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845
00848 848화
그러는 사이에도 태수는 가느다란 인공호흡기의 끝을 리카르도의 입속에 넣었다.
기도는 이미 확보되어 있기에 진입은 쉬웠다.
그러나 그냥 마구잡이로 쑤셔 넣을 수 없기에 살짝 뒤로 뺐다가 얇은 관의 끝을 살짝 돌리기도 했다.
지금 이 순간, 태수의 손끝 감각은 낚시할 때와 비슷했다.
보이지 않는 장소 끝에 무언가가 걸릴 때까지 집어넣어야 하기에 그 감각이 무척이나 중요했다.
태수는 초곡리에서 1년 가까이 낚시에 빠져 있었다.
갓 부화한 물고기부터 월척까지 낚아 봤다.
부둣가부터 선상 낚시까지 그 장소도 다양했다.
그때 갈고닦았던 손끝 감각이 이 순간에 제대로 발휘되고 있었다.
정말 옛 어른들 말씀대로 도둑질도 써먹을 때가 있다고, 지금이 딱 그 순간이었다.
태수는 그런 건 관심도 없었고, 계속 인공호흡기의 가느다란 끝이 기도를 통해 왼쪽 폐에 닿을 때까지 신중하게 밀어 넣었다.
그리고.
턱.
손끝에 무언가가 걸린단 느낌을 받는 순간이었다.
태수의 시선이 그제야 ECG(심전도 모니터)로 향했다. 인공호흡기는 계속 산소와 마취액을 분사하고 있기에 조절할 필요가 없었다.
10퍼센트…… 13퍼센트…….
아주 미미하지만 수치가 계속 상승하고 있었다.
그리고 10여 초가 지난 순간이다.
57퍼센트.
산소포화도가 그 정도 수치에서 계속 왔다 갔다 했다.
태수의 시선이 이번에는 마취의에게로 향했다.
마취의도 그걸 느꼈는지 바로 이야기했다.
“이 정도면 호흡이 유지되는 겁니다.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고요.”
“으음.”
태수는 자신도 모르게 크게 앓는 소리를 냈다.
정말 아찔했다.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그 소리를 듣자마자 팔다리가 후들거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차갑게 식었던 땀도 다시 돋아나기 시작했다.
“후우, 후우.”
태수는 진정되지 않은 숨을 계속 가다듬었다.
그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하아아아.”
“물, 물 좀 주세요.”
“다리 풀려. 앉을 수도 없고, 미치겠네.”
데이먼을 포함한 스텝들 모두 긴장이 풀려 몸을 가누기 힘들어 했다.
실제 출혈량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하지만 기도가 막힌 상황이라 아무리 혈액을 쏟아 부어도 버틸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심장에 무리가 가기 직전에 산소가 추가되어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물론 정확한 건 환자가 깨어난 후에 검사를 해 봐야 안다.
그래도 현재 환자가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 모두는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맥이 풀린 상태였다.
의료진들이 잠깐 몸을 추스르는 사이였다.
스미스의 시선이 태수에게로 향했다.
그 눈빛을 느낀 태수가 억지로 자세를 다잡고 말했다.
“비키라고 하셨는데 나서서 죄송합니다.”
“그보다 어떻게 된 거지?”
“저도 정확한 원인은 모르겠습니다만, 오른쪽 폐에서 출혈이 발생한 거 같습니다.”
“그래서 아예 기도를 차단시켰다는 이야긴데.”
스미스는 태수가 물려 놓은 지혈클램프를 눈짓했다.
태수는 곧장 그에 대해 대답했다.
“당장 할 수 있는 게 그거밖에 없었습니다.”
“오른쪽 폐라고 확신했지? 왼쪽 폐일 수도 있는데 말이야.”
“오른쪽 폐와 연결된 기도만이 가늘게 떨렸습니다.”
“음.”
스미스는 이해가 되지 않는단 표정이었다.
태수는 더 할 말이 없었다.
응급 상황은 해결했지만 앞으로 이어질 수술을 스미스가 진행한다고 해도 할 말이 없었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환자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린 건 집도의인 태수였다.
머릿속으로 복잡한 생각이 오갔다.
그러나 가슴은 왠지 개운했다.
‘그래. 살렸잖아.’
이대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떳떳하게 말할 수는 있을 것 같았다.
난치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은…….
서울의 대형병원이나 대학병원의 과장들이 집도를 해 준다면 성심성의껏 어시스던트로 보조할 생각이다.
아예 모든 걸 툭 내려놓으니 해방감까지 느껴졌다.
그렇게 태수가 침묵하자 스미스가 뒤로 물러났다. 그러고는 나지막이 말했다.
“계속 진행해.”
