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846
00849 849화
그걸 확인한 태수의 눈 사이가 살짝 좁아졌다.
“이런.”
“혈관 옆에 abscess(농양)이 하나 숨어 있었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이게 부풀면서 혈관 벽이 영향을 받아 얇아진 거 같습니다.”
“이 정도 크기는 CT를 찍어도 확실하게 나오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왜 터졌을까요?”
“인공심폐기로 전환하고 다시 전환하는 사이에 압력이 달라져서 터졌을 겁니다.”
두 사람의 대화가 신중했다.
폐동맥의 굵은 혈관이 터졌기에 당연히 객혈이 일어날 상황이기도 했다.
다행이라면 수술 도중에 혈관이 터졌단 점이다.
그때였다.
스윽.
스미스가 태수의 어깨 너머로 환부를 확인했다.
“닥터 최 예상이 맞아. 압력이 달라져서 찢어진 거 같아. 그보다 이렇게 터지는 건 잡기 힘든데 두 사람 모두 침착하게 잘했어.”
스미스가 칭찬하자 태수와 데이먼은 옅은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제부터 진짜 시작인 거 같습니다.”
“알면 끝까지 긴장 놓지 말도록 해.”
그리고 스미스는 다시 뒤로 물러섰다.
지금까지와 같이 태수와 데이먼에게 모든 걸 일임하겠단 뜻이다.
두 사람도 그걸 알기에 서로를 바라봤다.
“지혈된 혈관은 이대로 놔두는 게 상책입니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그럼 혈관 옆에 자란 abscess(농양)부터 조심해서 제거하고, 기도를 마저 확보하기로 하죠.”
“알겠습니다.”
데이먼이 승낙하자 태수는 바로 수술 도구를 불렀다.
“루페(확대경) 다시 걸어 주시고요. 믹스터, 메젠바움 베이비.”
“저도 루페. 수술 도구는 계속 사용하겠습니다.”
태수와 데이먼의 오더에 간호사들이 잠깐 바빠졌다.
곧 다시 확대경을 낀 두 사람은 서로 한 번 눈빛을 마주하고는 다시 수술을 진행했다.
그런데 태수의 손길이 이상했다.
심장을 수술할 때와 전혀 반대로 이번에는 아주 느려졌다. 보조하는 데이먼이 갑갑함을 느낄 정도로 느린 진행이었다.
그러나 데이먼은 그런 태수에게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태수의 수술 도구 끝에서 혈관과 딱 달라붙은 농양이 말끔하게 제거되고 있던 탓이다.
혈관과 농양 사이 공간은 몇 밀리미터.
손끝이 약간만 틀어져도 농양이 터지거나 혈관이 터질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런데도 출혈도, 고름도 흐르지 않고 정교한 손놀림을 보였다.
속도가 빠른 데 비해 잔손길이 없다고 생각했던 태수의 전혀 반대되는 모습이었다.
데이먼은 태수에 대해 정의했던 평가를 모두 뒤집어야 할 것 같았다.
빠를 때는 빠르게, 정교할 때는 정교하게.
태수는 환부에 따라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이는 카멜레온 같았다.
그건 데이먼뿐만이 아니었다.
옆에서 지켜보는 스미스도, 참관실에서 TV로 생중계되는 화면을 보고 있는 심사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중에 단 한 사람.
제임스만큼은 어떤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이 중에서, 아니 전 세계적으로 태수의 실력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의사는 오로지 제임스뿐이었다.
그런 제임스도 조금은 감탄했다.
‘그사이 더 성장했어.’
부족한 부분을 스스로 채워 가고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한 걸음 발전한 태수라면?
무슨 생각을 한 건지 제임스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교한 수술은 지루할 정도로 길게 이어졌다.
그렇다고 그 과정 자체가 지루하진 않았다.
1센티미터도 되지 않는 그 좁은 공간에서 태수와 데이먼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마와 등줄기에는 다시 땀이 돋아났고, 입술도 바짝바짝 말라 갔다.
이 순간 얼마나 긴장하면서 손끝을 놀리는지 누구라도 한 번에 알아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태수는 곧 문제가 된 농양을 집어 올렸다.
“오케이!”
“지혈클램프 뺄까요?”
“세척 한 번만 하고요. 기도에 잔혈이 남아 있으면 또 객혈이 일어날 테니까요.”
“알고 있습니다. 그럼 세척부터 하겠습니다.”
신경이 곤두선 부분이 일단락되어서 그런지 데이먼의 목소리가 밝았다.
