. 이쪽은…….’
절레절레.
몇 군데를 손으로 짚어 혈류를 느껴 봤지만 역시 고개를 저어야 했다.
양쪽 폐를 짚어 보기도 했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출혈이 아니라서 정확한 걸 알아내려면 폐를 갈라서 벌리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렇게 확인하는 과정이 짧을 리가 없었다.
원인을 찾기도 전에 산소 부족으로 심장이 멈출 게 뻔했다.
생각하는 사이 골든타임이 점점 흘러갔다.
이제 남은 시간은 대략 30초.
그사이에 이 알지 못할 출혈을 잡든지, 아니던 새로운 루트로 환자의 호흡을 확보해야 한다.
등골이 오싹하게 식어 갈 정도로 긴장감이 생겨날 때였다.
태수의 귀에 시계 소리가 들려왔다.
째깍, 째깍.
수술실에는 전자시계를 장착해 놓았기에 이런 소리가 들릴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이 소리는 태수의 초조함이 만들어 낸 환청이었다.
태수는 지금 이 소리가 환청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있는 정신이 없었다.
다만 그 초침 소리가 30번이 되기 전에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폐.
분명히 폐의 이상이다.
그러나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아니면 둘 다 문제인지.
만약 문제라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상이 생겼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태수의 눈동자는 모터를 달아 놓은 듯 쉴 새 없이 움직였다.
5초…… 10초…….
피 말리는 시간이 이어질 때였다.
뒤에서 지켜보던 스미스의 낮고 강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가운!”
그 소리에 안 그래도 곤두선 태수의 정신이 더욱 바짝 들었다.
스미스가 나서겠다는 건 태수로서는 가망이 없단 뜻이다.
그렇게 판단해도 좋았다.
그러나 태수에겐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리카르도와 약속했다.
꼭 다시 깨어나 웃으며 인사하자는 약속이다.
그걸 지키지 못할 상황이라는 점이 스스로를 옥죄어 왔다.
이미 에밀리아는 태수의 곁을 떠나 스미스에게로 다가간 상태였다. 집도의 전담 간호사가 움직였다는 건 그녀도 태수에게 희망이 없다고 판단했단 의미다.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집도의가 바뀌어도 좋고, 간호사가 사라져도 좋았다.
문제는 얼마 남지 않은 이 시간에 출혈점을 찾아야 한다는 거였다.
스미스의 목소리가 한 번 더 울렸다.
“수술 가운 끈만 고정시키면 바로 갈 테니까 닥터 최는 옆으로 빠져.”
최후통첩이 들려왔다.
테이블 데스는 물론 손끝까지 다가왔다고 생각한 흉부외과 전문의 자격증이 신기루처럼 사라질 순간이었다.
태수의 눈빛이 더욱 복잡해졌다.
흉부외과 전문의 자격증은 언제고 다시 취득할 수 있다. 시간이 길어지더라도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자신을 기다릴 난치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의 희망은?
또 태수의 온갖 편의를 봐준 보건의들의 믿음은?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던 부모님에 대한 신뢰는?
가족에게 마지막 말도 남겨 놓지 못한 리카르도는?
그 복합적인 생각들이 태수의 신경을 그 어느 때보다 곤두서게 했다.
바짝 곤두서다 못해 면도날처럼 날카로워진 신경이 돋아난 순간이다.
태수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툭하고 터졌다.
그와 동시에 그동안 경험했던 수술의 기억들이 일시에 쏟아졌다.
이상한 건, 조금도 혼란스럽지 않았다.
다급하고 초조하던 표정조차 외려 차분하고 차갑게 변해 갔다.
태수의 냉정하고 날카로워진 시선이 리카드로의 폐로 향했다.
분명한 건 폐의 어느 부분에 문제가 생겨서 발생한 출혈이다.
여기 있는 의사들 모두 알고 있지만 원인을 발견하지 못한 상황이다.
그때 태수의 시선에 미약하게 꿈틀거리는, 오른쪽 폐와 연결된 기도가 보였다.
그 사이는 약 1센티미터 남짓.
그 짧은 기도 바로 위에는 반대쪽 폐의 기도와 만나는 공간이 있다.
예리해질 대로 예리해진 태수의 눈빛이 번뜩였다.
오른쪽 폐와 연결된 그 짧은 기도에서 잔떨림을 확실히 확인했다.
‘혹시?’
태수의 눈이 가늘어지며 반대쪽에 있는 왼쪽 폐와 연결된 기도를 확인했다.
그가 조금 전까지 수술한 폐였다.
역시 거기서는 잔떨림이 보이지 않았다.
수술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란 뜻이다.
그렇다면.
태수가 서서히 의심을 확신으로 바꿔 갈 때였다.
타닥, 타닥.
뒤에서 빠르게 다가오는 스미스와 에밀리아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비켜!”
스미스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하지만 태수는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손에 쥐고 있던 지혈클램프를 바라봤다.
이거다.
이게 필요하다.
망설일 시간이 없기에 태수는 지혈클램프를 곧장 이상하다고 판단된 그 부위로 뻗었다.
오른쪽 폐와 연결된 기도.
약 1센티미터 정도 되는 그 짧은 기도에 태수의 지혈클램프가 정확하게 도착했다.
꽈악!
태수가 기도를 강하게 쥐어 차단했다.
동시에 오른쪽 폐와 연결된 기도의 미미한 떨림이 일순간 멈췄다.
“됐…….”
태수가 뭐라고 이야기하려는 찰나, 옆에서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그 충격에 대비하지 못한 태수는 수술실 바닥으로 크게 나뒹굴었다.
우당탕!
“크윽.”
그러나 막상 태수를 밀어낸 스미스는 개의치 않고 상황을 확인했다. 평소 차분하고 냉정한 그였지만 역시 생명 앞에서는 다급해지는 모양이었다.
“혈압, 맥박부터 다시!”
“저기…… 박사님.”
마취의가 나지막이 부르자 스미스가 날카롭게 째려보며 물었다.
“무슨 일이지?”
“ECG의 소리가 멈췄습니다.”
“……뭐?”
스미스가 움찔할 때였다.
기도에서 계속 출혈을 걷어 내던 데이먼의 이야기도 들려왔다.
“출혈이 급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
스미스가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의아하게 바라봤다.
그때 마취의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산소포화도 잡힙니다. 10퍼센트! 일단 산소부터 투여해야 할 거 같습니다.”
“그래. 일단…….”
스미스가 오더를 내리려 한 순간이다.
스윽.
스미스의 옆으로 끝이 가느다란 인공호흡기가 도착했다.
그걸 내민 사람을 확인한 스미스가 처음으로 크게 동요했다.
“닥터 최?”
“이 수술의 집도의는 접니다. 당연히 책임도 제가 집니다. 비키십시오.”
강한 어투다.
태수는 집도의로서 분노마저 드러냈다.
지금은 스미스가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다.
“…….”
“실례하겠습니다.”
태수는 멍한 표정의 스미스를 놔두고 직접 기도를 통해 인공호흡기의 가느다란 끝을 삽입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왼쪽 폐까지 진입할 거니까 닥터 데이먼은 계속 피를 흡입해 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데이먼도 급변한 상황에 얼떨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