“…….”
“난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으니까 집도의는 아직 닥터 최 아닌가?”
스미스의 말에 모든 걸 내려놓았던 태수의 눈빛에 다시 열정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맞습니다. 제가 집도의입니다.”
“단, 수술 가운은 벗지 않고 대기하겠네.”
언제든지 다시 태수를 밀어내겠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태수는 상관없었다.
환자의 생명은 물론 신기루처럼 사라졌던 흉부외과 전문의 자격증이 다시 손끝까지 다가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그냥 입고만 계시게 할 겁니다.”
“똑똑히 지켜보지.”
“감사합니다.”
태수가 넙죽 고개를 숙였지만 스미스는 다시 차가운 얼굴로 변했다.
“조금 전에 밀친 건 미안해.”
“제가 박사님 상황이었으면 아마 그때까지 기다리지도 못했을 겁니다.”
“하긴 성격이 워낙 불같으니까.”
“그 불같은 성격으로 마지막까지 화끈하게 해 보이겠습니다.”
태수가 진하게 눈웃음을 보이자 스미스가 힐끔 쳐다봤다. 스미스는 곧 시선을 돌렸지만 차갑던 눈가에 약간의 눈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저 친구도 좋아하는 거 같아.”
“누구……. 엇!”
참관실로 시선을 돌린 태수가 제임스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심사관들이 일제히 바라보고 있었지만 태수의 시선은 제임스에게만 고정되었다.
어떻게 여기에?
하지만 신출귀몰한 제임스였기에 이젠 뜬금없는 만남에도 익숙해졌다.
태수는 놀라움을 보이기보단 진한 눈웃음을 대신 내보였다. 그러자 제임스는 남몰래 태수에게 엄지를 들어 보였다.
모두 보고 있었고, 잘 대처했다는 격려의 의미였다.
태수도 제임스를 향해 마주 엄지를 내보였다. 그리고 제임스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에 부담감보다 자신감이 돋아났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제임스가 지켜보는 수술이다.
지금까지 큰 파도를 여러 번 넘어왔다.
앞으로도 어떤 난제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수술을 무사히 성공시킨다.
환자를 위해서도, 자신을 위해서도.
그리고 멀리서 지켜봐 주러 온 제임스를 위해서도.
이 수술은 반드시 성공시켜야 했다.
수술 장갑만 교체한 태수는 다시 집도의 자리에 섰다.
고비를 넘긴 의사답지 않게 더욱 씩씩해진 모습이었다.
짧은 시간 풀렸던 긴장감을 다시 날카롭게 세운 데이먼과 스텝들도 제자리에 섰다.
태수가 데이먼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시 이 자리에서 뵈니 너무 반갑습니다.”
“전 조금 죄송합니다.”
“그럼 오늘은 술 좀 많이 마셔도 되는 거죠?”
“네? 아, 그럼요.”
지체없이 대답한 데이먼에게 태수가 농담조로 말했다.
“그런데 어쩌죠? 오늘은 선약이 있고, 조만간에 코가 삐뚤어져야겠습니다.”
“혹시 참관실에 계시는 제임스 박사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갑자기 선약이 잡혔네요.”
태수가 대답하자 데이먼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임스 박사님이라면 제가 백번이고 양보해야죠.”
“그럼 다시 한 번 힘을 내서 마지막까지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른쪽 폐부터 바로 이어 가시죠.”
태수가 옆으로 손을 내밀자 에밀리아가 메스를 건넸다.
그녀는 태수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태수를 버리고 스미스에게 달려간 게 당연했다는 눈빛이다.
태수도 물론 그걸 탓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아니, 탓해 봐야 남의 병원 간호사였다.
앞으로 남은 수술만 제대로 진행된다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응급 상황은 넘겼지만 오른쪽 폐의 출혈은 계속되고 있는 중이었다.
태수와 데이먼은 다시 긴장감을 끌어올리고 수술에 들어갔다.
폭풍 같던 수술실을 지켜보던 심사관들도 그제야 한시름을 놓았다.
정말 한 치도 시선을 돌릴 수 없던 급박한 상황이었다.
그 상황이 끝나자 덩달아 긴장했던 심사관들도 맥이 풀린 얼굴이었다.
“일단 응급 상황은 일단락됐습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오른쪽 폐와 연결된 기도를 집은 닥터 최가 정말 대단한 거 같습니다.”
“스미스 박사님에게 밀려난 후에도 벌떡 일어나서 인공호흡기부터 교체하지 않았습니까.”
“그 순간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도 상당히 궁금하네요.”
심사관들의 이야기를 듣던 제임스가 나지막이 말했다.
“환자, 가족, 한국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다른 환자와 다른 의사들.”