그리고 어시스던트 보조 간호사와 함께 오른쪽 폐를 식염수로 한 번 싹 씻어 내렸다.
그사이 태수는 잠깐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좁은 공간을 뚫어지게 보고 있어서 그런지 눈이 살짝 침침한 것 같았다.
몇 번 눈을 깜박거려 봤지만 뻑뻑해진 눈은 쉽게 물기가 차오르지 않았다.
그때였다.
“고개를 뒤로 젖혀.”
스미스의 목소리였다.
태수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고개를 뒤로 확 젖혔다.
그러자 스미스가 루페를 빼고 태수의 눈에 안약을 넣어 줬다.
“음, 음.”
차가운 안약 느낌에 태수가 작은 침음성을 흘렸다.
그러나 스미스는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몇 번 깜빡여 봐.”
“하고 있습니다.”
깜빡깜빡.
반복된 행동으로 안약이 번져 가자 눈이 시원해지는 게 느껴졌다.
스미스는 눈가에 흘러내리는 눈물까지 닦아 주고 다시 루페를 코에 걸어 줬다.
“됐어.”
그리고 몸을 옮겨 데이먼에게도 똑같이 해 줬다.
“아니, 박사님.”
“가만히 있어.”
“여, 영광입니다.”
데이먼은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스미스의 서비스를 받았다.
두 사람의 뻑뻑한 눈을 풀어 준 스미스가 말했다.
“내 서비스는 비싸.”
“알죠.”
“그럼 됐어.”
“계속 가겠습니다.”
태수가 이야기하자 데이먼도 지친 몸에 다시 활기를 끌어올렸다.
“가시죠.”
“그럼 지혈클램프부터 빼 볼까요?”
태수는 말과 동시에 지혈클램프를 뺐다.
그러자 마취의가 바로 반응했다.
“산소포화도 상승 중입니다.”
“혈압, 맥박은요?”
“이상 없습니다. 오히려 혈압이 조금 더 안정되었습니다.”
“좋습니다. 이어서 수술하죠.”
태수가 말하는 사이 데이먼은 이미 준비하고 있었다.
진한 눈빛으로 계속 이어 가잔 재촉 중이었다.
태수도 알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젠 서로 대화도 필요 없었다.
단 한 번의 수술이지만 많은 고난을 겪어서 그런지 이젠 눈빛으로도 원하는 게 척척 읽혔다.
“뱁콕, 메젠바움.”
“썩션, 보비.”
수술 도구를 각각 쥔 태수와 데이먼은 바로 수술에 들어갔다.
오른쪽 폐에 남은 농양들을 제거하는 게 그 시작이었다.
심사관들은 태수의 정교한 수술을 본 이후 아예 대화가 사라졌다.
마냥 손이 빠른 의사가 아니다.
강약조절.
리드미컬하게 수술실을 지배하는 태수의 모습에 서서히 빨려들어갔다.
이 순간만큼은 서로 같은 걸 느끼고 있을 터였다.
제임스가 그들을 힐끔거리며 진한 미소를 내보였다.
태수의 수술은 어딘지 모르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마력이 있단 걸 한 번 더 확인한 순간일 뿐이다.
수술은 쉼 없이 이어졌다.
스미스의 서비스로 다시 힘을 낸 태수와 데이먼의 진척 속도는 빠른 편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곧 한계가 다가왔다.
시작부터 지금까지 한 번의 교대도 없이 계속 수술을 진행하고 있다.
갖가지 변수가 터져 그걸 수습하느라 심력도 상당히 소모된 상태였다.
체력이 떨어지면 정신력도 낮아지기 마련이다.
계속 신경을 곤두세우며 수술하는 게 쉽지가 않았다.
그래도 서로 아쉬운 소리, 앓는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묵묵히 수술을 진행했다.
그러던 중이었다.
데이먼은 일순간 눈앞이 흔들리는 걸 느꼈다.
체력이 바닥을 치고 있단 의미다.
마스크로 가려진 입술을 깨물어 봤지만 큰 효과가 없었다.
아니, 이미 아까부터 깨물고 있었기에 이제 와서 신선한 충격이 될 수 없었다.
그때였다.
텅!
갑자기 뭔가 세게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그 순간 데이먼이 크게 움찔하며 소리 난 방향을 바라봤다.
그 소리는 집도의 쪽에서 났다. 그런데 태수는 미동도 없는 눈빛으로 수술을 이어 가고 있었다.
너무도 궁금한 데이먼이 아멜리아에게 물었다.