“네?”
“아마 그 응급한 순간에 닥터 최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 생각들일 겁니다.”
제임스의 대답을 들은 심사관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한 수술 아닙니까?”
“아마 그에 대한 생각도 했을 겁니다. 아주 짧은 시간에 말입니다.”
“그런데 제임스 박사님은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제가 옆에서 직접 경험해 봤으니까요. 그리고 응급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만큼은 저보다 더 뛰어날 겁니다.”
제임스는 솔직하게 말했지만 심사관들은 믿지 않았다.
“어떻게 박사님과 비교를 합니까?”
“믿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제임스는 입을 다물었다.
순간 멀쑥해진 심사관들이 서로를 바라봤다.
제임스가 저런 반응을 보일 정도라면 믿지 않는 게 손해다. 평소 제임스 성격상 과장이나 거짓으로 다른 의사를 말한 적은 없었다.
정말로 제임스보다 응급 상황에 강한 의사라면?
심사관들의 시선이 일제히 태수에게로 향했다.
‘우리 병원에…….’
무조건 스카우트를 해야 한다.
저 나이에 저 정도 실력이라면 앞으로 10년만 지나도 전 세계적으로 따라올 의사가 없을 터였다.
그런 가망성이 보이는 의사라면 무슨 수를 써서든 자기 병원에 데려다 놓아야 했다.
욕망으로 가득한 시선들이 태수를 향해 강렬하게 쏘아져 갔다.
스미스는 수술 가운을 입은 채 태수의 옆에 서서 언제든지 달려들 태세였다.
그러나 태수는 옆에 있는 스미스를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응급 상황은 이미 지나간 일이다.
이젠 원인을 찾아 조치하고 계속 수술을 진행시켜야 한다.
참관실에서 제임스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도 서서히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반가움의 해후를 나누는 것도 수술이 잘 끝나야 가능한 일이다.
태수는 여러 가지 생각을 털어 내고 환부에만 시선을 집중했다.
지혈클램프는 그대로 놔둔 채 오른쪽 폐부터 출혈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
“메스.”
태수가 요청하자 에밀리아는 말없이 수술 도구만 건넸다.
탁.
그걸 받아 든 태수는 오른쪽 폐를 잠시 살펴봤다. 이런 객혈을 일으킬 정도라면 폐동맥일 가능성이 높았다.
태수는 폐동맥의 굵은 가지가 뻗는 방향으로 조심스럽게 메스를 놀렸다.
메스에 폐가 갈라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안에서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 피를 제거하는 건 역시 데이먼의 몫이었다.
콰륵콰륵.
이미 들고 있던 썩션으로 피를 흡입하며 다른 손도 움직였다.
“후크.”
끝이 가느다란 리트렉터로 오히려 환부를 벌렸다.
당연히 출혈은 늘어나고, 마취의가 바빠졌다.
“수혈량 좀 더 늘리고,
hemostatic(지혈제), cardiotonic(강심제) 조금 더 투여하겠습니다.”
태수도 에밀리아에게 부탁했다.
“액상 지혈제를 주사기에 좀 담아 주세요.”
“금방 돌아올게요.”
에밀리아가 멀어지자 태수는 의료 카트를 옆으로 가까이 끌어다 놓고 수술 도구를 알아서 교환했다.
태수가 폐동맥을 따라 조금 더 길게 가르고 데이먼과 함께 좌우로 벌렸다.
그러자 몽글몽글 출혈이 일어나는 부위가 확인되었다.
그사이 에밀리아가 다가왔다.
“여기요.”
내미는 건 투명한 액체가 든 주사기였다.
액상 지혈제가 든 주사기를 잡은 태수는 바로 출혈 부위에 부었다.
보비로 지져도 지혈은 되겠지만 그럼 폐 조직에 손상이 간다.
한 번 망가진 폐 조직이 재생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기에 조금 느리지만 지혈제로 지혈을 이어 갔다.
태수는 그런 사소한 부분들도 최대한 신경 써서 조치하고 있었다.
액상 지혈제를 출혈 부위에 주사하며 태수가 데이먼에게 말했다.
“썩션 스톱.”
“뺍니다. 디바키 주세요.”
데이먼은 바로 수술 도구를 바꿔 태수가 액상 지혈제를 뿌릴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 줬다.
액상 지혈제는 순간적으로 혈액을 굳게 해서 지혈되는 약이었다.
그만큼 빠르게 지혈이 되기에 곧 쏟아지던 출혈이 멈추기 시작했다.
그사이 태수와 데이먼은 일부 흐르는 피를 거즈로 닦으며 출혈점의 시야를 확보했다.
곧 지혈이 되고 출혈점도 시야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