“무슨 소립니까?”
“닥터 최가…….”
“닥터 최가 왜요?”
“의료 카트를 정강이로 찼어요.”
순간 데이먼이 귀를 의심했다.
보통 부딪쳤다, 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찼다는 건 말 그대로 고의적으로 강하게 다리를 뻗었다는 걸 의미했다.
수술실을 울릴 정도로 큰 소리였다.
정강이에서 올라오는 그 짜릿한 충격은 상상만으로도 몸이 부르르 떨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태수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수술하고 있었다.
외려 데이먼에게 차분히 말했다.
“손이 멈췄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조금 남았습니다. 마지막까지 힘냅시다.”
태수는 그 후 다시 입을 다물었다.
솔직히 말할 체력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도 손끝엔 떨림이 하나도 없었다.
태수의 강한 정신력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이다.
데이먼은 할 말이 없었다.
자신이 태수보다 나이도 많고 당연히 경력도 많았다.
하지만 이미 태수의 기백에 움츠러든 자신을 발견했다.
데이먼은 그런 태수의 모습에 무언가를 얼핏 느꼈다.
그러나 태수는 그런 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마지막 한 톨의 정신력이 떨어질 때까지 수술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여기서 쓰러지면?
‘정상참작은 되겠지.’
단지 그 생각 하나로 있는 힘, 없는 힘을 쥐어짜며 수술을 이어 갔다.
스텝들도 의사들이 멈추지 않는 한 계속 움직여야 했다.
그러나 그게 강압적이라 생각하진 않았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열정을 짜낼 수 있는 수술.
지금이 바로 그러했다.
그래서 그런지 스텝들도 자신의 한계를 보기 위해 더욱 집중하고 노력했다.
차분해지고 진중해진 수술실 분위기를 가장 가까이서 느끼는 스미스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참관실에서 지켜보는 심사관들은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제임스도 이 순간만큼은 태수에게 온 시선이 빨려들어 갔다.
지금 참관실을 포함한 수술실의 모든 공간은 태수가 지배하고 있었다.
그토록 길고 긴 수술도 끝은 있었다.
시간이 흘러 오른쪽 폐에 이어 왼쪽 폐까지 농양을 모두 제거했다.
태수는 심장이 뛰는 모양을 한 번 더 확인하고 데이먼과 함께 환부를 닫았다.
이어서 환자의 흉부를 완전히 봉합한 후였다.
태수는 반사적으로 마취의에게 시선을 건넸다. 바짝 마른 입술과 목은 소리를 내기 힘들 정도였다.
그걸 알고 있는 듯 마취의가 반사적으로 이야기했다.
“산소포화도는 85퍼센트 정도로 많이 상승했습니다. 그 외에 혈압과 맥박은 문제없습니다.”
“일시적인…… 현상이겠죠?”
“제 경험으로 본다면 며칠 후엔 90퍼센트 이상으로 올라올 겁니다. 그만큼 깔끔하게 도려냈으니까요.”
“그 외에 특별한…… 사항은요?”
태수는 쩍쩍 갈라지는 목소리로 끝까지 물었다.
마취의도 성심성의껏 대답했다.
“아직 소변이 나오지 않아 diuretics(이뇨제)를 추가한 상황입니다. 큰 문제는 없겠지만 소변이 나와야 좀 더 안심이 되겠죠.”
“…….”
“그 외에 다른 수치는 이상 없습니다. 수술 종료 선언하셔도 될 거 같습니다.”
그의 의견을 들은 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데이먼을 포함한 스텝들을 한 명씩 진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이내 태수의 갈라진 목소리가 나지막이 수술실을 울렸다.
“긴 시간 이어진 수술……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힘든 수술을 마칠 수가 있었습니다. 수술 종료. 고생하셨습니다.”
태수가 깊게 고개를 숙이며 선언했다.
데이먼이 꺼멓게 죽은 안색으로 태수를 바라봤다.
그러던 그는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태수를 따라 같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수고…… 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다른 스텝들도 태수와 데이먼을 따라 고개를 숙였다.
한국식 인사법을 처음 따라 하는 거라 어색한 몸짓이었지만 한가지는 분명했다.
태수를 향한 존경.
실력을 떠나 집도의로 보여준 열정에 감복한 얼굴이다.
더불어 고단한 수술이었지만 아직 여운이 남아 있는 얼굴들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러했다.
기운이 하나도 없는 태수는 수술대를 손으로 짚고 숨부터 가다듬었다.